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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63화 (163/201)

<163화>

돈가스

공기가 얼었다. 진부한 수사이나 이것만큼 정확한 표현도 없겠지.

내 옆으로 지나가던 최필석이 기겁한 얼굴로 쳐다본다.

“자, 자네. 이분은.”

“나 여기 이사다, 이 새끼야!”

오늘 햇살이 좋다. 얼마나 좋냐면 투명 명패가 프리즘처럼 무지개를 뿌리며 날아올 정도다.

우웅.

그대로 뒀으면 정확하게 내 이마에 박혔을 명패가 허공에 멈춘다.

웬만하면 극적인 연출을 위해 맞으려 했는데, 이건 잘못하면 모양새가 너무 안 좋아서 예정에 없던 영역을 사용해 일단 막았다.

리쳇이 알아서 잘 편집해주겠지.

“흐억! 신입, 각성자였나?”

내 영역에 붙잡혀 운동 능력을 잃은 명패가 바닥을 구르며 떨어지자 그곳에 시선을 두며 묻는 최필석.

“그렇게 됐습니다.”

“면접에서는 아니라고 했잖은가? 혹시 연수 다녀오는 동안?”

“예, 뭐.”

“허, 이사님. 이 친구가 아직 어려서 실수한 것 같습니다. 이번만 넘어가 주시면, 제가 교육 단단히 시키겠습니다.”

젊은 이사는 영역에 의해 명패가 막혔을 때 매우 놀랐으나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는.

“이제 내 사람인데 내가 교육해야지. 최 사장은 나가.”

나와 이사를 번갈아 보던 최필석은 내 어깨를 꾹 누르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힘들어도 버티게.’라고 말한 뒤 이사실을 나갔다.

“무슨 교육?”

고급 소파에서 일어난 이사가 바닥에 떨어진 명패를 주워 들다 내 말을 듣곤 피식 웃는다.

“잘됐네. 안 그래도 각성자 피는 무슨 색인가 궁금했는데. 야, 명패에 머리 박아서 애사심 증명 좀 증명해 봐.”

이 명패는 다른 것들과는 달리 표면에 돌기가 달려 있었는데, 체중이 실리면 살이 뚫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좋지, 가져와.”

“X발놈. 언제까지 반말하나 한번 보자.”

나는 놈이 바라는 대로 명패를 바닥에 두고 머리를 박았다.

“잘 찍어.”

내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가 명패에 음각된 놈의 이름을 붉게 물들인다.

“하하, 하하하. 이 미친놈.”

“더 없어?”

몸을 일으키자 피와 함께 이마에 박혔던 명패가 책상 위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뭐?”

“이런 거 더 없냐고.”

“미친놈.”

“없나 보네. 쓰읍, 예상보다 약하잖아.”

측.

-끝.

“오케이. 송출해.”

“송출? 무슨 송출. 너, 뭐야. 기자냐? 지금 잠입 취재 뭐 그런 거 하는 중? 큭. 흐흐, 너 X 됐어 새꺄.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손가락 하나로 문화부 장관 허리를 접게 만드는 분이야. 네가 그깟 기사 좀 써서 뿌린다고, 뭐가 달라질 거 같아? 꿈 깨 병신아.”

“이거까지 넣을 수 있지?”

-np.

흔히 쓰이는 노 프러블럼의 줄임말이 들려왔으나 리쳇의 의도는 다른 데에 있다.

“너, 내가 ‘p’ 쓰지 말라고 했지.”

-qx

퀸과 나를 놀리는 거다. 사람으로 치면 마흔을 넘긴 아줌마가 유치하게 뭐 하는 짓인지.

“아까부터 왜 혼자 지껄여. 야, 야! 이 애미 없—”

딱.

나는 이 빌딩 전체에 인식 왜곡 마법을 걸어뒀다. 지금 이 구두의 뒷굽을 부딪치는 행동은 주문을 해제하는 트리거고.

눈에 핏발을 세우며 내게 선 넘는 욕을 하려던 놈의 시선이 서서히 내 이마로 향한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특징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잘생긴 얼굴.

…나만의 주장이 아니라 퀸이 한 말이다. 미래의 슈퍼히어로께서 팩트를 기반으로 하신 발언이니 모든 인간은 반드시 믿어야 할 것이다.

‘큼.’

다른 하나는 이마에 달린 이 뿔이다. 내가 어떤 모습이 되던 반드시 제 존재를 주장하는 녀석.

여러 수단을 써 봤으나 천을 감거나 모자로 덮는, 1차원적인 위장 외에는 숨길 방도가 없었다.

회사에서 늘 모자를 쓰고 다닐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해서, 인사도 드릴 겸 매저드 스승님을 찾아가 주문 하나를 배워왔다. 남들은 하루 이틀이면 된다는 거 나는 2주나 걸렸다.

이쪽으로 재능이 없는 건 익숙한지라 별다른 감정이 생기진 않았다. 오히려 조금 즐겁더라.

‘마나를 다 쏟아 넣으면 어디까지 인지를 왜곡시킬 수 있을까.’

호기심이 동했으나 매저드 스승님이 그러면 너만 고생한다고 하기에 관뒀다.

그렇게 익힌 인식 왜곡 마법을 이 SSP 빌딩 전체에 걸었다.

효과는 나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신입사원으로 여길 것.

결과는 지금 보는 것과 같다.

“뿔이 달린 중년…. 어디서 많이 봤는데. 헉! 다, 다, 다크 넥서스?”

자, 이제 누가 X 됐지?

* * *

“속보입니다. 일전 제조 공장에서 난 사고를 방관한 SSP그룹이, 실은 회색 수배자인 다크 넥서스의 고용주로 드러났습니다. 이 정보는 리가를 통해 수집한 것으로—”

“히어로 협회의 고위험 빌런 대응팀과 인터폴이 한국에 수사 허가를 요청해왔으나 대한민국 외교부와 경찰청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우리가 잡을 수 있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SSP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진행되었습니다. 강씨 일가가 부정 축적한 재산의 규모는 대한민국 한 해 세금의 절반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다크 넥서스가 또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주식회사 NN 입니다. 최근 대형 게임 회사 두 곳이 합병된 이곳은 극심한 사내 정치와 과도한 업무로 인해 한 달에 한 명꼴로 자살자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한국인 너튜버의 방송에 다크 넥서스 아니, 이제 다크 히어로로 더 유명한 그가 출현했습니다.”

“며칠 전, 외신에서 한국 경찰에 대해 강한 질타가 있었습니다. 빌런을 히어로로 만들었다고 말이죠. 글쎄요, 저는 만들었다는 표현보다 탄생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나 싶네요. 이상, 뉴스돔이었습니다.”

* * *

뚜르릉.

“음?”

눈을 감은 채 베게 주변을 한참을 뒤적여 홀로폰을 찾았으나 여기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뚜르르릉!

사무소용 전화였다.

저 빌어먹을 1세기 전 벨 소리! 드럽게 시끄럽네.

컨테이너 사무소를 지을 때 웬 고물상이 찾아와 요즘 인스타에 레트로 전화기가 유행이라며 저 전화기를 내게 만 원에 팔았다.

그때 꺼지라고 했어야 됐는데.

뚜르르르릉!

“아오, 시간이 몇 신데 진짜.”

무시하려다가 얼마나 급하면 여기로 연락을 넣겠나 싶어 한숨을 쉬고 팔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쇼.”

-돈가스!

“뭔 가스?”

뚝.

통화는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이거, 무조건 귀찮은 사건이다. …에이, 몰라. 다른 히어로가 맡겠지.”

그렇게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으나 알다시피 전화로 한 번 깨면 잠이 다시 안 오기 마련이다.

“오케이. 딱 알아보기만 하자. 리쳇, 발신 추적 좀 해 줘.”

침대에서 일어나 물 한 잔 마시니 리쳇의 보고가 도착했다.

[이름 : 박승연]

[위치 : 나오빌딩 76층]

[상황 : 쌍둥이 빌런, 애시드맨과 포이즌걸이 야근하던 이들을 감금하고 대기업인 나오에 거금을 요구하는 중.]

[위험도 : 5]

위험도는 10점이 최대다. 은행강도가 인질을 잡으면 4점. 소규모 자살 테러가 6점. 이런 식.

5점이면 위험하긴 하나,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현지 인력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수준.

“산책한다 생각하자.”

평소보다 2시간 일찍 깬 거니까, 조깅 느낌으로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지.

나는 잠옷을 입은 채 나오빌딩으로 향했다.

“저긴가.”

원판 형태로 압축한 영역 위에 올라타 건물 내부를 훑었다. 76층에 인질들이 손발이 뒤로 묶인 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저 상태에서 용케도 전화했다. 어, 리쳇. 혹시 박승연이 저 사람이냐?”

탈색한 단발머리.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맞아.

“고물상 아재 딸이 나오 직원이었어?”

그의 수레를 뒤에서 밀던 여자였다. 저 하얀 머리가 워낙 인상이 강해서 지금도 확실히 기억한다.

보고 별일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끝내려 했으나 동네 사람이 인질로 잡힌 걸 보고도 돌아가긴 좀 그렇다.

“빌런만 치워둘까.”

-옥상에 있어. 내가 처리할까?

하이퍼이온캐논은 살상용으로는 정말 만능에 가까우나 관통력이 너무 강해서 옥상에 쐈다간 피해가 과도하게 커질 우려가 있다.

“내가 할게. 혹시 모르니까 FF에게 메시지만 넣어놔.”

FF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녀석은 졸업과 동시에 무수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나도 되면 되고 말면 말자는 식으로 일단 제안을 넣었는데, 졸업식 당일 FF가 내 사무소로 왔다.

“남 선배.”

“왁! 깜짝이야.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지, 이 자식아.”

프렉시스산 비행 수트를 장착한 FF가 어느새 내 영역 밖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대기하라고 하셔서.”

“집에서 나올 준비를 하란 말이었지. 내 옆에서 스탠바이하란 소리가 아니었거든?”

“…그랬다간 퀸 선배에게 혼나요.”

안 그럴 거 같은데, 퀸도 후배 기강을 잡더라. 나와 관련된 사람 한정이기는 한데.

전에 둘의 대화를 리쳇을 통해 슬쩍 들어보니, ‘꼬리치지 마라. 호출하면 잔말 말고 튀어 나가라.’ 뭐 그런 이야기였다.

“내가 애도 아니고. 퀸에겐 따로 말해둘 테니까 다음에는 부르면 와.”

“…….”

“어쭈, 나보다 퀸이 무섭다 이거지.”

“그게 아니라, 빌런이 뭔가 설치하는 거 같아서.”

FF가 가리킨 방향엔 애시드맨이 네모난 은색 상자에 자기 몸과 연결된 관을 꼽고 뭔가를 주입하고 있었다.

“저런 수준의 빌런이 구할 수 있는 폭탄은 한정적이라. 소금물로 덮어버리면 끝이야.”

“독도요?”

“독?”

“저 둘, 독쟁이잖아요. 만약, 가스 형태로 가공하는 거면 피해 규모가 커질 텐데요.”

그때 뇌리에 스쳐 지나는 한 단어.

돈가스.

홱.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이제는 애시드맨과 포이즌걸 둘 다 상자와 연결된 관을 몸에 달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거, 얼려. 당장!”

FF가 즉각 은색 상자 주변의 열을 빼앗아 단번에 얼렸으나.

“우리의 독은 생물이야. 죽지 않는다구. 그렇지? 지엔.”

“응.”

중국인으로 예상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손바닥을 마주치며 이쪽을 쳐다본다.

들켰나.

“로맨. 너는 우리가 지금 얼마나 기쁜지 모를 거야.”

“맞아.”

저들이 떠드는 동안 리쳇이 정보를 전달해왔다.

흔한 사연이었다. 저 남매의 부모는 아이들이 자기 능력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국가에 팔았다.

이후 둘은 중국의 공산당 하부 조직인 각성인민 연구소에서 수많은 생체 실험을 당하다 몇 년 전에 탈출했다.

“목적은?”

안쓰러운 이야기다만, 나는 사람을 죽인 빌런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저 둘은 탈출하고 2주 만에 연구소를 습격해 모든 사람을 살해했다.

체포하러 온 공안에게 정당한 복수라 주장하였으나 티끌만큼도 먹히지 않았다.

구금당한 당일 창살을 녹이고 탈출해 지금까지 모습을 감췄다가 여기서 나타난 것이다.

“우리의 진짜 목적은 너야. 로맨. 내 동생을 봐.”

포이즌걸이 쓰고 있는 비니를 벗기자 흉하게 짓물러진 두피가 드러났다.

“큐링 힐과 친하다지? 그에게 내 동생을 데려가서 치료해.”

퀸이었다면 저들의 과거가 어찌 되었든 치료를 도왔겠지.

영역을 조작해 그들 앞으로 다가가자 애시드맨이 급히 폭발 스위치로 예상되는 물건을 움켜쥔다.

“더 이상 오지 않는 게 좋을걸?”

“하나만 묻자. 이 빌딩을 인질로 잡으면 왜 내가 온다고 생각했지?”

“그야, 이 근방에서 벌어진 큰 사건엔 무조건 네 이름이 올라가 있었으니까.”

썩을. 앞으로 사무소 전화는 무조건 무시다. 아예 코드를 뽑아버리든가 해야지.

“그게 다냐?”

말을 거는 것과 동시에 신속히 접근해 스위치를 쥔 놈의 손을 내 손바닥으로 덮은 뒤.

“무슨 짓—”

달깍.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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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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