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어느 연인의 야담(夜談)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매저드 개인 연구실. 심야.
탁.
그의 책상 위로 커피가 담긴 컵이 거칠게 떨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저드의 시선은 오늘 나온 위저드 매거진에 고정되어 있었다.
“왜 그냥 놓아주신 건가요.”
대꾸도 하지 않고 컵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는 매저드를 방해하기 위해 반투명한 손으로 컵을 가리는 안나벨.
“무얼 말인가.”
매저드는 그녀가 3년 동안 연구해 만든 부분 실체화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뚫고 들어가 컵을 손에 쥐었다.
후릅.
“칫, 교장 말이에요.”
“강이? 강이가 왜.”
“다른 차원으로 떠났다는 소문이 무성해요. 봐요, 지금 보시는 매거진에도 기사가 실렸잖아요. ‘타 차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인간. 이래도 지구 격리를 유지해야 하는가?’ 저거 우리 아카데미 교장이잖아요.”
남만혁이 리가를 통해 타차원의 존재를 지구상 전체에 공개해버린 이후, 이름 있는 마탑들은 누가 먼저 공식적으로 차원문을 여는가를 두고 레이스에 들어갔다.
참고로 매거진에 적힌 타차원 뉴스는 대부분 로카가 리가를 통해 송출한 광고를 기반으로 한다.
저 기사 같은 문구도 사실은 치한 퇴치용품 광고에서 나온 멘트다.
“바…, 음. 안나.”
“네, 교수님.”
“내 누구도 모르는 비밀 하나를 말해줌세. 꼭 무덤까지, 아니지. 자네에겐 실례로군. 성불을 해도 반드시 비밀을 지키게.”
매사에 농담을 즐기는 매저드였기에 이처럼 진중한 모습이 어색했던 안나벨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느다란 마나의 실이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와 서로 엉켰다.
“맹약이니 강제될 걸세. 자, 나는 사실….”
꿀꺽.
“사실?”
“성인이 아닐세.”
“예?”
“세상이 부여한 성인, 그랜드 위저드라는 칭호는 가짜라는 말일세.”
“하.”
안나벨은 속으로 ‘또 속았네’라고 중얼거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인자하지도, 조건 없는 친절을 베푸는 선인도 아니야.”
‘윽?’
안나벨은 매저드에게서 매섭게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실들을 보며 침음아닌 침음을 삼켰다.
드륵.
서랍을 연 매저드는 친우의 저서를 꺼내 손바닥으로 쓸었다.
[네크로학파 지망생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쓴 책]
“그건, 데드레드스컬 님의?”
“47년 전, 오늘이었지.”
매저드의 뇌리에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고 잠시 회한에 빠졌으나 금세 본래의 얼굴을 되찾았다.
“나를 용서할 수 없었네.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지켰어야 했어.”
“그녀요? 제가 알기로 데드레드스컬 님은 남자…. 앗, 설마?”
“그래, 나와 그녀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어.”
안나벨은 이 순간 비밀 서약을 한 것을 격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정체를 숨기셨나 보군요.”
사방을 할퀴듯 거칠게 흔들리던 매저드의 마나가 안나벨의 말에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버드나무처럼 변한다.
“껄껄, 당시만 해도 여마법사는 대우가 좋지 않았네. 심지어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학파였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만든 마법으로 외모를 바꿨지.”
“아하.”
이제 좀 무거운 분위기가 풀려 안나벨이 안도하는 그때.
“그래서 그녀가 죽었을 땐 이렇게 생각했네. 지구를 부술까.”
“네?”
“인류를 말려 죽일까. 어떻게 해야 이 빌어먹을 바퀴벌레 같은 종자들을 싸그리 쓸어버릴 수 있을까.”
“저, 저는 못 들은—”
“오랜 고민 끝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네. 그렇게 간단하게 죽일 순 없다, 온갖 희망과 더없이 밝은 미래를 보여준 다음!”
쨍!
컵을 바닥에 던져 부수는 매저드.
“그때 죽이자. 그것이야말로 누구보다 찬란했던 미래를 희생한 바이올렛을 위하는 길이다.”
압도적인 존재감.
매저드는 연구실 밖으로 자신의 마나를 절대 내보내지 않았기에 감정에 타고 흘러나온 막대한 양의 마나가 뭉쳐 이 공간의 중력을 뒤집고 있었다.
끼기기긱, 쿵.
책상과 액자, 문, 벽, 냉장고. 모든 것들이 매저드를 향해 끌려가다, 그가 다시 마나를 제어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 자리로 되돌아간다.
안나벨은 두려웠으나 앞으로 할 본인의 말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거랑 교장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압도당하지 않은 척. 태연자약을 연기하며 매저드를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봤다.
‘거북한 분위기라면, 상대의 예측을 한 번 반전시켜 대응해라. 그러면 이 추접스러운 추파가 침을 타고 날아다니는 동물 우리도 꽤 재밌어질 거다.’
과거, 안나벨이 크리스마스 파티가 기숙사에서 벌어졌을 때 혼자 있던 자신에게 남만혁이 다가와 슥 던지고 간 조언이었다.
“끌끌, 그렇지.”
웃음을 들이키며 의자에 등을 기대는 매저드의 모습에 안도한 안나벨이 말을 이었다.
“이거는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비밀 서약한 김에 말할게요. 저, 교장이 매저드 님 찾아온 거 봤어요.”
“저런, 곤란한 걸 봤구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매저드. 이에 화들짝 놀란 안나벨이 뒤로 물러나자 매저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네가 그러면 내가 나쁜 사람 같지 않으냐.”
“그거. 고위직 빌런이 일반인 괴롭힐 때 하는 멘트 3위예요.”
“허허, 요즘 아이들 이야기에는 따라갈 수가 없구먼. 되었다, 커피는 내가 내릴 테니 너는 앉거라.”
“유령이라 앉아봤자 다른 거 없거든요.”
그러면서도 자리에 앉아 놀란 심정을 진정시키는 안나벨.
매저드는 차를 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은 향을 내는 커피가 완성되고, 그걸 반쯤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매저드가 자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제자를 들이는 바람에 내 40년에 걸친 계획이 무너졌네.”
포지티브한 명성을 쌓아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 뒤, 최후의 순간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빌런이 되는 것이, 40년 전 그날 매저드가 꿈꾼 바이올렛에 대한 복수였다.
다만, 이 계획은 남만혁이 회귀하기 전에도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연기한 성인 생활이 알게 모르게 그의 심중에 뿌리 깊이 자리 잡아버린 것이다.
그 자신이야 어쨌건 외부에서 매저드는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이후 중앙 마도 협회에 안장되기까지 성자로 남았다.
“만혁이 말이군요.”
“그렇다네.”
평소의 매저드라면 안토니오 골든우드도 제자라고 덧붙였을 테지만, 비밀 서약을 한 지금은 속내를 온전히 안나벨에게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네요. 교장이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셨잖아요. 만혁이를 위해서였다면, 막으셨어야죠.”
“놈은 필요악이네. 이해를 못 한 듯하니 자세히 설명해줌세. 강이 그놈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싸움광이라고 할 수 있네. 혹, 어떤 특성을 보유했는진 아는가?”
“아니요.”
강의처럼 되자 말 잘 듣는 제자처럼 구는 안나벨의 모습에 흐뭇하게 웃은 매저드가 허공에 마나로 글자 두 개를 썼다.
[갈망]
“처음에는 본능에 충실하게 되는 대수롭지 않은 특성이었어. 하지만 모종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재각성을 하는 순간.”
[갈망]
[1 : 음식]
[2 : 돈]
[3 : 특성]
“이렇게 변했네. 앞의 두 개야 평범한 인간이 발산하는 욕망 수준이었으나, 세 번째가 문제였지.”
“특성을 빼앗는 건가요?”
“그렇지. 대상을 코인 형태로 만들어서 흡수하지. 최근에는 코인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을 정도로 숙련도가 극에 달했더군.”
“너무 위험해서 보내버리신 거군요.”
“그런 것도 있네만, 진짜는 이걸세.”
[특이점]
[차원 격리]
“우리 문명은 이미 특이점을 지났네. 멘탈리티를 수치화할 수 있다는 건, 양자 얽힘에 대한 비밀이 곧 풀린다는 말과 다름없지. 그 순간 문명 레벨이 일정 기준치에 도달할 테고, 차원 격리라는 보호장치가 사라질 게야.”
“서몬&케이브에 나온 상위종들을 우려하시는 거군요.”
“사자성어 중에 이런 게 있더군. 일거양득.”
“하나의 수로 두 개의 이득을 취한다. …위험한 존재를 더 위험한 곳으로 보내 처리한다는 건가요?”
“바로 그걸세. 설령 강이 놈이 선전해서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 해도 상관없네. 그만큼 제자 녀석이 살아갈 지구의 위상이 오를 테니.”
“교장이 다른 차원의 특성을 흡수해서 돌아오면 어떻게 해요?”
“허허, 그럴 일은 없을 걸세. 자신의 상대가 없는 이 지구엔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아.”
“강자라면, 교수님이 계시잖아요.”
“나는 비각성자이지 않은가. 놈의 갈망은 오직 각성자에게만 반응한다네.”
“아.”
“이제 궁금한 건 다 해소됐는가?”
“그,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말하게.”
“교장이 심계에서 난동을 부린 바람에 언데드 웨이브가 일어났다고 들었어요. 그럼, 원수는 인류가 아니라 교장 아닌가요?”
잠시간 말이 없던 매저드는 탄식인지 통곡인지 모를 긴 한숨을 뱉고는.
“강이는 바이올렛의 배다른 동생일세.”
정말. 안나벨은 자기 주둥이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으아아, 물어보지 말걸. 애초에 비밀 서약을 하는 게 아니었어!’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내게 보낸 그녀의 메시지에 강이를 원망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 있었네. …나는 네 유언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했어.”
마치 여기에 없는 누군가에게 죄를 송하듯 읊조리는 매저드의 모습에 안나벨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짝!
돌연 매저드가 박수를 치자 두 사람 사이에 엉켜있던 마나의 실이 풀리더니 각자의 심장 속으로 돌아간다.
“둘만의 비밀 이야기는 이제 끝일세.”
“넵. 교수님.”
“자, 이번 이야기를 토대로 다음 강의 자료를 준비하게.”
“네?”
“특이점과 격리 차원 말일세.”
“아, 예. 마탑 순방하면서 차원문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알아볼게요.”
매저드가 교장을 차원 열차에 태워 보낼 때 사용한 은신 마법은 상위종이 만든 시스템을 속일 정도였기에 안나벨 같은 유령체를 숨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게.”
휙,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도망치는 안나벨의 모습에 매저드가 짓궂게 웃었다.
“미안해, 바이올렛.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너를 놀리는 게. 지금의 내 유일한 낙이라.”
쿨럭.
데드레드스컬. 네크로학파의 정점이었던 그녀는 구현계 각성자이기도 하였다.
마나조차 고갈된 최후의 순간, 오직 구현력만으로 자신에게 유령화 주문을 걸었으나 심계의 마나에 오염되어 기억과 지성을 잃고 지상을 표류하다 프리실라 루드라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것이 누구도 모르는, 매저드가 아카데미에서 움직이지 않는 진정한 이유였다.
* * *
2059년 1월. 전국적으로 유명한 빵 브랜드의 공장에서 사람의 팔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덮어.”
머리를 뒤로 넘긴 정장 차림의 젊은 남성이 보고서를 책상 위로 던지며 명령하자 그 앞의 작업복 사내가 머리를 조아린다.
“도련님, 이번에는 목격자가 너무 많아 입단속이 쉽지 않습니다.”
“회사에선 이사님이라고 불러야지?”
“…예, 강 이사님.”
“이건 그렇게 처리하고. 참, 이번에 똘똘한 신입이 들어왔다면서?”
“종합 테스트에서 1위를 한 친구가 있긴 합니다.”
“아버지는 뭐래?”
“회장님께서는 관심 없으십니다.”
“잘됐네. 그 친구 올라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비서실에 연락을 넣어 신입을 올려보내라는 명령을 전달한 작업복 사내가 그대로 대기하고 있자 강 이사는 뭐하냐는 듯이 쳐다보더니.
“안 나가?”
“제 직속이라 소개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제 아니야. 똘똘하다며? 내가 쓸게.”
이제까지 고평가를 받았던 이들 대부분이 강 이사의 부름을 받았고 십중팔구 반년도 못 버티고 죽은 눈이 되어 퇴사했다.
“…….”
“뭘 그렇게 봐.”
“아닙니다. 가보겠습니다.”
딸각.
작업복 사내가 문을 염과 동시에 앞에 대기하고 있던 깔끔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왔다.
“어, 여기—”
“안녕하십니까! spp 51기 김석고입니다!”
블랙 기업 사냥을 위해 신입, 김석고라는 이름으로 위장 취업한 남만혁은 대놓고 이사를 무시하며 작업복 사내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아니, 내가 이사….”
“그래, 이분께 먼저 인사를 드려야지.”
“저, 혹시 최필석 사장님 아니십니까?”
“그…렇네만?”
“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윗대가리들이 사건을 통째로 묻는 바람에 치료비도 못 받고 쫓겨난 직원의 병원비를 사비로 대주셨다고요.”
“으음, 그 이야기는 따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쪽은 누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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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