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1학년들의 우상 (5)
2052년 12월.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교감실.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핵미사일 사건으로부터 반년이 흘렀다.
“이게 겨우 2학년 학생의 실적이란 말이죠.”
프리실라 루드라는 ‘팀 Q’로 활동하는 남만혁과 그레이스 콤비가 근 반년 동안 해결한 사건 리스트를 살피는 중이었다.
“이집트 피라미드 파괴 빌런 격퇴, 중국 침수지역 복구, 호주의 대도(大盜) 캥거루 빌런 체포, 아일랜드에 각성한 여우 포획 및 인도, 남극 킹 조지 섬 사이에 끼인 돌연변이 대왕고래 해방….”
굵직한 것만 이 정도고 그 외에도 자잘하게 해결한 것이 무려 20개가 넘는다.
그간 남만혁이 구두로만 대충 보고하고 말았기에 가벼운 일들인 줄로만 알았으나 이렇게 리스트를 작성하고 보니 만만한 사건은 하나도 없었다.
“대단하네요.”
학생의 신분으로 프로급 성과를 내는 팀이 아카데미에 존재한다는 게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몹시 뿌듯한 교감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특이사항에 적힌 이 부분.
[특이사항]
[ㄱ. 인명을 해한 빌런은 전원 사망. 그 외의 빌런은 실종.]
[ㄴ. 빌런의 죽음을 목격한 7인 전원 하늘에서 떨어진 빛이 범죄자의 머리를 꿰뚫었다고 진술.]
[ㄷ. 실종된 빌런은 각국을 경유해 대한민국까지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으나 그 이후는 요원의 정신 문제 및 위성, 전자기기의 손상으로 인해 추적 불가.]
[ㄷ-1. 요원은 정신 지배에 당한 것으로 예상되며 일주일 후 정상으로 돌아옴.]
[ㄷ-2. 각국의 고위 인사들은 프리실라 루드라를 의심함.]
이렇게 일관되게 빌런이 처리되는 게 누구의 짓인지 짐작한 프리실라는 입꼬리를 살짝 당기고는 고개를 저었다.
“떠넘기는 게 대체 누군지.”
몇 달 전. FF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1-A반 담임 교수의 보고에 프리실라는 FF를 남만혁에게 가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FF는 자신이 발산하는 냉기를 제어할 수 있게 됐고, 프리실라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남 교수 : 교감님, 이렇게 떠넘기시면 곤란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이번에 제가 땅이 좀 필요해서요. 호주 쪽에 부동산 관련해서 괜찮은 인맥 있으시면 소개 부탁합니다.]
이에 프리실라 루드라는 군말 없이 호주 정치인과 그를 연결해줬고 중간에 문제가 있긴 했으나 끝내 잘 해결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흐음.”
이런 팀 Q의 활약 덕인지 2학년 A1, A2 반의 분위기는 굉장히 열정적이었고 이는 특성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특히 마운틴 짐에 꾸준히 방문하는 학생들이 단연 돋보였는데, 아마추어 히어로와 대련을 벌여도 충분히 승기를 잡을 정도.
“이런 수준이면….”
프리실라는 홀로보드를 켜 오래전에 폐기한 번외 강의를 불러왔다.
[수석의 일일 강의]
3학년 수석이 2학년에게, 2학년 수석은 1학년에게 본인의 경험이나 팁을 알려주는 강의.
학생회에 의해 발안된 이 계획은 아무리 수석이라 해도 아카데미 내에서 얻는 지식과 경험엔 한계가 있으므로 섣불리 강연을 시켜선 안 된다는 이유로 교수들에 의해 폐기되었다.
‘하지만 팀 Q가 강의하면 어떨까.’
아카데미의 교수들도 만능은 아니다. 아직 현직에서 활동하는 고스트핸드 같은 교수도 있긴 하나 대부분 은퇴한 지 오래된 사람들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니까요.”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것과 실제 경험담을 듣는 건 정보의 밀도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하는 프리실라였기에 일일 강의를 진행하기로 의지를 굳혔다.
얼마 후. 아카데미 전용 커뮤니티에 공지사항이 등록되었다.
[제목 : 1학년에게 알립니다.]
[토요일 10시까지 강의동 제1 강의실로 모이세요. 일일 강의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분노하는 순간 1순위를 뽑으면 바로 저것. 예정에 없던 휴일 반납일 것이다.
교감이 직접 쓴 공지임에도 부정적인 의사가 담긴 댓글이 수백 개가 달렸다.
[└내 꿀 같은 주말이….]
[└이럴 순 없어. 아무리 교감 선생님이라도 이건 아닙니다.]
[└맞아! 모두 가서 항의하자!]
[└어, 얘들아. 추가 공지 올라왔다.]
[제목 : 1학년에게 전하는 추가 전파사항.]
[토요일 일일 강사는 팀 Q입니다.]
그 한 줄에 여론이 뒤집혔다.
[└퀸 선배님이 오신다고? 그거부터 말했어야지! 당장 간다!]
[└앞자리 내 꺼. 오늘 밤에 가서 텐트 친다.]
[└너희 이미 늦음. 제1 강의실 앞 난리임 지금.]
누군가가 단 댓글처럼 강의동 앞에는 이미 다수의 텐트가 쳐져 있었고, 기웃거리는 학생들만 수십이 넘었다.
사람이 여럿 모이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었기에 선도부를 비롯한 몇몇 교수들이 때아닌 보초를 서야 했다.
“해, 떴다.”
“아….”
“드디어!”
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추운 겨울에 바깥에서 자는 건 할 짓이 못 된다는 체감한 학생들은 핫팩에 의지하며 어서 팀 Q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두두두두.
“왔다!”
“어디?”
“옥상!”
강의동 옥상에 착륙하는 아카데미 전용 헬기.
막 부산의 밀입국 빌런을 체포하고 돌아온 그레이스가 헬기에서 내리는 모습을 1학년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퀸 선배가 머리카락 귀 뒤로 넘기는 거 봤어?”
“와, 진짜 예쁘다. 후광 봐라. 저런 건 타고나는 거겠지?”
“누나 나 죽어!”
“그냥 죽어….”
그레이스 멜론은 강의동 앞에 모여 있는 학생들을 보곤 매우 놀랐으나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뭐지?’
대량의 마약이 한국에 풀릴지도 모른다는 경찰 측의 지원 요청으로 출동했다가 돌아온 그레이스였기에 지금 상황에 대해선 조금도 들은 바가 없었다.
퀸! 퀸! 퀸!
그레이스가 자신의 히어로 명을 외치며 환호하는 1학년들에게 손을 흔들자 쩌렁쩌렁한 함성이 아카데미 내를 울린다.
와아아아!
“왔니.”
퀸을 마중 나온 교감이 뒷짐을 진 채 싱긋 웃는다.
“무슨 일인가요?”
“따라오렴.”
교감을 따라 제1 강의실에 도착한 그레이스는 이 넓은 공간이 좁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교감 선생님, 뭐냐니까요.”
강의 단상으로 올라가려는 교감의 손을 급히 붙잡은 그레이스 멜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네가 예상한 게 맞단다.”
“으, 저 발표 같은 거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왜 이러실까. 잭 앞에서는 할 말 다 하던 아이가.”
“그때는!”
남만혁이 대사를 반쯤 써 줬고, 본인도 그 자리에서 만큼은 신념을 굽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던 그레이스였으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반박을 그만뒀다.
“그때는?”
“…됐어요, 또 로맨이랑 이야기가 끝났죠? 그래서, 저는 뭘 하면 되는데요.”
“후후. 네가 겪었던 문제들과 알아두면 좋은 팁 정도만 말해주렴. 경험담을 섞으면 더 좋고.”
“알았어요. 해볼게요.”
남만혁에 의해 전면에 나설 일은 많았으나 이렇게 대놓고 타인을 가르쳐야 하는 자리는 처음이었던 그레이스는 길게 숨을 뱉어 긴장을 떨쳐내고 단상에 홀로 올랐다.
와아아아!
짝짝짝!
휘이익!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레이, …아마추어 히어로 퀸입니다. 강의는 처음이라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냥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해요. 제가 기억하는 ‘아카데미의 시작’은 입학시험입니다. 거기서 로맨을 만났거든요. 어땠냐고요? 다들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잖아요.”
하하하!
“아, 한 번은 특성을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로맨의 도움을 받았는데—”
* * *
“잘하네.”
“놀리지 마.”
“눈치도 빠르고.”
“…로맨.”
“알았다, 알았어. 노려보기는. 그런데 내 이야기는 좀 빼지 그랬냐.”
“어떻게 빼. 네 덕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데. …와, 이 아이스크림 맛있네. 어디서 샀어?”
이젠 아무렇지 않게 저런 오글거리는 말을 한다. 쑥스럼 타던 퀸이 그리워질 지경.
“보육원 근처 아이스크림 집.”
“다음에 나도 같이 갈까?”
“네가 왜?”
“인사드리면 좋잖아. 소민 언니랑 아이들 얼굴도 보고.”
누가 보면 가족인 줄 알겠다. 이름은 또 언제 외운 거래.
“큼, 설날에 같이 가던가.”
“그러자. 너는 언제 올래?”
“뭐를?”
“우리 집.”
“내가 너희 집엔 왜 가. 나 바빠.”
“로맨.”
예전이었으면 상처받은 얼굴로 나를 봤었을 퀸이지만, 지금은 험악한 표정을 짓고 노려본다.
이 녀석. 저 얼굴로 으름장을 놓으면 내가 거절 못 한다는 걸 학습했구나.
끙….
“간다, 가. 무서우니까 그거 좀 하지 마라.”
“후후, 알았어.”
웃음도 어째 교감을 닮아가고. 날이 갈수록 점점 무서운 부분만 진화하는 퀸이다.
‘이만하면 내가 없어도 괜찮겠지?’
토대는 다져졌다. 회귀 전보다 빠르게 강해졌고 더 일찍 사선을 넘나드는 실전을 대량으로 경험했다.
마침 분위기도 좋고 해서 슬슬 팀 Q를 끝내자는 말을 하려는 때에.
“아직이야.”
“어?”
“졸업할 때까지만 도와줘.”
“…이야, 귀신이네. 독심술 특성이라도 각성했냐.”
“나랑 거리를 두잖아. 모르는 게 바보지.”
“네가 싫어진 건 아니야.”
“알아. 슈퍼히어로가 되려면 내가 홀로 서야 하니까. 맞지?”
“잘 아네. 그러니까—”
거리를 두자. 라고 하려는 순간. 퀸의 입이 내 입을 막았다.
부드러운 숨결과 포근한 살이 입술에 닿았다 떨어진다.
“…그러니까, 1년만 더 도와줘.”
슈퍼빌런 생활을 하다 보면, 온갖 미인들이 접근해온다. 솔직히 퀸에 버금가는 미모를 가진 여성과 밤을 보내기도 해봤고.
‘역시.’
하지만 이 키스는 그때에 비해 전신에 느껴지는 감각 자체가 다르다.
내 몸의 모든 신경이 입술에 집중되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진다.
이제 본 투 비 마법사가 돼놔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도 냉정하게 내 몸을 파악한다는 게 어째 웃음이 나왔지만, 아무튼.
난 역시 퀸을 좋아한다.
“딱, 1년 만이다.”
“응!”
* * *
2055년 9월. 칠레.
츠즉.
[산티아고 도심에 ‘해방교’ 신도 다수 출현! 지원 요청!]
지원 요청이 떨어지자 사무실이 바쁘게 움직인다.
“가장 가까운 사이드킥은 누구죠?”
“‘단절공’과 ‘하이디’입니다.”
단절공은 도수정, 하이디는 트레이시 그웬의 히어로 명이다. 졸업 전까지 스스로 못 정해 교감이 직접 지어줬다.
“둘을 파견하고 시민들을 우선해서 대피시키라고 해요. 해방단은 제가 처리합니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퀸.”
“네?”
“퀸이라고 불러요.”
“아, 영광입니다. 퀸!”
그레이스 멜론이 졸업 후 서히아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히어로 사무소 ‘SHQ.’
‘슈퍼히어로 퀸’의 약자를 땄다. 누군가는 유치하다 비난하였으나 그레이스는 볼 때마다 초심이 되새겨지는 듯해 마음에 들었다.
“영광은 무슨. 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또 그가 한 짓이겠죠.”
남만혁은 졸업 이전부터 퀸을 우상화하는 작업에 착수했고 그레이스 멜론이 이룬 눈부신 성과와 미담을 포장해 리가와 매스컴을 통해 지속적으로 뿌렸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히어로 명을 부르게 허락하는 것만으로 저런 감사를 표할 정도로 그레이스 멜론의 명성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츠즉.
[해방단 놈들이 산디아고 순례길로 접근 중! 끄악—]
뚝 끊어지는 통신기 너머의 목소리에 그레이스는 반쯤 입던 코스튬에 억지로 몸을 구겨 넣고 재빨리 창문을 열고 날아올랐다.
“금방 처리할 테니까, 밀키 수습팀에 연락 넣어두세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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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