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결전 (2)
발포 직전의 고드름들이 금빛 섬광에 의해 두 동강 나고 적의 함대 또한 그것과 운명을 같이 했다.
아이시클 함선에 꽂힌 강습함에선 그린이 벌떼처럼 튀어나와 블루의 함선으로 진입한다.
블루는 그린의 기습을 전혀 예상 못 했는지 속수무책으로 당하다 거리를 벌리며 응사를 시도하였으나 그린의 성격처럼 무소처럼 밀고 들어가는 강습함을 떨쳐낼 순 없었다.
“살았다.”
어어?
…으아아아!
와아아아!
퀴이인!
왜 그린이 우리를 돕는지 모르고 있던 선원들은 리쳇이 퀸의 모습을 확대해 보여주자 그제야 위기를 벗어났다는 것을 인지하고 환호했다.
금색의 선이 지나갈 때마다 그 뒤로 폭발이 따라붙는다.
우주에 획이 하나 그어지면 수십 대의 적함이 터져나가는 행복한 광경을 잠시 넋 놓고 관람하고 있자 부관이 다가왔다.
“제독님, 웜홀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록시의 상태는?”
“무의식중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폭주는 없을 거라고 합니다.”
그럼 됐다.
“가자, 지구로.”
우리 앞에 열렸던 블루라인이 서서히 닫히는 모습을 보며 명령하자 곧장 웜홀이 열었고, 다음 순간 우리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으로 이동되었다.
“목숨 걸고 거리를 안 주려던 이유가 이거였구만.”
지구 인근의 우주 공간을 빽빽하게 메웠던 블루의 함선들이 고철 더미로 변해 있었다.
리쳇은 정찰선을 내보내 찍은 영상을 화면에 띄웠는데, 익숙한 뒷모습을 한 그린이 눈에 들어왔다.
“발라르카?”
그녀는 아이시클 함선 선미에 팔을 푹 찔러 넣더니 기합과 함께 외장갑을 뜯어냈다.
그렇게 만든 통로로 들어간 발라르카는 3분 만에 적함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빠져나와 인근의 다른 함선에 달라붙어 똑같이 행했다.
이러한 광경이 곳곳에서 펼쳐졌고 여기에 위축되어 있었던 히어로와 지구방위대의 반격, 아군 함대의 지원 사격까지 가해지자 정리는 순식간이었다.
“리쳇. 저기, 확대.”
-어디, 아. 용케 찾았네. 역시 트루 러브는 못 이긴다니까.
트루 러브는 무슨. 화려하게 움직이다 갑자기 멈추면 눈이 가는 거지.
리쳇이 새롭게 띄운 화면에는 퀸과 블루의 왕이 대면하고 있었다.
입을 움직이는 거로 봐선 대화를 나누는 모양인데, 입 모양을 읽어보니.
“네가 당대의 패황인가.”
“지금은.”
“이 차원 출신이었군.”
“맞아.”
“역시 네놈들은 사라져야 할 존재다.”
“지랄하네. 귀도 짧은 놈이.”
퀸은 꽤 화가 나 있는 얼굴이었고, 그것이 그대로 음성에 담긴 듯했다.
게다가 귀가 짧다는 말은 블루들에게 있어 굉장한 모욕.
블루의 왕은 입을 다물고 마법을 캐스팅했고 퀸은 놈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우주라는 공간이 주는 자유로움은 두 사람 모두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으나 이곳은 지구 차원.
이쪽 법칙에 익숙한 퀸이 유리하다.
퀸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다수의 마법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며 접근, 왕의 턱을 엄청난 속력으로 올려 쳤다.
통쾌한 어퍼컷이 작렬하고 위로 솟구쳐 올라간 블루의 왕은 이어 자신을 추적해오는 퀸을 발견하곤 다급히 주문을 읊었는데.
“게이트 오픈!”
놈의 옆으로 게이트가 열렸고 그 너머로 사령탑주가 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그것을 내보내라!”
“예!”
사령탑주가 주문을 읊자 그의 옆에 있던 커다란 실루엣이 앞으로 걸어 나와 게이트를 통과한다.
“크록타, 저년을 막아라.”
크록타는 그린의 황제 이름이다.
‘그놈이 왜 지금?’
블루의 왕을 향해 쇄도하는 퀸을 막아서는 크록타.
“…확실히 죽일 걸 그랬어.”
“내가 그리하라 하지 않았더냐. 지구의 전사장이여.”
리쳇이 무슨 수를 쓴 건지, 소리가 이제 제대로 들린다.
쾅!
퀸과 크록타의 주먹이 부딪치자 블루의 왕을 지원하기 위해 다가가선 아이시클 함대가 물결 위의 나뭇잎처럼 밀려난다.
“나는 떠날 거니까.”
“네년의 그 보잘것없는 아량과 이기심 때문에 나는 저 블루 놈에게 조종받는 꼴이 되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두 사람의 주먹은 쉬지 않았다.
한번 격돌할 때마다 그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파동이 터져 나왔고 그것은 블루의 왕마저 밀어낼 정도였다.
어느새 그들 주변으로 함선과 잔해로 이루어진 구체가 생겨났고 그것은 마치 콜로세움을 연상시켰다.
퀸은 구석에서 마나를 회복 중인 블루의 왕을 곁눈질로 살피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러게, 누가 지래?”
저거, 내가 안토니오에게 늘 하던 말이다. 그럼 다음 대사는 정해져 있다.
‘꼬우면 이겼어야지.’
“꼬우면 이겼어야지.”
안 그래도 거무죽죽하던 크록타의 얼굴이 시꺼멓게 변한다. 그리곤 수많은 권능을 몸에 두르며 퀸에게 주먹을 내지른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크록타의 정권은 공간을 격하고 퀸에게 닿았는데, 놀랍게도 퀸은 마치 보이는 것처럼 고개만 움직여 피했다.
“역시.”
“이 년이!”
“발라르카가 더 강해.”
“뭐라?”
연격을 가하려던 크록타가 멈칫하는 사이 빛살이 되어 쏘아져 나간 퀸이 크록타의 흉부를 관통한다.
“이제 만족해?”
크록타는 웃는 듯 찡그린 듯 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숨이 멎었고 동시에 게이트가 닫히며 사령탑주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생기를 완전히 잃은 크록타의 시체를 잠시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퀸은 고개를 돌려 블루의 왕을 찾았다.
“역겨운 그린들 사이에 숨어들면서까지 구해온 전대 패황이었거늘. 너의 힘은 비정상적이구나.”
그는 스스로 콜로세움 중앙에 나타났다.
“자신 있나 봐?”
저편으로 흘러가는 크록타의 시체를 턱짓으로 가리키는 퀸.
네가 그린의 황제보다 근접전을 잘하냐는 뜻이 닮긴 눈짓이었으나 블루의 왕은 콧방귀를 끼며 쉬지 않고 외우고 있던 주문의 발동어를 읊었다.
“슈퍼노바 익스플로젼!”
발동어를 들어보니 아마도 별이 최후에 일으키는 강력한 폭발을 모티브로 삼은 마법인 듯했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
실제 슈퍼노바와 같은 파괴력을 지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글로리아 차원을 일통했을 거다.
하지만 저렇게 오래 캐스팅한 데다 자신 있게 나타난 걸 봐서 위력만큼은 강력할 터.
나의 걱정과 반대로 퀸은 웃었다.
그녀의 모습이 일순 사라졌고 다시 나타났을 때는 블루의 왕의 등 뒤였다.
“내가 베르데의 모성에서 크록타를 어떻게 이겼게?”
퀸이 왕의 목을 돌려 꺾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수평과 수직으로 고리를 형성하며 터져 나온 이 마법은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아이시클 함대를 먼지조차 남기지 않고 파괴했으며 기회를 엿보던 인근의 강습함도 갈아버렸다.
이런, X발.
“당장 웜홀 열어!”
상상 이상의 위력이다. 아무리 내구를 재각성한 퀸이라도, 저만한 마법에서 살아남을 리 없다.
선원들은 나를 잠시 돌아보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웜홀을 생성했다.
이동하자마자 나는 잠중함 밖으로 튀어나와 리쳇이 알려주는 포인트로 이동했고 그곳에는 상반신만 남은 블루의 왕에게 초크를 건 채 가만히 있는 퀸이 있었다.
“퀸.”
내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나를 찾는 것처럼 주변을 살피는 퀸. 그만한 빛이면 눈이 머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허공을 더듬대는 퀸의 손을 붙잡았고 블루의 왕이었던 고깃덩어리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드러난 퀸의 모습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반신이 없는 것은 왕뿐만이 아니었다.
“메딕기어! 의료팀, 빨리! 큐링 힐도!”
나는 급히 메딕기어를 호출했고 잠중함에서 나온 의료진이 퀸을 간이 수술대에 눕혔다.
“…로맨.”
죽어가는 사람처럼 힘없이 갈라진 목소리에 나는 회귀 후 처음으로 절망을 느꼈다.
“듣고 있어.”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하기에 잘 들리지 않아 귀를 입에 가져다 대니.
“나랑 결혼하자.”
이럴 때 프러포즈라니. 녀석답다면 녀석답다.
“그래, 하자. 어디서 할래.”
“미르토스… 해변….”
그 말을 끝으로 퀸은 의식을 잃었다. 바이탈 사인이 높낮이를 잃고 좌에서 우로 천천히 그어진다.
세상이 회색으로 변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빛이 탈색되어 망막에 머물지 못한다.
죽음. 실패.
무엇을 위한 회귀인가.
나 자신에 대한 혐오와 세상에 대한 원망에 한없이 침잠되어 가던 중.
“—했습니다!”
나를 흔드는 누군가의 손길에 고개를 드니 그가 흠칫하며 고개를 뒤로 뺀다.
“닥, 닥터 큐링힐이 재각성 하셨습니다!”
“퀸은?”
“회복 가능하답니다! 상실한 내장은 이미 재생시켰고 하반신을 재구축 중이십니다.”
전신의 힘이 쭉 빠진다.
“헛, 제독님!”
간신히 유지하던 영역마저 풀리자 부관은 기겁하며 퀸 옆에 대기 중이던 여분의 메딕기어로 나를 이끌었고 나는 내 얼굴을 비추는 강한 빛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 *
“멘탈리티 수치가 마이너스로 떨어졌었습니다.”
“지금은요?”
“정상적인 수치입니다만.”
“당분간 조심하라는 거죠?”
고개를 젓는 큐링 힐.
“앞으로 히어로 활동은 힘드실 겁니다.”
“누구요, 퀸?”
“아니요. 로맨, 당신 이야기입니다. 건강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매저드 교수님께서 그리 당부하셨습니다. 이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아내를 살려주셔서.”
아내라는 단어에 흠칫한 큐링 힐이 이내 입꼬리를 당기고는.
“유부 지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로맨.”
탁.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가는 큐링 힐.
고개를 돌리자 푸른 지구가 보인다.
“개고생했네, 진짜.”
낄낄.
회귀 후 일어난 일들을 하나씩 반추하며 혼자 미친놈처럼 웃고 있으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와.”
목발을 짚은 퀸이 낑낑대며 선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트레이시가 주고 갔어.”
“그 자식은 나한테는 들리지도 않고.”
“의사가 절대안정이라고 못 가게 했대. 앉아 봐, 사과 깎아줄게.”
서랍에서 과도를 꺼내는 퀸에게서 칼을 빼앗으려 하였으나 유려한 손놀림으로 내 손을 빠져나간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니, 퀸은 싱긋 웃으며.
“나 재활해야 해. 그리고 매저드 교수님이 너 고생시키지 말고 잘 돌봐주래.”
“…나 많이 안 좋대?”
짚이는 게 하나 있긴 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퀸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당시, 나는 어딘가와 연결됐었던 것 같다.
그게 어딘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진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스승님이 나서서 내 히어로 활동을 막으실 정도면 좋은 곳은 아닐 것이라 짐작할 뿐.
“직접 나서지만 않으면 문제없다고 하셨어.”
그건 자신 있다. 어차피 그블린 막 막고 나면 히어로 사무소 때려치우고 퀸이랑 산장에서 노닥거리며 살 생각이었으니까.
“그래. 나는 그렇게 해도 상관없지만, 너는 어떻게 할래.”
문제는 퀸이다.
녀석은 지금이야말로 전성기. 복귀만 하면 세상을 퀸을 신처럼 떠받들 테고 하루에 구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기존과는 격을 달리하겠지.
“나는….”
* * *
“후유.”
금발과 흑발이 반반 섞인 특이한 헤어를 타고난 소녀는 긴장을 풀고자 여느 때처럼 홀로폰을 조작해 가족의 이름을 검색했다.
[인류를 구원한 두 슈퍼히어로, ‘퀸&로맨’ 커플, 다가오는 성탄절에 결혼!]
[그들의 신혼여행지는 지구? 퀸, ‘지구에는 아직도 빌런이 많아. 우리가 억제제 될 것’.]
[‘퀸’의 단언대로 지구에서 발생하는 범죄율 급감. 다시 확인하는 슈퍼히어로의 존재감!]
[퀸&로맨 커플, 2세 탄생. 이름은 ‘레이’]
…
…
[미라클 차일드 ‘레이’, 서울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입학시험 치른다!]
“여러분, 준비하세요.”
감독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종종 아버지의 산장에 찾아왔던 중년의 남자가 규칙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 보이자 그제야 긴장을 조금 놓은 소녀는 호흡을 고르며 목표지점인 동상문을 흘낏 바라봤다.
거기엔 부모님과 두 분의 어깨에 손을 올린 서히아의 교장 선생님 동상이 서 있었다.
소녀, 레이는 각오를 다지며 감독관의 신호를 기다렸다.
“출발!”
레이는 부모에게서 두 가지 특성을 물려받았다.
“뾰로롱!”
주변 눈치를 보며 마법 소녀로 변한 레이가 수줍게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누르며 달렸고.
“으아악!”
“꺄악!”
“뭐, 뭐야!”
그녀 주변으로 돌풍이 일었다. 시험을 치르던 이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레이는 이미 동상문에 손을 대고 있었다.
“헤헤. 모야, 쉽네.”
머지않은 미래에 스파크위치라 불릴 슈퍼히어로의 첫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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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귀한 슈퍼빌런은 히어로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