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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86화 (186/201)

<186화>

마몬 x 크록타

“앞, 앞! 이 미친 새끼야아아!”

쾅—!

* * *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안토니오 골든우드는 본인이 한 약속을 지켰다.

그린의 함선을 나포하기 위해 범죄자들이 탄 소형선이 어지럽게 튀어 나가는 사이 은폐 마법을 성공시킨 것이다.

핵폭탄을 실은 배를 그린의 왕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함교에 들이받았다.

물론, 우리는 폭발하기 직전에 빠져나왔다.

영역으로 우주복을 대신하고 안토니오가 은폐 마법으로 우릴 숨겼다.

“에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확인한 폭발은 안타깝게도 그린의 권능에 의해 막힌 듯 보였다.

초록색 반구형 실드 위를 폭발의 잔해가 미끄러져 내린다.

이 기습으로 놈을 죽였으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황제의 무용을 알기에 애초에 큰 기대는 안 했다.

내 목적은 그블린을 이간질해 지구 차원 발견까지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

이것으로 몇 년은 벌었겠지.

“돌아가자.”

* * *

부욱.

황제의 이마가 갈라져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베르데 모선의 실드는 황제의 권능과 동기화되어 있었고, 실드의 충격 일부는 황제가 감당한다.

그리고 동기화 권능에 이만한 타격을 준 생명체는 지금껏 블루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폐하! 어서 치료를!”

“이 정도로 호들갑 떨 것 없다.”

급속도로 아무는 상처. 황제는 얼굴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쓸어내렸다.

“날파리 놈들이 블루의 명령을 받은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습니다, 일전 블루의 선봉을 농락한 것도 서로 짜고 한 짓이 틀림없습니다.”

“스루파 장군도—”

황제가 손을 내젓자 입을 닫는 대신들.

“방금 폭발의 분석은?”

“잔해에는 블루 놈들의 마법흔이 남아 있었습니다. 폭발의 형태가 아군의 명예로운 강습함과 유사한 것도 위장을 위함이 아닐지요.”

아줄의 마법흔은 남만혁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아줄의 진영 내에서 은폐 마법이 풀렸을 때 탈출하는 과정에서 선체를 스친 다수의 마법에 의해 남은 것이다.

“블루의 왕이 나를 암살하려 했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했을 리 없다.”

대신들은 완벽한 암습이었고, 폭발의 강도가 몇 배만 더 강했다면 황제의 머리가 날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허면 블루가 고용한 용병들이 아닐지요.”

“그렇겠지. 흠, 만나봐야겠군.”

“누구를 말씀하시는지요?”

“마문.”

아줄의 왕, 마문.

“폐, 폐하!”

“통신을 열어라. 그 뻔뻔한 면상을 확인해야겠다고 전하도록.”

황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기에 신하의 판단 여부와는 달리 주변 인사들은 이미 아줄의 왕에게 통신을 넣고 있었다.

통신 담당이 공손히 다가와 통신기를 건넸고 거기엔 아줄의 왕이 화려한 책상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볼품없는 귀장식을 하고 다니는군.”

-고귀함을 모르는 그린이여. 내 넓은 아량으로 그대의 모욕을 용서하리다.

방금 난 상처 부위에 힘줄이 돋은 베르데의 황제는 점잖은 태도를 집어치우고 있는 대로 욕을 쏟아냈다.

-그만. 전면전을 선포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 아니라면, 그 마굴 같은 주둥이를 다무시오.

글로리아 차원을 양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진영에 있어 10만 규모의 전투는 국지전에 불과하다.

전면전이 시작되면 몇 세기간 이어지므로 양국에 득 될 것이 없다.

이에 베르데의 왕은 손걸이를 꽉 쥐어 부수는 것으로 분을 삭힌 뒤 본론을 꺼냈다.

“자폭 작전. 네놈의 짓이냐.”

-자폭? 모르는 일이오. 명분을 만들고 싶은 거라면 좀 더 머리를 굴리는 게 어떻소?

베르데의 황제는 마문의 말이 진실임을 권능 통해 알아차렸다.

“네놈의 수하가 벌인 짓일 수도 있다. 확인해봐라.”

-그린은 그렇게 돌아가나 보군. 우리는 그런 몰상식한 충성경쟁 따위는 없소이다.

진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나?”

-사내답지 못하게 끈질기군. 우리야말로 그대들의 공작에 치를 떠는 중이거늘.

“공작? 무슨 헛소리지?”

-조선소.

“조선소?”

-그 엉성한 얼굴로 연기라니. 진절머리가 나는구려.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부르르 떤 베르데의 황제가 당장 전군 진격을 명령하려다 간신히 인내하고 입을 열었다.

“우리 짓이 아니다.”

-뻔뻔하군. 전선이 시끄러운 사이 후방에서 우리 함선 설계도를 털어갔지 않소! 심지어 기술자들을 포섭하려는 치졸한 시도도 했잖소!

“그딴 불명예스러운 짓을 이 몸이 할 것 같나! 그리고 네놈들의 함선을 우리가 대체 어디에 쓴단 말이냐!”

-하, 그건 훔친 놈이 알겠지!

뚝.

일방적으로 끊어져 버린 통신. 손가락 크기의 통신기를 들고 있던 황제는 이를 까득 갈며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 시건방진 블루 새끼!”

* * *

“크록타가 20년 만에 통신까지 걸며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닐 터.”

마문은 베르데의 황제, 크록타의 이마의 상처가 아문 흔적을 떠올리며 귀장식을 매만졌다.

“전하, 아군 정찰함이 그린의 모선에서 일어난 폭발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는 건, 역시 제3 세력이 존재한다는 건가. 흠…, 아. 사령탑주가 와 있었다고 했나?”

“급한 일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귀찮으면 돌려보내겠다는 신하의 말에 마문은 손가락을 까닥였다.

“들여보내.”

우웅.

전송진을 타고 대전에 도착한 사령탑주는 곧장 마문에게 예를 표한 뒤 검은 구슬을 꺼냈다.

“무엇이냐.”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그린 놈들이 의뢰를 맡긴 인간의 머리이옵니다.”

“성과는 있나?”

“방금 막 추출 작업이 끝났사옵니다.”

처음 사령탑주는 교장의 머리에서 뽑아낸 정보들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그린에게 크레딧을 뽑아낼 생각이었으나 투기장에서 황제와 벌인 마지막 일전을 확인하곤 곧장 마문에게 달려온 것이다.

드물게 미소를 지은 마문은 옥좌에서 일어나 부복한 사령탑주의 어깨를 짚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과연 내 조카구나. 장하다.”

사령탑주는 마문이 아끼는 조카로, 이는 대외적인 비밀이었다.

사령탑주는 스스로의 힘으로 탑주가 되고 싶어 했고 왕은 그런 조카를 순수하게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두 사람의 긍정적인 관계는 그린에게 있어서는 불행이었고 남만혁에게는 비극이었다.

“—이상입니다.”

“지구라.”

그린의 황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마문 역시 각성자라는 존재에 커다란 불안을 느꼈다.

“지구의 좌표를 찾아낼 수 있겠느냐.”

“예! 이것의 머릿속에 차원 좌표가 존재했습니다.”

교장의 젊은 시절, 심계에서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사용했던 좌표였다.

“정찰대를 보내고 실시간으로 내게 보고하도록.”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은 불쾌한 보고를 들어야만 했다.

“해당 차원이 격리 중이라 좌표가 중앙우주국으로 연결되옵니다.”

“이러한 무용을 가진 차원이 격리 중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감사청에 유착 관계가 의심된다고 알려라. 내 이름을 써도 좋다.”

“예, 전하!”

* * *

그린에 자폭 공격을 선물하고 지구에 돌아온 지 사흘이 흘렀다.

평소처럼 컨테이너 사무소에서 리쳇과 함께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던 중,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농장주. 우리 큰일 났어.

“뭔데.”

-중앙우주국에서 지구 격리 해제한대.

“뭐? 갑자기 왜?”

-우리랑 계약한 부서가 감사를 받아 공중분해 되면서 전 차원 격리 기간 검토를 다시 했고, 그 결과 우리는 격리 대상자가 아니래.

“로비도 안 통해?”

-크레딧 다 털어서 간신히 격리 해제 준비기간 반년 받아냈어.

“풀린 이유는 모르고?”

-중앙우주국의 부패를 의심한 익명의 제보자가 있었다는데, 자세히는 말 안 해줘.

“썩을, 이러면 내가 글로리아에서 고생한 게 다 뭐가 되는 거야.”

-수확이 없는 건 아니지. 아이시클 함선 설계도랑 그걸 만들 기술자는 데려왔잖아.

“내 목숨을 건 자폭 공격은?”

-안토니오 골든우드가 은폐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됐지.

은폐 마법이 유용한 건 인정하겠으나 내가 궁극적인 목표는 그블린 간의 전면전이었다.

차원 격리가 해제되더라도 자기들끼리 전쟁하느라 이쪽은 신경도 못 쓰게 말이다.

“크림슨래빗에게 연락해서 시작품이라도 좋으니 빨리 함선 뽑아달라고 해. 히어로들 태울 배는 있어야지.”

-이미 그렇게 지시해놨어. 마침 네 부하들이 나포한 함선이 아이시클 함선이라 프로토타입은 금방 뽑힐걸?

범죄자들은 자신의 욕망과 내 명령이 합치해서인지 평소의 기량 이상으로 활약해 아이시클 함선을 거의 온전한 상태로 나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단원이 8백 명 이상 죽었으나 어차피 처리할 생각이었으니 수고를 던 셈이다.

“부길드장은?”

내가 그들에게 준비해뒀다고 했던 해체업자는 사실 리쳇이 제어하는 드론이었고 도크에 아이시클 함선이 도착하자마자 곧장 분해에 들어갔다.

짧은 순간이라고는 하나 블루의 함선이 도크에 들어오는 걸 누가 보기라도 했다간 일이 커졌기에 이를 다른 함선으로 위장하고 덮어준 것이 바로 부길드장이었다.

-깔끔하게 처리했지.

얼핏 들으면 죽였다는 것 같지만 반대다.

고향의 눅눅한 늪지를 항상 그리워하던 그에게 1등급 습지를 구매해 넘겼다.

지구로 치면 강남땅에 건물을 사준 격이다.

“은퇴하고 고향에서 유유자적한 노후라. 좋겠네, 도마뱀 자식.”

저것이야말로 나의 꿈이다.

욕심을 좀 부리자면, 옆에 그레이스가 있고 어쩌면 녀석을 닮은 딸이 재롱을 피우는, 그런….

-응? 크림슨래빗이 시작품 완성됐으니 와서 보라네.

“벌써?”

-시작은 설계도 받자마자 시작했으니까.

“역시 유능한 각성자들 모아두니 시너지가 나는구만. 지금 간다고 전해.”

-오케이.

* * *

2달 후. 싱크레아의 정지 궤도, 우주 정거장.

“12번째 타입인데, 이것도 별로라고 하면 나는 손 뗄 거야.”

“누님. 그거 11번째 하는 말.”

빛나는 망치를 손에 쥔 채 크림슨래빗을 바라보는 아줄.

“악스. 네 생각에도 만혁이가 너무하지?”

악스는 허슬리와 록시가 데려온 아줄의 기술자로 현재는 싱크레아의 우주에서 이들과 함께 함선을 제작 중이다.

“그분은…. 항상 옳아.”

남만혁을 처음 봤을 때, 악스는 격의 차이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상위 종은 격의 차를 더 민감하게 느끼기에 악스가 충격을 받은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너, 누구 편이야.”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자신을 나무라는 크림슨래빗을 보며 악스는 생각했다.

‘귀여워.’

“…누님 편.”

“그럼 내 말이 맞다고 해야지!”

“알았어.”

“곧 로맨이 도착한다니까 만들어 둔 것들 꺼내 놔.”

“팩토리 할아버지는?”

“내가 모셔 올게.”

“응.”

악스가 시연을 준비하는 동안 크림슨래빗은 우주 정거장 내의 병원으로 향했다.

똑똑.

“할아버지, 저예요.”

“들어오거라.”

크림슨래빗은 전날과 달리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병실 안에서 들려오자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고 내부의 경관을 보고 경악했다.

“할아버지!”

머신 팩토리의 흉부가 열려 있었다.

“왜 그러느냐. 장기 임플란트 시술받은 사람 처음 보는 것처럼.”

밀키 마이닝은 우수한 인재가 원한다면 병들고 사라진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는 시술도 제공하고 있었다.

“안 하기로 하셨잖아요. 기계같이 살 생각은 없다면서요.”

“그래서, 싫으냐?”

“당연히 좋죠!”

맑게 웃으며 자신의 손을 꼭 붙잡는 크림슨래빗을 보며 머신팩토리는 자신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어쩌겠느냐, 말년에 그런 재미난 걸 만져버렸으니.”

아이시클 함선. 비록 설계도를 따라 만드는 작업에 불과하나 이는 머신팩토리에게 무수한 영감을 불어 넣었다.

“참, 내가 임플란트 시술을 받지 않았느냐.”

“그렇죠?”

“수술 도중에 죽음의 경계 비슷한 걸 밟았다. 닥터는 실제로 뇌파가 짧게 한 번 정지했었다고 하더구나.”

“그, 그런데요?”

“신기하게도 나는 계속 의식이 있었단 말이지.”

“오?”

“그때 새로운 세상에서 기묘한 함선을 봤다.”

“이번에도 꿈이에요?”

“그럴지도. 하지만 그 함선의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나.”

“뭐였는데요?”

“잠중함. 온갖 에너지 파동을 이용하는 특별한 전함이었다.”

평소에도 꿈에서 봤다는 이유로 이상한 발명품을 만들어대던 머신팩토리였기에 크림슨래빗은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여기며 가볍게 답했다.

“저랑 악스도 도울게요.”

머신팩토리가 건강해져서 마냥 기쁜 크림슨래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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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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