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바캉스
[아카데미 졸업 후 다시 뭉친 퀸과 로맨. 전설의 ‘팀 Q’의 부활 징조?]
[판타스틱 듀오, 세계를 구하다!]
[운석의 날. 세계 경제가 멈췄다. 어이렌 부피, ‘이럴 때일수록 가치가 확실한 우량주를—’]
[대피소의 구원자, ‘큐링 힐’.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야, 남만혁.”
넓은 파라솔을 펼쳐놓고 해변 의자에 누워 느긋하게 기사들을 살피는 도중, 도수정의 구겨진 얼굴이 파라솔 그림자 안으로 훅 들어온다.
“왜 또.”
“분위기 좀 맞춰.”
“맞추고 있잖아.”
쏴아아아.
여기는 그리스의 미르토스 해변이다. 맞다, 내 특성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장소.
오게 된 이유는 대단치 않다. 퀸과 도수정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질 수 없잖아!’라며, 나를 붙잡고 여기까지 데려왔다.
아무래도 대규모 피난 직후라 그런지, 도착한 해변은 난장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파도만 부분 구현해 모래사장에 어질러진 물건과 쓰레기를 한쪽 구석으로 치웠다.
쏴아아.
파도가 밀려와 쓰레기를 데굴데굴 굴려 한쪽으로 밀어 놓는 광경을 가리키자 도수정은 미간을 좁히더니.
“아잇, 눈치 없는 자식. 이리 와!”
팔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도수정. 얘는 또 내 충고대로 웨이트를 열심히 했는지 힘이 아주 장사다.
나름 벗어나려 노력해봤으나 운석을 막는다고 용을 썼던지라 도수정의 괴력을 뿌리치는 건 무리였다.
“멜론!”
물고기를 잡겠다고 들어간 퀸을 부르는 도수정.
첨벙.
수영복 광고의 한 장면 같은 모습으로 상체를 물 밖으로 드러낸 퀸이 이쪽을 바라본다.
펑!
그리고는 수중에서 폭탄이 터진 듯한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와선.
“로맨. 오징어 좋아했지?”
“그렇긴 한데, 갑자기 오징어는 왜?”
“…그으냥. 배고프잖아. 그렇지? 수정아.”
샐쭉한 표정의 퀸.
“그, 그럼.”
쿡.
내 옆구리를 치는 도수정.
뭐야, 뭔데. 뭘 어쩌라고.
“나는 요리 도구 좀 빌려올게.”
“응.”
억지웃음을 짓던 도수정은 퀸이 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내 발을 콱 밟으며 입을 열었다.
“남만혁. 너 정말 몰라?”
“윽, 그러니까 뭘…. 아?”
“기억났어?”
그것 때문에 그러나.
“생일?”
“그래 멍청아! 오늘 퀸 생일이잖아. 저 바쁜 애가 아무 이유도 없이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겠어? 게다가 화장도 하고.”
“화장은 안 한 거 같던데.”
“어휴, 너랑 무슨 말을 하냐. 됐고, 빨리 선물 마련해놔.”
“여기서?”
내가 쓰레기 더미들을 돌아보자 도수정이 등짝을 때린다.
“미쳤어? 왜 또, 중고 악력기라도 찾아서 주게?”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니까. 아니, 오히려 임기응변이 대단한 거 아닌가.”
“닥치고 선물 사 와!”
성질하고는.
“됐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나와 도수정은 동시에 몸이 굳었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퀸이 캠핑카를 한 손으로 들고 서 있었다.
저런 걸 들고도 이렇게까지 기척을 죽일 수 있는 건가.
“멜론…. 그게 아니라.”
“괜찮아. 내가 로맨을 모르겠어?”
퀸은 웃고 있었으나 딱 봐도 실망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애쓰는 얼굴이다.
“그게….”
“로맨,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억지로 뭔가를 해주려고 할 필요는 없어.”
차라리 욕을 해라.
호선을 그리는 퀸의 입가에서 서운함이 뚝뚝 떨어진다.
“그게 아니라, 저거 보이지?”
해변에 도착했을 때부터 꺼내놨던 ‘보관함’을 눈짓하자 퀸이 의아한 눈으로 되묻는다.
“저건 왜?”
“열어 봐.”
거기서 눈치를 챘는지 입술을 안으로 말아 넣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는 퀸.
그 모습이 귀엽다.
어우, 심장 아파.
몇 번이나 나를 돌아보다 보관함을 여는 퀸. 그리고 그 안에서 손바닥 크기의 보석함을 꺼낸다.
“와아….”
퀸의 새하얀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목걸이.
“잠깐만. 내가 걸어줄게.”
화려하진 않다. 보석도 없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흔한 금목걸이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랑 퀸은 이 물건의 진짜 가치를 안다.
“이 목걸이 그거 맞지?”
“어.”
사실 금목걸이는 서몬&케이브에서 포인트로 구매 가능한 값비싼 아티팩트 중 하나다.
내 해변의 보관함처럼 일종의 휴대용 저장고이고 이 안에 들어간 모든 물질은 시간의 영향을 극단적으로 적게 받는다.
“어떻게 구한 거야? …또 거기 다녀온 건 아니지?”
우리는 서몬&케이브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나 그 과정이 무척 괴로웠다.
고치에서 나온 나는 죽어가는 퀸을 봐야 했고 퀸은 지면 죽는 결투에서 100일을 버텼다.
“당연히 아니지. 거길 뭐 하러 또 가. 프렉시스에서 만들면 되는데.”
다녀왔다. 서몬&케이브 때처럼 소환수를 부리는 데스매치가 아니라 생존이 보장된 나흘짜리 토너먼트였다.
가서 온갖 정치질과 협잡질을 한 덕에 ‘구정물 주둥이 로맨’이라는 악명을 얻었다.
그래도 그 덕에 간신히 16강 말석을 찍었고 받은 포인트로 깔끔하게 저거 사서 돌아왔다.
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말이야?”
“정말이래도. 자, 뒤돌아봐. 걸어줄게.”
“…응.”
내가 걸기 쉽게 블론드 머리카락을 들어 뒷목을 보이는 퀸.
어우야.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 슬쩍 살피니 도수정이 입을 틀어막고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크흠.”
“왜?”
“아무것도. 엇, 큭!”
목걸이를 잠그려는 순간, 갑자기 금줄이 길게 늘어나는 게 아닌가. 급히 줄을 떼어 내려는데.
꽈아아악.
끼에엑!
소마의 주먹이 퀸의 허리춤에서 튀어나와 금줄을 움켜쥔다. 그러자 좌우로 버둥거리던 금줄이 죽은 뱀처럼 축 늘어졌다.
“로맨.”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의 퀸. 혹시 이걸 내가 의도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다!”
“…….”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한참 바라보던 녀석은 대뜸 파핫. 하고 웃더니.
“알아. 네가 이딴 추접스러운 장난을 칠 남자는 아니지.”
퀸은 소마의 주먹을 눈앞으로 가져와 끊어진 금줄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잘 쓸게.”
“이걸 쓴다고?”
“안에 들어 있던 놈은 죽은 거 같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냐고 묻자 소마의 주먹을 통해 느꼈단다.
“그 느낌. 자세히 말해 봐.”
퀸의 소감을 리쳇에게 전하고 정체가 뭔지 찾아보라 하니 금방 답변이 돌아왔다.
-지성체의 사념에 깃드는 일종의 기생충. 농장주야 워낙 정신 방어가 단단해서 괜찮지만, 퀸은 위험했을지도.
천만다행이다.
만약 이딴 벌레에 퀸이 지배당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로맨, 이거 봐. 어때?”
띠의 형태를 취한 금목걸이를 허리에 두르고 어디서 본 듯한 모델 자세를 취하는 퀸.
저렇게 해놓으니 은근히 또 어울리기는 한다.
뭐, 설득력 그 자체인 퀸의 외모에 어색한 룩이 있기는 할까 싶다만.
“어울리네.”
“그렇지? 이렇게 소마도 보관하기 좋고.”
주먹을 잡아 버클처럼 줄의 가운데에 박아 넣는 퀸.
꼴이 살짝 우습기는 하다. 그런데 이 방심을 녀석의 적도 가진다고 생각하면, 또 나쁘지 않다.
“고마워. 생일, 기억해줘서.”
“내 생일 때 기대해도 되냐?”
내가 괜히 쑥스러워 너스레를 떨자.
“후후, 각오해.”
“각오? 잠깐, 퀸. 각오가 무슨 뜻—”
* * *
운석 출현 후, 몇 시간 만에 나락으로 떨어진 세계 경제는 놀랍게도 단 일주일 만에 상식적인 수준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경제학자들에게 물었다.
“주가가 폭락하지 않은 건. 누군가가 모든 주식을 받아냈기 때문입니다.”
내로라하는 학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않은 채 ‘세계를 지탱한 거대한 부’에 대해 떠들었다.
사람들은 세계를 구원한 또 다른 존재의 정체를 탐문했고, 월가에서 답을 찾았다.
“밀키 마이닝입니다.”
“확실합니까?”
“확실이고 뭐고 그들이 지금 푸는 주식이 모든 걸 말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그가 들이민 주식 차트엔 상위 1천 개의 기업의 주가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일주일 전과 현재의 주가에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거래량만큼은 초월적이었다.
여기서 대중은 또 한 번의 질문을 하게 된다.
“밀키 마이닝의 주인은 누구인가?”
남만혁이 설계한 회사이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이는 리쳇이므로 지구상의 누구도 그녀가 주인일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리쳇은 자신을 찾는 밈이 발생되고 사그라드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형태의 지배도 재밌네.
* * *
상위 차원, 글로리아. 프렉시스 행성 인근.
“함장님, 놈들이 퇴각합니다!”
“끝까지 추적해! 놈들은 우주의 바퀴벌레다! 하나라도 놓치면 언젠가 수를 불려 반드시 보복해온다!”
“예, 써!”
데슈포트의 정체는 민간 운송 기업으로 위장한 해적단의 두목이었다.
이번 작전의 전권을 제독에게서 부여받은 솜브리오는 토벌을 시작하기 전, 통합우주경찰국에 신고를 넣어 경찰선을 놈들의 은거지에 유도하는 것으로 전력을 분산시키는 수를 썼다.
우주 경찰의 등장으로 혼비백산하는 해적들을 일망타진하고 데슈포트의 목을 치는 것까진 좋았으나 발키리가 출진하며 무주공산이 된 프렉시스를 노린 다른 해적들이 문제였다.
“함장님, 해적들이 곧 우리 궤도를 벗어납니다!”
“기드빈, 점멸 기동은 훈련받았겠지?”
“물론입니다.”
“고작 해적 놈들 상대로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 실력을 보여주게나.”
“예, 써!”
기드빈이 손목에 내장된 임플란트 플러그를 조종대의 소켓에 연결해 동기화하자 넥서스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며 해적선을 농락한다.
“남은 적함 3기!”
측.
-항복! 살려줘! 뭐든 할게!
-젠장, 나도 항복이다. 나 현상금 있으니까 경찰국에 넘겨!
-제발! 나를 놔줘!
열어둔 채널로 접속해온 해적선의 선장들은 절절히 투항을 외쳤으나 솜브리오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섬멸을 지시했다.
“적 함대 침묵!”
치익.
플러그를 해제한 기드빈의 전신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고생했네. 가서 쉬게나.”
“…아닙니다. 작전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자네 의지가 그렇다면야 말리지는 않겠네. 마이클!”
“예! 적 소형선 75기, 중형선 16기, 대형선 2기 대파! 아군 발키리 1호 외장갑 파손, 넥서스 1호 피해 전무. 이상입니다!”
“나포한 선박 수는?”
“소형선 14기, 중형선 2기입니다.”
“고물은 전부 프렉시스의 내핵에 처넣고 발키리 2호 개발에 착수하도록.”
“예, 써!”
“이지욱!”
“소위 이지욱!”
“데슈포트가 지배하던 행성의 관리 권한은 어떻게 됐지?”
“지금 막 통합우주청에서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민간 기업으로 위장한 해적을 발견해 신고한 정상적인 우주민 의식과 귀사(社)가 보유한 무력 수준을 고려해, 행성 파파로티나를 밀키 마이닝에 귀속시킨다.’ 이상입니다.”
“좋아! 제독께서 기뻐하시겠군.”
파파로티나는 암석 행성이고 근방에 아직 탐색 되지 않은 소행성군이 존재한다.
남만혁이 입안하고 리쳇이 다듬은 ‘풀스윙’ 프로젝트가 급격히 가속화되는 순간이었다.
* * *
지구, 남만혁의 히어로 사무소.
“운석을 달라?”
바다로 추락한 운석은 한 달에 걸쳐 모두 지상으로 옮겨졌다.
그러는 도중 운석의 소유권을 두고 이야기가 많았으나 최종적으로 지구 멸망을 막은 세 히어로가 가지는 게 타당하다고 결론이 났다.
그리하여 운석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물리적, 경제적 손실을 입은 산티아고의 주지사는 급히 남만혁의 사무소로 외교관을 보냈다.
“전부 달라는 게 아닙니다. 인류의 생존을 기념하기 위해 일부만이라도 기증을 부탁드리는 거죠.”
“그게 그거지. 얼마?”
“예?”
“얼마에 살 거냐고.”
“파시는 겁니까?”
“그러면? 이게 뭘 줄 알고 내가 그냥 줘?”
“큭, 얼마를 원하십니까.”
남만혁이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그러자 침을 삼키며 입을 여는 외교관.
“1천 달러라면….”
고개를 젓는 남만혁.
“겨우 손바닥만 한 운석 조각으로 1만 달러는 너무 비쌉니다!”
그의 호소에도 남만혁은 감정 없는 눈으로 자기 손가락을 재차 바라본다.
“설마, 지금 1억 달러를 부르신 겁니까?”
끄덕.
“말도 안 됩니다!”
“대신! 스페인이 미국에 흡수되는 거 막아줄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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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