<141화>
프랭크 맥도날드
[최근 ‘리가’라는 홀로그램 아이돌을 제작, 확산한 기술은 우리가 아는 현대 과학으론 실현이 불가하다.
적어도 르사이언스 시대가 세 번은 더 와야 비슷하게라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성자의 도움 없이 홀로그램 아이돌을 만들 수는 있으나 리가처럼 모든 국가의 보안, 전파망을 뚫고 강제 투영하는 건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런 기술이 빌런의 손에 들어간다면, 인류의 문명이 석기시대로 회귀하는 건 한순간일 것이다.]
[투데이 사이언스, 노벨 완전정보학상 3회 수상자. 길버트 슈켄타인과의 인터뷰 中]
단기간에 세계로 뻗어나간 홀로그램 아이돌, 리가를 두고 군사, 정치학에 통달한 학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초과학으로 가한 일방적인 세계 침략.”
* * *
미국, 국가안보국.
정장을 입은 중년이 빠른 걸음으로 상황실의 문을 연다.
넓은 공간에는 다수의 군인이 오가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중년의 사내를 처음 발견한 대위가 초췌한 얼굴로 경례한다.
“충성!”
“충성, 어떻게 됐나?”
“여전히 소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메일로 전송하겠습니다.”
군 전용 인트라넷을 통해 도착한 메일을 홀로보드로 확인하던 국장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보고서 중 한 부분을 가리켰다.
“부국장은 왜 볼트에 갔나?”
“볼트 사에서 의심되는 위성이 있다고 접촉해왔다고 합니다. 금일 14시까지 복귀한다고 하셨으니, 지금 오는 중일 겁니다. 아, 저기.”
투명한 창 너머로 체신 없이 뛰어오는 남자. 그는 국방부 육군 국가안보국의 부국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젊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국장마저 정장 소매에 달고 있는 약식 계급장 또한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국장님 벌써 오셨습니까.”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
국장은 손목의 시계를 의식적으로 확인하곤 무표정으로 부국장을 쳐다봤다.
“부국장, 자네의 의무는 미꾸라지들과 접촉하는 게 아닌 내 업무 보조다. 왜 멋대로 행동했지?”
미꾸라지는 국방성 내부에서 볼트를 칭하는 속어다.
반쯤 국가에 발을 걸치고 있는 주제에 손해를 본다 싶으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서 붙은 별명.
“저 프랭크 맥도날드.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
국장의 싸늘한 추궁에도 실없이 웃으며 종이 한 장을 품에서 꺼내 내미는 맥도날드.
국장은 그런 그를 한참 노려보다 종이를 낚아채 확인했고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속 불명의 위성, 플래싱에 대하여.]
악필로 적힌 수기 보고서엔 플래싱이라 이름 붙은 식별 불가 위성이 자행한 이온 캐논 사출, 인근 인공위성을 이용한 외형 변형, 전조 없이 사라지는 기현상 목격 정보 따위가 시간대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국장님, 지금 궤도에 있답니다. 당장 추적하셔야 합니다.”
“증거는?”
프랭크 맥도날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뒷주머니에서 오래된 아날로그 영상기기를 꺼내 재생했다.
거기엔 전 볼트 국장이 리쳇에게 보복을 하기 위해 모아둔 과거의 영상들이 들어 있었다.
“어떻습니까.”
“대위, 우리 쪽 청소부들 좌표 띄우도록.”
“예, 써!”
지휘실 전면의 가장 큰 홀로보드에 청소꾼 네 명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중 국장이 리쳇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청소꾼을 지목하자 그와 연결되었다.
“아, 금방 끝난다니까!”
짜증 섞인 남성의 음성에 군인들이 어깨를 움찔하며 국장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국장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손을 한 번 젓고는 입을 열었다.
“네 기준으로 B19 지점에 뭐가 보이지?”
“어? …그, 방금까지 아내 전화를 받느라.”
“됐으니까 묻는 말에 답해라.”
“옙, 흔한 철판 조각들 뿐인뎁쇼?”
그때 프랭크 맥도날드가 주먹을 움켜쥐고 흔들며 국장에 붙더니 화면의 한쪽 구석을 가리킨다.
거기엔 검정과 회색으로 위장한 인공위성이 철판 파편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이 통신을 감청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의심이 안 들게끔 끊으세요.”
귓가에 속삭이는 프랭크의 제안이 불쾌한 국장이었으나 합당했기에 그대로 따랐다.
“업무태도 검사였다. 일 도중 통화는 자제하도록.”
“예, 옛! 죄송합니다!”
청소꾼과의 연결을 끊자 국장은 신속히 결단을 내렸다.
“외교부에 리가의 모체로 의심되는 위성을 찾았다 전하고 협상 준비 요청해라.”
“안 됩니다!”
발작하듯 거부하는 프랭크.
“이유는?”
“협상이라니요, 단독으로 우리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 놈입니다. 협상 같은 온건한 방식으로는 세계가 비웃을 겁니다!”
“저 위성이 리가의 모체라는 증거가 없다. 설령 맞다 하더라도 그만한 기술력을 가진 개체가 외부의 위협에 그대로 본체를 드러낼 리가. 고로, 저것은 더미일 가능성이 크다.”
“국장님!”
국장의 소매를 쥐어뜯으며 호소하는 프랭크 맥도날드.
“무례하군. 오늘 일은 없던 것으로 할 테니 들어가 쉬도록.”
“큭! 지금 결정을 후회하실 겁니다!”
* * *
프랭크 맥도날드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폭소했다.
“…큭, 크하하!”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자신의 낯선 얼굴을 할퀴듯 잡아 뜯자 주름이 드러난다.
“플래싱, 이번에야말로 박살을 내주마.”
프랭크 맥도날드의 정체는 전(前) 볼트 사 국장이었다.
얼마 전 그는 불륜이 들켜 가정이 파탄 났으며 부하이자 현 볼트 국장의 내부 고발로 인해 무능이 드러나 퇴출당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걸 리쳇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감시자 놈. 또 왔나.”
차고에 주차하는 도중 발견한 맞은편 건물의 감시자.
진저리를 친 프랭크 맥도날드는 거실로 들어가 커튼을 치고 TV를 켜 소리를 높였다.
“이만하면 되겠지.”
베개와 이불을 말아 소파에 눕혀 사람처럼 위장한 뒤, 침실의 창문으로 조심히 나와 준비해둔 바이크를 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윽고 버지니아비치 인근의 슬럼가에 도착한 그는 으슥한 골목에 서 있는 흑인 남자에게서 커다란 서류 가방을 건네받았다.
“이 잠긴 보석함을 뭐에 쓰려는 진 몰라도 하나만 약속해라.”
거구의 흑인이 프랭크의 어깨를 움켜쥐고 벽에 밀어붙인다.
“절대 땅에 떨어트리지 마라. 살고 싶으면.”
하얀 눈으로 노려본 뒤 골목 안쪽으로 사라지는 흑인.
“퉤!”
프랭크는 매우 불쾌했으나 거사를 앞두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았기에 침을 뱉는 것으로 치욕을 인내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숨기기가 무섭게 현관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띵동!
“가, 갑니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소파 아래에 숨긴 뒤 현관을 열자 앞 건물의 그 감시자가 웃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꿀꺽.
“하하, 토마토 셰이크를 좀 나눠드리려고요.”
“아, 네. 고맙습니다.”
떨떠름한 얼굴로 받자 남자는 집안을 한 번 둘러보더니.
“혼자 사시나요?”
“그렇습니다만?”
“혹시 청소가 어려우시면 말씀하세요.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의 행동이 역겨웠던 프랭크가 구역질을 하자 앞집 남자가 등을 두드리며 부축한다.
“괜찮습니까?”
“떨어져!”
“구급차 불러드릴까요?”
감시자가 꼴 보기 싫었던 프랭크는 화가 솟구쳤고.
“내 집에서 나가!”
“죄, 죄송합니다.”
놀란 남자는 문을 닫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그의 행동에서 소름이 돋은 프랭크는 혼자 숨을 고르며 의사가 흥분할 때마다 삼키라는 약을 먹고 나서야 진정됐다.
“후우, 그래. 가족도 곧 돌아올 텐데 아무리 감시자라도 소리치는 건 안 좋았어. 좋은 아빠가, 남편이 돼야지. 안 그래? 프랭크?”
거울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는 방금 가방을 숨긴 소파로 향했다.
철컥, 철컥.
가방을 열자 안은 덮개가 씌워진 빨간 버튼과 키보드, 20세기 풍의 모니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랭크는 망설임 없이 키보드를 두드려 입력되어 있던 좌표를 수정하고 덮개를 열었다.
탁.
붉은 버튼을 누르자 나타나는 메시지.
[명령어를 입력해주십시오.]
막 암호를 말하려던 찰나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프랭크 맥도날드 부국장님, 접니다.”
항상 국장에게 붙어 알랑방귀를 뀌어대던 대위의 목소리에 프랭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암호를 읊었다.
“51개의 별을 위하여.”
[명령권자임을 인증해주십시오.]
쾅!
“이거 여세요! 국장님의 계급장은 왜 가져가셨습니까! 대답 안 하시면, 따고 들어갑니다!”
프랭크는 대위가 뭐라 하건 국장의 소매를 잡았을 때 바꿔치기한 약식 계급장 속의 칩을 모니터 상단의 홈에 끼워 넣었다.
끼익, 끽.
오래된 계단이 여러 사람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삐걱댄다.
“어디 계십니까. 집에 있는 거 다 압니다. 국장님께—, 지금 뭐 하고 계십니까?”
[확인되었습니다, 정말 실행하시겠습니까?]
“그래! 당장!”
“프랭크 맥도날드! 그만둬!”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결정은 범세계적인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가족을 돌려받기 위해서 하는 거다. 잔말 말고 실행해!”
[3, 2…]
“멈춰!”
프랭크를 밀어 차고 핵가방에 달려드는 대위.
“이미 늦었다! 으하핫!”
[…1. 발사합니다.]
* * *
“대통령님. 핵이 발사됐습니다.”
“다시.”
“핵입니다.”
업무를 보던 미 대통령은 펜을 놓고 사색이 된 보고자를 올려다본다.
“어디서?”
“자국의 핵이 러시아에서 발사됐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에 약탈당한 핵입니다.”
긴 숨을 내쉬는 대통령.
“국방부의 대책은?”
“자국에 떨어지면 요격과 동시에 정화 작업을 할 수 있으니 피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타국은 상관없다는 건가?”
“자국민의 생존과 이익이 우선입니다.”
“…일부 동의하네. 그래서, 어디에 떨어진다던가.”
“아프리카, 세이셸입니다. 그리고 발사된 미사일에 탑재된 핵탄두는 개발 당시 각성자를 동원해 괴개조를 한지라 나라 전체가 1차 폭발 범위 내입니다.”
세이셸은 이제야 막 문화와 과학이 부흥하기 시작한 아프리카의 오아시스 같은 국가다.
“요격하게.”
“어렵습니다. 정확하겐 요격 자체는 문제 되지 않으나 현재 기술로는 8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을 제시간에 정화할 기술이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비난이 우리에게 쏠릴 것입니다.”
“빌어먹을 러시아! 핵 같은 건 진작 처리했어야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망하고 재건되는 과정에서 해당 미사일 기지의 존재와 정보가 소실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43분 15초입니다.”
“하아, 당장 긴급회선에 등록된 모든 히어로에게 도움 요청하고 방송 준비하도록.”
“대통령께서 감당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러시아의 내부 공작원이 벌인 일이라고 하면 다들 이해할 겁니다.”
“이보게, 나는 핵미사일을 방관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싶지 않아.”
각오를 다진 대통령이 옷을 다듬고, 마지막일지도 모를 집무실을 잠시 감상한 뒤 준비된 카메라 앞에 섰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비보를 들려드리게 되어 대단히 유감입니다. 현재 핵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 *
뚜루루.
교감이다.
“여보세요. 예, 예? 아니, 교감님이 말씀하시지. …네. 알겠습니다.”
러시아에서 핵이 발사됐는데 퀸에게 전화 좀 해보란다.
전화를 걸며 침대 머리맡에 둔 라디오를 틀자 아주 난리다.
-보입니다. 보여요. 정말 예언자들이 말한 아포칼립스가 도래하는 걸까요?
-다 헛소립니다. 첫 영향만 어떻게든 벗어나면 나머지는 해결할 수 있어요.
-속보입니다. 핵은 인공위성 로켓처럼 비정상적인 고각으로 쏘아졌으나 도중에 추진력을 잃고 세이셸로 낙하 중이라고 합니다!
-홀로그램 아이돌 ‘리가’가 추락하는 핵미사일을 실시간 중계하고 있습니다!
샤랄랄라~
착신음도 참 자기 같은 거 해놨네.
-여보세요?
“너 어디야.”
-하늘.
“하늘 어디.”
-아프리카?
“야 이, 네가 거길 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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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