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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48화 (148/201)

<148화>

1학년들의 우상 (3)

남만혁이 정령탑 사건을 처리할 무렵, 미국 워싱턴에선 주인공의 부재로 인해 미뤄졌던 메달 수여식이 재개되었다.

짝!

대통령 잭의 고개가 홱 꺾인다.

촤라라락!

백악관 이스트 룸에 울려 퍼지는 찰진 소리와 기다렸다는 듯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

“괘, 괜찮으세요?”

그레이스 멜론은 힘 조절을 했음에도 과도하게 돌아가는 그의 머리에 놀라 안절부절못했고, 잭은 뺨을 만지며 그녀를 인자하게 바라봤다.

“물론이네. 자네 친구의 매서웠던 언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레이스 멜론은 미국 대통령의 뺨을 날리라는 소리를 남만혁에게 들었을 땐 그가 드디어 정신이 나갔는 줄 알았다.

탄핵이 예정된 대통령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최종결정권을 가진 미국 최고 권력자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서 현 대통령의 죄는 미미하다는 게 드러났기에 퀸은 정말 이 퍼포먼스가 부담스러웠다.

“우리 미국의 영웅께서 그렇게 쑥스러워하니 솔직히 말하겠네.”

표정을 굳힌 잭이 흐르는 코피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진중하게 말하자 기자들의 목울대가 동시에 꿀렁인다.

“힘을 좀 더 기르게. 전처의 따귀보다 약하지 않나.”

하하!

대통령과 기자가 웃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어색하게 입꼬리를 움직이는 그레이스.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분위기가 풀리자 대통령의 눈짓을 받은 사회자가 준비된 멘트를 했고 이번 핵미사일 방어에 기여한 이들이 호명되어 퀸 옆으로 나란히 선다.

그들은 며칠 전 투표로 뽑힌 당선자가 고른 내각 인사들이었다.

토대를 다지기에는 지금만큼 좋은 순간도 없는 걸 잭도 알기에 씁쓸하게 웃으며 그들의 목에 메달을 걸었다.

“히어로 퀸.”

마지막, 핵미사일을 맨손으로 우주로 보내 해결한 히어로.

“네, 대통령님.”

세상을 수호한다는 무수한 이들이 나섰으나 그녀만큼 신속하진 못했다.

“꼭 히어로가 되게나.”

“예.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긴장으로 흔들리던 그레이스의 동공이 약속이라는 단어를 언급함과 동시에 굳건히 제자리를 지킨다.

그 약속을 누구와 했는지 짐작한 잭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부디 자네의 조국과 지구를 지켜다오.”

“예.”

“미라클 남에게도 전해주겠나?”

“말은 할 수 있지만….”

“지키는 건 다른 문제라는 겐가? 하하, 알겠네. 그래도 부탁함세.”

“예!”

대통령 잭은 기자들이 손가락을 바삐 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탄핵되었음을 재차 인지했다.

‘슬프구먼. 예전이었으면, 조국을 부탁한다. 같은 멘트는 무조건 미담 기사가 됐을 터인데.’

“메달 수여자는 짧은 인터뷰가 있겠습니다. 트레시 킴, 앞으로 나와주세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한 명씩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차기 내각 구성원인 만큼 정치적인 질문이 쏟아져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다들 각오 정도를 물어보는 것으로 인터뷰가 짧게 끝났다.

“다음은 히어로, 퀸. 단상에 올라서 주십시오.”

처음 대통령이 연설하던 그곳에 그레이스가 발을 올려두자 플래시 세례가 끝없이 이어졌다.

사회자가 만류하고 나서야 그레이스가 마이크를 잡을 수 있었다.

“질문 시작해 주십시오.”

신호가 울린 경마장처럼, 팔을 귀 옆에 붙여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기자들.

사전 어떤 조율도 없었기에 기자들에게 있어 지금은 날 것 그대로의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으윽.”

사회자는 자기 딸뻘 되는 소녀가 이리 떼에 둘러싸인 듯한 광경에 속으로 한숨을 쉬며 기자들을 진정시켰다.

“정숙하세요. 여긴 백악관입니다. 그리고 퀸 님. 테이블당 한 명씩 지목하면 됩니다.”

테이블 중앙에 놓인 회사 이름을 부르고 손으로 사람을 가리키면 된다는 사회자의 조언에 그레이스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곤 가장 앞에 있는 기자를 지목했다.

“HNN의 안나 카야입니다. 우선 최연소 메달 오브 아너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미국 이전에 지구에 사는 시민 중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가벼운 인사말로 서두를 연 안나 카야는 자신이 준비한 질문을 꺼내기에 앞서 이 경직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 필요성을 느껴 조크를 던졌다.

“히어로 퀸에겐 실례지만, 진실을 추종하는 기자로서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있어 프레지던트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음, 해보시오.”

“20년 전 뺨을 맞으셨던 파티엔 저도 있었습니다만, 퀸의 따귀가 더 강합니다.”

“뭐? 하하하. 역시 그렇소? 인정하리다.”

최고 권력자가 웃자 이스트룸 전체의 분위기가 느슨해진다. 경직되어 있던 사회자의 얼굴도 조금이나마 풀렸다.

“저 같은 소인배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지던트. 역시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지 배포가 크십니다.”

젊은 시절 여성 편력이 심했던 잭을 돌려 까는 안나 카야.

“안나, 나 대통령일세.”

야, 적당히 해.

“예, 곧 탄핵되시는 대통령이죠.”

응, 너 곧 잘리잖아.

“크으음.”

여기서 두 사람의 속내를 읽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이제까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던 메달 수여자들이 폭소를 터트린다.

종군기자 17년, 정치 기자 25년. 안나 카야는 ‘기자들이 존경하는 기자 1위’, ‘시민투표, 믿을 수 있는 기자 1위’로 선정된 인물이다.

그녀가 정치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론 늘 이런 식으로 대통령에게 농담을 섞은 팩트 폭행을 해왔다.

당연히 대통령 입장에선 엄청난 무례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시민들의 신뢰가 그 무례를 용인하게끔 한다.

소란이 잦아들길 기다리던 안나 카야는 비서가 쥐여준 마이크를 떼고 그레이스 멜론을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레이스 멜론, 당신은 시민각성자A 씨를 아십니까?”

누구나 히어로가 되길 바라던 시기가 있었다. 각성 사회 초창기. 가장 혼란했던 시대.

당시는 각성자에 관한 법도 정립되지 않았기에 온갖 기상천외한 범죄들이 발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시민각성자A가 본인의 특성인 순간이동으로 빌런 하나를 체포하면서 주목받았고 그걸 계기로 ‘히어로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시민각성자A는 마지막 순간에 동료의 손을 붙잡은 채 이런 말을 남겼다.

‘그 빌런, 잡지 말걸.’

평범했어야 할 자신의 삶이 너무도 특별하게 바뀌는 바람에 불행해졌다고.

히어로는 타의에 의해 희생이 강요된다.

시민각성자A는 최초의 히어로라는 타이틀 아래에 가족도 연인도 심지어 본인조차도 빌런에 의해 죽임당했다.

시대에 의해 히어로라는 가면이 얼굴에 못 박혔던, 일반 시민의 말로였다.

안나 카야는 ‘당신은 히어로가 될 각오가 있습니까?’라는 뻔한 질문을 대신해, 사실상 언급이 금기시되는 시민각성자A를 거론해 질문의 무게를 늘렸다.

“알아요.”

“당신은 시민히어로A처럼 살겠습니까?”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히어로를 하겠냐는 질문에 그레이스는 바로 긍정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어요?”

“제 질문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그 안에 대답해주세요.”

안나 카야는 급부상하는 히어로에겐 늘 이 질문을 해왔다.

일종의 경고이자 각오를 들어보려는 것인데, 이 같은 답변은 처음 있는 일이다.

‘신중해. 이 아이는 크게 되겠어.’

원 히트 원더 히어로는 많다. 하나의 커다란 사건을 우연 또는 조력으로 해결해 세간이 이름이 널리 퍼진 사람들.

그런 히어로의 이름과 코스튬, 대사는 한동안 밈이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지만, 밈이라는 것이 그렇듯. 창작자가 재생산을 하지 않으면 금방 잊히기 마련이다.

그들이 이 질문을 들었을 땐, 공통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연하죠!’

커다란 성공에서 오는 어마어마한 자신감이 가볍게 대답하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

개인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시민각성자A라는 존재는 현 히어로 사회의 근간이자 모든 이들의 위인이다.

“…아니요.”

“네?”

못 듣고 되묻는 것을 혐오하는 안나 카야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는 그분처럼 뛰어난 히어로가 아니거든요.”

결과야 어찌 되었든 시민각성자A의 순간이동 특성은 빌런을 포획하는 데 아주 특화된 능력이었고 실제로 그가 홀로 잡은 빌런의 숫자는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으며 백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은 언터쳐블 스코어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당신은 트리플 기프트 보유자입니다. 다른 각성자들에 대한 기만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사실을 말씀드린 거예요. 트리플 기프트여도, 제가 아는 한 분과 한 명에겐 이긴다는 이미지 자체가 떠오르지 않으니까요. 세상엔 저보다 강하고 히어로에 어울리는 사람이 많아요.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이에요.”

“그렇게 물렁한 생각으로는 일선에서—”

안나 카야는 문득 자신이 학생이 아니라 현직에서 일하는 히어로처럼 그녀를 인터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입을 닫았다.

“맞아요. 하지만 약속해서요.”

“무슨 약속이죠?”

“슈퍼히어로.”

과거였으면 이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얼굴이 붉게 변했을 그레이스였으나 지금은 당당하게 안나 카야를 바라봤다.

“저는 시민각성자A 님처럼은 못 돼도. 슈퍼히어로는 될 생각이에요.”

세상은 각성자들로 바글거리고, 히어로는 동네에 한 명씩 상주하는 흔한 존재가 되었다.

누구나 히어로를 바라던 시대는 지났고,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던 이들은 사라졌다.

그런 시류 속에서 홀로 슈퍼히어로를 외쳐본들 허무한 울림일 뿐이다.

“누구도 슈퍼히어로를 바라지 않아요. 그런 존재가 나타난다는 건, 그만한 재난이 생겼을 때니까요. 게다가 우리 인류가 구축한 시스템은 그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게끔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죠. 히어로 협회가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최근 신뢰를 잃기는 했으나 히어로 협회는 다국적 기관이다. 협회장이 어떤 짓거리를 해도 그 아래는 정밀하게 짜인 자기네들 규칙하에 자체적으로 기능한다.

“저는 모두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개인의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어요.”

빌런의 인질이었던 시민을 구했다면, 그 시민은 자신을 구해준 히어로를 슈퍼히어로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스의 답은 그것을 쌓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동의할 수는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응원하겠습니다. 히어로, 퀸. 제 질문은 이상입니다.”

이름이 아니라 히어로 명으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안나 카야의 인정을 받았음을 뜻하므로 주변 기자들은 의외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이어지는 사회자의 ‘다음 기자분.’이라는 말에 잽싸게 팔을 들었다.

“AAC의 저스틴입니다. 이번 핵 가방 스위치를 누른 범인이 검거….”

* * *

[17세 소녀, 미국 대통령에게 죄를 묻다.]

[히어로 퀸, “슈퍼히어로가 될 거예요.” 당찬 포부 밝혀.]

[핵. 발사 버튼을 누른 범인이 전(前) 볼트 사의 국장으로 밝혀져 충격!]

“이야, 기사 화려한 거 봐라.”

헤드라인에 걸린 퀸의 이름을 보고 발라르카와의 결투를 마친 뒤 돌아가려는 퀸을 내 컨테이너로 불렀다.

그리고 기사를 보여주자.

“잘했지?”

너무 나대면 빌런 꼬이니까 이제 조심하라는 말을 하려고 불렀는데,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또 그럴 맘이 사라진다.

“…그래.”

“후후.”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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