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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193화 (193/201)

<193화>

미친놈인가?

“이 인간의 머리, 연구가 끝나면 내게 팔아.”

“자네도 관심이 있나?”

“관심이라기보단 부수고 싶어서.”

“부순다?”

“악마에겐 종종 그런 욕망이 들 때가 있어. 그보다 연구는 언제 끝나나?”

“사흘이면 끝난다만. 그보다 아무리 우리 사이라고 해도 이 머리를 줄 수는 없네. 말했다시피 그린이 의뢰한 물건이라 탑의 신뢰를 위해서라도 마지막에는 그들에게 돌아가야 해.”

“그들이 가져간 뒤에는 상관없다는 이야기로군?”

“그렇지.”

그럼 됐다.

* * *

며칠 후.

블루가 파병한 제4군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이 아줄 행성에 퍼졌다.

왕은 분노하며 5파로 보낼 총지휘관을 엄중히 고른다며 글로리아 차원 각지에 흩어져 있던 국방부 장관들을 불러들였다.

“이번에 자우트 장관까지 끌어 올린 걸 보면, 전하께서 심기가 많이 불편하셨나 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린 놈들을 떼 몰살시키고 있는 유능한 장군을 전선에서 빼버리면 어떡해.”

“멍청아, 거기는 규모가 작잖아. 자우트 장관이 아니더라도 대체가 가능해. 워메이지인 기알토 보좌관님도 남아 계시고.”

“야, 내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기알토 보좌관은 일부러 남겼다던데? 임무 제대로 수행 못 해서 전장에서 죽든지 전공을 세우든지 둘 중 하나 하라는 뜻으로.”

“에이, 우리 자우트 행성방위부 장관님은 그럴 분이 아니셔. 얼마나 인자하신데. 전에도 우리 노동자들을 위해 크레딧을 푸셨잖아.”

“그런가.”

“차라리 그분이 왕이 되면—”

“쉿! 쉿!”

“큼.”

블루의 모성에 온 뒤로 매일 들리는 곳이 바로 이 광장의 주점이다.

가장 밑바닥의 소문이 날 것 그대로 흘러 다녀서 내가 애용하는 곳이다.

“어? 그린 놈들이다.”

“입조심 해, 쟤들 귀 좋은 거 몰라?”

광장에서 이어진 중앙 가도로 걸어오는 녹색 피부를 가진 일련의 무리.

체격과 포스 자체가 블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하다.

‘저건가.’

그들의 중심에 선 이는 검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나는 마시던 음료를 바로 목구멍에 때려 넣고 은밀히 그들의 뒤를 쫓았다.

절차를 밟아 아줄 행성을 이탈하는 놈들을 쓰레기선으로 따라붙자 속력을 줄이더니 내게 통신을 걸어왔다.

측.

-블루 행성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오던데, 용무가 뭐지?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다. ‘그린이 그렇게 싸움을 잘한다며?’라고 시비를 걸자 먼저 덤벼오더라.

하나하나 쓰러트리다 마지막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튈지 말지 머뭇대는 그린 놈을 압축한 영역에 마나를 쏘아 보내 처리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이것만큼은 폐하께, 컥!”

“충성심과 명예욕 사이에서 갈등하다 개죽음이라. 참, 너희답다.”

검은 상자는 다행히 특별한 밀봉 조치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아마 사령탑주가 나를 위해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모양이다.

“이쪽은 역시 블루답게 눈치가 좋고. 어디 보자.”

상자 안에는 눈을 희번뜩 뜬 교장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대량의 마나가 응축된 캡슐 안에 둥실 떠 있는 머리는 내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반응했다.

“멍청한 그린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하면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뱉게 만들어놨다더니. 진짠가 보네. …너, 이름은?”

“…최강.”

“특성은?”

“…갈망.”

“네 최고 욕망은?”

“…힘.”

이런 식으로 문답이 가능했다.

나는 이걸 지구로 가져가면 비싸게 사줄 사람인 교감이 떠올랐으나 이내 욕심을 버리고 산성 영역을 전개해 녹였다.

“어?”

교장의 머리가 한 줌의 독물이 되었을 때도 처음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마나가 있었는데, 자세히 살피니 익숙한 기운이었다.

“스승님? 아, 심어뒀다는 그건가.”

나는 허공에서 초끈처럼 춤추는 마나 줄기를 바라보다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자 스승님의 마나가 내 손에 반지의 형태로 자리 잡았고 동시에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넨가?

“스승님.”

-강이에게 붙여둔 마나가 자네에게 갔다는 건 녀석을 완전히 소멸시켰다고 생각하면 되겠나?

“네.”

-…그래. 열심히 하게.

“그러려고요.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안 나서실 생각입니까?”

회귀 전과는 달리 전쟁이 일찍 벌어지는 바람에 스승님이 살아계신다.

안토니오에게는 잘난 척하며 떠들어댔지만, 지구가 전복될 위기에 처하면 미래를 팔아서라도 당장 살아남는 게 우선이잖은가.

그래서 위험하면 도와달라고 할 셈으로 스승님의 의중을 떠봤으나.

-바이올렛이 도와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나서지 않을 참일세. 그리고 가능하면 내가 움직이는 일은 없게 하게. 나조차도 내가 언제 변심할지 모르니.

약간의 울분이 섞인 듯한 스승님의 영문 모를 말에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어…, 일단 알겠습니다. 최대한 제 선에서 해결할게요.”

-부탁함세. 아, 그리고 이쪽의 소식을 전해줌세.

방대한 지구 쪽 정보가 넘어온 직후, 손에 감겨 있던 마나링이 사라지며 텔레파시가 끊어졌다.

“조건이 달리긴 했어도 여차하면 힘을 보태주신다는 거네. 지구 소식은, 오. 도수정이 역시 전천후란 말이지.”

예상 이상으로 성장한 도수정은 함선 방어는 물론이고 코스튬을 입고 우주전을 벌이는 히어로에게까지 단절벽을 씌워줄 정도로 숙련도가 극에 달해 있었다.

스위프트는 또 어떤가. 학생 시절부터 갈고닦은 초진동 바람칼로 아이시클 함선을 썰고 다니는데, 아무리 레이저와 고드름을 쏴대도 소용이 없다.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 간간이 안토니오의 은폐 마법까지 걸어서 움직이니 이건 뭐, 막을 방법이 나도 떠오르질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블루는 스승님의 은폐 마법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충분히 통용될 만한 수준의 투명 마법을 사용해 가장 성가신 아군 발키리 함대의 측면을 기습하려 하였으나 트레이시 그웬을 비롯한 탐색계 히어로들에 의해 막혔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렇게 싫다더니.”

트레이시는 단체 이름이 유치하게 지구방위대가 뭐냐면서 내게 핀잔을 줬었다.

마지막 통화가 ‘나는 절대 거기 안 들어가!’였으나, 승전 기념사진에는 지구방위대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있었다.

버추얼박스와 플라주 같은 환영에 특화된 구현계 히어로는 적 함대를 혼란에 빠트려 아군이 유리한 전장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스위프트보다 더 화려한 전적을 올린 녀석이 있어 살펴보니 내가 아는 이름이더라.

“마인 트래퍼. 너는 내가 크게 될 줄 알았지.”

격침함 숫자만 보면 스위프트에게 상대도 되지 않으나 적함의 기동에 장애를 일으키거나 피해를 입힌 횟수 자체는 마인 트래퍼가 압도적이다.

“기뢰라, 머리 잘 썼네.”

블루라인이 깔리고 적함이 나타나는 위치가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챈 마인 트래퍼가 바다에서 사용하는 기뢰에 본인의 특성을 적용해 우주에 깔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자 머신 팩토리는 즉시 수용하고 자신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단기간에 미친 듯이 찍어냈다.

그렇게 등장과 동시에 2할 이상의 함대가 터져나갔고 나머지도 곳곳에 깔린 회색 기뢰에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본래라면 실드에 막혀야 정상이나 지구 차원의 법칙에 의해 약화된 것이 원인이었다나.

“기간트도 잘하고 있네.”

선봉으로 적진의 중앙을 파고들어 방패 역할을 했단다.

여차하면 마가렛이 코스튬을 입고 튀어 나가 날아오는 고드름을 맨손으로 쳐냈다는 보고도 있다.

내가 아는 이름 중에 두드러진 활약을 한 히어로는 이 정도고 그 외에도 지구를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나섰다.

참고로 4파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최고 공로자는 우리 고드름 함대를 이끄는 지구방위대 대장, 안토니오 골든우드다.

히어로와 스위프트가 주의를 끄는 사이 배후를 습격해 적의 총지휘관을 죽였다나.

“이 자식은 하여튼.”

저것도 분명 스승님께 칭찬받을 생각으로 마나를 쥐어짠 게 분명하다.

다만, 이 정보를 다 확인한 후에 하나 의문이 들었는데.

“퀸은?”

없다.

보고서 어디에도 퀸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본래라면 히어로 중에 단연 돋보여야 정상인데, 참전한 히어로 목록을 몇 번이나 살펴봐도 내가 아는 퀸은 없었다.

“생각이 있겠지.”

힘을 아끼다가 가장 위험한 순간에 나선다든지.

뭐, 그 착한 녀석이 인제 와서 배신하거나 지구를 방치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만한 변수는 아카데미 시절에 다 쳐내기도 했고.

-농장주, 블루 왕이 찾는데?

“왜?”

-제6진에 농장주를 포함시키려는 거 같아.

“…미친놈인가?”

* * *

“전하, 5진 출진 준비가 끝났습니다.”

“자우트 장관.”

“예, 전하.”

“우리에게 남은 전력은 아직 많네. 그럼에도 이번 전투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해. 왜인 줄 아는가?”

“아줄이라는 이름을 천박한 그린 놈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정확해. 고작 하위 차원을 상대로 고전한다는 말이 저 무지한 놈들 입에서 나와서야 쓰겠나.”

“그렇습니다.”

“자글레투르에서처럼만 하게.”

아줄의 왕은 베르데를 밀어붙이는 것을 넘어 잔류 세력까지 항성계 바깥으로 쫓아버린 그의 전적을 언급했다.

“반드시 지구를 정복하겠습니다.”

귀를 접고 머리를 숙여 접어 예를 표한 자우트 장관이 대전을 떠나자 신하들이 앞다퉈 왕에게 고했다.

“전하, 송구하오나 그는 야욕이 큰 아줄입니다. 다른 장관들도 많은데 굳이 그를 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때라면 전하의 결단이 맞다는 소리도 나왔겠으나 지금은 두 개의 전선이 펼쳐져 있었기에 진심으로 국가를 생각해 충언을 올리는 신하들이었다.

“그렇기에 보낸 것이다. 지구의 역량은 우리의 예상을 웃돌지 않았느냐.”

“허면, 지구 차원의 손을 빌려 자우트 장관을 처리하시겠다는 뜻이옵니까?”

다들 망설일 때 당돌하게 묻는 젊은 신하의 말에 왕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그리 결정되었으니 다들 6차 파병을 준비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6차에는 짐이 친정할 예정이니 그리 알라.”

신하들은 몸을 돌려 나가던 중에 떨어진 벼락같은 소리에 다들 한 몸처럼 읍소했다.

“헉, 전하!”

“아니 되옵나이다, 전하!”

“부디 재고해주시옵소서.”

“그린의 투기장에서 새로운 황제가 탄생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야.”

“그럴 수가, 그 패황이….”

전성기 시절에 단신으로 아줄의 모성을 침공한 크록타를 떠올린 대신들은 침음을 흘리며 목소리를 줄였다.

베르데는 압축근이라는 종의 특성 덕에 단련을 게을리하지만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그런 이가 일대일로 패했다는 것은 더욱 강한 자가 나타났다는 뜻.

이는 개인의 무력뿐만 아니라 나아가 베르데 전체의 강한 결속을 시사했기에 대신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그리 알라.”

“알겠사옵니다.”

신하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서야 왕이 몸을 일으켰다.

비틀.

“전하!”

“괜찮다.”

베르데와 달리 아문은 나이가 들수록 마나는 심후해지나 몸은 특별한 시술을 받지 않는 한 나약해진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신체 보강마법을 시술받아야겠구나.”

“전하….”

이는 늙었다는 증거였고 정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에 지금까지 미뤄왔던 왕이었으나 이제는 때가 되었음을 느끼며 시종의 부축을 받아 집무실로 향했다.

짤랑.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익숙한 귀장식 소리에 왕은 시종에게 문을 열라 지시했고, 예상대로 사령탑주가 앞에 서 있었다.

“왕이시여.”

“무슨 일로 왔느냐.”

“시종에게 들었습니다. 기력이 쇠하셨다고.”

굳어지는 왕의 표정에 사령탑주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시종을 벌하지 말아 주십시오. 전하께 남은 가족이 저뿐이라 걱정되어 한 말입니다.”

“되었다. 본론이 무엇이냐.”

“친정을 하신다기에 제가 전하를 보좌할만한 사람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누군지 알아챈 왕은 가볍게 웃고는 먼저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프로페서 남이라는 악마 말인가.”

“예, 그라면 충분히 전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겁니다. 미덥지 않다고 하여도 계약으로 종속시키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고려 중이긴 했지. 음…, 지금 오라고 하게. 무엇을 원할지 들어봐야겠어.”

“예,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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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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