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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87화 (187/201)

<187화>

잠중함

시대를 앞지른 장인의 영감은 언제나 기발한 것이라 종종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처음 머신팩토리가 ‘잠중함’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함선 설계도를 나에게 내민 순간이 바로 그러했다.

“아이시클은요?”

“복제 자체는 끝났으니 악스와 크림슨래빗에게 맡겨두면 될 일이야.”

“어르신이 거들면 더 빨리 완성되겠죠.”

“원한다면 그리하마. 우선 내 제안을 들어보거라.”

“웬만해선 설득 안 될 겁니다.”

“우선 지구의 내 동료들을 불러올리자. 이 설계도를 보면 날아올 녀석들을 몇 알고 있다.”

“이거 규모가 발키리의 3천 배가 넘는데, 몇 명으로 되겠어요?”

내가 설계도를 보자마자 만류한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커도 너무 크잖아.

“소재 조달은 록시 양이 수고해주면 그만이겠고, 가공 조립은 우리 유능한 리쳇 양의 드론에게 부탁하면 된다.”

실제로 아이시클을 저런 방식으로 찍어낼 예정이긴 하다.

그러나 리쳇의 소스가 무한한 것은 아닌지라 잠중함이라는 걸 추가로 건조하게 되면 아무래도 아이시클의 수를 줄여야 한다.

남은 시간은 반년.

머신팩토리가 꿈에서 봤다는 그 잠중함의 기능대로만 된다면, 히어로를 실어 나르기에 최적화된 함선이긴 하다.

회의실에 흐르는 정적.

“해보죠.”

“좋아, 내 자네를 실망시키지 않겠네.”

“대신 중간에 아니다 싶으면 바로 캔슬할 겁니다.”

내 엄포에 머신팩토리의 기계 팔이 자신의 가슴을 깡, 때린다.

“괜한 소리 말고 예산부터 주게, 되도록 많이!”

근 1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자신감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기꺼운 마음을 담아 말했다.

“진짜 기대합니다?”

“얼마든지.”

* * *

처음 지인이나 이 일에 관심이 있을 만한 장인들만 부르겠다던 머신팩토리는 밀키 마이닝의 이름으로 지원하는 막대한 예산을 보고는 마음을 달리하였는지 적극적으로 광고까지 해가며 사람을 고용했고, 현재 그 숫자가 3백이 넘었다.

전원 각 분야의 엘리트로 학계에선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이들이었다.

머신팩토리는 꿈에서 봤다는 함선의 정밀 단면도를 그들에게 들이밀며 ‘세기의 역작을 구현하기 위함이니 다들 아이디어를 내놓으시오.’라고 숫제 협박을 놨다.

그들은 머신팩토리가 뭐라 하건 단면도를 주시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리쳤다.

“전체 설계도를 내놔!”

그렇게 함선 제작을 위한 프로젝트팀이 꾸려졌고 머신팩토리의 꿈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드림시드’라는 팀명이 붙었다.

그렇게 3달, 격리 완전 해제까지 32일이 남았을 무렵.

잠중함은 전력에서 제외한 채 발키리와 아이시클만으로 그블린을 상대할 전략을 짜던 회의실로 머신팩토리가 난입해왔다.

“성공이다!”

록시랑 리쳇이 고생한 덕에 선체 자체는 진작 완성됐다.

문제는 저 엄청난 함선을 움직일 엔진과 꿈에서 봤다는 기능들을 어떻게 실현하느냐였다.

“마침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니 바로 공식화하시죠.”

오후에 진행될 모의전 브리핑을 하던 기드빈이 옆으로 비켜서자 그곳에 머신팩토리가 당당히 서더니 드론 하나를 주섬주섬 꺼내 웬 칩을 물렸다.

“리쳇 양, 띄워주게.”

-예스, 마이스터.

리쳇의 목소리와 함께 회의실 탁자 중앙에 잠중함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보다시피 잠중함이다. 외관은 다들 많이 봤으니 생략하고.”

거대한 구조물이 우주정거장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못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잠중함은 항모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네.”

머신팩토리가 잠중함의 중간을 툭 건드리자 반으로 갈라져 내부가 훤히 보였다.

“여기, 이 커다란 공간의 하얀 구체는 엔진이며 넥서스의 솔라 코어를 모방했다.”

이어지는 엔진에 대한 설명은 말이 모방이지 리쳇을 통해 전달받은 다른 차원의 지식의 총아를 자체적으로 재정립, 발전시켜 적용했다는 모양이다.

“잠중함의 핵심 기능은 두 가지. 먼저 파동 은신. 어떤 파동에도 함선을 숨길 수 있네.”

머신팩토리가 홀로그램 옆에서 손가락을 튕기자 소리 파동이 선의 형태로 시각화되었고 그것에 잠중함이 닿을 때마다 반투명해졌다.

“실제로 이렇게 투명해지진 않아. 다만 관측되지 않는 상태가 되지. 이는 내가 꿈에서 본 것을 기반으로 소환마탑의 주인인 안토니오 골드우드의 자문을 구해 완성했다.”

내가 늘 무시해서 그렇지, 금나무가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인 건 맞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마나 총량을 제외한 모든 마법적 소양이 스승님에 가장 근접한 마법사다.

“다른 하나는 웜홀이다.”

웜홀이라는 말에 회의실이 술렁였다.

“이는 모두의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지. 창밖을 봐라.”

벽면 전체가 창으로 되어 있었기에 고개만 돌리면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싱크레아 행성과 항성, 수많은 별. 이 아름다운 광경 대부분을 가리는 거대한 함선.

오!

누군가의 탄성과 함께 잠중함 전면에 거대한 검은 구멍이 생겨났고 함선은 빨려들듯 그곳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반대편 창을 보시오.”

우웅.

공간을 찢고 나타나는 잠중함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웜홀의 거리는 이론상 무제한이나, 실사용 한계는 은하 간 이동을 최대로 잡고 있다. 그 이상은 불필요할뿐더러 미지의 영역이라 실험조차 안 했다. 이번 작전이 끝난 뒤에 여유가 되면 시도할 참이다.”

다들 얼떨떨해하길래 내가 먼저 손뼉을 치자 하나둘 따라 치더니 기립박수까지 이어졌다.

흥분이 사그라든 뒤에 머신팩토리에게 물었다.

“몇 대까지 만들 수 있죠?”

“다른 건 몰라도 엔진 제작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서 남은 시간 동안엔 두 대가 한계다.”

두 대도 말이 안 되는 속도이긴 하다.

“총 세 대라, 괜찮지?”

기드빈이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해볼 만합니다. 제독님.”

“그린이야 그렇다 쳐도 블루를 상대로는 어때?”

“우리 마법사들이 이목을 얼마나 잘 끌어주느냐에 다르겠습니다만, 연습 때처럼만 해줘도 유용할듯합니다.”

아이시클의 주포는 마법사가 쏜다. 블루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마탑의 마법사들을 대거 끌어들여 함선에 태웠다.

모의전과 실전을 통해 양측의 주포를 겪어본 내 입장에선 이쪽이 사거리나 위력이 1할 정도 부족하긴 한데, 마법사 이외에는 싹 무인으로 운용된다는 장점이 있다.

“나보고 열심히 하란 소리구만.”

나도 마법사였기에 내 마나 총량에 맞춰 특수 제작된 대물 주포를 하나 맡게 되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보고드리자면, 이번 다중임무 동시수행 테스트에서 네크로 학파의 탑주, 샤아 나탈리아가 탑승한 함선이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보통 마탑 하나가 함선 하나를 담당한다.

나와 안토니오도 저 테스트에 참여했으나 순위에 들지 못한 이유는 개인이라는 한계 때문이다.

하나의 뇌로 각종 상황에 모두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대부분은 리쳇이 개발해 탑재해둔 AI에 맡기고 마나만 제공했었다.

그러나 샤아 나탈리아, 아니 네크로 학파는 온갖 기이한 연구를 진행하는 괴짜들의 집합소.

이형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건 그 어떤 마탑보다 신속했으며 고작 며칠 만에 적응을 끝내고 응용까지 해냈다. 그 결과가 저 독보적인 기록이다.

“어르신, 고생하셨습니다.”

“보고는 끝났으니 먼저 가봐도 되겠지? 여기서 내가 들어봐야 절반도 이해 못 할 터인데, 시간이 아까워.”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럼.”

머신팩토리가 떠나자 기드빈이 다시 앞에 선다.

“제독님, 오후에 있을 모의전에 잠중함을 포함시켜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이번에야말로 우주전용 히어로 코스튬의 성능을 확인할 수 있겠군요.”

크림슨래빗이 우주 괴물을 상대할 생각으로 제작한 히어로 코스튬은 사실상 모 만화에 나오는 탑승용 로봇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시클의 주포 공격을 한 번 정도는 방어할 수 있도록 외장갑을 덧대고 개인의 특성에 맞춰 커스텀을 다듬은 것 외에는 딱히 손볼 곳이 없었다.

그만큼 초기 설계가 완벽했고, 그 이상은 히어로에게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

“이전 모의전에서 스위프트랑 마가렛은 뭐래?”

“‘아카데미는 우주까지 진출할 셈인가.’, ‘이런 무식한 전투, 딱 내 타입이야.’ 모의전 후 인터뷰에서 남긴 코멘트입니다.”

이제 스위프트 자식은 나를 놀리는 건지 진심인지 모르겠다.

참고로 스위프트는 지구에서 이미 탑클래스 히어로다. ‘바람이 불면 그곳에 도움을 청해라.’라는 격언까지 돌아다닐 정도로 대중들이 신뢰하는 히어로가 됐다.

마가렛의 경우 히어로로서는 대단한 위명을 얻지 못했으나 기간트의 수장으로 유명하다.

덧붙이자면, 힘으로 그녀를 이길 생명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 전, 우주라고는 하나 한 손으로 아이시클 함선의 궤도를 수직으로 틀어버리는 광경을 목격한 뒤로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퀸은?”

“그분은 여전하십니다.”

단신으로 아이시클 9기 격파. 그러고 나오면서 한 인터뷰가 또 가관이다.

‘시간만 더 주어졌으면 다 부수는 건데.’

“적함 무력화 후 아군 구조 및 신속한 전장 이탈. 그야말로 슈퍼히어로셨습니다.”

‘퀸’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지구에서 제일 유명한 히어로가 누구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이름이다.

“내구성은 어땠지?”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만, 방어와 관련이 없는 히어로의 경우 주포 공격을 최소 한 번은 버텼습니다.”

“좋아.”

한 방 버틸 때까지 다 쏟아붓고 튀는 게 이번 전략의 대전제다.

“이상으로 금일 오전 브리핑을 마칩니다. 오후 모의전에서 뵙겠습니다. 아, 제독님. 지구방위대 간부들께서 미팅을 요청하셨습니다.”

몸을 일으키던 나는 그대로 다시 자리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로 불러.”

“알겠습니다.”

다 나가고 혼자 회의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미국, 중국, 인도, 일본, 영국….

각국의 대통령이나 그 대리자가 회의실 의자를 채웠고, 마지막에 누가 봐도 다른 이들보다 확연히 어린 여성이 들어왔다.

내가 반가운 마음에 입가를 끌어 올리며 인사를 하려던 찰나.

“어허! 문을 닫고 와야지. 어려서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나?”

모두의 시선이 여성에게 꼽을 준 그 인간에게 꽂힌다.

탁.

그녀는 반응하지 않고 그저 자동으로 닫히는 문을 눈짓으로 가리킨 뒤, 비어 있던 내 옆자리에 앉았다.

“저런 건방진, 쯔쯔. 왜 그러나!”

옆에 앉은 이름 모를 정치인이 사색이 된 채 팔꿈치로 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눈치를 준 이가 입을 열어 무어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제 누님에게 불만이 많으신가 봅니다?”

“…친누이셨습니까?”

눈썹을 긁으며 그가 충분히 긴장하게끔 뜸을 들인 후.

“예.”

단어를 고르는 듯, 머뭇대던 그는 듬성듬성한 정수리를 내게 보이며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과는 누님에게 하셔야죠.”

방향을 돌려 다시 허리를 숙이는 그를 내려다본 소민 누나는 한숨을 쉬며.

“할 말이 많습니다만, 짧게 하겠습니다. 여기선 당신이 국가입니다. 말조심하세요.”

누나의 딱딱한 어투에 정치인들이 옷매무새를 정리하거나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그 와중에 나는 문득 어렸을 적 착해빠진 소민 누나가 아이들을 쪼로록 모아놓고 허술하게 혼내던 모습이 떠올라 그만 웃고 말았다.

“하하.”

“너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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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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