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해방교 (2)
칠레,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 지하.
“신도들은 그쪽에 맡기지.”
“다크 넥서스. 우릴 도울 생각은 없나?”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남성으로 변장한 남만혁은 히어로의 뻔뻔한 발언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나는 히어로가 아니야. 제임스.”
“…젠장. 채널이 뚫렸나. 후, 너는 빌런도 아니잖은가.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도와다오.”
남만혁은 반년 전 적색 수배자에서 회색 수배자로 위험단계가 한 계단 내려갔다.
이유는 그가 악인만을 사살한다는 것.
히어로 협회도 어느 정도 다크 넥서스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방증이었다.
“우스운 일이야. 배척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도와달라?”
“무고한 시민을 살리면 앞으로 너의 활동에도 도움이 될 거다!”
넥서스의 함포사격에 의해 대성당 앞 광장은 커다란 구멍이 났다. 그곳으로 들어오는 빛을 올려다보던 남만혁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전멸하면 생각해보마.”
남만혁은 영역을 전개해 몸을 띄운 뒤, 사지가 잘린 채 포박된 해방교 교주를 데리고 지하를 빠져나왔다.
“이봐!”
아래에서 들리는 제트콥터의 외침을 무시한 남만혁이 불가시 상태로 대기 중인 넥서스에 올라탔다.
“오셨습니까, 제독님.”
다크 넥서스의 정복을 갖춰 입은 솜브리오가 남만혁의 귀환을 반긴다.
“어. 별일 없었지?”
남만혁이 제트콥터에게 말은 그렇게 했으나 대성당에 가기 전, 본인이 없는 동안 산티아고에 추가 대형 테러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면 바로 사격하라는 명령을 내려뒀었다.
“예. 히어로들이 놓친 신도들은 밀키 포스가 순조롭게 제압 중입니다.”
밀키 포스는 각성자로 이루어진 단체로 빌텔에서 갱생을 마친 이들이 포함된 무력 조직이다.
평시에는 전쟁 용병으로 활동하나 남만혁의 명령이 떨어지면 해당 임무를 최우선으로 수행한다.
“해피는?”
“지휘실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솜브리오와 함께 지휘실로 이동한 남만혁은 손톱을 깨물며 바쁘게 눈알을 굴리는 해피가 보였다.
“해피, 이놈 생각 좀 뽑아내.”
“그렇게 부르지 마십시오. 제가 개도 아니고.”
과거 박민철 일가를 죽이고 딥다크마인드가 돼야 했을 빌텔 1번 방의 손님은 남만혁을 평생 주인으로 모신다는 계약을 쓰고 빌텔에서 나왔다.
그리고 출소와 함께 평생 이름 대신 ‘딥해피마인드’라는 명을 댈 것을 주문받았다.
“우리 해피. 기가 많이 살았네? 벌써 빌텔이 그립나 봐?”
딥해피마인드는 수면 이외의 모든 시간을 특성 단련과 물리적인 정신 교육을 받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곧장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죄송합니다. 최근 잠이 부족해서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해방교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전부터 남만혁의 명령에 따라 교주의 행방을 조사하던 밀키 포스였다.
실제, 대성당 지하에 은신하고 있다는 것도. 제트콥터를 그곳으로 유도한 것도 딥해피마인드가 해낸 일이다.
“이번 건 하는 거 보고.”
딥해피마인드는 유능하다. 그러나 남만혁은 능력과는 별개로 인간의 본성은 환경에 따라 잠시 달라진 것처럼 보일 뿐. 근본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과거에 생각만으로 수십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딥다크마인드를 아직도 경계하고 있었다.
“이놈을 뽑아내면 되겠습니까?”
딥해피마인드가 혀를 빼물고 기절한 해방교 교주를 가리키자 남만혁이 긍정한다.
“네가 좋아하는 해방을 추종하던 놈인데, 물들지 않을 자신 있냐?”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십니까.”
“왜, ‘오직 죽음만이 해방이다.’라고 떠들어댔잖아. 리쳇이 영상 가지고 있을걸?”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마인드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말을 돌리고자 급히 작업에 착수하는 딥해피마인드를 내려다본 남만혁은 피식 웃고는 리쳇이 뿌린 마이크로드론을 통해 보이는 영상들을 확인했다.
“음? 솜 함장, 저거 좀 위험하지 않아?”
공원에 다수의 신도가 한 명의 히어로를 공격하는 중이었고 그 히어로 뒤엔 30명이 넘는 민간인이 뭉쳐 있었다.
“저쪽에서 지원을 거부했습니다.”
“왜?”
솜브리오는 대답 대신 히어로들의 주고받는 대화를 내게 전송했다.
[단절공입니다. 산타 캐롤라이나 공원, 교전 발생. 민간인 보호 중.]
[15분만 버텨다오.]
[2시간도 버틸 수 있습니다.]
[뭐? 2시간? 아, 단절공이라고? 알았다. 그 공원은 너무 트여 있어서 주변을 다 정리해서 안전을 확보하는 게 최선이다. 1시간만 버텨라.]
[알겠습니다.]
“도수정이었어? 코스튬 바꿨나 보네. 돔이 공원 전체를 덮을 정도면 숙련도도 상당하고. 좋아, 이렇게만 커 줘라.”
‘가능하면 지구 전체를 덮을 때까지!’
라고 작게 자신의 바람을 중얼거린 남만혁은 다른 화면들도 확인했다.
“순조롭네.”
처음에는 해방교 신도가 우세였으나 외곽에서부터 히어로가 가세하며 포위망을 좁혀나가자 테러는 빠른 속도로 진압되었다.
특히, 북쪽에서 내려오는 히어로 하나가 해방교 신도를 아주 불도저처럼 쓸어내고 있다.
비행 속도가 워낙 빨라 리쳇의 카메라로도 형상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인물.
저렇게 대기의 저항을 찢으며 쇄도하는 히어로는 전 세계에 단 한 명.
“퀸.”
그녀가 도착한 이상 밀키 포스의 존재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오히려 신도와 섞여 있으면 퀸의 움직임에 방해가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남만혁이었기에 퇴각 명령을 내렸다.
“솜 함장, 밀키 포스 돌려보내고 우리도 튀자.”
“예, 써.”
도시 밖으로 도망치려던 신도들이 퀸에 의해 무력화되는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남만혁은 별안간 뒤에서 들려오는 신음이 몸을 돌렸다.
“윽! 역간섭, 커헉!”
교주의 머리에 손을 대고 있던 딥해피마인드가 입가로 거품을 뿜으며 숨을 헐떡인다.
측.
“의료팀, 지휘실로! 큐링 힐 선생도 와주십쇼.”
-바로 가겠습니다.
남만혁이 아카데미 졸업 후 다크 넥서스로 본격적으로 활동하며 가장 먼저 영입한 게 큐링 힐이었다.
평소 그는 밀키 재단이 설립한 병원에서 일하지만, 지금처럼 작전이 있을 때면 넥서스의 의료팀으로 동행한다.
푸쉭.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메딕기어에 탑승한 큐링 힐이 도착했다.
그는 곧장 기계와 본인의 특성을 사용해 딥해피마인드의 상태를 살폈다.
“역간섭에 당한 증상입니다. 뇌 손상률 8%, 9%. 가파르게 상승 중. 즉시 조직복원액을 뇌에 직접 투여해야 합니다.”
“머리에 구멍 뚫는다는 소리죠? 상관없습니다. 당장 시작하세요.”
남만혁이 허락하자 큐링 힐은 메딕기어를 조작해 그 자리에서 간이 무균 수술실을 만들고 너스봇의 보조를 받아 수술에 들어갔다.
얼마 후, 큐링 힐이 무균실 안을 어지럽게 오가던 메딕기어의 팔을 치우며 밖으로 나왔다.
“봉합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치유도 끝냈으니 곧 깨어날 겁니다.”
“고맙습니다, 큐링 힐 선생.”
“별말씀을요. 혹시 더 시키실 일이 없으면, 산티아고에 의료지원을 가도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만, 의료용 로봇은 지원해드릴 수 없습니다.”
메딕기어는 리쳇이 우주방송국 로카와 2년 이상의 협상 끝에 힘겹게 얻은 의료지식으로 제작한 탑승형 로봇이다.
지금처럼 무균 수술실과 집도의를 보조하는 너스봇 탑재에 최소한의 무장도 내장되어 여차할 때 병기로서의 활약도 기대할 수 있다.
또, 남만혁이 기억하는 미래 지식과 밀키 마이닝 사 연구팀이 머리를 짜내 또 하나의 실험적인 기능을 추가했는데.
“힐 비(Heal bee)를 사용할 수 없는 게 아쉽지만, 괜찮습니다. 이럴 때를 위해 제 특성을 단련했으니까요.”
힐 비는 벌의 모양을 한 초소형 드론으로, 부상자를 스캔하고 대상에게 필요한 약물을 조합해 꼬리에 달린 주사기로 주입한다.
지금은 대부분 항생제나 마취제에 불과하나 몇 년만 더 연구하면 지혈제와 해독제까지 탑재될 예정이다.
남만혁은 메딕기어가 너무 발전된 기술이라 세상에 공개할 시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해서, 그블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진 인프라만 구축해두고 기술 자체는 풀지 않을 계획이다.
“호위는 붙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제독님.”
“조심하세요. 큐링 힐 선생. 당신은 언젠가 세계를 구할 사람입니다.”
남만혁이 진심을 담아 그리 말하자 지휘실을 나가려던 큐링 힐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답했다.
“위험해져도 이전처럼 구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작년, 아마존의 대형 화재를 진압하는 작전 도중 큐링 힐이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지원을 나갔고 불길에 둘러싸이는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그를 주시하던 남만혁은 리쳇에게 이온 광선으로 큐링 힐 인근의 불길을 전부 소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는 1초의 지연도 없이 수행되었다.
“하아, 이번에는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마쇼.”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큐링 힐이 수송선을 타고 피난소 인근의 병원으로 향했다는 보고가 올라옴과 동시에 메딕기어 수술실 안에서 회복 중이던 딥해피마인드가 눈을 떴다.
“으음….”
“정신이 드나?”
딥해피마인드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못마땅한 얼굴의 남만혁이 시야에 들어오자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으나 기절하기 전, 자신이 본 것을 떠올리고 급히 입을 열었다.
“해방 교주는 숙주입니다! 그를 조종하던 배후가 있었습니다.”
“그런가?”
무뚝뚝한 반응에 딥해피마인드가 고개를 기울이다 후두부에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끄응, 알고 계셨습니까?”
“그게 아니면 내가 나서지도 않았어.”
남만혁이 이차원 삼인방을 받아들인 후, 지구상에 타 차원의 존재와 접점이 생긴 사람이 빠르게 증가했다.
올해만 이 해방교처럼 타 차원의 존재에 의해 벌어진 사건만 무려 6건.
“데슈포트. 교주는 놈을 데슈포트라고 칭했습니다. 빨간 로브로 얼굴부터 발끝까지 가렸—”
“입 부근에 구멍이 뚫려있고 거기에 문어발 튀어나왔나?”
“더듬이로 보셨습니까? 어떻게 아십니까? 흡.”
군단의 심장을 발동하면 남만혁의 이마에 핑키의 더듬이가 생긴다.
그는 그걸 더듬이라고 대놓고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딥해피마인드가 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으나 남만혁은 이미 다른 생각 중이었다.
‘데슈포트면 프렉시스를 노리는 새낀데. 내가 지구 출신이라는 걸 아니까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건가?’
남만혁은 바닥에 널브러진 교주의 머리칼을 붙잡고 들어 놈의 귓가에 속삭였다.
“야. 거기 있지?”
남만혁의 부름에 교주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전신의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대뜸 눈을 번쩍 뜨더니.
-프렉시스를 바쳐라. 하위종. 그렇다면 지구의 파괴는 그만두마.
“우리나라 속담 중에 이런 게 있어. 너를 알고 나를 알면 쉽게 이긴다.”
-뭐라?
“프렉시스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 너?”
-행성 용광로에 있을 게 무언가. 허세 부리지 마라, 하찮은 하위종.
“내가 왜 이렇게 너랑 대화 길게 하는지도 감이 안 잡히고?”
-그거야 이 몸과의 대화를 통해 영광의 파편이라도 얻기 위함이 아니겠느냐.
영광 찬사는 게오르크 차원의 문화다.
“하, 하하하! 크크. 영광? 무슨 영광. 당당히 나설 수도 없는 빌어먹을 기생충 새끼들이 영광은 지랄.”
-네 놈! 무엄하다!
삑.
지휘실에 짧게 울리는 신호음. 남만혁과 솜브리오의 눈이 마주친다.
‘마이클이 해냈습니다.’
솜브리오가 소리가 들어가지 않게 남만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알았다. 생각할 시간을 좀 줘라.”
-건방진 놈. 나는 네놈 같은 하위종과 달리 배포가 넓으니 그쪽 시간으로 10분만 기다려주마.
퍽.
데슈포트의 말이 끝난 직후 교주의 머리가 터졌다. 상위종이 하위종의 몸에 개입하면 엄청난 부하가 걸린다.
이렇게나 대화할 때까지 버틴 것도 해방교 교주가 평소 데슈포트에게 어느 정도 힘을 받았다는 뜻이었다.
“에이.”
옷에 묻은 교주의 피를 털어낸 남만혁은 솜브리오를 돌아보며 턱짓했다.
“좌표 땄지?”
“예, 발키리 호는 언제든 출진할 수 있습니다.”
행성 용광로, 프렉시스를 활용해 완공된 발키리 호는 언젠가 닥칠 우주전을 대비한 전함으로 공격과 방어에 치중된 무인 함선이다.
솜브리오는 어지간한 하위 차원 행성은 발키리만으로 점령할 수 있으며 데슈포트 같은 상위 차원이라도 소규모의 세력 정도는 넥서스와 함께라면 토벌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남만혁이 가서 놈을 조지고 오라는 명령을 하려던 찰나.
웨에에에엥!
어지간한 일에는 반응하지 않도록 설정해둔 함 내 긴급 경보가 울렸다.
-대기권에 운석 출현.
리쳇이 해당 운석을 내 시야에 띄웠다.
“와, 이 시X놈 퍼포먼스 좀 보게.”
[10]
――――――――――
❖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