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얼음 송이 작전 (1)
“장관님, 도련님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어디라던가.”
“그게….”
“말하게.”
허슬리가 일방적인 작별을 고하고 사라진 지 2개월.
장관은 평탄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이미지를 위해 허슬리를 찾아야만 했다.
“일전, 프렉시스에 기생 중인 인간의 거점을 토벌한 적 있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때 발견된 구형함인 넥서스에 도련님께서 탑승하시는 걸 스타우티 항성계의 레드플에서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레드플은 해적이나 범죄자들이 모이는 장소를 통칭한다.
“잡아 오게.”
“…실은 넥서스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씨사미라를 내주지.”
장관의 사설 무력 조직 중 최고로 치는 씨사미라를 붙여준단 말에 보좌관은 벌떡 일어나 군례를 올렸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팔다리 정도는 잘라도 좋네.”
“예!”
* * *
“허슬리.”
“예, 솜브리오 함장님.”
“자네가 여기 왜 있나.”
“데모니오 팀장의 소개로 왔습니다.”
“의외로군.”
솜브리오는 넥서스의 선원을 모집해도 좋다는 제독, 남만혁의 허락이 떨어진 후 옛 지인들에게 연락을 은밀히 넣었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인물들이라 어쩌면 아무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만 포기하고 레드플에서 떠나려는 찰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인 허슬리가 도착한 것이다.
“데모니오 팀장도 진행 중인 행사만 마무리 지으면 합류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함은 아군이 가장 위험한 순간에 나선다.”
“예.”
“죽을 수도 있지.”
“알겠습니다. 환영 인사는 그게 끝입니까?”
허슬리의 눈을 들여다보던 솜브리오는 그가 신입 시절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원래 이런 아줄이었을지도 모르겠어.’
“네 의지가 그렇게 확고하다면 즉시 임무에 투입되어도 불만 없겠지?”
“바라던 바입니다.”
솜브리오에겐 현재 남만혁으로부터 중요한 임무 하나가 부여된 상황이었다.
이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을 어떻게 수행할지 선원들과 작전을 구상하던 중, 허슬리가 나타났던 것이다.
“기드빈, 계속하게.”
솜브리오의 고갯짓에 한 쪽에 서 있던 기드빈이 회의실 중앙에 홀로그램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인원도 있으니 다시 브리핑하겠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받은 임무는 ‘아줄의 최신 함선 설계도 및 기술 입수’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세 가지 난관을 클리어해야 합니다.”
기드빈은 무수한 별과 행성으로 이루어진 은하와 아이시클 함대의 전함을 홀로그램으로 띄우며 말을 이었다.
“하나, 위치 특정 및 설계도 존재 여부 확인. 이 문제는 이미 리쳇 부관께서 해결하셨습니다.”
프렉시스가 건재할 때, 리쳇은 자신의 눈과 귀라고 할 수 있는 드론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했다.
그 결과, 글로리아 차원의 낙후된 몇몇 행성에 잠입시키는 데 성공해 최소한의 정보망을 구축한 상황이다.
기드빈이 홀로보드를 조작하자 은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행성 하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미케일.”
“그렇습니다. 현재 아이시클 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행성이기도 합니다.”
“음.”
솜브리오의 침음이 회의실을 길게 울린다. 회의에 참여한 선원들도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번째 난관이 바로 이 아이시클 함대의 방어를 뚫고 잠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학미채로는 안될 테고.”
“예, 포로로 잡은 그린의 말에 따르면 정식 마법사는 보이지 않는 물질도 마나로 감지한다고 합니다.”
뛰어난 아줄의 마법사에겐 눈속임이 통하지 않는다는 기드빈의 말에 솜브리오는 남만혁이 과거에 ‘이것도 전력 계산에 넣어 둬.’라며 보여준 거대한 영역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자신 있게 일어나 외치는 허슬리의 말에 선원 대부분은 신입의 무모한 패기라 생각하며 미간을 좁혔다.
“네 열정을 알겠다만, 나설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해라.”
“저는 행성방위부 장관의 아들입니다.”
바로 본인의 정체를 스트레이트로 꽂아버리는 허슬리.
회의실은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으나 기드빈에 의해 금방 깨어졌다.
“허슬리 훈련병, 그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기드빈과 솜브리오가 눈으로 대화를 나누더니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문제를 자네가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나?”
“아직 제게 수배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미케일 행성은 아카데미 시절에 이미 몇 번 방문했었기에 당당하게 말하는 허슬리였다.
“조선소의 내부 구조도 잘 알고 있겠지? 우리는 설계도만이 아니라 기술도 훔쳐야 해.”
“물론입니다.”
“알았다. 일단 다음 난관을 듣지.”
“세 번째는 탈출과 아줄의 추적을 뿌리치는 방법입니다.”
이번에도 쉬운 문제가 아니었기에 뚜렷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무렵.
똑똑.
“싱크레아 수송 장교 록시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록시 소령. 어서 오게.”
또각, 또각.
굽 소리를 내며 들어온 록시는 지구식 경례를 하고는 가져온 전달 사항을 솜브리오에게 전했다.
“임시 임무지 변경 명령?”
“이번 임무에 한해서 제가 함장님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주 규모로 사업을 벌이는 밀키 마이닝의 모든 현장에서 록시의 이중선택 특성은 기적과도 같은 능력이었다.
남만혁도 이를 잘 알기에 현재 가장 중요한 다이슨 스피어 물자 수송에 배치한 것이었다.
“제독께서 이번 임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 것 같군. 따로 자네에게 하신 말씀은 없는가?”
“…여차하면 저 혼자라도 몸을 빼라고 하셨습니다.”
하하!
선원들이 전부 웃자 당황하는 록시,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솜브리오.
“자네도 제독님 성격 알지 않나. 그래서 다들 웃는 걸세. 아무튼 자네의 합류 덕에 세 번째 문제도 쉽게 해결되겠어.”
어떻게든 넥서스에 탑승하기만 하면 남만혁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지구로 복귀할 수 있었기에 록시의 합류는 사실상 탈출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화기애애해진 회의실을 둘러보던 록시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다들 제 특성에 대해 아시는 듯하니,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은하 간 이동이 가능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걸 모르는 이는 없네.”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건 처음 들으실 겁니다. 저는 가까운 거리는 이동할 수 없습니다.”
특성은 언제나 숙련도를 쌓는 방식에 따라 발전 방향이 달라진다.
록시의 경우 남만혁의 뚜렷한 목적에 의해 특성이 개발되었고 단기간에 목표에 부합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반대급부로 근거리 이동이 불안정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대한 사항이었군. 얼마나 멀어야 하지?”
“최소 4광년.”
약 40조km에 달하는 엄청난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록시의 모습에 기드빈은 현기증을 느끼고 눈을 꾹 감았다.
“기드빈, 괜찮나?”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양제라도 챙겨 먹게. 자네도 젊은 나이가 아니야. 흠, 그러면 이렇게 하지. 처음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넥서스를 놓아두고 록시 소령과 함께 이동하는 거로.”
“따르겠습니다.”
이후, 허슬리의 정보를 기반으로 디테일한 작전이 세워졌고 남만혁에게 컨펌을 받은 후 몇 번의 은밀한 답사 끝에 확신이 든 솜브리오 함장이 명령을 내렸다.
“얼음 송이 탈취 작전을 시작한다.”
“예, 써!”
* * *
웨에에에에엥!
화르륵!
쾅!
도시 전체를 울리는 경보음과 골목을 달리는 두 사람.
“너희는 포위되었다! 투항하라.”
하늘에서 울리는 아줄 마법사의 목소리에도 허슬리와 록시는 표정 하나 꿈쩍하지 않고 지정된 포인트까지 전력으로 달렸다.
“경고 마법은 이게 마지막이다!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살상 마법을 시전하겠다!”
도시를 지키는 보안 마법사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고 에어콥터를 타고 이동하며 두 도둑을 끝까지 쫓았다.
그러다 막다른 길에 도둑들을 몰아넣는 데 성공한 마법사들이 에어콥터에서 내렸고, 그중 한 명은 록시를 위아래로 훑으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전신을 가려도 내 눈은 못 속이지. 너는 나랑 가자. 아주 짜릿한 밤을 보내게 해—”
휙.
“헉?”
돌연 두 도둑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마법사들은 일시에 영역을 펼쳤다.
“마나흔은 없다. 추적향은?”
“신호 완전 소실. 적어도 이 항성계에는 없어.”
“당장 위에 보고해!”
마법사들은 급히 본청에 두 도둑에 대해 보고를 했고 이는 이례적으로 장관에게까지 올라갔다.
“장관님. 허슬리 도련님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도둑을 발견했습니다.”
“음.”
장관은 전날 밤 자신에게 도착한 아날로그 편지 한 장에 잠을 못 이룬 상태였다.
[내일 너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훔쳐 가겠다. - 뾰로롱☆마법 소년 블랙위치]
3살짜리 꼬마가 글씨를 쓴 것처럼 삐뚤삐뚤한 필체.
이러한 장난 같은 협박은 보통 보좌관들 선에서 처리되나 편지가 구하기 몹시 어려운 소재로 만들어진데다, 장관에게 직접 ‘블루’라는 멸칭을 써대는 문장까지.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내용이었기에 보좌관들 입장에서는 쉽게 폐기를 결정할 수 없었다.
“장관님?”
“아, 자네 왔나. 무슨 일이지?”
“도련님을 찾았습니다.”
“그럼 데려오지 않고 뭣 하나.”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그게 끝인가?”
그러면 너도 끝이라는 말이 장관에 눈빛이 담겼다는 걸 알아챈 보좌관은 자신이 조사해온 정보를 최대한 신속하게 읊었다.
“당, 당시 보안 마법사들의 목격 정보와 와치아이의 영상을 취합해본 결과, 위기에 몰리자 모종의 수를 써 마나흔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목격된 행성이 어디지?”
“자글레투르의 아록입니다.”
자글레투르는 베르데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항성계로,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늘 뺏기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쟁터다.
특히 아록은 베르데의 잔당이 상당수 남아있는 행성.
이때 장관은 허슬리가 자신에게 보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를 무의식적으로 입에 담았다.
“망명.”
블루의 행성방위부 장관 아들이 그린의 중책을 맡는다면, 그것만큼 꼴사나운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장관님. 괜찮으십니까?”
“기알토 보좌관.”
“예, 장관님.”
“내 자네를 믿어도 되겠나?”
장관의 이 대사가 기회를 주기 전에 습관처럼 하는 멘트임을 아는 보좌관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답했다.
“맡겨 주신다면 어떤 일이든 만족하실 수 있도록 해내겠습니다!”
“듬직하구먼. 내 사조직을 모두 데려다 쓰게.”
10만에 달하는 정예 병력을 지휘할 권한을 주는 장관의 말에 보좌관은 울대를 꿀렁이며 입을 열었다.
“반드시 도련님을 확보하겠습니다.”
“아닐세. 아무리 나에게 소중하다 하여도 배반자의 말로는 죽음이 어울리지 않겠나.”
아들을 죽이라는 서슬 퍼런 명령에 잠시 망설인 보좌관이었으나 이내 가족을 생각하며 군례를 올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기대하지.”
보좌관이 나가고 혼자가 된 장관은 전날 받은 편지를 품에서 꺼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네놈이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나. 고작 아들 따위에 발목이 잡힐 줄 알았더냐.”
조소를 머금는 장관이었다.
* * *
그 시각, 아록에서 미케일 행성으로 넘어온 두 도둑. 록시와 허슬리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특성 재사용까지 1시간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곧이군요. …그런데 지구 말로 성동격서라고 했던가요? 제독님의 계략이 대단합니다. 솜브리오 함장님도 놀라지 않았습니까.”
허슬리의 감탄에 록시는 덤덤하게 반응했다.
“저는 비틀린 인성을 가진 지성체가 어떻게든 상대를 괴롭히기 위해 짜낸 잔꾀라고 생각합니다만.”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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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