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교감 실종 사건 뒷정리
“며칠 전. 중국 청두 솽류에서 폭발이 목격되었습니다. 강 기자가 현장에 나가 있습니다. 강 기자?”
“예! 여기는 솽류의 휴먼 기프트 연구소 현장입니다. 보시다시피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히어로 사이드필드 씨가 폭발에 휘말렸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빌런이 구현한 폭탄을 어깨에 달고 나온 사이드필드 씨는 동료를 믿고 자신의 팔을 절단해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재활을 끝내고 사무소에 복귀했다는 소식입니다.”
“다행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 기자. 이어서 다음 뉴스 전해드리겠습니다.”
뉴스돔 사회자 등 뒤의 커다란 홀로보드에 중국 주석의 얼굴이 띄워졌다.
“우리는 히어로 사이드필드 씨의 인터뷰를 통해 ‘휴먼 기프트’의 존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연구가 핵심이었습니다. 각성한 아이를 납치해 특성과 육체를 개조하려는 시도. 인간이 로봇에게 특성을 부여하려는 행위.”
말을 멈춘 사회자는 카메라를 잠시 응시한다.
“처음 이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을 땐, 앞선 연구는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히어로들이 로봇에게 특성을 부여하는 프로젝트의 연구자료를 왜 소거하였는지 의아해했었죠. 답은 이 연구의 근본이 착취였기 때문입니다.”
홀로보드의 마오 주석 얼굴이 가짜 신의 방으로 전환된다.
“당시 연구소를 습격한 히어로들이 찍은 사진입니다. 저 방의 벽에 걸린 두꺼운 사슬들이 10살 남짓한 소년을 묶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슬에는 온갖 고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사회자는 들고 있던 얇은 홀로보드를 내려놓고 카메라를 다시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한 명의 희생으로 다수가 행복해지던 시대는, 히어로 사회가 도래하면서 끝났습니다. 이제 죄 없는 사람을 그만 괴롭히십시오. 이상 뉴스돔이었습니다.”
* * *
[—이상 뉴스돔이었습니다.]
삑.
중국에서 가장 높은 이가 직접 리모컨으로 홀로 TV를 끄자 옆에서 대기 중이던 다수의 장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린다.
“세상은 휴먼 기프트 프로젝트를 내가 지시한 줄 알겠어.”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가. 이런 억울한 일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잖나. 어허, 됐대도 머리 들게. 본디 인간이라는 것은 나약해서 누군가를 탓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생물일세. 고대로부터 자연재해는 나라님이 부덕한 탓이었어.”
“즉시 정정 기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됐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긁어 부스럼이야. 놔두면 알아서 사그라들 걸세. 그때 해명해도 늦지 않아.”
“그동안 상대 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임 장관. 나 마오일세. 날 못 믿나?”
“…실례했습니다.”
“그래, 그건 그거랑은 별개로 실상 조사는 해봐야지.”
“실은 그것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국의 로맨이라는 히어로가 이번 사건에 대해 앞뒤가 안 맞는 게 있다며 자신에게 의뢰를 넣어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마오 주석은 퉁퉁한 몸을 소파에서 일으켜 몇 가닥 없는 수염을 쓸었다.
“모든 이가 나를 의심하는 마당에, 아니라고 믿는 히어로라.”
“그것까지는….”
“의뢰를 넣게. 우리 정보부에서도 따로 진행하고. 아예 대결 구도로 가는 것도 재밌겠어.”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기대되는군. 이건 됐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예, 오늘 아침 산둥성에서 큰불이—”
* * *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 매저드 연구실.
“자네가 여기엔 어쩐 일인가?”
쪼르륵.
안나벨이 구석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면서 자기 손만 뚝 떼어 찻잔에 물을 따르는 모습을 한동안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남만혁은 매저드가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말했다.
“이보게.”
“그게,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제가 중국에 다녀왔잖아요?”
“그랬지.”
“거기에 이런 게 있더란 말이죠.”
남만혁은 휴먼 기프트 연구소에서 교감 납치의 원흉으로 지목되었을 때 급히 도주하면서도 수상쩍은 동전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빛을 잃은 동전을 매저드에게 내밀자 매저드는 마법으로 해당 동전에서 몇 가지 정보를 읽어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예상이 맞네. 강이 놈의 물건이야.”
“이걸 쓰던 녀석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 특성을 뽑아내 로봇에게 주입했다고 했거든요. 안에 더 특성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없네. 모종의 힘에 의해 사라진 듯허이.”
“아하, 그러면 스승님. 이런 형태의 연구소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요?”
매저드가 고개를 저었다.
“지구상에 남은 강이 녀석의 직접적인 파편은 휴먼 기프트 프로젝트와 그 동전이 마지막이었어.”
“역시, 스승님은 다 알고 계셨군요.”
후룹.
“허허, 은밀히 솎아낼 준비 중이었네만. 자네와 후배가 나서기에 놔뒀지.”
하아.
알아서 해결될 문제였다는 걸 깨달은 남만혁이 긴 숨을 쉬자 매저드가 인자한 웃음을 머금으며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곳의 아이들은 구하지 못했을 걸세.”
“래비요?”
“전부. 내가 유도한 대로 그들이 자멸한다면, 프로젝트의 증거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은 좋지 않은 경험을 했겠지.”
매저드는 연구소에 들어가는 자료에 간섭해 프로젝트를 망치는 작전을 암암리에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뭐, 그럼 됐네요. 아, 혹시 그것도 알고 계셨습니까?”
“음?”
“췐 리오 시장요. 리쳇으로 여러 가지 조사를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세뇌당한 거 같더라고요. 교감님 앞에서 했던 전화가 마오 주석에게 연결된 게 아니라 자기 집의 비서와의 통화였다는 것도 그렇고. 마지막에 굳이 죽지 않아도 되는데 자결을 한 것도 좀 이상하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네. 나 때문에 본인의 흔적을 남기는 걸 극도로 꺼렸던 놈이니.”
“…슬슬 알릴까요?”
“강이 놈을? 되었네. 이미 없는 사람을 욕해봐야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하려면 적어도 내가 죽고 난 다음에 하게. 소란스러운 건 질색이니. 쿨럭!”
“스승님!”
“괜찮네. 아직 24년 7개월 정도는 더 살 수 있어.”
“어…, 제 예상보다 많이 남으셨네요.”
“뭐라? 허허.”
“농담입니다, 건강 챙기세요. 오래 사셔야 제자들 잘나가는 모습도 보고 하죠.”
“노력함세.”
“이런, 벌써 시간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자주 들리게. 나이가 드니 사람이 그리워.”
“옙.”
남만혁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매저드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교장이 세상에 남기고 간 자잘한 트러블들에 대해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다음 세대의 일은 다음 세대에 맡겨야지.”
매저드에게 남은 24년은 바이올렛과 보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나는 저만한 영역을 마흔이 넘어서야 구축하였거늘. 끌끌.”
제자의 성장이 남달랐기에 다음 세대에 일을 넘기는 것이 걱정되지 않는 매저드였다.
* * *
청두 솽류 공항.
서류 가방을 든 남자, 웨이 박사가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한 로봇 두 기를 대동한 채 아프가니스탄행 비행기에 오른다.
툭.
통로를 지나던 중, 마주 오던 아시아인 한 명과 로봇이 부딪치자 그가 역정을 낸다.
“이 뻐킹 칭챙총! 눈깔 똑바로 안 떠? 이게, 아니 이 사람이 누군 줄 알고!”
“허이구야, 지도 아시아인이면서. 그리고 그 인종 비하 단어는 너처럼 급발진하는 놈들 때문에 생긴 건 아냐?”
휘유.
영어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몇몇 서양인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큭, 내가 바쁘지만 않았어도 너 같은 놈은!”
“일단 앉자고. 옆자리 같은데.”
“제길.”
얼마 후. 비행기가 고도에 오르자 안대를 쓰고 있던 젊은 남성이 본색을 드러냈다.
철컥.
“무슨!”
난데없이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에 고개를 내려 확인한 웨이 박사가 사색이 되었다.
“웨이. 살고 싶으면 입 다물어. 알았으면 눈 한 번 깜빡여. 뭐? 싫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럼 죽는 거지.”
그럼 뭐 하러 눈을 깜빡이게 하는 거냐고 속으로 외친 웨이 박사는 눈을 끔뻑였다.
퉁.
그때 프렉시스산 무반동 무음 권총의 총구에서 탄두가 튀어나왔고 그대로 웨이 박사의 체내를 휘저었다.
“꺼어억, 왜…!”
칙, 강력 테이프를 뜯어 웨이 박사의 옆구리에 난 구멍에 붙인 남만혁은 싱글 웃으며 물음에 답했다.
“사실 처음부터 살려 줄 생각이 없었어.”
웨이 박사의 사살 정도는 리쳇을 동원하면 될 것을 굳이 남만혁이 직접 행차한 이유는 최근 정지궤도에 위치한 리쳇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연구소의 모든 데이터가 모여 있을 저 두 로봇 때문이다.
하이퍼이온캐논이나 입자분해파동포가 저 로봇 곁을 지나게 되면 두 무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EMP 때문에 아무래도 데이터가 소실될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이후 남만혁은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 내려 로봇에서 데이터를 뽑아낸 후 완전히 파괴했다.
그리고 웨이 박사의 시신은 인적이 드문 야산으로 옮겨 땅을 파고 던져 넣은 후 인체 분해액을 한 방울 떨어트리는 그때.
뚜르르.
“퀸? 지금 막 일 끝났어. 저녁에 소불고기 먹고 싶다고? 나야 좋지. 갈 때 사 갈게. 당연히 투쁠이지. 그래, 사무소에서 보자.”
뚝.
“퀸이 무슨 양념을 좋아하더라. 고추장도 괜찮겠지?”
인체가 산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붉은 물에서 고추장 소불고기를 연상한 남만혁이 입맛을 다셨다.
* * *
퀸과 저녁 식사 후. 남만혁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잘 지냈나?
“그래, 덕분에 잘 지냈다. 스프 자식아.”
-큰일을 해결했더군.
“와서 좀 돕지 그랬냐. 너도 교감님 제자면서.”
-그럴 예정이었고 실제로 솽두 공항까지 갔었다.
“그런데?”
-네가 히어로들을 선동하는 모습을 보곤 돌아갔다.
“왜!”
-어차피 해결될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건 아까우니까. 실제로 그날 돌아온 덕에 9명을 구조할 수 있었지.
일말의 의심도 없는 스위프트의 믿음에 잠시 멈칫한 남만혁이 콧방귀를 끼고는.
“핑계는. 나중에 교감님이 섭섭하다 해도 나는 네 커버 안 쳐줄 거다.”
-…남 교수.
“너 불리할 때만 교수지. 됐고, 본론이 뭐야.”
-나야말로 묻고 싶군.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도 우리를 서포트하는 이유가 뭐지?
“너 진짜 아직도 내가 아카데미 쪽 인간이라고 믿고 있냐?”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사실이다. 실제로 기간트의 마가렛과 교감 선생님의 실종에 전력으로 나서지 않았나.
“그건 그냥.”
-됐다. 억지로 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네가 무사한지 궁금했던 것일 뿐. 또 연락하지.
자기 할 이야기만 하고 끊는 스위프트식 대화에 이미 익숙해진 남만혁이었기에 분통은 나지 않았으나 다소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여간 이 쿨찐은.”
스위프트가 하루에 구하는 인명의 수는 평균 10.7명.
최전선에서 매일 바쁘게 움직이는 프로 히어로도 일 평균 6명을 못 넘기는 걸 생각하면 대단하긴 대단한 인간이다.
남만혁은 그런 통계를 리쳇을 통해 보고받을 때면 괜히 목에 힘을 주곤 한다.
“큼, 내가 잘 키우긴 했지.”
그리고 이런 모습 때문에 스위프트가 그를 아카데미 측 인사라고 생각한다는 건 추호도 모르는 남만혁이었다.
* * *
한국, 하나 보육원.
태릉에서 훈련 중이던 김태양은 새로운 식구가 곧 도착한다는 주나라의 톡에 간신히 시간을 내 보육원에 돌아왔다.
“너희야?”
표정이 없는 소년, 맑게 웃는 소녀.
“래비다. 당분간 신세 지지.”
“안녕하세요! 저는 줄리엣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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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