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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88화 (188/201)

<188화>

시작된 블루의 침공

지구방위대 주요 인사들과의 미팅에서는 꽤 굵직한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핵심 안건은 세 가지다.

“밀키 푸드를 자국에서 빼 달라?”

“그렇습니다. 푸드가 이제 음식만을 취급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시장독점입니다.”

밀키 푸드는 최하위층의 복지도 담당하고 있어서 빼자는 말이 나오면 폭동이 일어날 확률이 굉장히 높다.

일례로 슬럼가의 주민들이 주도하는 과격한 시위에서 다른 건물은 죄다 불에 타거나 운영할 수 없을 정도로 약탈당했으나 밀키 푸드는 평일과 다름없이 운영해도 문제가 없었다.

“국민이 원하면 그렇게 하죠. 과반수 받아 오세요.”

“…예.”

기업의 앞잡이들을 쳐내니 이번에는 군벌이 나섰다.

희한하게도 계급장에 별이 12개나 달린 중년의 남성은 자신을 시리아의 정복자라 소개하며 오만한 태도로 밀키 포스를 언급했다.

“귀사의 군대는 본국의 땅을 무단 점거하고 있소. 당장 철수하시오.”

현재 나는 시리아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전쟁을 벌이는 모든 곳에 밀키 포스를 파견해 전쟁을 억제하거나 강제로 종결짓는 중이다.

한 달 뒤면 그블린이 침공하는 상황에,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는 변수 덩어리인 전쟁을 가만히 놔둘 이유가 없었다.

“너는 안 되겠다.”

“뭐라고 했소?”

“저거는 없는 셈 치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갑시다. 12성 장군 집에 가신단다. 데리고 나가.”

“놔라! 어딜 로봇 따위가, 이보시오! 로맨—”

이것으로 지상에서 벌어지는 밀키 포스의 모든 무력 행사를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내 의사를 전했다.

이 정도도 못 알아먹은 멍청이는 여기 없길 바라며 기다리자 소민 누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밀키 마이닝은 목적이 뭡니까.”

이제는 꽤 정치인 분위기를 풍기는 소민 누나가 딱딱한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입술을 말아 넣고 눈으로 웃자 소민 누나는 몸을 기울여 다른 사람의 시선을 차단하며 입 모양으로.

‘너 진지하게 안 해? 혼날래?’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아이처럼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의 호통에 나는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뭐가 궁금하신지 말씀해주시죠. 양소민 의원.”

양녀 빨, 어린 야망가, 열정 원툴, 최연소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의 여자, 국민 누나, 사이다 의원.

양소민 의원을 수식하는 타이틀을 보면 알다시피 그녀의 정치 인생 초기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러나 이내 본인의 능력과 주변의 조력에 힘입어 지금처럼 국가를 대신한 자리에 올 수 있을 정도의 권력과 명성을 쌓았다.

급변하는 세상에는 좀 더 프레쉬한 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젊은 정치인이 각광 받는 시대의 흐름에 딱 맞아떨어지는 인사이기도 했고.

“밀키 마이닝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지금에 와서 밝힌 이유부터 시작하시죠.”

나도 생각 같아서야 평생 비밀로 가져가고 싶었으나 언급했다시피 그블린의 침공에 앞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곧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이미 내전 중인 국가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뇨, 다른 차원의 존재가 지구를 파괴하러 옵니다. 보자, 27일 정도 남았군요.”

“예?”

그블린의 존재를 설명했다. 믿지 않은 이들을 위해 그간 작전을 실행하며 모아둔 영상들을 보여주기도 했고.

“저놈 말이 맞다. 그블린은 실재하며 곧 우리를 공격할 확률이 매우 높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안토니오 골든우드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그걸 왜 지금 알려줘!”

다른 이들과는 달리 격분하는 양소민. 이곳에 모인 정치인 중, 교감의 간섭에 걸리지 않은 유일한 인사다.

아, 아까 시리아 장관도. 거긴 어디서 총알 날아올지 몰라서 교감님께 부탁하기가 좀 그렇더라.

“안다고 달라질 게 있나? 방금 영상 봤잖아.”

“그게 아니라, 왜 너 혼자 끙끙댔냐는 말이잖아! 언제부터야. 이거, 언제부터 알았어.”

“음, 보육원장 잡혀간 날?”

“세상에, 17년을.”

소민 누나가 벌떡 일어나 나를 끌어안으려 하기에 나는 슬쩍 그녀를 밀쳤다.

“공적인 자리입니다. 양소민 의원님.”

신파는 질색인지라 그리 고사했더니 누나는 나를 째려보곤 눈물을 훔치더니 의자에 다시 앉았다.

하여간 사람 좋다니까.

‘…아니지. 이야, 양소민 의원. 정치 괴물 다 됐네. 여기서 나와의 커넥션을 강조해 한국의 이름을 높이려는 거구만?’

양 의원에게 잘 배웠네.

“가족을 위하는 의원님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여하튼 곧 그린과 블루의 침공이 시작됩니다. 준비는 이미 해 뒀으니 여러분은 보급과 히어로를 포함한 각성자 지원만 해주시면 됩니다. 물론 자국의 혼란은 알아서 수습하시고요. 군대 필요하면 지금 말씀하세요. 전쟁 터진 뒤에는 지원 못 합니다.”

이후로도 여러 질문과 대응책 따위를 물어오는 이들은 많았으나 대부분 사전에 준비한 답변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구방위대의 공식 회의가 끝나고 며칠 뒤. 엠바고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웬 금나무 자식이 한 인터뷰 영상이 먼저 터졌다.

[지구방위대 대표, 안토니오 골든우드에게 묻다.]

-그린과 블루라는 타 차원의 존재가 지구를 공격하는 이유 또는 원인을 아십니까?

-다른 차원의 존재는 지구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명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답하자면. 지구가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음. 위대하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문명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일정 단계를 넘으면 이것이 모종의 경로를 통해 다른 차원에 알려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군요. 그러면 지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타 차원의 존재에게 정복되거나 우리가 지켜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렇다면 저 같은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없다. 그러나 두렵다 하여 외면하지는 마라. 모든 공포는 미지에서 온다. 놈들을 직시하고 승리할 방법을 연구해라. 인간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처럼.

인터뷰 영상은 그렇게 끝났고 마지막에 기자가 추가한 듯한 글자가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나타났다.

[지구방위대 대표 안토니오 골든우드 님께서는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블린의 침략을 오래전부터 예견하고 준비한 남자가 있다. 우리는 그를 믿는다.

그것으로 인터뷰 영상이 완전히 끝났고 나는 인상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여차하면 나한테 다 덮어씌우려고 밑밥 까는 것 좀 보게.”

하여간 철저한 새끼.

그블린을 한 놈이라도 놓치면 지구에 게이트가 설치된다.

그럼 단기간에 엄청난 규모의 피해가 생길 테고, 그때가 되면 지구방위대가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그걸 저놈은 인터뷰 한 번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판 거고.

뭐, 사실 그래도 상관없기는 하다.

“애초에 지구에 일반인을 남겨둘 생각도 없으니까.”

차원 대 이주.

인류가 생존에 성공한다면, 후대에 그런 이름이 붙지 않을까.

싱크레아의 확장은 200억 명을 수용하고도 남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다른 차원의 기술을 가져와 깔아둔 인프라는 지구 이상의 편리함을 제공할 것이다.

물론, 떠나지 않겠다는 자를 억지로 보낼 생각은 없다.

언제나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까.

이날 뿌려진 차원 이주 동의서에는 인류의 9할 이상이 동의했다.

* * *

2주 후.

“리쳇, 글로리아로 가는 루트는 땄어?”

-레드플 부길드장을 통해 산 차원 열차로 싹 프리패스.

이런저런 자격 요건이 까다로워서 우리가 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운이 좋게도 전직 레드플 부길드장이 자기 고향에서 생산되는 차원 열차 공장과 짜고 한 대를 빼돌려 우리에게 팔았다.

참고로 로카에서 빌린 차원 열차는 잘 쓰고 돌려줬다. 또 빌려달라니까 그블린에서 압박이라도 넣었는지 경기를 일으키더라.

“하아, 이러면 진짜 풀스윙 프로젝트 해야 하잖아.”

풀스윙. 소행성군을 점령하고 프렉시스에서 본격적으로 무기를 찍어내던 시절에 수립된 이 프로젝트는 공격을 받는 순간 적진의 후방을 때린다는 단순한 작전이다.

처음에는 프렉시스를 노리는 해적의 본진을 치기 위한 프로젝트였으나 우리 유능한 솜 함장이 해적을 소탕해버린 덕에 폐기됐었다.

그러한 작전이 지금에 와서 다시 부활한 연유는 기습에 최적화된 잠중함의 등장에 리쳇이 강력히 작전 재개를 요구한 탓이다.

-블루의 왕이 처음부터 나타나진 않았다며? 그럼 모성에 있겠지. 지구에서 흔들 테니까 병력 빠졌을 때 처리해버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성공 확률이 몹시 낮다는 것과 내 목숨이 걸렸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역시 내가 가야겠지?”

-그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

상위 종이 격을 드러내면 보는 것만으로도 짓눌린다.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이나 비범한 능력을 지니지 않는 한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스럽게도 히어로는 대부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일반 병사에게나 통용되는 일이고 왕을 상대로는 소용없다.

내가 가진 신성이라는 격에 대해 알아보니 포텐셜이 글로리아의 왕들조차 원할 정도로 최상위더라.

이는 격 때문에라도 블루의 왕을 상대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그 정보를 리쳇에게 들었을 때 블루의 왕은 내가 처리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나도 사람인지라 내 목을 손가락질 한 번에 자른 놈과 단독으로 대면하는 것은 꺼려져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꾸물대던 와중, 잠중함이 튀어나온 것이다.

“후.”

그런고로, 나는 지금 잠중함의 함교에 홀로 있다.

-그렇게 부담되면 지금이라도 그만둬. 우리끼리 도망치면 걔들도 못 잡아.

차원 열차를 확보한 순간 나 개인의 목숨 정도는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평생 도망자로 살아야겠지만, 익숙한 일인지라 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또 실망시킬 수는 없잖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과거사를 아는 리쳇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툭 던지듯 뱉었다.

-네가 지구에서 가장 악랄한 인간이라는 걸 블루 놈들에게 보여줘.

“크크, 그거 괜찮네. 여차하면 도망쳐서 열받게 하면 되겠어.”

다른 건 몰라도 도망치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다.

-바로 그거지.

그렇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지구를 떠났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리는 건 전쟁이 시작되고 난 뒤일 것이다.

* * *

밀키 마이닝의 확성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기업에 유리한 광고만 재생하던 리가와 리나는 어느 순간부터 로카의 방송도 틀지 않고 그린과 블루에 대한 약점과 강점을 24시간 띄웠다.

쾅!

“이딴 게 무슨 소용이라고.”

리가가 서 있는 정류장의 기둥을 후려치는 사내.

“그만하고 가자, 홀로그램에 화풀이해 봐야 너만 힘 빠져.”

“칫.”

비니를 눌러쓴 두 사내는 리가가 띄운 화면을 노려보다 정류장을 떠났다.

시민권 조회가 안 된다는 이유로 싱크레아로의 이주가 거절된 이들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강력범죄 이력이 존재해 이주가 거절된 것.

변수를 최소화하려는 남만혁다운 정책이었고 이는 혼란스러운 싱크레아의 치안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연히 반발이 존재했으나 이미 평안을 누리는 대다수의 시민들과 권력자에 의해 묵살되었다.

“야, 야. 미친!”

“왜 또 지랄이야. 약 필요하면 말로 해!”

자신의 팔을 강하게 치는 동료를 욕하며 안 주머니에서 마약을 꺼내는 남자.

“그게 아니고 하늘!”

“인제 와서 뭐 신기한 거라고. …어?”

몇 주 전, 지구방위대라는 단체가 우주에서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신신당부했다.

그때부터 하늘 저 멀리 함선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고, 이제는 지구 잔류자들에겐 익숙한 광경이 됐다.

“저, 저게 뭐야.”

밤인데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밝은 푸른 선이 하늘 저편에 그어지더니 쩍, 위아래로 벌어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튀어나오는 무수한 함선들.

한때 글로리아 차원의 모든 지성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아이시클 함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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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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