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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46화 (146/201)

<146화>

1학년들의 우상 (1)

“절대 그들을 죽여선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이쪽으로 연락을 주십시오.”

드리무트라는 여 마법사는 내게 신신당부한 뒤에야 다른 마법사들을 데리고 떠났다.

“자네 뜻대로 하게. 뒤는 내가 봐줄 터이니.”

매저드 교수는 인자한 웃음과 함께 저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크으, 역시 스승님.”

차원 단위로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도 내 맘껏 하란다. 저게 바로 상남자의 풍모다.

‘…진짜 해버릴까.’

매저드 교수에게 말을 듣고 보니 지금 은밀히 진행 중인 요새 프로젝트를 좀 과감하게 해도 괜찮을 거 같다.

‘남산 지하 요새가 완성되기도 했고.’

본래 수년은 더 시일이 소모될 예정이었으나 리쳇이 방송 송출을 핑계로 로카에서 여러 기술을 받아낸 덕에 크게 앞당겨졌다.

슬슬 다음 요새를 지을 자리를 모색하던 중, 핵미사일 소식을 들었고 잘됐다 싶어 해결한 뒤 억지스럽게 넓은 땅을 받아냈다.

두 곳을 동시에 요새화시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매저드 교수가 뒤를 봐준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리쳇, 눈치 안 보고 요새 두 개 올리려면 얼마나 걸리지?”

-외부 방해 없고 노동용 언데드가 잘 보급된다는 가정하에, 1년.

훌륭하다. 졸업하기 전에 주요 지역에 요새 두 개가 추가로 완성된다는 소리니.

‘중국이랑 아프리카에도 요새 하나씩 박고 싶은데….’

아프리카야 세이셸 정치인을 통해 인근 사막지대 좀 사면 해결할 수 있다 치고, 중국이 문제다.

저 동네는 십여 년 전 주석이 바뀐 이후로 쇄국 정책이 가속화돼서 현지에서 나고 자란 토종 중국인이 아니면 땅을 아예 못 산다.

그렇다고 몰래 지었다간 중요한 순간에 트집 잡을 게 뻔하고.

“거기도 일 하나 안 터지나.”

-터트릴까?

“뭐를.”

-노출된 미사일 정도는 터트릴 수 있어. 아니면, 수몰시키는 방법도 있고.

알다시피 리쳇은 본래 기후를 제어하는 위성이다. 내가 딱히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지구 곳곳에 실험하며 숙련도를 쌓는지라, 이제 날씨 조절 정도는 쉽게 한다.

물론, 여전히 사막지대에 장마를 부르는 건 어려워도 산 근처나 적도 부근은 제 입맛대로 퍼부을 수 있단다.

특히 중국의 타이항산맥 인근의 도시는 해저도시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기에 관두라고 했다.

“그러지 말고, 마을에는 피해가 안 가게 손 좀 써 봐. 아주 못 쓰는 땅이 돼서 누구도 욕심을 내지 않게.”

-라져.

* * *

“어떻게 생각하나.”

“뭘.”

“응?”

이차원 삼인방은 페인트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컨테이너 안에 모여 밀담을 나누는 중이다.

“로맨 말이다.”

함장직을 맡은 솜브리오는 오늘의 회담을 위해 남만혁에게서 어렵게 허락을 받아 ‘이차원 삼인방’이라는 명패가 붙은 컨테이너에 들렀다.

“널널하고 착한 고용주?”

남만혁은 이들을 받아들인 다음 날 다른 차원에 대한 정보를 교감의 힘을 빌려 대부분 뽑아냈기에 번헤드의 쓰임새는 사실 다했다고 볼 수 있다.

하여, 그블린이 침략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두기로 한 것.

“말라빠진 육포 같은 놈은 관심 없어.”

매일 발전하는 퀸과의 일전이 너무도 즐거워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발라르카였다.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로맨은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하다.”

“준비? 어, 야 어디가?”

“운동!”

발라르카는 솜브리오의 이야기에 흥미가 없는지 아예 컨테이너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른 차원의 존재를 극도로 경계한다고 해야 하나…. 특히 그, 베르데와 아줄은 혐오하는 수준이더군.”

얼굴을 보자마자 그린이라는 종족 비하 단어를 입에 담았던 로맨을 떠올린 번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발파록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시기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아?”

“그렇긴 하다만…. 그게 프렉시스의 모든 에너지를 넥서스 생산에 쓸 정도일까?”

“뭐? 어디?”

“프렉시스. 행성 대장간이라 불렸던 행성 말이다. 160년 전에는 꽤 유명했었다.”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어. 영감.”

“그런가, 보기보단 어린 개체였군. 아무튼 관리만 잘하면 영구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행성을 30년 만에 돌덩어리로 만들 계획을 짜더군. 우리가 모르는 속셈이 있는 게 분명해.”

“뺏길 걸 고려한 걸지도 모르지.”

번헤드에게 있어 남만혁은 종족 대대로 내려오던 빌어먹을 저주를 풀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늙지 않는 피부를 유지하는 축복을 내려준 은인.

그를 두둔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 일을 좀 도와다오.”

“야!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지 뭘 이렇게 빙빙 돌아!”

솜브리오는 평생 이렇게 노동한 적이 없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상위 차원 가문에서 태어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그였기에 남만혁이 주문한 노동은 가혹한 것이었다.

“수배자가 되었을 때도 이렇게 몸을 혹사하진 않았다!”

“무슨 일을 하길래?”

“돌을 옮긴다.”

“그게 뭐?”

“공사장에서 흙먼지를 마셔가며 인부들과 섞여 일한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그게 뭐.”

용병으로 떠돌아다녔던 번헤드에게 막노동은 급전이 필요할 때면 늘 해왔던 익숙한 일이다.

“슬프군. 나의 고충을 이해할 자가 우리 중에 없다니. 하여간 도와다오. 일손이 부족해. 로맨의 허락은 받았다.”

“허락받았다고? 그럼 그냥 가자고 하면 되지.”

“로맨은 너를 설득하라 했다. 용병을 강제로 데려가는 건 맞지 않다고 하더군.”

“그래? 흐흥.”

무급 봉사를 약속했음에도 용병 대우를 해주는 로맨의 모습에 살짝 들뜬 번헤드였고 이를 눈치챈 솜브리오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일급도 준다고 했다. 이 나라의 시급으로 맞춰 준다는군. 부탁하지,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뭐어, 나야 용병이니까. 돈만 제대로 준다면 도와줄게.”

“고맙다!”

약 1시간 후. 번헤드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미쳤어? 이딴 우주복을 입고 내핵 껍질을 벗기라고? 우주 해적도 이런 고문은 안 해!”

솜브리오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고온에 강한 체질을 가진 너를 데리고 온 거다.’

* * *

1학년 A반.

“FF, 오늘도 거기 갈 거지?”

“그런 약속이니까.”

기가라이트닝의 물음에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답하는 FF.

그녀는 교수진의 권유로 매일 마운틴 짐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을 감시하기 위함으로 여겨 몹시 불쾌하였으나 그곳을 방문하는 이들이 2학년 에이스인 것을 보곤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나도 에이스라는 걸까.’

타인의 인정이 낯선 FF였기에 마운틴 짐으로의 초대가 마냥 호의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마운틴 짐 정식 회원가입 해버릴까?”

“선배 허락부터 받아.”

“안 그래도 오늘 매저드 교수님 강의 끝나고 말해보려고.”

FF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아, 플라밍고대시. 마운틴 짐 이야기하고 있었어.”

“그냥 밍고라고 부르라니까. 그런데 마운틴 짐? 그 악마가 운영하는 헬스장?”

기가라이트닝이 눈을 크게 뜨고 플라밍고대시에게 되물었다.

“악마라니?”

“이마에 뿔 이렇게 나서 다들 악마 선배라고 부르던데?”

아….

두 사람은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매저드 교수의 강의에서 적성에 맞는 마법서가 하필이면 악마의 뿔 소환서였던 걸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뿔을 달고 온 첫날 전개한 영역이 자연스럽게 연상된 FF와 기가라이트닝은 동시에 침을 삼켰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나 먼저 간다.”

“잠깐만, FF. 같이 가!”

38개의 학파에 대하여 강의가 진행되는 교실에 들어온 둘은 자리에 앉아서 한동안 침묵했다.

강의 시작까지 아직 30분이나 남았기에 기가라이트닝은 영역을 구현하는 연습을 하던 중, FF의 말소리가 들려 집중을 풀었다.

“선배, 엄청났지.”

“남만혁 선배의 영역 말하는 거지? 대단하지…. 교수님도 상위 마법사 열은 가볍게 상대할 거랬잖아.”

FF는 기가라이트닝의 말에 긍정하며 생각했다.

‘매저드 교수님은 선배의 마법사적 소양이 마법사 가문에서 태어난 이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재능을 타고나서? 우리가 겪지 못한 경험을 해서?”

“타고난 것도 있겠지. 잘 생각해봐. 우리랑 1살 차이야. 마법도 아카데미에서 입문하셨댔고.”

마법사야말로 재능이 전부라고 했던가.

드륵.

강의실 뒷문이 열리고 주홍빛 뿔을 이마에 단 소년, 남만혁이 들어온다.

“귀가 왜 간지럽나 했더니, 늬들이었냐.”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

벌떡 일어나 인사하는 기가라이트닝과 고개만 까닥이는 FF. 남만혁은 두 후배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어느새 지정석처럼 돼버린 창가 자리에 앉았다.

“나 마법에 재능 없다.”

“예? 그럴 리가요.”

“진짜.”

실제로 남만혁은 독과 언데드를 제외하면 마법적 재능은 없다.

그래서 마나량을 늘리는 것에 전력투구한 것이고.

다양한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에 영역과 마나 조작에 매진했고, 성과를 냈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면 돼. 너희는 번개와 얼음 속성을 타고났으니까, 졸업할 때쯤이면 나보다 대단한 마법사가 될걸? 내기해도 좋아.”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배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쿵!

거칠게 열리는 문. 금발금안의 소년이 벌레를 씹은 듯한 얼굴로 들어온다.

“야, 넌 왜 또 죽상이야.”

“말 걸지 마라. 남만혁.”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

남만혁 때와 마찬가지로 크게 인사를 박는 기가라이트닝과 고개만 까닥이는 FF.

“그래.”

안토니오 골든우드. 그는 최근 기분이 좋지 않다.

힐끔.

남만혁의 이마에 달린 저 주홍색 뿔 때문이다.

‘제길. 악마의 뿔 소환서는 내가 가졌어야 했다!’

남만혁이 들었다면 코웃음을 칠 소리였겠으나 그는 진심이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증폭이라니.’

아무리 남만혁의 마나가 많다고 해도 몇 주 전에 뿔을 달고 나타나 선보인 신성 영역은 매저드 교수마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뚫을 수 없다고 선언할 정도로 엄청난 마나 집약력을 가지고 있었다.

‘빌어먹게 운 좋은 놈!’

뿔은 남만혁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쌓은 마나와 서몬&케이브에서의 경험, 그리고 본인이 가지고 있던 체질이 절대적인 존재에게 환불 교환을 받아냄으로써 성립된 우연과 운명의 산물.

그렇기에 안토니오 골든우드가 같은 경험과 노력을 하더라도 저런 성능의 뿔은 가질 수 없었다.

안토니오도 리가의 방송을 봤기에 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으나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춘기 소년이었기에 가문의 힘을 동원해 악마의 뿔에 준하는 지팡이 제작을 시도했다.

그리고 거하게 말아먹어서 기분이 상당히 다운된 상황.

“또 삐졌네, 또 삐졌어. 이번엔 뭔데.”

적응이 됐는지 뿔을 긁으며 묻는 남만혁의 태연한 모습에 안토니오 골든우드는 도저히 못 참고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던졌다.

그러나 남만혁은 영역을 이용해 날아오는 장갑의 궤적을 기가라이트닝 쪽으로 돌렸다.

찰싹.

“억! 선배님? 좋습니다! 승부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아, 아니다!”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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