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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68화 (168/201)

<168화>

휴먼 기프트

“췐 리오님, 큰일입니다!”

주석이 요구한 물량을 간신히 충족하고 출하를 위해 마지막 점검 결과를 보고 받던 췐 리오는 연구소로 뛰어 들어오며 난리를 피우는 직원의 모습에 얼굴을 구겼다.

“무슨 일인가.”

“히어로들이 여기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직원은 히어로 로맨이 올린 커뮤니티 글과 공항에서 찍힌 다수의 히어로 사진을 췐 리오에게 보이며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잘됐군.”

그 역시 직원처럼 난데없는 소식에 당황하였으나 이내 예의 웃음을 머금고 웨이 박사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췐 시장님.”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웨이 박사는 당장 연구소를 떠날 것 같은 행색이었다.

“자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려고 그러나.”

“소식 들으셨지 않습니까! 시장님도 어서 피하시죠.”

“그럴 필요 없네.”

“예?”

“우리도 저들 못지않은 전력이 있지 않나.”

“헉, 휴먼 기프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현 상황에선 어차피 드러나게 되어 있네.”

“실전 테스트를 거치지도 않았습니다. 내구성의 문제도—”

“그러니까, 지금이 실전 아닌가. 자네는 잔말 말고 데이터 뽑을 준비나 하게. 우리가 망해도 이 프로젝트는 다른 누군가에게로 이어져야 하지 않겠나.”

췐 리오의 말에 웨이 박사는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현대는 인류의 5할 이상이 각성자다. 이 중 프로 히어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기프트일 확률은 0.0001% 미만.

이 연구소에 모인 이들은 한때 히어로를 동경하고 꿈꿨으나 현실에 좌절하고 기프트를 인간에게 내린 신이라는 작자를 증오하게 된 자들이었다.

프로젝트, 휴먼 기프트.

“인간은 정체도 모를 존재의 선물에 기댈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종의 진퇴를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바이오 지성체의 자존심이다.”

“…시장님을 처음 뵈었을 때 드린 말씀이군요.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어떻게 잊겠나. 처음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를 만났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하지.”

* * *

기이이잉.

팟!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 끝에서 기계 관절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왔다.

“엎드려!”

선두의 경고에 히어로들이 급히 몸을 숙이자 머리 위로 새파란 칼날들이 지나간다.

“윽!”

“사이드필드, 괜찮나?”

“예, 팔을 조금 스친 것뿐….”

치유계 히어로 사이드필드가 갑자기 말을 멈추자 메가파이어가 돌아본다.

“무슨 일이지?”

“죄송합니다, 선배.”

그의 팔에는 방금까지만 해도 없었던 묘한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

[01:55]

[01:54]

[01:53]

폭발까지 2분을 암시하는 카운트다운에 주변 히어로들이 그에게서 한 발자국씩 거리를 벌린다.

“진정해라. 어차피 입구 근처이니 나가면 그만이다. 음, 떼어지지 않는 걸 보니 이 폭탄은 구현된 건가. 이거, 해제할 수 있는 히어로 있나?”

가장 높은 기수인 메가파이어가 나서자 웅성거리던 히어로들이 입을 닫았다.

저런 완성도로 구현이 완료된 능력을 해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이쪽으로 특화된 각성자가 있기는 한데. 그런 이들은 대부분 현장에 안 간다.

“차라리 폭탄을 설치한 당사자를 처리하는 게 빠르겠어요.”

“그렇겠군, 전진하지. 그리고 사이드필드. 자네에겐 미안하네만.”

여기 같은 좁은 통로에서 폭탄이 터졌다간 피해가 커진다. 그러니 나가달라는 메가파이어가 말을 돌려서 하자.

“아닙니다. 선배님들, 루드라 선생님을 꼭 구해주십시오!”

“음! 우릴 믿게.”

사이드필드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메가파이어가 선두에게 다시 전진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계단 하나를 내려가기가 무섭게 전방의 어두운 공간에서 각종 공격이 쏟아졌다.

산성 액을 뿌리는 부메랑. 개의 형상을 한 불덩어리. 눈앞에서 8개로 쪼개지는 총탄. 천장을 타고 기어 오는 용암.

위협적인 공격들이었으나 현장 경험이 많은 히어로들답게 능숙하게 막아냈다.

“캐슬 도어!”

“워터 브레스!”

“크리스탈 봄버!”

지금처럼 어떤 히어로들은 기술명을 외치곤 하는데, 이는 특성의 강화는 물론이고 유명세를 쌓는 데도 꽤 유효한 방법이었다.

적이 듣고 대비한다면 페이크로도 쓸 수도 있기에 꽤 나쁘지 않은 전술이다.

“이대로 전진한다!”

메가파이어의 지시대로 공격을 받아내며 계단을 내려오자 그곳에는 백여 대의 인간형 로봇이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군.”

“아, 그거 복선.”

남만혁이 메가파이어의 중얼거림을 듣고 지적하려는 찰나.

콰쾅, 쾅!

로봇들이 달려들며 자폭하기 시작한다. 협소한 공간이었기에 아주 적절한 공격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여기에 모인 히어로는 폭탄 테러에 이골이 난 베테랑들.

“전열 후방으로. 구현계, 부탁하지.”

“잠시만요, 이건 그냥 제가 해결하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음? 가능하겠나?”

달려오는 로봇의 수는 적어도 3백.

메가파이어가 우려를 담아 로맨을 바라봤다.

“네, 선배님들 뒤로 조금만 가주십쇼.”

“조심하게.”

남만혁은 실제 폭탄 테러를 해본 빌런의 입장에서 방금의 폭발이 상당히 조잡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저런 건 그냥 소금물 끼얹으면 해결됩니다. 미르토스.”

바다를 부분 구현해 전방에 쏟아내자 달려드는 로봇의 저지는 물론이고 폭발력까지 크게 감쇄시켰다.

“해제.”

물이 빠진 호수 바닥의 물고기처럼 펄떡대는 로봇들을 발로 밟으며 나아가는 로맨의 뒷모습을, 히어로들이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갓 프로에 입성한 후배치고는 능숙해.’

‘저런 형태의 구현이면 우리 사무소의 의뢰 수주 바리에이션이 훨씬 넓어지겠어. 팀업 제안해볼까.’

‘저 녀석을 영입하면 퀸이 딸려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한 번 질러봐?’

“뭐 하십니까들? 안 가요?”

남만혁은 자신이 길을 뚫었음에도 히어로들이 멀뚱히 서 있자 고개를 기울였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것뿐이다.”

“제법이네, 너. 말투가 좀 건방지긴 하지만.”

“다들 어서 가지.”

이런 형태의 전투가 휴먼 기프트 메인 시설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이나 반복되었으나 히어로 측에는 처음 사이드필드 외엔 어떤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히어로들은 3천에 달하는 로봇을 차례차례 제거하고 휴면 기프트의 중추, 가짜 신의 방에 도달했다.

“멈춰!”

사슬에 묶인 아이와 그 앞에서 소녀의 목에 칼을 겨누고 선 남자.

‘저 꼬마겠네.’

남만혁은 사슬에 묶인 남자아이가 교감의 홀로폰에서 본 래비라는 소년임을 직감했다.

“이 애를 살리고 싶다면 돌아가라.”

줄리엣의 목숨줄을 쥔 췐 리오의 협박.

메가파이어는 인질이 죽더라도 범죄자와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히어로로 유명하다.

저벅.

췐 리오는 전신을 붉은 외골격으로 무장한 거구, 메가파이어가 다가오자 웨이 박사와 각오를 다졌음에도 손이 떨리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큭.”

푹.

꺄아아아악!

“내 말이 장난 같나?”

본인의 두려움을 숨기고자 줄리엣의 어깨에 칼을 꽂는 췐 리오. 그제야 메가파이어의 걸음이 멈춘다.

“그래. 그렇게 가만히 서 있으라고. 거기, 너! 움직이지 마. 다음은 이 꼬마의 목을 날려버릴 거니까.”

그는 웨이 박사가 이번 전투로 축적한 데이터와 지금까지의 개발 및 연구 자료들을 완전히 업로드할 때까지 이 대치 상태를 이어갈 작정이었다.

“가만히 있는 거로 보였나?”

프쉭—

메가파이어의 견갑 외골격이 냉각을 위한 가스를 뿜어냄과 동시에 그의 팔이 휘둘러졌다.

뻐어억.

그대로 머리가 90도로 꺾여 벽에 처박히는 췐 리오.

균열이 일어난 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놈을 잠시 바라곤 메가파이어가 소녀에게 다가가 응급조치를 했다.

아니, 하려 했다.

[01:56]

“폭탄?”

줄리엣의 어깨에 사이드필드에게서 보았던 폭탄과 동일한 것이 부착되어 있었다.

“퉤, 크흐흐.”

부서진 이와 피를 뱉어낸 췐 리오는 히어로의 당황하는 모습에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메가파이어는 아직 죽지 않은 췐 리오의 머리를 움켜쥐고 들어 그대로 터트리려 했으나, 남만혁이 만류했다.

“선배. 기다려보쇼, 그놈 죽이면 폭탄도 같이 터져.”

“음?”

로봇이 특성을 사용한다는 부분에서 이번 일의 범상치 않음을 깨닫고 이런저런 추리를 하던 남만혁은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리며 메가파이어에게 붙잡힌 췐 리오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야. 이거, 네 특성 아니지?”

“큭큭, 왜 그렇게 생각하나.”

“완성된 특성이 발현된 방식을 보면 말야. 그 사람의 삶이 대충 그려져. 특히 구현계면 이게 노골적으로 드러나거든.”

“내겐 어울리지 않는 특성이란 건가? 아주 대단한 기프트 감정사 납셨군그래.”

“저 특성의 주인은 재각성을 하거나 그에 준할 정도로 높은 숙련도를 쌓았으며, 절에서 생활했을 거다. 어디로 보나 너는 해당 사항이 아니지. 청두 시장 췐 리오.”

“하, 망상이 심하군.”

“망상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까지 내 구현력으로 밀어내지 못한 구현체는 재각성자의 구현밖에 없었거든. 그리고 저 폭탄에 새겨진 문양들, 불상과 연꽃이야. 몰랐지?”

남만혁의 비아냥에 눈가를 파르르 떠는 췐 리오.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있나?”

“있지.”

남만혁은 사슬에 묶인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놈 특성, 회수할 수 있어?”

끄덕.

“해.”

남만혁의 말에 따라 췐 리오의 특성을 막 추출하려던 래비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아, 안돼!”

“이런!”

췐 리오는 히어로들의 이목이 잠시 래비에게 집중된 사이 자기 목에 칼을 쑤셔 넣었다.

“크륵, 중국 만세. 마오 주석 만세!”

펑!

그의 유언과 함께 시한폭탄이 폭발했다.

가까이 있던 히어로들이 급하게 줄리엣을 향해 내달렸으나 폭탄의 화마와 충격은 이미 소녀를 삼킨 후였다.

췐 리오의 의도와는 달리 정확히 한 명만 살해하기 위한 화력.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게 느껴지는 특성이었다.

“아.”

래비의 모든 사고가 멎었다. 다시 자기 속으로 깊게 침잠한 소년은 아버지와 줄리엣이 죽는 순간을 반복해 떠올렸다.

“역시, 가치가 없어.”

특성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다.

“이런 건, 사라지는 게 나아.”

남만혁은 소년의 죽은 눈에서 푸른 빛, 재각성의 전조가 일렁이는 것을 확인하고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블루의 왕을 처음 봤을 때랑 비슷한 느낌.’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이를 본능적으로 인지한 남만혁이 급히 소년의 시선을 좇았다.

폭발로 반신이 날아간 소녀. 기적적으로 머리는 무사하나 몸이….

‘응?’

치유계 히어로들 사이로 들어가 소녀의 몸을 자세히 살핀 남만혁은 화색을 띠었다.

“반신이 기계였나.”

“오래전에 신체에 심한 손상이 있었던 거 같아. 장기들도 대부분 기계로 교체돼 있어서 엔지니어만 빨리 오면 살릴 수 있어. 지금 불렀으니 15분만 버텨주면….”

그렇게 말하는 치유계 히어로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인간의 몸을 대신할 정도로 정밀한 기계를 단시간에 손보는 것은 쉽지 않고, 그동안 소녀가 생존해 있을 확률은 극히 낮았기 때문.

남만혁이 뒤를 돌아보자 소년의 눈가가 더욱 푸르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잠시 고민한 그는 결정을 내렸다.

“제가 살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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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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