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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90화 (190/201)

<190화>

뒷공작

스위프트를 향해 쏘아진 레이저와 마법은 자연체라 하여도 온전히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공격이 아니었다.

스위프트는 자신의 주변으로 한계 이상의 바람을 방출해 적의 공격 일부를 흐트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간신히 만들어낸 틈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사이.

쯔우웅.

그곳으로 도망치길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드는 백색의 광선.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레이저보다 굵고 짙은 색이었기에 스위프트는 그 위력을 짐작하고 죽음을 떠올렸다.

‘결국, 남 교수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내지 못했군.’

일생을 살며 아쉬운 게 있다면 바로 이거 하나라는 듯. 스위프트는 잡념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러나 갑자기 자신 앞에 갑자기 나타나 그랩 자세를 취하는 사내.

“히어로가 뭔지. 시X.”

뉴욕그래플링은 스위프트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을 보자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그의 앞에 섰다.

이후 새하얀 섬광이 뉴욕그래플링을 덮었고 그는 자신의 특성인 ‘뒤집기’로 레이저를 붙잡았다.

“끄아아악!”

뉴욕그래플링은 우주전용 코스튬이 모조리 불타고 자신의 신체까지 잿가루가 되어감에도 끝까지 특성을 유지해 기어코 광선의 궤도를 비트는 데 성공했다.

스위프트는 레이저가 어깨를 스치고 지나자마자 즉시 움직여 처참한 모습인 뉴욕그래플링을 콕핏에 태운 뒤 후방으로 물러났다.

“끄끄끄, X발….”

성대마저 반쯤 녹아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에도 뉴욕그래플링은 웃었다.

‘내가 미라클 차일드를 구할 줄이야.’

그는 살아남기만 하면 평생 술안줏거리인데 아깝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리쳇, 퇴로에 메딕기어 사출 부탁하지. 긴급이다.”

-f-32 포인트에 메딕기어 및 코스튬 대기 중!

스위프트는 어째서인지 흥분한 리쳇의 목소리를 들으며 뉴욕그래플링을 바라봤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주저 없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이를 우리는 히어로라고 부른다.

“…네가 나의 히어로다. 뉴욕그래플링. 죽지 마라.”

빠르게 생기를 잃어가는 그의 모습에 초조해진 스위프트는 전속력으로 날아 리쳇이 알려준 포인트에 도착했다.

-적 에너지 반응 확인, 주포 차징 중!

-스위프트, 당신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피하세요.

-지구방위대 부관으로서의 명령입니다.

스위프트는 여기서 만약 자신이 적의 공격을 피하고자 방향을 튼다면 뉴욕그래플링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이라 직감했다.

“통신에 문제가 생겼다. 안 들리는군.”

리쳇의 명령을 남만혁식으로 무시하고 해당 포인트로 가속하는 스위프트.

-적 주포 발사 확인, 전원 해당 섹터에서 퇴각.

스위프트는 후방에서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거대한 질량을 가진 마법을 고개를 돌려 확인했음에도 방향을 틀지 않았다.

‘믿는다.’

그는 어떤 공격이든 한 번은 막아준다는 엔지니어의 자부심을 신뢰했다.

그러나 거대한 고드름 뒤에 있어 보이지 않았을 뿐, 실상은 엄청난 숫자의 마법들이 쇄도하는 중이었고.

이를 지켜보던 리쳇은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해 도수정을 호출했다.

-지금입니다.

-알았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면을 지켜보던 도수정이 재빨리 스위프트에게 단절을 펼치려는 순간.

파스스….

스위프트에게 접근하던 모든 마법이 마나 입자를 흩날리며 분해되었다.

한순간 우주에는 푸른 마나 알갱이가 반딧불처럼 흩날렸고 이는 양 진영에 침묵을 선사했다.

그러는 사이 스위프트는 메딕기어에게 숨이 붙어있는 뉴욕그래플링을 넘기는 데 성공했다.

-환자 확보 완료. 검진 중….

통신기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길 잠시.

-치료 가능. 이송 및 야전 수술 진행하겠습니다.

메딕기어가 간이 수술실로 변하며 잠중함으로 이동하자 이를 본 히어로들은 환호했다.

-좋아!

-저런 상태인데도 살 수 있는 건가? 밀키 마이닝이 대단하긴 대단하네.

-적 공격 유도 정도는 할 수 있겠어.

-나도.

잔류조에서 전전긍긍하던 이들이 일단 숨만 붙어서 오면 살 수 있다는 것을 뉴욕그래플링을 통해 확인하자 하나둘씩 전투에 참여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렇게 히어로 대통합이 이루어졌고 리쳇은 홀로 도박 수가 성공했다며 자찬하다, 재차 적 함대에 에너지가 응집되는 것을 보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우리 차례야, 이것들아.

* * *

“당장 원인을 찾아!”

“예, 예!”

아줄의 4파. 500만 함대를 이끌고 온 총지휘관은 이번 불발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부하를 닦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보고되었다.

“마나 코어에 미세한 결함이 있었습니다.”

“모든 아이시클 함선이?”

“새롭게 합류한 11군단부터 101군단까지 그렇습니다.”

“허.”

그린과의 전쟁 규모가 커질 것을 우려했던 아줄은 대량으로 아이시클 함선을 찍어냈다.

총지휘관은 코어 공장이 촉박한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다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측하고 혀를 찼다.

“사거리가 조금 짧아진 것 외에는 흠결이 없습니다.”

“준장, 우주전의 기초가 뭔가.”

“아군에 유리한 거리 확보입니다.”

그걸 아는 놈이 그딴 말을 입에 담냐는 총지휘관의 눈짓에 준장을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저 미꾸라지들은 내버려 두고 행성 점령을 우선한다.”

갑자기 나타난 잠중함의 존재가 거슬리기는 하나 호위함의 숫자만 십만 단위이니 쉬게 뚫지 못할 거라는 총지휘관의 계산이었다.

“알겠습니다.”

포격 명령이 떨어지자 아줄의 마법사들이 코어에 마나를 불어 넣었고 임계에 도달해 사출되려는 찰나, 지구 측 공격이 그들을 휩쓸었다.

“뭣!”

수십만 척이 고드름에 꿰여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한 총지휘관은 고함을 쳤다.

“이 무능한 놈들! 회피 기동도 하지 않고 뭐 하느냐!”

그러는 동안 부관인 준장은 각 지휘관의 동시다발적인 보고를 듣곤 검게 질린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총지휘관님, 함선을 조종하던 아군 병사들이 과마력증으로 전부 죽었다고 합니다.”

과마력증은 본인이 수용할 수 있는 마나의 3배 이상을 체내에 들이면 생기는 증상으로 경미한 경우 잠이 들거나 사고력을 잃는 수준에 그치나 심하면 지금처럼 쇼크로 사망하기도 한다.

“기술자들에게 수동으로 조작하라 지시하도록.”

크게 분노하면 오히려 냉정해지는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총지휘관이 바로 그러했다.

“그게…, 얼마 전에 기술자연합이 파업하는 바람에 이번 파병에는 합류시키지 못했습니다.”

볼을 푸들푸들 떤 총지휘관은 부관이 들고 있던 통신기를 빼앗아 거기에 대고 소리쳤다.

“총지휘관이다. 현 시간부로 모든 마나 코어는 폐기하고 자율적 퇴각을 명한다.”

평생을 마나 코어 조작만을 단련해온 이들에게 갑자기 수동 조작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제대로 될 리 없다.

진영을 이탈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함선들이 대다수였고 이를 모선에서 지켜보던 총지휘관은 저 멀리, 적 함대의 주포가 재차 푸르게 물드는 것을 보며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팔다리가 잘린 채 전장에 던져진 기분이 이런 것인가.”

그것이 500만 함대를 이끌고 온 총지휘관의 유언이었다.

* * *

나는 지난 이틀간 블루의 항성계를 돌아다니며 프렉시스에 준하는 무기 공장 행성에 테러를 감행했고 꽤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내 전용 특제 주포로 한 방 쏘면 행성이 반쪽이 되더라고.

그런데 리쳇이 조사해온 ‘앞으로 파괴해야 할 무기 공장의 수’를 보곤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야. 매일 천 개씩 100년을 부숴도 어림없는 숫자 아니냐 이거. …우주 절반을 지배한다는 건 그냥 그린을 의식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실제로 보니까 규모가 빌어먹게 대단하네.”

전시 상황에 무기 공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시설이 너무 많다.

이걸 일일이 부수고 다니기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다른 방법을 궁구하던 중, 리쳇이 묘안을 떠올렸다.

-방법이 있긴 해. 블루는 모든 핵심 시설이나 기관을 마나 코어로 조작하거든?

“식수원에 독을 풀자?”

-바로 그거지.

리쳇이 준 무기 공장 지도에 마나 코어 공장만 표시하자 현실적인 숫자가 나왔다.

“9개. 전부 모성의 위성에 있네?”

-그만큼 중요한 시설이니까. 왕족이나 해당 시설에서 근무하는 기술자들 아니면 접근 권한 자체가 없어.

보안이 대단한 곳일수록 첫 잠입에만 성공하면 그 뒤로는 오히려 다른 곳보다 일을 벌이기 쉽다.

나는 9곳을 동시에 폭파할지 아니면 내부로 들어가 공작을 벌일지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내부 공작? 왜?

“블루의 기술력이면 금방 다시 만들 테니까.”

-그렇긴 하지.

테러의 방향이 결정되자 즉시 블루의 모성 인근 소행성군에 숨겨둔 쓰레기선으로 옮겨타고 위성으로 향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여기 쓰레기가 쌓여 있대서요.”

“잠시만 대기해주십시오.”

대대적인 해킹은 불가능해도 우주정거장의 통관절차 조작 정도는 리쳇이 할 수 있었고 나는 그들의 의심스러운 눈을 뒤로한 채 위성, 데이하트에 입장할 수 있었다.

“지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다만, 안내라는 명목으로 감시자가 한 마리 붙었다.

“여기.”

내가 가리키는 종이 지도를 본 감시자는 코를 막으며 가까이 오더니 지도 위의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쓰레기 처리소는 이곳입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시에는 최대 사형판결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리쳇, 복제는?”

-끝.

“복제? 당신, 누구랑 이야기하는 겁니까.”

“오케이.”

“윽? 컥!”

리쳇이 쓰레기선 곳곳에 배치해둔 함정을 발동시켜 감시자의 목덜미를 향해 송곳을 날렸다.

놈은 급히 영역을 펼쳤으나 이를 짐작한 내가 영역을 겹쳐 무효화시켰고 그사이에 송곳이 목덜미를 관통해 앞으로 튀어나왔다.

내 옷을 붙잡으며 쓰러지는 블루를 밀어 치우곤 그대로 가까운 코어 공장으로 향했다.

-생체 신호 및 음성 복제해놨으니까 저쪽에서 오는 통신은 내가 알아서 대응할게. 그리고 마나 코어에 심을 바이러스도 곧 제작 끝나니까 나가는 길에 가져가.

“역시 우리 리쳇. 유능하구만.”

-인류를 지배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이후,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은밀히 코어 공장에 숨어들었다.

공장 내부는 몇몇 마법사가 당직을 서거나 엔지니어가 기계를 손보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아, 예.”

내가 당당하게 먼저 인사를 건네자 저쪽에서도 한 점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는다.

-역시, 청소부 옷은 만능이라니까.

블루의 하위계층 직종인 청소부는 어딜 가나 존재하는 직군이고 이는 코어 공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어떤 제지도 없이 주요 시설에 접근한 나는 리쳇이 만든 바이러스를 심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렇게 코어 공장 9곳을 들려 모든 일을 완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6시간 남짓.

“시간이 좀 남네.”

쓰레기선에 돌아와 글로리아와 지구의 시간 차이를 계산해보니, 격리 해제까지 2일이라는 시간이 빈다.

그동안 무얼 할지 고민한 끝에, 기술자가 코어의 대체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곤 쓰레기선을 띄웠다.

“블루의 모성으로 가자.”

-거긴 왜?

“블루, 아니 아줄의 기술자들이 얼마나 가혹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 대중에게 알려주려고.”

-또 선동한다는 소리네.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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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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