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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60화 (160/201)

<160화>

종전

2056년. 8월. 러시아 내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무력 단체 ‘기간트’가 발족했다.

그들은 소수로 움직이며 러시아 후방 부대를 약탈했다.

러시아 군부는 그들의 리더였던 알렉세이의 사망을 확인한 후 추가 병력을 파견하지 않았다.

군 전체로 보면 피해의 정도가 경미하고 괜히 대응해 그들의 명성을 높일 필요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보초를 두 배로 늘려!”

“알겠습니다. 스탈 동지.”

이것이 기간트에 대한 동부사령관의 최종 지시였다.

그리고 이 명령은 돌고 돌아 ‘혼 스캐빈저’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 * *

-여, 혼 스캐빈저.

“시끄러. 요즘 뭔 같잖은 별명이 왜 이렇게 붙는지.”

스위프트가 어지럽힌 전장의 무기들을 수거하고 다니자 저딴 별명이 붙었다.

회색 로브로 전신을 가리긴 했는데, 아무리 좋은 소재를 써도 이 자기주장이 강하신 신성한 뿔님은 가소롭다는 듯이 뚫고 나가더라.

-그러게 수거팀 시키지 그랬어.

“안돼. 그래도 전장인데, 뭐가 있을 줄 알고.”

당장 나만 해도 러시아가 퇴각하며 깔아둔 지뢰를 밟은 적인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영역을 세밀하게 펼쳐도 물건이 뒤섞여 있는 곳은 완벽하게 탐지가 안 된다. 그 물체에 마나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건 그렇고, 기간트는 뭐래?”

러시아 내에 기간트라는 무력 집단이 생겼다는 보고에 리쳇을 동원해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그곳의 리더는 마가렛 예프소비치였다.

리쳇이 가져온 영상에서의 마가렛은 아카데미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기야, 회귀 전의 불칸의 분위기가 저렇긴 했다.

-‘고맙지만 거절할게, 로맨. 러시아는 몰라도 우리는 밀키가 아닌 기간트로 남을 거야.’ 마가렛이 한 말이야.

내 말이면 다 수긍하던 녀석이 처음으로 제안을 거절했다.

크크.

기껍다. 예스라는 선택지만 존재하던 녀석에게 드디어 노가 주어졌다.

컴퓨터로 치면 드디어 0과 1로 프로그램을 짤 수 있게 된 거다.

전쟁통에 뭔가를 깨달은 거겠지.

좋은 현상이다. 아무리 잠재력이 높은 녀석이라 해도 항상 내가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용병이랑 보급품 지원 제안 대신 우리가 러시아에 파는 무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려줘. 그리고 그걸 우리가 사겠다는 것도.”

-우리가 러시아에 판 무기를 기간트로 회수하자? 사악하긴.

아카데미 재학 중에 다양한 시설과 인프라를 만들어 뒀었다.

이를 이용해 전쟁의 전조가 보이자마자 곧장 밀키 스미스를 설립하고 현대 무기를 대량으로 찍어 냈다.

러시아는 자국의 구식 무기를 애용하다 첫 전투에서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급하게 중립국에서 무기를 사들였다.

러시아가 제시한 무기 대금은 대량의 가스였는데, 나는 경쟁국 중 누구보다 싸게 가격을 불러 거의 독점적으로 무기를 납품하고 있다.

그렇게 가져온 가스는 유럽에 비싸게 파는 중이고.

“사악이라니. 이게 바로 선순환이라는 거다.”

-그렇다 치자. 그런데 마가렛 말고 스위프트는 안 궁금해?

스위프트는 아예 공식적으로 유럽에 붙어 전쟁을 억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놈이야 원래 난 놈이니까, 그냥 둬도 잘할 거다. 애초에 화기로 자연체는 못 죽여.”

VZ라도 동원하면 모르겠는데, 그게 전장에 나오는 순간 다크 넥서스가 전력으로 포격을 가하겠다고 공표했다.

유럽연합이나 러시아 모두 빌런의 발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제스쳐를 취했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심지어 반쯤 반군 세력인 기간트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내 경고를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이다.

똑똑.

왔나.

“들어와.”

산 중턱에 자리한 내 사무소에 올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잘 잤어?”

머리칼이 휘날려 사자의 갈기처럼 된 퀸이 보따리를 한가득 가지고 왔다.

“아침 인사치고는 좀 늦지 않았냐? 이건 뭔데.”

보따리를 받으며 묻자 퀸이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불고기. 내가 한국 의뢰 간다니까, 엄마가 너 가져다주래.”

퀸의 어머니라면 서히아 시절에 현장 실습 나갔다가 만났었다.

“나 불고기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잘 먹겠다고 전해드려. 병원 아직 잘하고 계시지?”

“응. 근데 나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셔.”

최근 세계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퀸은 구조한 환자를 종종 어머니의 병원에 맡기곤 했다.

그중에는 의료비를 지불할 형편이 안 되는 이들도 많았으나 안나 멜론 여사는 ‘딸이 데려온 손님’이라는 이유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또 크게 이슈가 돼서 병원 이미지가 좋아졌다. 역시, 히어로 DNA는 어디 안 간다면서.

“말은 그렇게 하셔도 속으론 좋아하실 거다.”

“너처럼?”

퀸의 예상 못 한 멘트에 내가 순간 멈칫하자 녀석이 킥킥 웃는다.

“귀엽긴.”

“…내가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이제 내 맘을 알겠어?”

아카데미 시절에 종종 놀리고 리액션을 보며 저리 말하긴 했지.

끙, 인과응보인가.

“그래서, 여기까지 불고기 주려고 온 거냐?”

“…사실 마가렛을 돕고 싶어서. 아직도 안 돼?”

퀸은 마가렛의 소식을 들은 뒤로 늘 그녀를 지원하고자 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안 돼. 하나, 마가렛에게는 자력으로 큰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해본 경험이 필요하다. 둘, 네가 개입하는 순간 바로 세계전쟁행이니까.”

만약 퀸이 참전한다면, 가만히 있다 얻어맞은 유럽연합에 소속될 테고 그럼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가 같은 목소리를 낼 거다.

이러면 유럽연합이 한순간에 무력을 갖추게 되고 승전이 확실시된다.

지금까지 눈치를 보던 나라들이 너도나도 러시아의 땅을 뜯어내기 위해 승냥이 떼처럼 몰려들겠지.

종전 후에 러시아라는 한정된 자원을 다수가 나누다 보면,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불만이 생긴다.

강대국은 몰라도 자기와 비슷하거나 뒤처지는 나라에게는 무력 투사도 불사할 국가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칠레는 깡 좋게 미국에 대들었다가 뉴칠레주가 됐었다.

“나 때문에 세계전쟁이라니….”

“넌 늘 신중하게 행동해야 돼. 너, 발라르카를 만난 뒤로 생각이 좀 단순해진 거 알지?”

발라르카. 내가 만약 하나의 그린을 살려야 한다면, 그녀를 선택할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퀸이랑 우정을 쌓은 그린이라서.

‘훈련에 도움도 되고.’

처음에는 발라르카가 가진 정보가 유용할 거라 여겼는데, 터놓고 이야기해보니 내가 아는 게 더 많더라.

그린을 잡기 위해서는 그린을 연구해야 했고 나는 그들의 습관이나 문화를 치밀하게 파고들었었다.

“윽, 꼭 그렇지만은. 앗! 호출 왔어. 돌아가기 전에 또 들를게.”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굳이 좁은 창문으로 확 나가는 퀸.

하여튼 저 버릇은.

“리쳇, 퀸이 맡은 한국 의뢰가 뭔지 알아봐.”

내가 다른 곳은 몰라도 한국은 범죄 청정 지역으로 만들려고 암중에서 꽤 고생하고 있다.

그런데 대형 사무소인 SHQ가 올 정도로 큰 사건이 터졌다는 소리는 들은 바가 없다.

-의뢰자는 프리실라 루드라. 세부 내용은 ‘신설된 1학년 강의에 퀸이 선배 히어로로서 강연할 것.’

그런 거라면 신경 안 써도 되겠네. 어쩐지 화장을 짙게 했더라니.

어쩌면 머리칼도 바람에 날려 사자 갈기가 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스타일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짹짹.

퀸이 떠나자 사무소엔 다시 정적이 흘렀다.

“한가하네.”

-심심하면 프렉시스 쪽 돕는 건 어때?

거긴 지금 솜브리오가 몰려오는 해적들을 상대로 우주 방어 중이다.

“잘하는데 뭐 하러. 거긴 솜브리오에게 맡기는 게 나아. 나포한 해적선도 많다며? 정말 내 도움이 필요하면 지원 요청하겠지. 그전까진 네가 서포트만 해.”

-악덕 농장주 같으니.

악덕은 무슨. 나같이 살려주고 먹여주고 심지어 월급도 주는 착한 노예주가 어딨다고.

“빨리 끝내고 채광선 건조하라고 해. 기껏 찾은 소행성군 언제까지 놀릴 거야.”

-와….

…이건 좀 그랬나. 큼.

* * *

2057년 1월.

[비 인도적인 전쟁! ‘민간을 향한 공격 멈춰달라.’ UN, 양측에 호소.]

[러시아 군인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미신, 체르노보그에 대하여.]

[보급 부족? 쫄쫄 굶어 나무껍질을 끓여 먹는 러시아 군인과의 목숨을 건 인터뷰.]

2057년 3월.

[히어로, 스위프트. 러시아 국기를 찢다.]

[러시아에 의해 점령된 우크라이나. 17일 만에 완전 수복!]

[유럽연합, 러시아에 항복 권고 보내.]

[졸전에 분노한 러시아 민중의 잇따른 시위.]

2057년 8월.

[러, 협상 제안. 유럽연합 ‘휴전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프로 히어로, 퀸. ‘나는 평화를 원해’ 발언. 러시아에 대한 항복 촉구?]

[경제학자 크리스토프, ‘러시아, 종전 후 진정한 지옥이 도래할 것.’]

2057년 11월.

[러시아, 항복! 전쟁은 끝났다.]

[정의 구현. 전쟁에 유럽연합 소속으로 참여한 히어로들.]

[러시아. 다시 한번 세상에서 사라지다.]

[길어지는 모스크바 회의. 지도에 그어지는 줄들. 우려가 현실로?]

2057년 12월.

[숨은 주역, ‘기간트’. 러시아의 보급품을 훔쳐 굶주리던 일반 시민에게 나눠.]

[기간트의 리더 마가렛 예프소비치, ‘우리로 인해 전선에서 고생한 군인분들께는 죄송하다. 그러나 후회하진 않는다.’]

[아직 의문이 풀리지 않은 ‘체르노보그’, 그 실체는 병사들의 스트레스로 인한 환각.]

2058년 1월.

[추정 재산 무한대. 전세계 재계 순위 비공식 1위. ‘밀키 마이닝’.]

[뒤늦게 밝혀진 비밀, 밀키 스미스 사(社)에서 러시아와 유럽연합에 판매한 모든 무기는 민간인을 조준할 시 분해되는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다!]

[전장을 종횡하던 ‘혼 스캐빈저’의 정체는 다크 넥서스!]

2058년 3월.

[러시아 캄차카반도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

[로맨 사무소 소속 히어로, FF. 단신으로 화산 진압.]

[지질학자 찰스 뤼엘, ‘캄차카반도는 최대 두 배까지 넓어질 것.’]

2058년 4월.

[모스크바 회의, 결국 러시아의 부채만큼 토지를 나누기로.]

[회의에 불청객 난입. 밀키 마이닝 이사, 리쳇. ‘돈? 우리가 더 많이 빌려줬다.’]

[모스크바 회의 난항. 거듭 연장되는 회의. 방황하는 전 러시아 시민들.]

* * *

“그러니까, 캄차카반도를 근거지로 삼고 싶다?”

“그래.”

오랜만에 만난 마가렛 예프소비치는 꽤 리더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우선 저 눈 옆에 세로로 그어진 칼자국. 현대 성형 기술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음에도 저리 놔뒀다는 건, 훈장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겉치장에 의미를 두지 않게 된 건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꾸미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둘 다 장단점이 있으나 집단의 리더인 마가렛에게는 지금이 더 나을 것이다.

“뭘 하고 싶은데.”

“요새를 만들고 싶어. 기간트의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요새.”

“잘됐네.”

“뭐?”

“마침 집 봐줄 사람이 필요했거든. 너희가 거기 들어가 살아.”

“무슨 소리야.”

“좌표 보내줄 테니까 가봐.”

러시아 대통령과 협상해 대놓고 지은 요새도 있지만, 몰래 조금씩 만들어 둔 소규모 요새도 여럿이다.

시민들을 대피시킬 때 도저히 방법이 없으면 메딕기어를 동원해 요새로 들여보내기도 했었다.

그때 메딕기어가 까발려질 거라 예상했었으나 지금까지 체르노보그라는 루머만 도는 거 보면, 구조받은 시민들의 의리가 대단하긴 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새에 도착한 마가렛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요새, 정말 우리 마음대로 해도 돼?

전쟁 중에 급격히 덩치를 불린 기간트의 인원이 약 300명 내외인데, 그들 전원이 10년 이상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물자를 요새 내에 구비해뒀다.

“얼마든지.”

-고마워.

“동기끼리 돕고 사는 거지. 내 집이다, 생각하고 맘대로 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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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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