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차원문
“30초가 한계?”
소환학파의 최고 권위자이자 소환 마탑의 주인, 매그너스 골든우드가 언짢은 표정을 지은 채 원탁에 둘러앉은 마법사들을 쏘아본다.
“탑주께서도 아시다시피, 게이트를 여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마나가 소모되다 보니, 30초가 최선입니다.”
“맞습니다. 30초 유지만으로도 타 차원의 존재가 넘어와 위험하지 않았습니까. 사라져서 다행이지.”
소환학파의 마법사들은 마나 부족으로 인해 사라진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사실 이때 소수의 해적이 지구에 숨어들었다.
그들은 은밀히 정보를 수집했고 이곳이 지구라는 것을 알아낸 뒤, 프렉시스의 주인으로 유명한 남만혁을 협박하기 위해 해적답게 그의 약점인 보육원을 공격한 것이다.
위협 사격으로 아크실드를 뚫고 인질을 잡을 생각이었으나 보육원 인사들이 잘 막아내자 본격적으로 퍼부었고, 그로 인해 위치가 발각되어 리쳇과 퀸에게 토벌당했다.
“24년에 걸쳐 만든 내 마나 배터리를 기증했음에도 30초라. 그대들이 따로 빼먹은 건 아니고?”
“탑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를 무엇으로 보시고!”
“후, 내 말실수를 인정하리다. 하지만 게이트 유지 시간은 무조건 1분 이상으로 끌어올리시오.”
“그러려면 마나 배터리의 효율이 더 높아야 합니다.”
“내 손을 써두겠소.”
“…알겠습니다.”
* * *
[위저드 매거진]
[게이트 레이스의 승자는 소환학파!]
[소환학파, 최초로 새로운 세상을 열다!]
[‘싱크레아’, 또 다른 차원의 행성 명!]
[지구는 특이점에 도달했나?]
[타 마탑의 마법사들, 한목소리로 막대한 마나 소모를 우려.]
“싱크레아면 하위 차원이지?”
-응. 곤충 인간들이 최상위 포식자고 문명 수준은 0.4 정도. 여기 최고 이슈는 30년 전부터 해적들에게 지배당하는 중이라는 것 정도?
“우리를 공격한 것들이 걔들이겠네?”
-맞아. 함선의 형태나 무기들이 대부분 일치해.
적은 찾았다. 그 통로를 제공한 놈도 알아서 튀어나왔고.
스승님은 지금 마법계 장로급 인사들을 만나는 중이다.
이번과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하겠다 하셨으니 타 차원의 존재가 넘어오는 일 같은 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다른 마탑들은 스승님께 맡기면 되겠고, 소환학파를 조져놔야 하는데.”
저기만 다른 마탑에 비해 압도적인 속도로 게이트 유지 시간을 늘려나가고 있다.
일주일 전에 비해 오늘 요동치는 마나가 두 배가 넘는다. 단기간에 이렇게 투사할 마나가 늘었다는 건, 분명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을 동원했다는 이야기다.
“보안이 삼엄해서 드론 침입도 쉽지 않고.”
다수의 마법사가 펼친 영역을 들키지 않고 들어가는 건 아무리 리쳇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별수 없나.”
그리고 보니 이놈에게 전화하는 건 졸업 이후 처음이다.
뚜르르.
뚜르르르.
한참이나 홀로폰을 들고 있었으나 받을 기미가 느껴지지 않아 화면에 띄워진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금나무]
“맞는데.”
안토니오 골든우드. 스승님께 듣기론 몇 달 전 본인 생일 때 메시지를 보냈었다고 했다.
“리쳇, 이놈 어딨냐.”
-추적이 안 돼.
“왜?”
-홀로폰이 없으니까?
뚝.
[현재 연결된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리쳇이 답하기가 무섭게 홀로폰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
“통신사 위성 해킹해서 안토니오 골든우드 기록 찾아봐.”
-없어. 고객의 요구로 삭제됐다네.
“언제?”
-리가로 다른 차원의 존재를 널리 퍼트린 날?
“이상하잖아. 그러면 스승님 생신 때 전화한 건 뭐야.”
-잠시만. …명의는 릴리 골든우드. 매그너스 골든우드의 아내고 몇 년 전에 죽었어.
“그럼 실사용자는 매그너스겠네?”
-그렇지.
매그너스면 안토니오의 친조부이자 몇 해 전 마나 배터리라는 마나 저장 장치의 개발로 소환 마탑의 수장이 된 인물이다.
“연결해봐. 발신자 숨기고.”
잠시 후.
-441회 시도했고, 전부 안 받았어.
441회? 좀 무서웠겠는데. 매그너스.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나.”
그대로 사무소에서 나와 소환 마탑으로 향하던 중,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제목 : 자네에게 필요할 듯하여 보냄세.]
[내용 : ‘차원문 시연회 초대장 - 소환 마탑’
추신, 소환학파 이외의 장로들은 게이트를 생성함에 있어 안전 확보를 우선하기로 마나를 걸고 맹세했네.]
“역시 스승님. 일 처리가 퍼펙트하셔.”
* * *
“탑주님. 그놈이 왔습니다.”
“그놈?”
“그랜드 위저드의 제자 있지 않습니까. …배, 손자분과 함께 수학했던.”
“로맨이라는 그 히어로 말인가. 누구 초대로 왔지?”
“매저드 님께 보낸 초대장이었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니 나가라고 하게.”
“초대장을 검사하는 제 제자도 그렇게 대응했습니다만, ‘동반 1인의 자격으로 왔고 스승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다’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들여보냈답니다.”
“허, 뻔뻔한 놈이로고. 알겠네. 잘 지켜보다 수상한 행동을 하면 그걸 명분으로 내쫓게.”
“알겠습니다.”
“쯧, 좋은 날 벌레가 꼬이는군.”
매그너스는 그랜드 위저드 매저드의 제자인 남만혁을 고깝게 여기고 있었다.
아무리 정이 없다고는 해도 자신의 피를 이은 마법사가 공식적인 승부에서 단 한 번도 그를 마법으로 이기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매저드가 남만혁을 자신의 ‘수제자’라고 공표함으로써 차기 그랜드 위저드의 재목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다음 대 그랜드 위저드는 바로 나다!’
매그너스 골든우드의 야망은 등한시되고 있는 마법계를 자신을 중심으로 다시 세우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다소의 희생은 치를 생각이었고, 이미 어느 정도 감수하고 있었다.
우웅!
“이, 무례한!”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게이트 시연을 준비 중이던 모든 마법사와 그 핵심인 매그너스 안토니오는 갑자기 마탑 전체를 덮는 영역에 엄청난 불쾌감을 느끼고 영역이 퍼져나온 장소로 눈을 돌렸다.
“실례. 이거, 아무리 찾아도 내 친구가 안 보여서.”
마법사 간에 영역은 목숨이 걸린 몹시 민감한 문제였고 이를 이처럼 상의 없이 무차별적으로 퍼트린다는 건, 얼굴에 침을 뱉고 오물을 던지는 것 이상의 무례였다.
시연회에 참석한 마법사들이 남만혁을 쏘아보며 저마다 욕설을 퍼붓는 그때.
“안토니오 골든우드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전화를 해도 안 받아서 말야.”
이 무례를 명분으로 내쫓으려 했던 매그너스는 ‘전화’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자신을 응시하는 남만혁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그 끈질긴 전화를 한 놈이?’
매그너스는 뭔가를 아는 듯한 남만혁을 떠보기 위해 운을 띄웠다.
“내 손자는 왜 찾느냐.”
“친구가 친구 보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위치만 좀 알려줘 보쇼. 내가 찾아갈 테니까.”
“모른다. 안토니오는 내 간섭이라면 질색해서 말이지.”
하하.
골든우드 가문의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슥 둘러본 남만혁은 입꼬리를 당기며.
“그래? 모른단 말이지.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매일 거대한 마나 파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까. 이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레 정중해진 남만혁의 언행에 의아해하는 마법사들.
“시연회와는 무관한 물음이네만.”
“마법계의 큰 어른인 매그너스 골든우드 님의 견해를 이 말학이 꼭 듣고 싶습니다. 부디 저의 좁은 시야를 틔워주십시오.”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마법사들 간의 예식을 완벽하게 재현하며 청하는 남만혁의 모습에 주변 마법사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여기서 거절하면 자신의 위신에 손상이 갈 것이라 직감한 매그너스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근엄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최근 태양풍에 변화가 생겼네.”
풉.
남만혁은 태양풍이라는 말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웃었나?”
“아닙니다. 기침이 나와서 참느라, 죄송합니다. 계속 말씀하시죠.”
“크흠! 태양풍에는 천문학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네. 이것이 지구에 흐르는 마나 대류를 흔들어서—”
“크크큭! 아, 진짜. 너무하네. 구라도 적당히 쳐야 참지.”
“네 이놈!”
“차라리 그랜드 위저드 매저드께서 지구를 염려해 영역을 펼쳤다고 하지. 태양풍은 무슨.”
“이 시건방진 놈이!”
“나다 이 새끼야.”
“뭐라?”
우웅!
남만혁이 발로 바닥을 치자 지표 전체로 퍼져나가는 강력한 파동.
매일 관측되는 그 어마어마한 마나 웨이브가 한 사람에 의해 구축되는 것을 목격한 마법사들은 경악했다.
“나라고. 이거.”
“…….”
“내가 이거 왜 하는 줄 알아? 너희같이 마구잡이로 실험해대는 놈들이 사고 칠까 봐.”
“…오만하군.”
“원래 스승님이 하셨어. 올해부터 내가 물려받은 거고. 그리고 단언하는데, 지구상 모든 마법사를 합쳐도 스승님보다 못해. 그분은 오만하셔도 되는 존재라는 말이지.”
매저드는 지구에 존재하는 몇 배의 마나를 개인의 몸에 담은 괴물 중의 괴물.
매저드를 겪어본 늙은 마법사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상대적으로 젊은 이들은 시끄럽게 반론하고 나섰다.
“됐고, 이거 못하면 입 다물어. 마법계는 이게 전부잖아. 아냐?”
주변의 물건들을 끌려오게 할 정도로 압축된 공 형태의 마나를 손가락 끝에 올려둔 남만혁이 한마디 하자 불퉁하던 젊은 마법사들의 입에 쑥 들어간다.
매그너스는 침음을 흘렸다.
저것이 매저드가 전성기 시절 주력기로 사용했던 마법이라는 점도 있으나 당시 그에게서 넘을 수 없는 압도적인 벽을 느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무엇 때문에 왔지?”
“방금 말했잖아. 친구 보러 왔다고.”
“안토니오 너를 만날 수 없다.”
“이젠 대놓고 숨기겠다? 이봐, 탑주 양반. 바깥에서 영역을 펼쳤을 때랑 마나가 모인 곳에서 영역을 펼쳤을 때. 감지되는 게 다르다는 거 알지? 축이 하나 더 생긴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남만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발아래를 가리킨다.
“지하에 저 마나 덩어리, 뭐냐.”
남만혁의 물음에 매우 놀란 매그너스였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것도.”
세상 모든 한심함을 담은 남만혁의 눈이 매그너스를 향한다.
“지금이라도 솔직히 고백하고 내 요구 몇 개 들어주면, 살려는 줄게.”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분명히 기회 줬다? 나중에 스승님 앞에서 딴소리하지 마라.”
“매저드 님과 내가 만날 일은—”
“리쳇, 쏴.”
쯔우우웅.
마탑을 둘러싼 수천 장의 실드를 입자분해파동포가 관통하고 지하, 그 너머까지 일직선으로 구멍을 낸다.
각자의 방어 수단으로 자신을 지키는 마법사들을 돌아본 남만혁은 앞에 생겨난 구멍으로 몸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이 아래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면 따라와.”
눈치를 보던 이들은 젊은 마법사 한 명이 잽싸게 남만혁 뒤로 따라붙자 너도나도 뛰어내렸다.
거기엔 타 마탑의 장로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를 게이트 생성 마법진 중심에서 지켜본 매그너스 골든우드가 눈을 질끈 감으며 물었다.
“마나 배터리는?”
“연결 상태로 봐선 당장은 괜찮을듯합니다.”
“게이트를 열게.”
“탑주님.”
끝까지 곁에 남아 있던 장로가 만류하였으나 매그너스는 강행하고자 했다.
“갈 땐 가더라도 역사에 이름 한 줄 새겨야 하지 않겠나.”
“…죄송합니다.”
그 한 줄이 빨간 줄이 되고 싶지는 않았던 장로는 마법진 위에서 물러났다.
“허, 허허. 허허허!”
* * *
천장에 뚫린 빛이 소환 마탑의 지하를 밝힌다. 뿌옇게 흩날리는 먼지 사이로 축 늘어진 금발의 사내.
“허이구, 지가 납치된 공주야 뭐야.”
안토니오 골든우드는 가장 듣기 싫은 목소리가 또 환청으로 들려 눈꺼풀을 꽉 닫았다.
짝!
“켁!”
홱 돌아가는 뺨.
“정신 차려 인마. 어? 넌 눈알 뽑혔냐. 거참. 눈이 마나 전도에 방해되기는 하지만, 손자에게 이렇게까지 해? 미친 늙은이.”
“네가, 어떻게….”
“구해줘서 고맙다고? 별거 아냐 이 새끼야. 친구 사이에 돕고 사는 거지.”
제 할 말만 하는 목소리에 안토니오 골든우드는 이것이 현실임을 인지했고.
“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침을 뱉었다.
“뭐하냐.”
남만혁의 영역에 막혀 흘러내리는 침.
“재수 없는 놈! 내게 빚을 안길 셈으로 왔겠지!”
“낄낄. 정답이다, 마법사!”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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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