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지구방위대&허슬리
싱크레아 차원의 개척 사업은 멈췄으나 이미 확보한 토지에서 나오는 이권을 놓고 전 세계가 치열하게 정치적 공방을 주고받는 중이다.
그러나 소환 마탑은 그걸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통관세를 받아먹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말이다.
실제로는 싱크레아 개척 과정에서 통관세를 비롯한 소환 마탑에 주어졌던 이권 대부분이 밀키 마이닝에 넘어간 상황이었다.
안토니오 골든우드가 막 탑주가 된 어수선한 시기에, 지금은 별것도 아닌 싱크레아산 소재에 혹해 밀키 마이닝에서 내민 계약서에 사인을 한 장로들이 문제였다.
“이 새끼는 학생 때나 지금이나 나를 뭐로 아는 거야!”
그 때문에 돈도 마나 축적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게이트 사업을 몇 년이나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자 울화가 치미는 안토니오였다.
“무슨 전화였는지요?”
젊은 축에 속하는 장로 하나가 평소답지 않은 말투를 쓰며 분노하는 탑주의 모습에 놀라 묻자 안토니오가 그를 노려보며 답한다.
“계약서의 조항을 수행하라는 독촉 전화입니다.”
지구방위대 발족은 남만혁과 안토니오와의 구두계약일 뿐이었다. 탑주 취임사에서 차기 공략 중 하나로 언급해 기사에 실리긴 하였으나 실제로 진행한 것은 없다시피 하다.
기껏해야 구색 갖추기로 사무실 하나 얻어놓은 정도일까.
“혹 지구방위대라는 아이들 장난 같은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 정도는 무시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 쌓인 업무들이 적지 않은데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안토니오는 전화는 남만혁이 했지만, 그 뒤에는 매저드 교수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어째서입니까?”
“소환 마탑과 학파를 지키고 싶으니까.”
매저드가 그럴 인품을 가진 인사는 아니었으나 말년에 수제자인 남만혁에게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거슬리는 단체를 지우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안토니오로서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였으나 어른이 된 지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제자는 남만혁이다.’
매저드 교수는 마냥 인자해 보여도 우선순위가 높은 대상을 위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화분이 있다 치면 물은 둘 다 주지만 하나 있는 영양제는 아끼는 화분에만 꽂아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간단합니다. 탑이 폭파되기 싫으면 지구방위대 대표로서의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답에 장로들이 우르르 일어나 제각기 이유로 거절 명분을 떠들어댔으나 안토니오는 무시하고 자신의 홀로보드를 조작해 화면을 띄웠다.
[1. 지구방위대, 인재 영입]
으음….
침음이 흐르는 회의실.
마탑은 언제나 인재에 목마르다. 그렇기에 마나를 감지하는 아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나름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는데, 이를 이용하려는가 싶어 모두 우려를 표하려는 그때 화면에 변화가 생겼다.
“인재는 로맨 사무소를 통해 충원될 예정입니다. 본인 말로는 이미 충분하다더군요. 그래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2. 무력 조직 확보를 위한 국가 영입]
지구를 수호하는 일에는 반드시 군대가 필요하고 이는 마탑에서 운용하기보단 국가에 뿌리를 두고 움직이는 편이 유용하다.
이제 막 부흥하는 소환 마탑은 군대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안토니오가 생각한 것이 바로 국가의 영입.
“매혹의 향호상을 이용해서라도 강국의 대통령들을 지구방위대에 소속시키세요.”
매혹의 향호는 이름처럼 사냥감을 끌어들이는 향을 뿜는 호랑이 조각상이다.
“탑주님,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치인은 마법사를 절대 만나지 않습니다. 설령 매혹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전 세계의 비난을 받을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 * *
“당연히 협조해야지.”
“예?”
“내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나?”
탑주의 명령을 받고 중국의 자금성에 도착한 장로는 지구방위대라는 단어만 꺼냈을 뿐인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중국 주석의 말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 그에 관해선 여기에 적혀 있습니다.”
“어디. 음…, 어렵지 않군. 알겠네. 준비되면 연락하지. 가보게.”
품속에 있던 매혹의 향호상을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주석이 보이는 반응에 장로는 계약서 하단의 사인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아, 예. 그럼.”
이러한 일은 미국, 인도, 일본을 비롯해 쓰는 언어만 다를 뿐이지 동일하게 반응했다.
그들에게서 사인을 받던 장로는 뒤늦게 대통령들이 누군가에게 이미 간섭당했다는 것을 깨달아 이 사실을 탑주에게 보고하자.
-역시 그랬군요. 알겠습니다.
“탑주님은 예상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어느 정도는요. 그놈이 아무런 대책 없이 이런 일을 맡기진 않았을 테니까요.
탑주가 놈이라고 부르는 인물은 로맨밖에 없음을 아는 장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히어로 로맨 뒤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던 장로는 이만한 일을 누구도 모르게 벌일 만한 인물을 입에 담았다.
“…프리실라 루드라.”
그녀의 안배였다고 생각하면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상황이 이해되는 장로였다.
* * *
[미, 중, 인, 일. 지구방위대 가입!]
[지구방위대 대표는 마법사, 안토니오 골든우드! 중앙마도협회의 마법사와 함께 살펴보는 그의 업적들.]
[소환 마탑이 주도하는 지구방위대의 목적은?]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안토니오 골든우드, ‘자유와 평화’]
…
…
[민간 최대 무력 조직, 기간트. 지구방위대 엠블럼을 달다!]
남만혁은 단기간에 최대 조직으로 부상하는 지구방위대를 감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작업해둔 보람이 있구만.”
-이제 소환 마탑에 하던 지원, 끊는다?
“그래, 저 정도로 눈덩이를 키워 굴렸으면 이제 관성 때문에라도 알아서 덩치가 불겠지.”
남만혁은 싱크레아 차원에서 채굴한 자원 일부를 소환 마탑에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양도하고 있었다.
밀키 연구소의 분석과 마탑의 분석을 비교하기 위한다는 명분이었으나 사실, 앞으로 고생할 안토니오를 향한 남만혁의 동정이었다.
리쳇은 이 불필요한 지출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지금이 기회다 싶어 남만혁에게 소재를 끊으라고 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다이슨 스피어는 어디까지 진행됐지?”
-55%. 화면 띄울게.
주홍빛을 내는 항성 주변을 두른 판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나자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던 남만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장인이 말한 대로 에너지 확보가 엄청나긴 해. 이대로도 공장 돌리는 데는 문제 없다는 거지?”
-당장은 그렇지. 나중에 함선 건조 들어가면, 부족해.
“완성됐다고 치면, 싱크레아 완전 장악까지 얼마나 걸릴까?”
-록시가 얼마나 성장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특성은 재각성 이후에도 끊임없이 성장한다.
록시의 경우 애초에 상정한 목표 자체가 우주급이어서 그런지 성장이 막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록시가 현재 은하 간 이동이 가능한 횟수는 9시간에 1번이다.
재각성 직후엔 72시간이 걸렸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하겠다.
“그래도 대충 계산해 봐.”
-1시간에 1번이라 쳐도 261년.
“1분이면?”
-4년 반.
현실적인 시간에 도달하려면 비현실적인 특성의 성장이 필요하다.
가능성이 있다면 후자였기에 남만혁은 기드빈에게 아직 부족하니 록시를 더 단련시키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소파에 등을 기댔다.
“다이슨 스피어가 하나만 완성되면 다른 항성에 설치하는 건 쉽다고 했지?”
-맞아. 지금 싱크레아의 문제 대부분은 에너지니까.
“으음, 함선이라…. 아줄이나 베르데의 함선들이 엄청 고성능이던데.”
-그럴 수밖에. 저쪽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와 시간을 무기 개발과 연구에 투자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연구한다 해도 그만한 성과는 내기 힘들 거 아냐.”
-너, 설마?
리쳇의 우려 섞인 대답에 다리를 꼬아 발을 흔들며 악당같이 웃는 남만혁.
“걔들 함선 설계도, 뽀리자.”
-…최소한 훔치자고 해. 뽀리자가 뭐야 뽀리자가.
* * *
글로리아 차원, 아줄.
“싫다고 했습니다. 장관님.”
“이젠 아버지라고도 안 하는 게냐. 허슬리.”
차원 방송국 로카의 행사기획팀에 소속되었던 허슬리는 그의 아버지가 행성방위부의 장관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이후 특진을 거듭해 인사팀 팀장이 되었다.
“수년간의 노력이 당신의 전화 한 통 때문에 모두 허사가 되었습니다.”
완벽주의자인 허슬리는 자신의 행보에 외부의 간섭이 발생하는 것 극도로 혐오했다.
쾅!
“그렇게 허리를 굽히고 악마 종 하나에 벌벌 떠는 것이. 네가 원하는 삶이더냐!”
뒷짐을 쥔 채 마나로 테이블을 때려 분노를 표출한 장관은 보좌관을 통해 입수한 아들의 영상을 허공에 흩뿌렸다.
당당하던 초기에 비해 회사 생활이 길어질수록 점차 타협하고 사람들 속에 자신을 녹이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흘러나왔다.
장관은 이를 보고 로카 사장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필요에 의해 허리를 숙이는 게 뭐 어때서. 장관님도 카메라 앞에서 잘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허슬리는 추태라고도 할 만한 자신의 영상을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필요? 거기서 네가 무엇이 필요하다는 말이냐. 원한다면 로카 방송국 같은 회사는 몇 개라도 쥘 수 있는 녀석이!”
“당신의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어머니가 떠난 겁니다.”
“이놈!”
“다시는 제 인생에 끼어들지 말아 주십시오. 장관님.”
장관이 가장 혐오하는, 굽신거리는 태도로 인사를 한 허슬리가 관저를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군사 아카데미를 다닌 것이 아깝지도 않더냐!”
“아깝습니다.”
“그러면 왜!”
“그딴 오물통에 낭비한 내 시간이 아깝습니다.”
문을 거칠게 닫고 관저를 빠져나온 허슬리.
뒤에서 유전자상 부모인 장관이 고함을 쳤으나 허슬리가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하.”
옅은 가스가 만든 초록빛 하늘을 올려다본 허슬리는 그 길로 로카 방송국으로 돌아가 사표를 냈다.
“가족이 그분이라고 미리 말하지 그랬나.”
인사팀장의 말에 허슬리는 구겨지려는 표정을 최대한 다스리며 입가를 끌어당겼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며칠간 출근해 인수인계를 마친 허슬리가 자신의 돈으로 빌린 원룸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송진을 이용하려던 찰나.
딱, 치익.
캔 음료를 자신 앞에 들이미는 사람을 올려다봤다.
“데모니오 팀장님.”
“이제 같은 회사도 아닌데 팀장님은 무슨, 형이라고 해. 받아, 팔 아파.”
음료를 감은 손에서 길게 뻗어 나온 손톱. 저것만 보면 두피를 통과해 두개골을 긁어댔던 기억이 떠오르는 허슬리였으나 회사에 출근하고 처음으로 순수하게 웃었다.
“갑자기 왜 쪼개. 재수 없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개운해져서요.”
“뭐, 회사 그만두면 처음엔 좀 그런 편이지. 너무 만끽하지 말고 다음 직장 알아봐.”
자신이 장관의 아들임을 알면서도 걱정하는 데모니오의 말에 허슬리는 그간 참고 있던 것들이 폭발해 눈물을 흘렸다.
“으엑, 야. 꺼져! 사내새끼가 울고 지랄이야. …괜찮냐?”
어색하게 허슬리의 등을 두드리며 달랜 데모니오가 주변을 살피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그를 이끈다.
“여긴 왜 온 겁니까?”
허슬리의 의문에 그는 낮은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솜브리오 팀장 있지?”
“솜 팀장님이 왜요?”
“다른 차원으로 가셨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에 글로리아 차원에서 목격됐다네?”
“그렇군요.”
“구형함 함장으로 계신다고 해서, 내가 동족들 엉덩이 걷어차면서 좀 알아보다 우연히 연락이 닿았거든?”
“정말입니까?”
“그래, 자기 배에 선원으로 일할 의향 있으면 오라더라고. 너, 생각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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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