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운석은 시청자를 싣고
“안녕하세요, 여러분! 최하!”
몇 년 전.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의 클래스 업 행사에서 남만혁을 촬영해 이름을 알린 너튜버, 최미주는 특유의 열정과 발랄한 분위기로 최근 백만 구독자를 달성했다.
“다들 그 소식 들으셨나요? 네? 지구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요? 아니, 있을 수도 있죠! 앗, 봐요! 제 동생은 자느라 이제 알았다고 하잖아요.”
최미주는 빌런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빌런에게 몰렸던 시절, ‘빌런 추적’ 콘텐츠로 구독자를 모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다크 넥서스였다.
다크 넥서스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곳으로 이동해 카메라를 들었고, 그때마다 구독자가 만 단위로 늘었다.
지금까지 이런 시도를 한 너튜버가 없었던 게 아니었으나 유독 최미주의 채널만 흥한 이유는 그녀가 올린 영상은 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는 최미주가 다크 넥서스와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성 기사가 뜨기도 했다.
“제 동생처럼 자고 계셨던 분들을 위해, 짜잔! 제가 산티아고에 왔습니다! 정확하게는 다크 넥서스 님을 봤다는 분을 만나기 위해 왔다가 운 좋게 얻어걸린 거지만요. 운이 없는 건가? 아무튼!”
그녀가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영상엔 허공에 멈춰 있는 거대한 운석과 그 앞을 막는 넓은 판과 점 두 개가 보였다.
“저기 계시는 히어로분들께는 죄송하지만, 폭죽 같아서 예쁘네요.”
실제로 영상미는 대단했다. 무수히 쪼개진 운석 파편과 그것을 요격하는 미사일 오브는 그야말로 역사에 기록될만한 장관이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지금 운석을 막고 계시는 두 분이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아! 대한민국 만세!”
능숙한 너튜버답게 적당히 국뽕을 섞을 줄도 알게 된 최미주였다.
[댓글]
[등심라면좋아 : 근데 우리 너무 태평한 거 아님? 저거 떨어지면 지구 끝날지도 모르잖아.]
[리얼애플버스 : 나 사과나무 사다 심다가 미국이랑 볼트 사에서 운석 막는다는 뉴스 뜨길래 환불했다.]
[토토다이2031 : 핵 발사국 미국은 몰라도 볼트는 믿을 수 있지. 성공시킨 스페이스 프로젝트가 한둘이 아니잖아.]
[미나리슾웨건 : 애들아, 방금 볼트 국장이 입장 발표했는데, 운석이 3개나 떨어질 줄 몰랐단다. 히어로들의 도움이 절실하대.]
[민머리문어는풍성꿈을꿔 : 어, 진짜네.]
[리얼애플버스 : 나무 다시 사러 간다.]
“걱, 걱정하지 마세요! 남만, 아니 로맨 님이 해결해주실 거예요.”
최미주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지구 멸망의 최전선에서 침착을 유지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멘트를 치는 목소리가 크게 흔들렸다.
“보시는 것처럼 저 두 분이 버티시는 한—”
빠각.
두 히어로의 모습을 찍기 위해 줌을 당기는 순간, 운석을 막아 세우고 있던 거대한 단절벽에 균열이 생겼다.
“꺄아악!”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른 최미주는 만약의 가능성을 떠올리곤 침을 삼키며 홀로폰을 들었다.
뚜르르.
-언니?
“예주, 너 집이지?”
-응. 왜?
“당장 전에 내가 말한 벙커로 가!”
-의미가 있을까?
“뭐?”
-저거 떨어지면 지표의 생물 9할이 죽는대. 거기엔 언니도 포함될 테고.
언니가 죽으면 자기 삶이 의미 없다는 예주의 말에 미주는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으나 재차 피난을 재촉했다.
-안 가. 그리고 실망시키지 마.
“무슨 소리야! 구독자보단 네가 중요해!”
스트리밍 중이었으나 누구도 최미주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도 가족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인사를 전하고 있었으니까.
-구독자가 아니야. 지금의 언니를 있게 한 분 말야.
“…남만혁 님?”
-다크 넥서스 님도. 그분들이 지금의 겁먹은 언니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나도 알아. 하지만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데!”
-살면?
“…….”
-언니. 모두가 죽음을 준비하는 지금이 기회야.
“무슨 기회.”
최미주는 병으로 죽음을 앞뒀던 최예주가 종종 현자처럼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던 것을 떠올리며 귀를 기울였다.
-천만 유튜버가 될 기회.
“고작—”
-다크 넥서스 단독 인터뷰도 꿈이 아닐걸? 어쩌면 정체를 언니 채널에서 처음으로 밝힐지도 몰라.
움찔.
“그분의 정체가 궁금하긴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서 병원에서 나올 때. 언니가 내게 한 말 기억나?
질끈. 입술을 깨문 최미주가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어떻게 잊어. ‘사람을 죽여서라도 돈 벌어올게.’였었지.”
-나는 그대 이렇게 생각했어. ‘벌레 한 마리 못 잡는 언니가 나 때문에 사람의 목숨까지 언급하는구나.’. 언니. 나는 그때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언니의 삶에 방해물이 되고 싶지 않아.
자기 때문에 욕망을 외면하지 말라는 충고에 최미주는 눈을 감고 한숨을 길게 쉬고는.
“넌 정말 그놈을 닮았어.”
-고집이 세다는 소리지? 나도 알아. 그래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해.
자매 사이에서 ‘그놈’은 그녀들을 버리고 간 아버지를 의미한다.
“다행은 무슨, …알았어.”
전화를 끊은 최미주는 ‘역시 예주는 히어로가 돼야 했어.’라며 작게 중얼거리곤 거치해둔 카메라를 직접 짊어지고 렌트한 트럭의 운전석에 올라탔다.
반대쪽 차선과는 달리 뻥 뚫린 도로를 질주하는 와중 어떤 히어로 하나가 길을 막아섰다.
“멈추세요. 이쪽은 위험합니다! 저희랑 같이 대피하시죠. 산티아고의 벙커들은 운석이 떨어져도 안전합니다!”
극한의 상황인 만큼 무엇보다 달콤한 제안이었으나 최미주는 자신의 욕망과 예주의 조언을 되새기며 고개를 저었다.
“운석 찍어야 해서요!”
창밖으로 몸을 내민 최미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운석을 손으로 가리키자 히어로가 기겁한다.
“위험합니다! 저희를 따라오세요.”
“못 찍으면 저 죽어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고생하세요!”
예주가 죽으면 자신 역시 살 의미가 없었던 미주였기에 그녀는 진심을 담아 그리 말하며 피난 인파를 거슬러 올랐다.
그리고 그 어느 곳보다 운석이 잘 보이는 해안절벽 위에 도착해 카메라를 들자.
[동시 시청자 : 393,999,138명.]
4억 명에 육박하는 시청자가 들어왔다. 엄청난 속도로 채팅창이 올라갔고 그녀의 만용을 지적하는 문구로 도배되었으나 최미주는 거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여러분, 들리세요? 로맨 님이 뭐라 외치고 계세요.”
퀴이이이이이인!
“아! 그분을 부르고 계셨네요. 역시 동기셔서 그런지 부름에 거침이 없네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저기 금색 빛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최미주가 가리킨 방향에서 금빛의 선이 맹렬한 속도로 다가왔고 금방 로맨과 단절공이 위치한 곳에 도착했다.
“대화를 나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히어로분들은 시민 유도에 전부 투입된 걸까요? 저렇게 어린 분들만 계신 게 좀 의아하네요.”
최미주와 같은 의문을 가진 이들이 히어로 협회에 협박에 가까운 지원 요청을 수도 없이 넣었으나 협회는 그들에게 단 하나의 문장만을 전한 채 묵묵부답이었다.
‘운석은 막을 수 있다. 이미 조치했다.’
그러한 상황을 예주의 문자를 통해 전달받고 막 언급하려는 순간.
팟!
“끼약!”
“음? 허허.”
아무런 전조 없이 나타난 노인에 기겁해 가파른 절벽에서 발을 헛디딘 최미주는 뭐라도 잡기 위해 팔을 버둥거렸으나 이내 자기 몸이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곤 조심스레 물었다.
“누, 누구세요?”
“산책하던 늙은이일세. 쿨럭.”
“괜찮으세요? 제가 기침약을 가지고 다니는데, 드릴까요?”
“마음이 순한 처자구먼. 괜찮네. 약이 듣는 종류가 아니니. 그보다 자네는 계속 여기 있을 셈인가?”
“네. 그러기로 각오했거든요.”
“그럼 이리로 오게. 차나 들면서 같이 구경하세.”
“어…. 넵.”
잔을 받으며 품이 넓은 옷을 입은 노인을 찬찬히 살핀 최미주는 서히아에 비슷한 인상의 교수가 있다는 소문이 떠올라 무심결에 입에 담았다.
“매저드 교수님?”
“자네, 우리 아카데미 학생이었나?”
“그건 아니에요. 로맨 님을 따라다니다 보니 알게 됐어요.”
“그래? 어이쿠, 제자들이 무리하는구먼.”
흐뭇함이 담긴 눈길로 제자들이 꾸역꾸역 운석을 막아내는 광경을 관람하는 매저드.
“저기.”
“왜 그러는가?”
“혹시 히어로 협회에서 오셨나요?”
“그 치들이 도움을 요청하기는 했네.”
“다른 분들은요?”
“운석 건으로 호출에 응한 이는 나뿐일걸세.”
지구를 멸망시킬지도 모를 운석을 막아야 하는데, 달랑 혼자라는 말에 최미주는 뒷목이 서늘해졌으나 최선을 다해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놀렸다.
“그렇군요. 언제 도우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기 지금 위험해 보여서요.”
“어지간해선 나서지 않을 생각이네.”
“예?”
“자초한 이가 처리해야지.”
알쏭달쏭한 말에 최미주가 고개를 기울이자 매저드는 헐헐 웃고는 돌연 운석 너머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제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나설 생각이었네만, 불필요한 참견은 쳐내는 게 옳겠지.”
콰아아앙!
대기가 찢기는 소리가 저편에서 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검은 막대가 그들의 옆을 스쳐 바다로 떨어졌다.
“저, 저건 뭐예요?”
“볼트에서 버린 작대기라더구나. 안나, 근처에 있느냐.”
“네, 스승님.”
“흐이이익!”
땅에서 불쑥 상체만 올라온 반투명한 사람의 모습에 기겁하는 최미주.
“놀라지 말게. 착한 사람은 해치지 않는 귀여운 유령이니.”
익살스러운 노인의 얼굴을 보고서야 안도한 최미주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안나, 저 막대를 아카데미 공방에 보내두거라.”
안나벨은 매저드의 학식과 마법에 매료되는 바람에 ‘졸업 시험 통과’라는 조건을 만족하였음에도 성불하지 못했다.
해서, 그녀는 지구상 가장 위대한 마법사인 매저드 곁에서 조수 노릇을 하며 마법을 더 배우기로 결심하고 아카데미에 남았다.
“네크로 마탑을 불러도 될까요?”
“만혁이가 또 툴툴대겠구나. 어쩌겠느냐 저 좋으라고 하는 일이니. 그리하거라. 내가 책임지마.”
인사와 함께 안나벨이 사라지자 안도하며 다시 운석을 쳐다보는 최미주.
“방금 저 막대기라는 걸 움직이신 건가요?”
“맞네.”
“그냥 놔뒀으면 어떻게 됐나요?”
“단절벽을 때렸겠지.”
“부서졌겠네요?”
“모르네. 하지만 부담이 되긴 했겠지.”
노인의 얼굴에서 걱정을 읽은 최미주는 무어라 하려다 다시 입을 닫았다.
‘음.’
지표 생물 9할이 절멸돼도 상관없었으나 친우의 진전을 이은 남만혁이 죽는 꼴을 볼 수 없었던 매저드였기에 협회의 의뢰를 명분으로 이곳에 왔다.
“끝났네.”
“네?”
운석 촬영에 열중이던 최미주가 돌아보자 매저드는 손가락을 수직으로 세워 하늘을 가리켰다.
“아!”
거기엔 우주의 별들이 보이는 커다란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을 가르며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금색 빛줄기.
최미주는 얼른 고속 촬영에 필요한 렌즈로 바꿔 달고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와.”
불길에 둘러싸인 전신.
굳게 쥔 채 앞으로 뻗은 세 개의 주먹.
여유가 느껴지는 웃음.
——!
놀랍게도. 인간과 운석의 충돌은 대단한 충격파를 낳거나 소음을 발생시키지 않았다.
조각난 운석이 속도를 잃고 곱게 바다로 떨어져 해일을 일으키긴 했으나.
“미르토스 해변. 컨셉, 쓰나미.”
주홍빛을 뿌리는 뿔을 단 남만혁이 해안가에 내려서서 유사한 형태의 해일을 일으켜 맞부딪치게 해 소멸시켰다.
“끝…인 거죠?”
“허허. 노인네의 티타임에 어울려줘서 고마웠네. 조심히 돌아가게나.”
그대로 등을 돌려 느긋하게 언덕을 내려가는 매저드의 뒷모습과 젊은 세 히어로가 하이 파이브 하는 광경을 번갈아 보던 최미주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감정을 그대로 외쳤다.
“으아아아! 살았다! 살았다고. …여보세요, 예주야아아!”
그렇게 히어로 셋이 지구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 * *
다음날.
[이번에도 퀸, 그녀는 슈퍼히어로!]
[목숨을 건 촬영. 최고 동시 시청자 8억 명. 광기의 너튜버, 미주 초이는 누구?]
[히어로, 단절공의 재평가 시급.]
[그가 모두의 뒤에 있었다. ‘로맨’, 그는 누구인가.]
쏟아지는 기사들의 95% 이상이 최미주가 찍은 사진을 인용하고 있었다.
한국에 귀환하자 언론사와 방송국에서 섭외 요청이 밀려들었으나 최미주는 일단 모조리 거절하고 집으로 향했다.
삑삑, 띠로리.
문이 열리자 휠체어를 탄 여성이 그녀를 반긴다.
“언니.”
“예주야!”
최미주가 동생을 끌어안고 산티아고에서 했던 마음고생을 쏟아내며 펑펑 울자 최예주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근데 내 메로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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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