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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42화 (142/201)

<142화>

우리가 서몬&케이브에서 지구로 돌아온 날. 리쳇에게 우주방송국 로카에서 통신이 왔었다.

인프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앞뒤로 붙은 사족을 떼면 ‘일시적인 인프라 지원이 아니라 지구 문명에 맞춘 적정 수준의 기술이전을 해줄 테니 향후 30년간 자사의 채널만 송출해달라.’였다.

독점계약이라 우려되었으나 리쳇이 ‘우리 알 바 아니잖아?’라기에 맞는 말이다 싶어 수락했다.

그 결과가 홀로그램 아이돌, 리가의 탄생이었다.

당연하게도 로카 측에서 가장 먼저 송출한 건 현지인인 우리의 활약 영상이었고 사람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영상 속의 퀸은 언더독 소녀 히어로였기에 장르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긴 하더라.

거기에 실제 벌어진 일이니, 영상미가 또 오죽하겠는가. 고등 기술로 이루어진 카메라 무빙이나 편집도 대단했고.

…그러나! 이러한 다수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해서.

“야 이, 네가 거기를 왜 가!”

학생인 퀸이 핵미사일을 막아야 할 의무는 없다.

-나 히어로 활동 허가 났어.

윽.

캡슐에서 나온 이후로, …그전부터였나? 아무튼, 퀸이 내게 말을 편하게 한다.

이럴 때마다 회귀 전의 그녀가 떠올라 마음이 약해진다.

지금도 그녀의 부모를 언급해 말릴 생각이었는데, 저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 의욕이 확 사라진다.

‘아직 미덥지 않지만, 내가 적절하게 보조하면 괜찮겠지.’

속으로 혀를 차곤 떠오른 계획을 읊었다.

“그거 우주로 날려 보낼 수 있겠냐?”

가장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

시속 8,000km 이상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따라잡고 그것의 방향을 바꾼다는 건, 어떤 각성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해볼게.

서몬&케이브에 다녀온 이후 퀸이 내게 반말을 하는 것 외에 달라진 점 하나가 바로 저거다.

실패했을 때를 고려하면, 충분히 망설일 법한 일임에도 말을 함에 있어 흔들림이 없다.

-핵폭발까지 앞으로 21분 남았습니다. 세이셸 주민 여러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은 이번 핵 공격이 핵 가방을 탈취한 개인의 테러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장에 나와 있는 조지입니다. 저는 미 대통령이 통보한 핵 영향권 1km 밖에서 방호복을 착용하고 관찰 중입니다! 지금 세이셸은 아비규환입니다! 아, 미사일이 보입니다!

퀸이 미사일을 추적하는 동안 TV를 틀어 여러 뉴스를 살폈다.

미 대통령은 핵이 세이셸에 떨어지는 시간을 전 세계에 알렸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8분의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 목숨을 건 기자가 찍은 화면에는 벌써 미사일이 세이셸의 상공에 보이고 있었다.

-찾았어.

퀸의 목소리와 함께 기자의 카메라에 금색의 점이 빠르게 접근하는 모습이 찍혔다.

-세이셸에 남은 주민이 1만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제발, 신이시여…, 인간을 가엽게 여겨주소서.

-이런 상황에도 각국의 정상들은 유감을 표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어! 여러분, 저기 보이십니까? 뭔가가 미사일을 향해 날아갑니다! 요격일까요? 저공에서 요격하면 영향권이 훨씬 넓어지는 것으로 아는데요!

미사일을 향해 쇄도하는 퀸.

기자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소음이 녀석의 지나간 자리에 울려 퍼졌다.

나는 급히 홀로폰에 입을 댔다.

“천천히! 그거 작은 충격에도 폭발할 수 있어.”

리쳇의 조사에 따르면, 저 핵은 미국이 한 방에 모스크바를 날려버릴 계획으로 각성자를 통해 만든 물건이라고 한다.

어떤 자극에 폭발할지 모르니 극도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빨리 말했어야지!

허공에서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급정지를 한 퀸이 어느 건물 옥상에 탄두가 부딪치기 직전, 미사일을 잡는 데 성공한다.

-급보입니다! 누군가 핵미사일을 막았다고 합니다!

-일개 개인이 핵을 저지했는데, 대체 국가는 뭘 하는 겁니까!

-히어로! 히어로입니다! 그런데 외모가 상당히 어립니다. 제 조카뻘 정도의…. 잠깐, 저 마크!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휴.

“고생했다.”

-응. 근데 우주 어디까지 가?

정지궤도까지 보내면 리쳇이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구로 단련된 퀸이라고 해도 거기까지 가는 건 불가능하다.

“잠깐만.”

뚜르르.

교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씀하세요. 만혁 학생.

“교감님, 혹시 우주복 있으세요?”

* * *

군용 위성으로 미사일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던 미국 대통령은 아카데미의 학생이 핵탄두를 잡았을 땐 눈을 질끈 감았다.

“대통령님,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에서의 연락입니다.”

“루드라?”

“아니요, 남만혁이라는 학생입니다. 일전 히어로 협회장의 악행을 고발한.”

의아해하며 통화를 넘겨받자 앳될 목소리가 저편에서 들렸다.

-잭 씨?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냐고? 진짜 몰라서 물어? 됐고. 우리 애 우주 가야 하니까. 내가 보낸 좌표로 최신형 우주복 하나 보내.

“…그러지.”

뚝.

“우주에 핵을 버릴 생각인 모양입니다.”

“피해 없이 처리하려면 그 수밖에 없으니까. 서히아다운 생각이군.”

민간 기업에 고용된 각성자가 저런 식으로 핵탄두를 소유했다면, 반드시 사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아무도 사용할 수 없도록 우주에 버린다는 선택지는, 정말 히어로다운 결정인 것이다.

* * *

하여간 정치인 아니랄까 봐. 핵 쏴놓고 뻔뻔한 거 봐.

-아, 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인근의 미 항모에서 튀어나온 제트기 한 대가 퀸의 위를 지나며 낙하산 달린 가방을 투하했다.

퀸은 그걸 금주먹으로 잡았고 안을 열어보더니.

-이거 헬멧까지 다 써야 해?

“어.”

-안 이쁜데.

참, 너도 대단하다. 그 와중에 디자인 타령도 하고. …그래, 원래 이런 녀석이긴 했지.

공중에서 주섬주섬 껴입던 퀸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한다.

-로맨. 근데, 이거 원래 소리가 나는 건가?

“무슨 소리.”

-시계 초침 소리?

“시계?”

…에이, X발!

곧장 교감을 통해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핵, 시한폭탄이냐?”

존중이고 나발이고 없이 그냥 묻자. 저쪽에서 잠시 침묵이 돌더니.

-그렇다고 하는군.

그렇다고 하는군? 하는군? 이 새끼가.

“너. 이거 해결되면 내가 찾아간다.”

침 뱉듯 통화를 끊고 곧장 퀸에게 통신을 넣었다.

“그거 시한폭탄이란다. 3분 남았고.”

-알았어.

담담한 목소리.

“그게 끝?”

-괜찮아. 최대한 멀리서 터트리면 돼.

안 괜찮다. 우주복에 방호복 기능이 있다고는 해도 폭발까지 막아주진 않는다.

저 핵은 직경 500km 이상을 날려버리는 괴물 폭탄이다. 아무리 퀸이라고는 해도….

‘…쓰읍. 뭐지, 왜 버틸 수 있을 거 같지.’

그래도 단순히 내 느낌을 믿고 퀸의 목숨을 도마에 올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차라리 바다로 던지라는 주문을 하자.

-미쳤어? 요즘 환경 파괴 위험한 거 몰라? 안돼. 앗, 저기 오로라.

고집하고는!

현재 퀸의 위치는 지표로부터 약 110km. 지금의 다섯 배는 더 올라가야 폭발에서 안전하다. 낙진은 다른 문제고.

남은 시간, 3분.

아무리 빨리 날아도 우주복을 입고 핵탄두를 든 상태에서는 3, 400km가 한계일 터.

답답함에 머리를 쓸어 넘기자 이마의 뿔이 만져진다.

‘신성으로 할 수 있는 건.’

퀸이 캡슐에 있을 때 뿔을 통해 내 마나를 약수에 불어 넣자 치유의 효과가 극대화되기는 했었다.

하위종의 신체 재생이 이렇게 빠른 건 내 신성 덕이라는 딱정벌레의 소견이 있기도 했고.

‘없다.’

내가 현장에 있다면 또 모를까. 여기선 지금처럼 전화로 대화를 주고받는 게 한계다.

‘이건 퀸의 힘으로 해결해야…, 아!’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라 급히 홀로폰을 잡았다.

“주먹!”

-응?

“금주먹에 부유와 가속을 쓸 수 있다며.”

-맞아. 앗!

저 소마의 금주먹은 퀸의 육체보다 가볍고 단단하다. 퀸도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바로 탄성을 지르고 실행했다.

-와, 잘하면 시간 안에 될지도.

“그렇게 빨라?”

보이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

-이제 안 보여.

퀸의 시야에서 단숨에 이탈할 정도면 속도는 괜찮은 거 같다.

남은 문제는 2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얼마나 멀리 가느냐, 그리고 금주먹을 얼마나 멀리서 조종할 수 있느냐인데.

시간이 1분 미만으로 줄었을 무렵. 퀸이 어째서인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만혁, 됐어!

“뭐가.”

-정지궤도에 간 거 같아. 아래에서 당기는 힘이 약해졌어.

외기권에 진입한 것도 아니고 정지궤도?

나는 퀸의 착각이라 여겼으나 혹시 몰라 리쳇에게 핵탄두의 위치를 찾아보라고 하니.

-근처에 있네. 이야, 역시 우리 농장주 친구다워. 일 처리가 확실해. 나머지는 이쪽에서 해결할 테니까 금주먹 돌려보내도 돼.

진짜였나.

“퀸, 주먹 회수. 빨리.”

-알았어. …왔다!

금주먹이 퀸에게 복귀함과 동시에 갑자기 리쳇이 깔깔 웃는다.

“뭐야, 너 왜 그래?”

리쳇은 자기가 보이게끔 찍은 실시간 영상을 내 망막에 전송했는데. 저 멀리 금주먹이 옮긴 핵탄두가 보였다.

쾅.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었고 주변의 모든 잔해와 위성들이 일시에 우주 저편으로 날아간다.

쭈웅.

몇몇 운 좋은 위성들이 살아남았으나 이내 리쳇에게서 발사된 얇은 이온 캐논에 의해 파괴됐다.

-변태처럼 달라붙길래. 정리 좀 했어.

각국에 리쳇의 존재가 알려진 지도 꽤 되었기에 조사를 위해 무장 위성들이 여럿 접근해왔다고 한다.

일일이 처리하기 귀찮아서 내버려 뒀더니 자기 주변에 위성들로 이루어진 고리가 생겼다고.

“짜증 날 만하네. 잘했어.”

-그렇지?

정지궤도에서의 외부 충격은 치명적이다. 어느 정도 대비가 되어 있다고는 하나 핵의 여파에서 살아남을 위성은 없다.

리쳇에게 향하는 충격은 이온 캐논으로 해소했고.

이리하여 핵미사일이 지구에 떨어질 뻔한 사건은 끝이 났다.

퀸은 이번 사건을 통해 학생의 신분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위명을 쌓게 될 것이다.

리가가 보여준 ‘드라마’가 실제였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겠지.

“수고했다.”

-당연한 건데, 뭘. 도와줘서 고마워. 내일 봐.

지치긴 지쳤는지 집에 가서 쉬겠다는 퀸을 전화로 배웅하고 컵라면에 다시 끓는 물을 부으려던 순간.

두두두.

멀리서 들리던 헬기 프로펠러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에라이.”

인상을 쓰며 밖으로 나가자 컨테이너 뒷마당에 착륙한 헬기에서 선글라스를 쓴 교감이 우아하게 내린다.

“교감님.”

“들었어요. 미국에 가기로 했다지요?”

“네, 뺨이라도 한 대 올려 쳐야 속이 시원할 거 같아서.”

“아주 좋군요. 타세요.”

컨테이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컵라면을 보며 입맛을 다시자 교감이 가볍게 웃는다.

“더 맛있는 걸 먹게 해 드릴 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노력해볼게요.”

“후후.”

잠시 후. 우리는 미국 백악관에 도착했고 VIP를 만나기 위한 온갖 절차를 교감의 ‘나와요.’라는 한 마디로 스트레이트 패스하고 대통령과 대면했다.

그는 다수의 히어로를 대동하고 나타났는데, 그중 아는 얼굴이 한 명 보였다.

“꼬마, 물러나라. 대통령과 10m 이상을 유지하도록!”

미국인이며 히어로 명은 사이오닉 브레인. 회귀 전에 들어본 이름이다.

“너, 히어로였나?”

“무슨 소리지?”

내가 아는 사이오닉 브레인은, 빌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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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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