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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82화 (182/201)

<182화>

얼음 송이 작전 (2)

“왕이시여, 자글레투르 항성계에 그린의 강습함이 나타났습니다.”

“적의 수는?”

“1기뿐이옵니다.”

신하의 보고에 답하면서 결재를 진행 중이었던 아줄의 왕은 손을 멈추고 보고자를 쳐다본다.

“1기?”

고작 1기를 처리 못해서 자신에게까지 보고하냐는 질책에 신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보, 보고드리는 이유는 6시간째 아군에게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글레투르 순찰대는?”

“송구하오나 순찰대도 아직….”

최근 확보한 국경인 만큼 당장 전쟁을 벌여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물자와 군대가 배치된 곳이 바로 자글레투르다.

그런 곳에서 6시간이나 베르데의 강습함이 방치되고 있다는 건 국경에 구멍이 뚫렸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기에 왕은 한숨과 함께 명령했다.

“관련 부처 장관들에게 실망이 크다고 전하게. 그리고 오늘 안에 그 강습함을 나포하지 못하면 귀장식을 떼라는 말도 같이.”

아줄의 귀장식은 신분을 의미한다. 그걸 떼라는 말은 ‘너는 지금부터 시궁창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예!”

* * *

자글레투르 항성계 외곽의 이름 없는 소행성.

국경을 어지럽히던 베르데의 강습함이 주포에 마법을 장전한 아줄의 전함 1천여 척에 포위되었다.

“나포했습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베르데와의 외교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해선 선원이 필요하니 살려오라는 명령을 받은 국경수비대장은 직속 수하 3백을 데리고 강습함 내부로 진입했다.

“대장님, 아무도 없습니다.”

“기관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개한 기술이 적용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AI 쪽 같은데, 분석실에 의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경수비대장은 엔지니어가 말한 AI라는 게, 고대에 문명 전체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사장된 그 기술을 말하는 건지 재차 물으려는 때에.

-명예를 위하여!

함선 전체에 울려 퍼지는 베르데의 목소리.

“적이다! 전투 준비!”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비대원들은 보호 마법과 공격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해 임전 태세를 갖췄다.

이때 엔지니어가 뿌려둔 탐색 마법이 경고를 보내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대장을 불렀다.

“대장! 당장 나가야 합니다. 함선 전체가 함정—”

콰쾅!

강습함 내부에 숨겨둔 핵폭탄들이 일시에 폭발했고 국경수비대장을 비롯한 300명의 아줄은 먼지로 산화했다.

이 사건은 즉시 각국 통치자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 * *

베르데 행성, 대전.

“황제 폐하, 자글레투르에서 활약하던 아군 함이 명예롭게 적들을 물리쳤사옵나이다.”

“훌륭하군. 그 명예로운 자의 이름은 무엇이지?”

“송구하옵게도 덧씌운 외장갑으로 인해 소속을 알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덧댄 외장갑은 강습함을 누가 운영하는지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남만혁의 술수였다.

“하긴, 그렇기에 이런 멋진 전투를 할 수 있었던 거겠지.”

국경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베르데의 왕에게도 강습함의 전투에 대한 보고가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포위되었다는 말엔 황제가 지원군을 보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대신들이 ‘저들의 명예를 빼앗을 셈이시라면 말리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에 명령을 거두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저곳은 전쟁터가 되었을 것이다.

“분투한 강습함에 2등급 명예 훈장을 수여하고 선원의 가족이라는 자들이 나오면 조사 후에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라.”

“알겠사옵나이다.”

* * *

[전쟁 이후 처음으로 등장하는 2급 명예 훈장. 강습함 선원들의 명예로운 최후!]

[황제의 극찬! 그들은 영원히 베르데의 군인.]

[아줄의 왕,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행위.’ 베르데의 강습함을 비난!]

[베르데와 아줄, 전쟁 초읽기!]

“이번 작전의 메인은 저희가 아니었나 봅니다.”

다인승 에어콥터 정류장에 설치된 뉴스란의 기사를 읽은 허슬리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하자.

“제독을 이해하려 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속이는 데 타고난 인간입니다.”

허슬리와 록시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선소에서 설계도와 핵심 기술로 예상되는 자료들을 훔쳐 나왔다.

당시에는 무척 긴장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으나 작전 자체는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허슬리는 그 이유가 국경에서 활약한 강습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습니까. 언젠가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곧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럼 저희는 이제 복귀하는 겁니까?”

허슬리가 묻자마자 록시에게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보낸 이 : 재촉하는 구렁이]

[제목 : 여유 있지?]

[내용 : 거기 함선 건조와 관련된 기술자들도 데려와. 필요하면 정체 밝혀도 되고.]

메시지의 기저엔 어차피 튀는 마당에 정체 좀 들켜도 상관없다는 남만혁의 심리가 깔려 있었고 이를 간파한 록시는.

“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홀로폰에 침 뱉는 시늉을 한 그녀의 과격한 행동에 놀란 허슬리가 묻자 록시는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다음 임무를 알렸다.

“아, 그들의 숙소 위치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허슬리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지구의 5성급에 비견되는 화려한 호텔이었다.

“타국의 영입? 설마, 베르데를 말하는 건가? …찾아와준 건 고맙네만, 거절하지. 당신들의 방문은 없었던 일로 하겠네.”

“베르데의 기술자로 일할 생각이 없냐고? 그 야만의 세상에서 무엇을 한단 말이냐. 그 정도는 아니다? 하! 이것들이 나를 멍청이로 아나. 꺼져!”

“1년에 5억 크레딧? …나를 높게 쳐줘서 고맙네. 하지만 이곳에 가족이 있어서 떠날 수 없어.”

쿵.

록시는 허슬리가 아는 기술자들을 찾아다니며 제안하였으나 모조리 거절당했다.

“록시 소령님. 제독께서 정체를 밝혀도 된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베르데에서 온 것처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독의 목적은 그린과 블, 아줄의 분쟁입니다. 이왕이면 내부에 균열 하나 정도 내어두면 좋으니까요. 그리고, 베르데에 갈 의지조차 없는 자가 다른 하위 차원으로 가겠습니까.”

허슬리는 록시가 특성만으로 소령 계급을 단 것이 아니라는 걸 이 순간 깨달았다.

그렇게 포기하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방금 닫혔던 문이 다시 열렸다.

“잠깐 기다려보게.”

흰머리가 희끗한 아줄의 남성이 문자가 적힌 메모지를 록시에게 넘기며 말을 이었다.

“내 손자 놈의 주소일세. 실력이나 지식은 나 못지않네만, …솔직히 말함세. 천성이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으려는 놈일세. 자네들이 데려다 써 주게.”

록시와 허슬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곧장 주소가 적힌 곳으로 이동한 두 사람은 다 무너져가는 허름한 집 앞에 도착했다.

뚱…, 땅…, 뚱….

느릿하게 흘러나오는 쇳소리에 의아해하며 대문을 두드리자 다크서클이 짙은 아줄이 스파크가 튀는 독특한 손 망치를 들곤 문을 열었다.

“누구?”

“저희는—”

허슬리가 나서려 하였으나 록시가 그의 앞을 막았다.

“노동부에서 나왔다, 악스 카르타. 본인 맞나?”

“힉!”

군모를 한차례 만진 록시가 위압적인 표정을 지으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주 8시간 근무를 어긴 죄로 20년간 노역형.”

“그, 그럴 리가 없다!”

“…이었으나. 그대 조부의 헌신을 참작해 10년형으로 감형한다.”

허슬리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해대는 록시의 언사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할아버지께 전화 한 통만 하게 해줘!”

“얼마든지.”

얼마 후 통화를 마친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무언가를 고민하다 이내 데려가라는 듯,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허슬리, 이 자의 팔을 묶고 두건을 씌워 시야를 차단하세요.”

“예.”

악스가 포박된 것을 확인한 록시는 곧바로 이중선택 특성을 사용해 넥서스로 귀환했다.

“수고했다.”

그들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던 솜브리오 함장이 치하하자 록시는 어깨를 으쓱였다.

“쉬운 임무였습니다.”

“자네에게만 그럴 걸세. 이 아줄이 기술자인가? …기드빈, 전송실로 와주게.”

몇 초 지나지 않아 전송실의 문이 열리고 기드빈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이 자를 검진소로 데려가게. 적당히 훈련도 시키고. 아, 허슬리도.”

검진소는 간섭계와 치유계 각성자가 배속된 시설이다.

그러므로 솜브리오 함장의 뜻은 이 아줄들이 첩자일지도 모르니 검사를 해보라는 의미였다.

“예, 써!”

록시는 함장과 둘만 남게 되자 이번 임무가 종료된 것이 맞는지 물었다.

“그래, 자네는 본대로 복귀해도 좋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시간이 될 때까지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러게.”

그렇게 전송실에서 록시까지 떠나 혼자가 된 솜브리오가 중얼거렸다.

“…이제 전쟁만 터지면 얼음 송이 작전은 완성이군.”

만지려 하면 녹아 사라지는 얼음 송이.

철저히 이목을 모은 후 흔적 없이 사라지겠다는 의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전명이었다.

* * *

아줄이 강습함을 동원한 베르데의 도발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스탠스를 취하자 안 그래도 국경에서 산화한 동족의 멋진 최후에 감화되어 있던 베르데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쟁을 선포했다.

명분은 ‘민간 베르데를 1천 기의 함선을 동원해 포위 섬멸한 비겁한 블루!’였다.

명분도 뭣도 아닌 주장에 타국의 비난이 쇄도했으나 늘 그렇듯 베르데는 무시로 일관했다.

이에 아줄의 왕은 장관들을 긴급 소집했다.

“제게 이번 전쟁을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저 무식한 그린 놈들을 처단하겠습니다!”

왕의 어전에서의 확언은 늘 세 번 네 번 생각하고 말해도 부족하였으나 술라 행성방위부 장관이자 허슬리의 아버지, 자우트 막시무스는 과감하게 나섰다.

“자우트.”

“예, 전하.”

“자네는 멀지 않나.”

곧 전장이 될 자글레투르 항성계와 술라 행성이 위치한 항성계는 끝과 끝.

이를 왕이 지적하자 자우트는 자신의 가슴을 때리며 울분을 토하듯 답했다.

“비록 노쇠하여 후배에게 최전방을 내주었으나 마음만큼은 아직 아이시클 함대에 있습니다! 제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부하와 아들에게 꼭 증명하고 싶습니다. 부디 기회를 주십시오!”

“자네의 의지는 알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네. 주변을 보게나.”

자우트가 회의실을 둘러보자 뭔 개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장관들이 보였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 사병을 동원하겠습니다.”

“호, 몇이나?”

“전부!”

“10만 정병이라. 그들을 키우는 데 많은 자금이 들었을 텐데. 자네도 참 충신이야.”

자우트 장관은 자신의 사조직은 2만 정도로 축소해 알렸고, 실제 규모는 극비로 유지해왔다.

그런데 왕이 이를 안다는 건, 조직 내에 첩자가 있다는 뜻. 자우트 장관은 표정 관리를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렇습니다.”

“좋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국가에 헌신하겠다는데 내 어찌 말리겠는가. 다들 동의할 거라 믿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왕이 자우트 장관을 이번 전쟁의 총지휘관으로 위임하며 긴급 소집은 해산되었다.

“벡 비서, 뒷정리 부탁하지. 나는 이만 쉬어야겠어.”

“알겠습니다.”

아줄의 왕은 서재로 돌아와 책상에 놓인 쪽지 한 장을 다시 살폈다.

[가장 처음 총지휘권을 주장하는 자는, 10만 사병을 가지고 있다. -뾰로롱☆마법 소년 블랙 위치]

긴급 소집이 열리기 몇 시간 전에 도착한 의문의 종이 편지.

이는 남만혁이 허슬리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내부 분열을 위해 공작한 것이었고 자우트 장관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왕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와득.

볼품없는 글씨가 휘갈겨져 있는 편지를 구긴 아줄의 왕은 살기를 내뿜으며 읊조렸다.

“네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안심하지 마라. 나는 나를 이용하려던 자를 살려둔 적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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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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