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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58화 (158/201)

<158화>

러시아 vs 유럽연합 (2)

벌컥!

거구의 사내가 다급한 기색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알렉세이 대장님, 68군단에서 나온 놈들이 시민을 인질로 잡고 투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썩은 내장에 담궈 죽일 놈들! 모가지 내놓고 지켜야 할 시민을, 뭐? 인질?”

알렉세이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러시아 군부는 내전의 씨앗이 될지도 모를 그를, 세간의 이목이 전쟁에 몰린 지금 은밀히 처리하기로 하고 일개 소대를 파견했다.

두두두두!

바깥에서 개틀링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알렉세이는 눈을 부릅뜨며 항상 손 닿는 곳에 두는 20게이지 샷건과 클레이모어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대장님, 안 됩니다!”

안드레이가 막아섰으나 알렉세이 역시 한때 전설을 썼던 강화계 각성자.

노구임에도 그를 허리에 매달고 임시 기지 밖으로 나와 탄환을 장전했다.

“마가렛! 괜찮느냐!”

보초를 서던 마가렛을 알렉세이가 부르자 숲 저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예! 아직은요!”

단련된 강화계 각성자는 맨몸으로 총알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내구 같은 방어에 특화된 특성이 없다면, 한계는 존재한다.

고로, 공격형 특성인 세 사람 모두 나무 뒤에 숨어 때를 기다렸다.

“사격 중지! 알렉세이 장군, 그만 투항하십시오. 우리는 조용한 별장 하나를 소개해드리려는 것뿐입니다.”

도로에 깔린 무장 차량 중 하나에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인질을 풀어줘라. 그전까지 협상은 없다!”

잠시 후, 후미의 무장 차량에서 민간인이 우르르 내리더니 우스네라가 있는 방향으로 달린다.

“말씀대로 했습니다. 이제 저희 제안을—”

그들이 멀어지자 알렉세이는 들고나온 클레이모어를 힘껏 허공에 던졌다.

“시민을 공격한 놈과 나눌 대화는 없다!”

포성과도 같은 고함을 내지른 알렉세이가 샷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튀어 나간 쇠구슬들이 횡으로 회전하는 클레이모어를 때리자 정확하게 무장 차량 위에서 폭발한다.

쾅!

끄아아악!

순식간에 적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쇠의 비.

직후 알렉세이와 안드레이가 적 진영으로 질주해 혼란에 빠진 일개 소대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부아아앙!

마가렛 역시 그들의 진입을 확인하고 도주하려는 차량 두 대를 맨손으로 뒤집어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

비탈길을 굴러떨어진 차량에서 피를 흘리며 기어 나오는 중년의 남성.

마가렛이 성큼 걸어 그에게 다가가려 하자.

“가까이 오지 마!”

철컥.

“악! 살려주세요!”

10살 남짓한 꼬마가 그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마가렛은 아카데미에서 인질범과의 협상법을 떠올렸다.

흥분한 인질범의 사고를 얼마나 빠르게 이성적으로 돌리느냐가 인질의 생사를 결정한다.

협상가가 대화를 통해 시간을 최대한 끄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최상은 빌런의 방심을 유도하고 인질을 구출해내는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테니까 아이는—”

“닥쳐!”

탕!

슬쩍 다가가던 마가렛의 발치에 총을 쏴 접근을 막은 중년의 군인은 두어 번 호흡을 고르더니 요구사항을 말했다.

“물과 저 차를 가져와. 그러면 이 꼬마를 놔주지.”

“…알았어.”

마가렛은 그나마 멀쩡한 무장 차량을 운전해와 그의 앞에 주차하고 내렸다.

“열쇠를 내놔.”

“인질부터 이쪽으로 보내.”

“내가 너희 같은 살인마를 어떻게 믿고! 꼬마는 우스네라 시내에 내려주마. 꼬마! 이거 잡아라.”

“싫, 싫어요.”

“이 새끼가!”

권총의 손잡이로 아이의 머리를 찧고 억지로 수류탄을 손에 쥐게 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핀을 뽑는 중년 군인.

이에 분노한 마가렛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려 하자.

“이!”

탕!

“아악!”

군인이 아이의 귀를 쐈다.

“키를 바닥에 내려놓고 물러서.”

“큭.”

‘이럴 때 남만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마가렛은 필사적으로 궁리했으나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꼬마의 다른 귀에도 총알구멍을 내줘야 키를 넘길 건가?”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유형의 인질범.

놈은 냉철하고 현명하며 상황을 주도할 줄 알았다.

물리적인 위기를 돌파하는 능력은 출중하나 배운 것 이외의 상황을 마주하면 고전을 면치 못할 거라는 남만혁의 평가를 떠올린 마가렛은 눈을 질끈 감으며 놈의 요구대로 키를 내려놓고 물러섰다.

“그래야지.”

중년 군인은 철저하게 사주를 경계하며 천천히 열쇠를 발끝으로 끌어와 손에 쥐었다.

‘섣불리 아이를 구하려다간 수류탄이 터진다.’

그렇다고 인질범의 말을 믿자니 도시로 간 사람들이 걱정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와중, 어느새 중년 군인은 차량에 탑승해 시동을 걸고 있었다.

“마가렛.”

“대장님.”

마가렛 옆으로 다가온 알렉세이는 평소와 달리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지금부터 벌어질 광경에서 절대 눈을 돌리지 마라.”

“네?”

그 말을 마친 알렉세이는 차의 바퀴가 구르려는 찰나, 샷건을 차량의 창문을 조준하고 망설임 없이 쐈다.

이 20게이지 특수 탄환은 총기 내구를 대폭 갉아먹는 대신 장갑을 뚫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

콰광!

무장 차량의 장갑을 뚫고 들어간 탄환이 군인과 소년을 관통했다는 의미였다.

차량 내에서 폭발한 수류탄이 사체를 더욱 끔찍한 모습을 만들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경악하는 마가렛.

“마가렛. 히어로건 군인이건. 신속하게 판단을 해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하지만 이건!”

“대장님의 말씀이 맞다. 놈을 놓쳤다면 다음에는 도시 전체를 인질로 잡고 우리를 몰아붙였을 거다.”

마가렛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다.

“살아서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는 건 좋은 일이지.”

알렉세이가 시가를 꺼내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을 기억해라, 마가렛. 너의 무력함이 저 이름 모를 꼬마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비록 내 손으로 죽이긴 했으나 네가 지금보다 월등히 강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겠지.”

후우.

회색 연기를 내뿜은 알렉세이는 불이 붙은 시가를 차 안에 던져 넣고 짧게 기도했다.

“그곳에선 못다 한 삶이 평화롭게 이어지길.”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마가렛을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본 알렉세이는 안드레이에게 기지에 숨어 있던 수하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얼마 후.

“전원 집합했습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 기지는 쓸 수 없는 곳이 됐다. 그래서 니콜라이에게 갈 생각인데,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좋습니다!”

열댓 명의 비전투 인원이 한목소리로 답하자 알렉세이가 만족하며 안드레이와 마가렛에게 인근 숲에 숨겨둔 차를 끌고 오도록 지시했다.

“마가렛 예프소브나.”

“…예프소비치예요.”

“대장님 말씀이 좀 과하시긴 했다. 네가 이해해라. 패전을 거듭하던 군부에서 평생을 보내신 분이라 이런 일을 많이 겪으셨을 거다.”

안드레이가 마가렛의 어깨를 두드리자 마가렛은 엉덩이를 옆으로 옮겨 그와 거리를 벌렸다.

“대장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약해서 벌어진 일이죠.”

“꼭 그렇지는 않다.”

“아뇨, 처음부터 할아버지나 선배가 나섰으면, 꼬마도 살았을 거예요. 두 분은 마음먹으면 총알보다 빠르게 움직이실 수 있으니까요.”

자책하는 마가렛이었으나 그녀의 얼굴은 좀 전과 달리 마냥 어둡지만은 않았다.

“다음엔, 잘 할 수 있어요.”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에는 세기에 내로라하는 재능과 특성을 가진 이들이 몰려드는 천재의 요람.

그런 곳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고 한 학기이기는 하나 수석을 달성하기도 했던 인물이 바로 마가렛 예프소비치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타고난 향상심!

누구라도 주눅이 들법한 상황이건만, 마가렛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알렉세이는 마가렛이 이렇게 금방 회복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질책을 쏟아냈던 것이다.

“…그래.”

어째서인지 안드레이의 안색은 마가렛과 반대로 어두웠다.

* * *

1주일 후. 사할린 제도, 니콜라이의 저택.

콰과과광!

“폭격기입니다!”

“제기랄!”

“네놈이 꼬리를 달고 왔구나, 알렉세이!”

“지랄! 숨겨둔 대공포나 꺼내!”

“있겠냐!”

장교 임관 동기인 니콜라이와 알렉세이는 서로에게 허물없이 욕을 건네는 절친한 사이였다.

“비행기 엔진소리만 들려도 호두 두 쪽 쪼그라드는 놈이, 공습 대비를 안 했다?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건가? 저 어색한 다락방 당장 까봐!”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새끼. 야곱! 저 가오리 놈들 추락시켜!”

“예, 써!”

저택의 다락방으로 위장하고 있던 구조물은 몇 번의 조작을 거치자 대구경 대공포로 변했다.

포신이 격하게 움직이며 팔뚝만 한 탄환을 엄청난 속도로 토해 비록 한 줄이기는 하나 나름의 탄막을 형성하자 폭격기 셋이 약속이라도 한 듯 세 방향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야곱이라는 자의 조준 실력이 대단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대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추락했고 나머지 한 대는 저택을 크게 선회하더니 구름 너머로 도망쳤다.

상황이 종료되자 휠체어를 타고 온 니콜라이가 침을 탁 뱉는다.

“퉤잇! 내 저택 꼴 좀 봐라. 말라비틀어진 곰 같은 자식아. 이거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이제 너도 나와 한패로 여겨질 테니 싫어도 합류해야지.”

얄밉게 웃는 알렉세이의 모습에 니콜라이는 야곱에게서 받아들던 보드카를 그에게 집어 던졌다.

“개새끼야!”

날아오는 보드카를 요령 좋게 잡아챈 알렉세이가 단번에 반을 비우곤 다시 그에게 건넸다.

“크으, 레오니트에게 가자.”

“그 안전 제일주의자가 잘도 우릴 받아주겠다.”

“대공포 싸 들고 가면 환영할 거다.”

“류드밀라는 절대 안 돼!”

류드밀라는 니콜라이가 대공포에 붙인 이름이었다.

* * *

2주 후. 캄차카반도, 레오니트의 벙커.

“한심한 놈들.”

꾀죄죄한 몰골로 도착한 30명 남짓한 무리를 대공포라는 미끼에 낚여 받아들인 레오니트는 그동안 그들에게 벌어진 일을 듣곤 세상 모든 한심함을 담아 혀를 찼다.

“이동하는 내내 군의 공격을 받았으면, 내부에 배신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우리 중에 그런 의리 없는 놈은 없어!”

니콜라이가 강하게 부정하는 동안 알렉세이는 보드카를 생수처럼 입에 들이부었다.

“알렉세이, 네 의견은?”

레오니트의 담담한 목소리에 그는 한 사람을 쳐다봤다.

“끄윽, 글쎄.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머릿속이 완전히 먹통이야. 하지만! 우리 똘똘한 신입은 다를 수 있지. 마가렛.”

이 중요한 순간에 자기를 부를 줄 몰랐던 마가렛이 당황하며 나오자.

“네가 찾아라.”

“네?”

“적군의 공격은 니콜라이와 합류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만약 배신자가 존재한다면, 우리 중에 있겠지.”

“그러면 대장님이 지목하시는 게 맞죠.”

“나는 이놈들과 너무 오래됐어. 이성적으로 생각이 안 돼. 관계가 그나마 얕은 네 판단을 듣고 싶다. 그리고, 뭔가 눈치챈 게 있으니까 내게 눈짓을 보낸 게 아니냐.”

“…맞아요.”

마가렛은 그간 함께 고난을 헤쳐온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다 최종적으로 안드레이 앞에 섰다.

“아저씨.”

“난 아니다.”

“폭격에서 절 몇 번이나 구해주셨죠.”

“그래! 내가 배신자라면 너를 왜 구했겠나.”

“얼마 전에 아저씨가 지갑을 떨어트렸을 때, 본의 아니게 안을 봤어요. 유명 크루즈 선원 복장을 한 부인과 귀여운 수영복 차림의 여자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죠.”

“대장 덕분에 둘 다 그 죽음의 크루즈에서 살아남았다. 그런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

마가렛은 그의 윽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었다.

“신분증에 아저씨 이름이 ‘안드레이 유리비치 예프소’라고 적혀 있더군요. 제 아버지와 이름이 같으시네요?”

“우연이다.”

“딸의 미들네임은 예프소브나겠고요.”

“…….”

“저를 계속 예프소브나라고 부른 이유가 딸의 이름과 비슷해서겠죠.”

벙커 내에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가 묘하다는 것을 감지한 안드레이가 입을 급하게 떼려는 순간, 마가렛이 먼저 물었다.

“예프소브나 양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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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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