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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64화 (164/201)

<164화>

교감의 실종  (1)

애시드맨과 포이즌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는다.

프쉬—

최상층의 유리창이 전부 깨어지며 터져 나오는 녹색 연기.

드라이아이스처럼 빌딩을 타고 흐르는 독가스를 잠시 내려다보다 통신기로 저기서 멀뚱거리며 구경하는 사이드킥을 불렀다.

측.

“FF, 신호 보내면 얼려.”

미르토스 해변x신성 폼.

시야가 닿는 곳까지 펼쳐지는 얇고 넓은 물의 막.

이걸 마나로 빠르게 끌어 내려 녹연을 완전히 감싸게 했다.

“지금.”

쩌정!

매개가 존재할 경우 FF의 냉기 능력은 압도적인 효율을 보인다.

이야, 장관이네.

“튜브는 아니고, 왕관?”

츠측.

-퀸 선배가 잡지에서 보던 웨딩 티아라 중 하나예요. 생각나서 만들어봤는데, 어때요.

…너무 빠르잖아 퀸.

아무튼 빌딩의 중앙에 비스듬하게 걸린 티아라는 가스가 지상으로 추락하지 않게 막는 데 성공했다.

“네 얼굴이 이미 보석이니까, 디자인만 보라고 전해줘.”

-정답이었어요. 선배.

정답이 있었던 거냐.

처음엔 살쾡이랑 오리너구리처럼 사납게 싸워댔는데, 지금은 둘이 편먹고 나를 놀릴 정도로 친해졌다.

“빌런 포획하는 동안 민간인 통제 부탁해. 얼음 안 녹게 조심하고.”

-네.

털썩.

애시드맨이 옥상 구조물에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자 포이즌걸이 놀라며 다가간다.

“오빠, 일어나. 힝, 오빠.”

자포자기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애시드맨과 그를 일으켜 세우려는 포이즌걸.

“…동생은 놔줘. 아니, 놔 주십시오. 연구소 사람을 죽인 건 접니다. 그게 죄여서 벌을 받아야 한다면, 나만 받으면 되잖아!”

팔을 붙잡고 흔드는 동생을 자기 뒤로 숨기며 나를 노려보는 애시드맨.

“흠, 포이즌걸? 너 이리 와 봐.”

“싫, 싫어.”

“씁!”

“꺅!”

내 눈짓을 받은 애시드맨이 이를 악문 채 버둥거리는 동생을 안아 내 앞에 내려놓는다.

내가 비니를 확 벗기자 포이즌걸이 짓물러진 두피를 급하게 손으로 가린다.

글썽이는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아카데미 1학년 때 만난 퓨즈가 떠오른다.

아, 참고로 번퓨즈는 아직 삼림관리원이다. 뭐, 겉 신분만 그렇고 실제로는 아카데미 내의 지하 요새와 빌텔을 관리하고 있다.

퓨즈가 또 최근 부쩍 자라서 어린아이 같은 면모가 많이 사라졌다.

사춘기가 늦게 왔다며 내게 고민을 토로하는 번에게 그냥 엇나가지 않게만 하고 놔두라고 했다.

답이 없는 문제 아니겠는가.

“이 정도면, 큐링 힐 선생에게 갈 것도 없어. 리쳇, 힐링 비.”

웨에엥.

대기하던 마이크로 드론 몇 기가 조립되어 벌의 형태를 취하더니 꼬리에서 바늘을 쭉 뽑아낸다.

“히익!”

포이즌 걸은 도망치려 했으나 리쳇이 조종하는 힐링 비를 피할 순 없었다.

푹.

어깨에 주사가 박힘과 동시에 쓰러지는 포이즌걸을 내가 부축해 바닥에 눕혔다.

이번 전쟁에서 메딕기어를 민간에 투입한 덕에 많은 데이터를 뽑아냈다.

특히 큐링 힐을 보조하기 위해 보낸 메딕기어가 가져온 정보들 때문에 의료 연구소의 점잖은 박사들이 난리를 피웠다고 들었다.

그렇게 의학 연구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지금은 큐링 힐의 ‘치유’ 특성을 먹인 줄기세포를 보관했다가 원할 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오빠, 나 머리 간지러워.”

이 줄기세포 주사액에는 리쳇이 제어하는 나노봇도 함께 들어있다.

나노봇의 역할은 길잡이와 오염된 세포 조직 제거.

포이즌걸의 두피가 뭉텅 떨어져 나가더니 급속도로 새살이 돋아나 빈 곳을 채운다.

까슬까슬한 분홍색 머리칼까지 돋아난 걸 보면, 치료가 제대로 된 모양이다.

“샤오린.”

애시드맨의 떨리는 손이 포이즌걸의 머리를 향해 다가간다. 소녀는 고통을 예상했는지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그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스윽, 슥.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는 애시드맨.

“신기해. 안 아파! 오빠, 나 괜찮아!”

“그래, 그래.”

나는 그들이 감정이 추스를 때까지 기다리다 운을 띄웠다.

“내 철칙 중 하나가. 사람을 죽인 놈은 반드시 죽인다는 거거든?”

“저는 만족합니다. 염치없지만 제 동생을 돌봐주셨으면 합니다. 아카데미 입학만 시켜, 끄흡—”

“오빠, 아파? 아프지 마아.”

돌연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흐느끼는 애시드맨.

이제야 겨우 정상으로 돌아온 동생을 두고 죽는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을 가리는 구름 한 점이 유유히 흘러간다.

“하아.”

아카데미에 입학하고부턴 좀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이런 수준의 신파에는 정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지금은 가슴 한 켠이 아리다.

“특성이 포이즌이라고?”

“예? 예. 독을 가스로 가공할 수 있습니다.”

쓰려면 못 쓸 것도 없으나 빌텔에 넣을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그블린전에서 적진의 수질을 오염시킬 놈은 이미 수집해 놓기도 했고.

…아!

“서몬 애시드 좀비.”

독으로 이루어진 좀비들을 꺼내자 흠칫하는 애시드맨.

“서, 설마 저를 좀비로? …상관없습니다. 동생을 지키게만 해주신다면 기꺼이. 꼭 좀비로 만들어주십시오!”

급발진 보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얘들 좀 보완할 수 있겠냐?”

“보완이라시면?”

“산성도를 높인다던가 기능을 추가한다던가. 뭐, 많잖아.”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가스화시키는 겁니다.”

“어?”

“제가 이쪽으로 숙련도를 쌓아서 독을 기체로 만들어 제어하는 건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기동성은 이미 한차례 개선하긴 했으나 아예 기체가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해 봐.”

좀비 한 마리를 애시드맨에게 넘기자 녀석은 이곳저곳을 만지고 맛을 보더니.

꿀꺽.

좀비의 손을 입에 넣었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지 고개를 기울이며 몇 입 더 삼키고는 다시 내 앞에 무릎을 꿇는다.

“죄송합니다. 이 독은 항상성이 너무 강합니다.”

“항상성? 잠깐만.”

애시드 좀비를 구성할 때 주입하는 내 마나는 워낙 압축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변수로는 성질이 바뀌지 않는다.

설령 바뀌더라도 내 마나가 보급되는 한, 금방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곤약처럼 빠당빠당하게 뭉쳐 있던 마나를 적당히 풀어 녀석에게 다시 넘기자.

“됐습니다!”

어정쩡한 자세로 비틀거리며 독물을 흘려대던 좀비가 눈과 입만 뚫린 녹색 고스트처럼 변했다.

“가볍네.”

좀비를 제어할 때 소모되는 마나의 양이 크게 줄었다.

원래도 별로 티가 안 나긴 했으나 군단 규모로 만든다 생각하면, 소모량 하락은 상당한 이점이다.

“역소환, 소환. 서몬 애시드 좀비. 흠.”

불러낸 좀비들을 돌려보낸 후 다시 소환하자 그대로 한 마리만 가스 형태다.

새롭게 추가 소환한 좀비도 일반적인 애시드 좀비고.

명분이 생겼네.

“일단 30만.”

“30만이라시면?”

“애시드 좀비 30만 마리를 전부 가스 좀비로 바꿔. 그동안은 살려줄게.”

“…아! 하겠, 흐흑. 하겠습니다.”

“네 홀로폰으로 곧 주소 도착할 테니까, 거기서 만들어. 성실하게 하면 너랑 동생 아카데미도 해결될 거다.”

보낸 주소는 번퓨즈의 산장이었다. 번이 이런 쪽으로 경험이 있으니 잘 돌봐주겠지.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샤오린, 어서 인사해.”

“오빠 안 울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배꼽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는 포이즌걸.

“그래. …응? 하, 하하하. 너는 오빠를 위해 태어났구나? 입학하거든 매저드 교수님을 찾아가라.”

“네! 오빠 좋아요!”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대충 손을 휘적여 인사를 받은 뒤 사무소로 돌아가고자 압축한 영역을 밟고 날아오르니 FF가 다가온다.

“티아라에 담은 독은 어떻게 하죠?”

“하늘로 날려 보낼 수 있지?”

“네.”

“해.”

FF가 턱을 까닥이자 빌딩 중간에 걸려 있던 왕관이 오래된 엘리베이터처럼 삐걱거리며 위로 오르더니 어느 순간부터 가속이 붙어 옥상쯤 와선 한참 달리는 기차 이상의 속력으로 빌딩 위로 튀어 올랐다.

“리쳇. 그거, 시험해 보자.”

-라져.

우루과이 요새에서 발사된 입자분해파동포가 지구의 중력을 유려하게 타고 날아와 한국의 하늘, 정확하게 독을 머금은 거대한 왕관을 분해시키고 사라졌다.

“방금 뭐였죠?”

“너는 말해도 몰라.”

“…선배에게 로맨이 저 무시한다고 이를 거예요.”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일름보냐.”

“일, 일름보? 제가요? 잠깐만요. 취소하세요. 저는 고자질쟁이가 아니—”

* * *

똑똑.

“레이디, 차 한 잔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푸훗.

“당신은 항상 저를 즐겁게 하는군요. 열려 있으니 들어와요.”

오늘은 일식이가 같이 낚시 가자는 제안을 고사하고 교감을 찾았다.

“소식 들으셨죠?”

탁.

보고 있던 홀로보드를 책상에 내려두는 교감.

거기엔 ‘간밤의 악몽! 나오 빌딩 테러? 빌런 도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내용은 나오 기업이 받은 협박과 빌딩 옥상에서 벌어진 일 따위가 꽤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우리 부지런한 히어로께서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이건 ‘게으른 네가 무슨 바람이 불어 이 사건을 해결했냐?’라고 묻는 거다.

“인질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여기 온 건 다른 게 아니라, 애시드맨이 한 말이 좀 걸려서요.”

“들어는 보죠.”

희미하게 웃으며 커피를 내리고 소형 냉장고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꺼내 내 앞에 내려놓는 교감.

오늘은 색을 보니 육포 맛 케이크다.

이게 또 별미지.

“잘 먹을게요. 교감님 덕분에 매번 입이 호강합니다.”

“후후, 그렇게 말해주는 학생은 당신뿐이에요. 로맨.”

“으음. 역시 맛있네요. 그, 애시드맨이 어릴 때 중국 연구소로 팔려 갔다가 다 불태우고 도망쳤다고 했거든요?”

“그래서요?”

“근데 그 주소 지하에 큰 규모의 시설이 운영되고 있어서요.”

“로맨이 조사해도 될 텐데, 제게 말하는 이유가 뭔가요?”

“중국은 제가 입국이 안 되잖아요.”

“세상 못 갈 곳이 없는 사람이 왜 엄살일까.”

끙, 역시 내가 다크 넥서스라는 걸 알고 계셨나.

아무래도 아카데미 생활 중에 교감과 얽힐 일이 많았다 보니 이럴 거 같기는 했다.

그녀의 말대로 사실 중국에도 몰래 잠입하면 그만이긴 한데.

“당분간 퀸 사무소 일을 돕기로 해서요. 이번에 또 거절하면 좀…, 생명이 위험하거든요. 교감 선생님! 도와주십쇼!”

“로맨. 이건 제게 빚지는 건데, 괜찮겠어요?”

끙.

평범한 사건이면 적당한 히어로 사무소에 넘기면 그만이지만, 저건 정치와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너무 높다.

히어로가 정치인과 붙어먹었다는 이미지가 한 번 달리면 평판이 급감해서, 누구에게 도와달라 하기가 좀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실라 루드라라는 인물은 이런 쪽 일에 최적이다.

그녀가 쌓아온 영향력은 어지간한 국가의 수장 이상인 데다, 상황을 올바른 방향으로 타개해가는 능력도 내가 본 각성자 중 최고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 * *

2주 후.

“퀸, 이제 좀 쉬자. 나머지는 네 사이드킥이 잡겠지.”

“우리가 조금만 고생하면, 다치는 사람이 줄잖아.”

지금 우리는 남아프리카에 퍼진 괴물 모기를 처리해달라는 의뢰를 수행 중이다.

모기의 정체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곤충. 기형적으로 큰 덩치도 문제지만, 신종 바이러스를 퍼트릴 우려가 있어 시급을 다투는 사건이긴 하다.

“다쳐봐야 아픈 줄도 알지. 원래 인간은 간사해서—”

“로맨.”

“알았다, 알았어. 5분만. 5분은 괜찮잖아.”

“알았어.”

저 스톱워치 키는 거 봐라. 하여간.

“어디.”

정신 환기에 가장 좋은 건 가십거리였기에 나는 버릇처럼 실시간 기사 조회수 순위가 나오는 사이트를 켰다.

[1위.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교감, 프리실라 루드라 실종! 마지막 목격은 쓰촨성 청두 솽류 공항.]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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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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