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83화 (183/201)

<183화>

얼음 송이 작전 (3)

“이번 작전 진행하느라 고생했어. 솜 함장.”

최선은 대규모 전쟁이었으나 일단 국지전 수준은 넘겼다는 점에서 소기의 목적을 완료한 셈이다.

“동료들이 잘해줬습니다. 특히 록시 소령과 허슬리 소위의 조력이 없었다면, 이번 작전은 조기에 난파되었을 겁니다.”

솜 함장이 말은 저렇게 겸손하게 해도 그의 용병술과 전술이면, 시간의 차이지 결국 해냈을 거라 본다.

“아무튼, 블루 측은 군을 10만 이상 운용하지 않을 거라는 거지?”

전쟁이 시작된 지 1주. 그린과 블루의 전세는 팽팽하게 흘러갔다.

우주전에서는 그린이 밀렸으나 어떻게든 행성에 착륙하기만 하면 블루가 손을 써볼 틈도 없이 한순간에 군대를 학살하고 점령해버렸다.

“허슬리의 말에 따르면 자우트 장관은 자신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이며.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반드시 외부의 개입을 막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블루가 우세한 우주전이 대부분이라 해도 개인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을 텐데.

내 눈엔 자우트 장관이라는 블루 놈이 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처럼 보인다.

“허슬리는 자우트가 어떻게 돼도 상관없대?”

“허슬리는 강제로 유전자 조작을 당해 키워졌습니다. 그는—”

솜 함장의 입에서 허슬리의 과거 이야기가 나왔고 상당히 우울한 스토리였다.

블루는 아기일 때부터 마법적 소양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데, 허슬리는 최상위권으로 태어났다.

이를 알게 된 자우트 장관이 그의 부모를 죽이고 아기인 허슬리의 유전자를 조작해 자기 아들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허슬리의 뇌가 어머니 안에 있을 때 대부분 완성된 상태라 자기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 어느 정도 인지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으나 성장하면서 최악의 범죄행위라는 것을 알게 됐고 점점 자우트 장관과 거리를 두었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치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게 살인이나 전쟁이라 하여도.”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쪽 차원에도 흔하게 보이는 정치인 유형이라, 새롭진 않다 싶어서. 참, 다음 작전은 내가 진행할 테니까 솜 함장은 휴가라도 좀 다녀와. 글로리아 차원은 위험하니까 지구나 싱크레아 쪽으로.”

“그렇지 않아도 선원들과 휴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딜 가든 돈은 리쳇이 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좋은 곳에서 비싼 거 먹어.”

“감사합니다. 제독.”

와아아!

제독! 제독! 제독!

나는 함교에 있던 선원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사무소로 돌아왔다.

“얼음 송이는 잘 마무리됐고. 리쳇, 로카는 뭐래?”

-차원 열차 두 번까지는 쓰게 해준다네.

방송국 로카는 현지 조사를 위해 회사용 차원 열차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를 내가 사적으로 쓸 수 있는지 물었다.

다음 작전을 위해선 글로리아 차원으로 넘어갈 필요가 있다.

넥서스를 이용할 수 있었으면 아주 좋았겠으나 안타깝게도 내가 탑승한 상태에서 소환 해제하면 나는 덩그러니 남고 넥서스만 사라진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차원 열차를 빌리거나 구매할 생각으로 알아보니 현재 우리가 보유한 크레딧으로는 어림도 없고 구매 자격도 되지 않더라.

결국, 빌리는 쪽으로 알아보다 우리와 협약관계인 로카에 생각이 닿은 것이다.

“의외네. 허슬리를 언급한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설마 내가 다 된 밥에 재 뿌리겠어? 돈으로 해결했지.

허슬리의 위치는 그린 측 진영이어야 한다.

그래야 자우트 장관이 발을 안 빼고 전쟁을 지속할 테니까.

이를 위해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그린의 항성계에 ‘허슬리라는 전사가 꽤 명예롭더라.’라는 소문을 흘리는 중이기도 하다.

“언제 보내준대?”

-요청하면 바로. 불시 검문에는 걸릴 수 있다고 했으니까, 네 스승에게 도와달라고 해.

나는 군말 없이 스승님에게 연락을 넣었고 와도 좋다는 답신을 확인한 뒤 곧장 아카데미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게나.”

문을 열자 안에는 안토니오 골든우드가 스승님의 침상 옆에 앉아 있었다.

“일찍도 오는군.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나?”

“스승님 생신은 아직 두 달이나 남았잖아?”

“무심한 놈. 오늘은 우리가 스승님과 사제관계를 맺은 날이다.”

아? 그게 뭐.

한심한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자 안토니오는 고개를 홱 돌리며 스승님의 손을 붙잡으며 토로한다.

“스승님, 저렇게 은혜도 모르는 놈이 뭐가 좋다고 수제자 자리를 주셨습니다.”

“허허, 그러게 말이야. 오늘부터 자네가 진정한 내 수제자일세.”

“정말입니까?”

“물론.”

“그럼 제가 수제자로서 스승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겠습니다!”

“그리될 걸세.”

스승님이 보유한 건 평생을 모은 각 학파의 마법서와 본인이 연구해 집필해둔 제목 없는 마법서 정도다.

물론 구미가 당기긴 하나 안토니오에게 넘어간다 해도 내가 원하면 볼 수 있었기에 나는 순순히 동의했다.

“그래, 네가 수제자 해라. 나는 평제자 하련다. 스승님.”

안토니오를 옆으로 밀치고 침상에 바짝 붙어 앉았다.

“이러는 것을 보니 또 부탁할 게 있는 게로구나.”

“여전히 감이 예리하십니다. 별 건 아니고 교장을 다른 차원으로 보냈던 그 은폐 마법을 제게도 걸어주십쇼.”

스승님과 안토니오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이유가 무엇인고?”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윽박 아닌 윽박에 나는 글로리아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스승님은 깊게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 마법을 수제자에게 전수해 줄 테니 언제고 내가 없거들랑 이 녀석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라.”

스승님이 저리 말씀하시는 거 보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은폐 마법을 익힐 수가 없는 모양이다.

“스승님….”

“아직은 괜찮으니라. 만혁이 자네는 사흘 뒤에 다시 오게. 안토니오, 우리 수제자는 오랜만에 내 강의를 들어야겠구나. 괜찮겠느냐?”

“더없는 영광입니다. 스승님!”

소환 학파와 마탑의 일은 물론이고 지구방위대 대표로서 할 일이 태산 같을 텐데 녀석은 작은 망설임조차 없이 답했다.

“허허.”

나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며 방을 나왔고 안나벨의 배웅을 받으며 사무소로 돌아왔다.

“…나 혹시 따돌림당한 건가?”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하지. 매저드 교수도 사람이야, 자기에게 지극 정성인 제자에게 마음이 더 가지 않겠어?

윽.

* * *

그로부터 사흘 뒤. 아침부터 울리는 홀로폰을 확인하니 메시지가 한 통 와 있었다.

[보낸 이 : 총대 잡은 금나무]

[제목 : 스승님의 연구실로 와라.]

[내용 : 작은 선물이라도 사는 게 좋을 거다.]

어지간한 일로는 조언 따위를 하지 않는 놈의 심성을 알기에 나는 의심 없이 백화점 상품권과 꽃을 준비해 연구실로 향했다.

“안나벨의 생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를 보며 쏘아붙이듯 말하는 안토니오.

수줍게 안경을 밀어 올리며 소파에 앉아 있는 안나벨을 확인한 나는 카츄의 배를 긁어 꽃다발을 꺼냈다.

“어머.”

“매저드 님이 주문하신 꽃입니다.”

“교수님!”

스승님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내 눈짓을 받고는 허허 웃었다.

“딱 맞춰서 왔구먼. 받게나, 내 선물일세.”

“예뻐라. 고마워요.”

생화의 향기를 맡는 안나벨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스승님이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로 나를 툭 건들고는.

“고맙네.”

“저야말로 늘 고맙습니다. 스승님.”

그리고는 슥 백화점 상품권을 그의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말을 이었다.

“마법과 관련된 선물 하지 마시고 이거 주세요.”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는 스승님.

“…이게 낫겠느냐?”

“무조건.”

“끙, 알았다.”

그렇게 안나벨의 생일 축하 파티가 마무리되자 안토니오가 본론을 꺼냈다.

“은폐 마법은 익혔다.”

“그런데?”

“나도 가지.”

“어딜.”

“네가 가는 곳.”

“뭐 하러.”

“난들 네놈 따위를 따라가고 싶겠느냐. 스승님이 당분간은 너를 도우라 하셨다.”

내가 스승님을 돌아보자.

“수제자가 평제자를 돌봐야 하지 않겠느냐.”

“흥.”

그래서 저런 거만한 얼굴이었구만.

“그냥 저 혼자—”

“둘 다 고생하게나. 쿨럭, 쿨럭.”

“교수님!”

안나벨이 스승님을 부축해 침상에 눕히고 우리에게 얼른 나가라는 듯이 손짓한다.

나는 기침하는 스승님을 주시하다 고개를 저었다.

‘연기는 잘 못 하시네.’

저 기침이 진짜일 때와 가짜일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가짜다.

내가 다른 말 못 하게 그냥 입을 막아버린 거다.

에휴.

“가자, 금나무야.”

“골든우드다. 개빌.”

개빌은 또 언제적 개빌이야. 하여간 유치하긴.

그렇게 연구실에서 나온 우리는 싱크레아의 별장으로 이동했다.

안토니오는 왜 이런 습한 곳으로 왔냐며 투덜댔으나 나는 상대하지 않았다.

얼마 후.

별장의 지하, 어떤 지성체의 눈도 닿지 않는 은밀한 장소에 도착했다.

“은폐 마법 걸어.”

“그 전에.”

“또 뭐.”

“스승님께 들었다. 다른 차원의 존재가 지구를 공격할 수 있다지?”

와. 아예 한배를 태우려고 작정하셨구나.

하기야 스승님으로선 내가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긴 하지. 그래서 이놈을 지구방위대 대표로 세운 거긴 한데….’

스승님께 공유한 비밀이 새어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 믿음을 깰 정도로 안토니오의 적극적인 조력이 필요하다고 여기신 건가.

“그래.”

“사실이었나. 그럼 왜 가만히 있지?”

“가만히? 내가?”

“그렇게 강한 적이 존재했으면 진작 불러들였어야지!”

“뭔 소리야.”

“스승님이 살아계실 때, 적을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야, 이 멍청한 놈아.”

“하? 어디 지껄여 보시지.”

“그다음은 어쩔 건데.”

“다음?”

“외부의 적이 한 번만 공격해온다는 보장이 있냐고. 그리고 스승님의 힘으로 막아본들. 돌아가신 뒤엔?”

“…….”

“인류 전체가 강해져야 해결될 문제야. 그래서 내가 이 지랄발광을 하는 거고.”

거짓말이다.

내 생각엔 그블린 전체를 스승님 홀로 감당할 수 없다. 지구방위대가 백업하고 각국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해도 승패는 불분명하다.

막말로 블루가 작정하고 아이시클 함대를 운영해 고드름만 멀리서 쏘아내도 스승님은 방어에만 급급할 것이다.

그 사이 그린이 상륙해 게이트를 설치하면, 지구는 끝.

나는 이 빌어먹을 협력체계를 붕괴시키기 위해 둘 사이를 필사적으로 이간질하는 중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봐야 매저드 신봉자인 안토니오는 절대 믿지 않을 테니 그럴듯한 거짓으로 둘러댔다.

“네놈이 그렇게나 인류를 생각하는 줄은 몰랐군.”

“어쨌든 나도 이쪽에 가족이 있는지라. 다음 세대도 생각해야지.”

“흥. 퀸과의 이야기는 들었다. 아카데미 때도 붙어 다니더니.”

“뭐, 그렇게 됐다. 다 끝나면, …아니다.”

저 자식 때문에 큰일 날 뻔했네.

“말을 왜 하다 말지?”

“됐으니까 얼른 은폐 마법이나 걸어. 시간 없다.”

“난 네 부하가 아니다. 명령하지 마라. 남만혁.”

그러고는 은폐 마법 주문을 캐스팅하는 안토니오의 정수리에 꿀밤을 꽂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으나 인내했다.

이후 안토니오가 로카 측에서 보낸 차원 교차로 좌표로 차원문을 열었고 그곳에서 대기 중이던 차원 열차에 탑승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차장의 물음에 나는 생각해둔 장소를 입에 담았다.

“레드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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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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