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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53화 (153/201)

<153화>

데슈포트식 카운트다운

운석 중앙에 커다랗게 새겨진 아라비아 숫자, 10.

데슈포트 놈이 지구의 문명을 어느 정도 학습했다는 증거이자 분당 하나씩 운석을 떨어트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고약한 협박이다.

‘놔두면 안 되겠어.’

저런 놈은 빨리 뿌리를 뽑아버려야 후환이 없다. 내게 협박한 놈이 어떻게 되었는지 본보기를 보일 필요도 있고.

문제는 현시점에 저 운석을 피해 없이 막으려면, 넥서스가 필요하다는 것.

“솜 함장, 발키리만으로 데슈포트 세력을 처리하는 건 어렵겠지?”

“예. 발키리는 지구의 동물로 비유하면 코끼리와 같습니다. 네발 동물 중 가장 강한 코끼리가 작은 벌레에게 취약한 것처럼. 발키리도 다수의 소형전투선이 달라붙으면 대처가 쉽지 않습니다.”

“넥서스가 그 벌레들을 쳐내는 역할이고?”

“그렇습니다.”

웨에에엥!

잠깐 고민하는 사이 다시 사이렌이 울렸고, 두 번째 운석이 출현했다.

[9]

크기가 앞선 운석의 두어 배는 되어 보인다.

‘쓰읍.’

선택지는 둘이다. 넥서스와 발키리를 보내서 데슈포트를 확실하게 제거하거나 놈의 세력을 깎아 먹는 거로 만족하고 넥서스를 잔류시켜 운석을 막거나.

“응?”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지휘실의 선원들이 모든 업무를 멈추고 나를 보고 있었다.

얼른 결정해라 이거지.

…음.

“오케이, 해보자. 솜 함장, 데슈포트 모가지 따 와.”

“예, 써!”

평소 지구를 순찰하던 때와는 다르게 솜브리오의 얼굴에 활기가 돈다.

그는 늘 내게 가상훈련만으로는 엘리트 선원을 배출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나도 우주전을 경험시켜주고 싶다만, 그렇다고 전쟁을 만들어서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다 죽상인데, 솜 함장만 신났네.’

내가 배에서 내리자 곧장 은폐를 풀고 시공간 도약으로 사라지는 넥서스.

쿠오오오오.

“…괜히 보냈나.”

운석이 멀리 있을 때는 할만하다 싶었으나 가까워지니 어지간한 섬은 단박에 날려버릴 크기다.

돌이키기엔 이미 늦었다. 어떻게든 해내는 수밖에.

‘우선 도수정부터.’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공원으로 가니 도수정은 다른 히어로의 합류로 여유가 생긴 모습이었다.

나는 중년의 얼굴로 바꿔주는 가면과 뿔을 가리기 위해 특수 제작한 커다란 제독모를 벗고 목소리 톤을 조정한 뒤 히어로 무리에 접근했다.

“정지, 누구십니까.”

“로맨입니다. 저기, 단절공이 제 친구여서 도우러 왔습니다.”

“로맨? 아, 그 몇 년 전 드라마에 나왔던?”

“예에, 뭐. 쟤 좀 데려갈게요. 운석 저거 어떻게든 하려면 단절공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굳이 그럴 필요 없다.”

“네?”

“볼트 사에서 나서기로 했다. 시민들을 우선 대피시키라더군. 전달 못 받았나?”

볼트에서? 그것들 기술로는 저거 못 막을 텐데. 아, 운석이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가?

“네, 뉴스 보고 온 거라서요.”

“허어, 호출도 없었는데 정의감만으로 이런 곳까지 왔다는 건가. 대단하구먼, 내가 젊었을 땐 그런 히어로들이 많았지. …단절공은 저기서 쉬고 있네.”

“감사합니다.”

공손한 후배 히어로를 연기한 뒤 도수정에게 다가가자 녀석은 초췌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누구…, 남만혁?”

“오랜만이다. 도수정. 도 아저씨 잘 계시지? 요즘도 운전하시냐?”

서히아 입학시험 치를 때 택시를 탔었는데, 그때 택시 기사가 도수정의 아버지였다.

그때의 인연으로 명절에 인사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어떤 면에선 도수정보다 더 친할지도.

“풋, 몇 년 만에 보자마자 묻는 게 그거야? 당연히 잘 계시지. 택시는 그만두셨고 요즘은 낚시 다니셔.”

“건강하시다니 다행이네. …내가 왜 왔는지 알지?”

도수정의 시선이 나를 지나쳐 좀 더 위를 향한다.

“혹시 저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도수정.

“어. 나랑 막자.”

“나도 그러고 싶지만, 방금까지 돔 유지하느라 좀 지쳤거든? 한 30분만 쉬면 안 될까?”

“그땐 막을 이유가 없을걸.”

“왜?”

“저거 분당 하나씩 떨어질 거거든. 10분 후면 우린 우주 먼지가 되어 있지 않을까?”

반쯤 풀려 있던 도수정의 동공에 초점이 잡히고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미친, 진짜?”

“내가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냐. 이러는 중에도 1분 지났으니까, 이제 3개 막아야겠네.”

“아아아아악!”

갑자기 본인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비명을 내지르는 도수정. 주변 히어로와 부상을 치료하던 시민들의 놀란 눈이 이쪽을 향한다.

괜찮다. 이건 도수정식 기합이니까.

“후, 해! 까짓거. 어떻게든 되겠지.”

“좋아, 이래야 도수정이지. 공중에 띄울 테니까 놀라지 말고.”

영역, 전개.

‘변형.’

예전의 내 영역이 전개에서 끝났다면 최근엔 ‘변형’이라는 단계를 추가해 활용 중이다.

단어 뜻 그대로 영역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는, 일종의 마나 컨트롤 연장선.

내가 다른 마법은 몰라도 마나 관련해서는 재능이 꽤 괜찮지 않나.

그래서인지 꾸준히 연습하다 보니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쯤엔 실전에도 써먹을 만한 마법적 기교가 되어 있었다.

“꺄악!”

도수정을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내 영역으로 의자를 만들어 앉히고 띄우자 녀석이 매우 놀라며 버둥댄다.

진정하길 기다릴 시간이 없었기에 그 상태로 리쳇이 보낸 좌표로 이동했다.

“여기?”

-해당 좌표에서 운석 파괴 시, 지상의 피해 최소.

다행히 산티아고에서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도수정. 할 수 있겠어?”

“뜨거워어어!”

“걱정하지 마, 내 영역이 열을 막아줄 테니까.”

신성 속성 영역의 장점이다. 내 몸을 기준으로 해로운 것들은 어느 정도 쳐내 준다.

“으으, 단절!”

공원을 덮었던 돔 형태가 아닌 하나의 면으로 펼쳐진 단절벽은 다수의 육각형이 겹친 모양새였다.

“온다.”

쿠구구구!

모든 물리적 충격을 무효화하는 단절답게 운석과의 충돌에도 도수정은 밀리지 않았다.

다만.

쩌적!

단절벽에 닿지 않은 운석들이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외기권에서라면 모를까 여기서 부서진 파편들은 그대로 지상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남길 게 뻔했기에, 녀석을 불렀다.

“삼식아!”

검은 구멍에서 맨들거리는 두개골이 쑥 튀어나와 주변을 훑어본다.

돌곡!

인사와 함께 내 마나를 가져가 허공에 작은 구체 하나를 생성하는 삼식이.

완성된 구체는 부서진 운석 파편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고.

-미사일 오브.

퍼져나가는 삼식의 사념과 함께 상자에서 운석 파편의 개수만큼 매직 미사일이 튀어나와 요격한다.

말끔하게 사라진 파편들.

“잘했어.”

돌곡!

“남만혁! 또 온다!”

쿵!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두 번째 운석이 우리가 막고 있던 첫 번째 운석의 꽁무니를 때렸다.

콰아앙!

충돌로 인해 산산조각이 난 첫 번째 운석, 그리고 무수히 생겨나는 파편들.

‘이건 삼식이도 힘들겠어. 어쩔 수 없나.’

영역, 전개.

속성, 애시드 포이즌.

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큐브 형태의 녹색 영역.

치이익.

내 영역에 들어온 운석 파편이 검녹색으로 변하며 녹아내린다.

‘어우, 역시 후달리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파편들이 영역을 벗어나기 전에 전부 처리해야 하는지라, 대량의 마나를 쏟아 부어야 했다.

“남만혁, 저쪽!”

도수정이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엔 내가 영역을 펼치기 전에 이미 지상으로 낙하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파편이 보였다.

저거 놔두면 정확하게 민가를 덮칠 각도다.

‘썩을.’

영역 두 개를 겹치지 않게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독이 새어 들어와 도수정이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도수정을 빼면 운석의 충격량을 감당할 방법이 없고.

“남만혁, 어떻게든 해봐!”

“리쳇. 쏴.”

쯔우웅.

범죄자를 저격하며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밀도를 높인 리쳇의 하이퍼이온캐논은 표적이 어떤 위치, 속도이든 관계없이 관통하는, 그야말로 신의 심판으로 진화했다.

“뭐, 뭐야. 방금 저거 네가 한 거야?”

“도수정 앞! 또 온다!”

처음엔 한 번 사용하면 일주일은 재충전을 해야 하던 하이퍼이온캐논이 이젠 20분이면 풀 차지가 된다.

숙련도의 상승과 솜브리오가 가진 지식을 연구한 결과다.

그러나 운석은 분당 하나씩 떨어지는 중이니 다시 이런 위기가 온다면 같은 방식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이제 시작인데 비장의 카드를 써버린 격이다.

쾅!

“으윽!”

세 번째 운석은 앞선 두 개의 운석을 합친 것보다 거대했고, 앞에 있던 다른 두 운석을 완전히 박살냈다.

“씨발!”

삼식이가 열심히 미사일을 뿌리고 있었으나 지금 생겨난 막대한 양의 운석 파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산성으로 녹이려고 해도 애초에 내 영역을 벗어난 놈들이 너무 많다.

“남 교수! 어떻게든 해 봐!”

“못해.”

“뭐라고?”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다 썼다. 네가 해야 돼.”

“내가? 어떻게? 나 이거 버티는 것만 해도 죽을 거 같거든?”

“도수정. 저 지상의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선, 네가 지금 재각성하는 수밖에 없어.”

“그게 마음대로 되냐!”

만화는 이럴 때 슈퍼 울트라! 라면서 극복하던데. 역시 현실은 다르다.

측.

[제트콥터다. 볼트 사에서 신의 지팡이를 발사했다. 단절공, 로맨. 복귀해.]

도수정의 통신기에서 들려온 메시지. 녀석은 나를 어떻게 할 거냐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볼트가 잘도 하겠다.’

신의 지팡이가 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아주 무거운 물체를 인공위성에서 떨어트려 목표를 맞추는 무기.

말만 들어보면 단순하고 강력하다. 그러나 저게 지금까지 외면받은 이유는 효율과 명중률 때문이다.

지구의 대기를 완벽히 파악하지 못하는 한 미세한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는 지상에 도달했을 시 엄청난 차이가 된다.

게다가 위성에 실어 궤도에 올리기까지 드는 비용이 엄청나기에 어떤 국가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돈이면 항모를 몇 척은 만드니까.

차라리 우리에게 조금만 더 운석을 붙잡고 버티라 했으면, 믿었을 텐데.

‘리쳇, 텅스텐 막대가 운석에 명중 확률은?’

-33% 미만.

그럼 그렇지.

“무시하자.”

“하지만….”

“날 믿어. 저건 못 쓰는 거다. 볼트에 하루 이틀 속냐.”

-새로운 운석 출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리쳇의 기계적인 음성.

동시에 시야 전체를 가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운석이 정면에 당도했다.

“아….”

도수정의 허탈한 탄식.

앞선 운석들과는 규모가 아예 다르다. 시야 전체를 가리는 어마어마한 크기. 달이 떨어지고 있다 해도 믿을 정도.

‘이게 이 정도면, 다음 운석들은 더 크다는 소린데.’

그럼 마지막 운석은 대체 어느 정도라는 거지?

‘지구가 끌려갈지도. 아, 그럼 지구가 운석이 되는 건가.’

이딴 영양가 없는 잡생각을 하며 반쯤 포기할 무렵. 다시 리쳇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독, 솜브리오 함장에게서 연락왔어. ‘데슈포트 토벌 완료.’

“좋아!”

“뭐가 좋아, 미친놈아. 다 죽게 생겼는데! …아빠아, 흑. 낚시 같이 가자고 할 때 갈걸.”

도수정이 구현한 단절벽이 깜빡거린다. 무효화한 충격량이 한계에 달한 모양.

-참, 내가 물어봤는데. 지구로 전송된 운석은 안 사라진다네?

‘어?’

-그리고 넥서스는 발키리가 프렉시스를 비운 사이 침공한 해적 놈들과 교전 중이라 복귀가 늦어질 거 같고, 발키리는 파손이 심해서 수리 중.

그러니까.

“이걸 나보고 막으라고?”

쿠구구구.

모든 것을 짓누르며 다가오는 4번 운석이 울먹거리는 도수정의 단절벽에 닿았다.

빠각.

저기에 금 간 거 처음 봤다. 단절도 부서지는 거였구나.

“X 됐네.”

결국,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수가 여의찮았음을 인정하고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후우, 하나, 둘.

“퀴이이이인!”

쟤가 나 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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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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