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칼데르트 백작은 아카데미에 있을 자신의 친우를 생각했다. 확실히 수하르가 친우에게 배운다면 수하르의 실력은 차원이 다르게 좋아질 것이다.
“좋다, 오르트 단장. 자네의 말대로 하지. 하지만!”
“하지만?”
“수하르가 싫다고 말한다면 나는 수하르를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을걸세.”
칼데르트 백작의 말에 오르트 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르트 단장은 지금 당장 수하르를 불러와주게.”
“지금 바로 말입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빠르면 빠를수록 수하르에게도 좋을걸세.”
칼데르트 백작의 말에 오르트 단장을 집무실을 나가 수하르를 데리러 갔다. 집무실에 홀로 남은 칼데르트 백작의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지어져있었다.
아버지의 호출에 나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저를 찾는다고 오르트 단장에게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집무실 한켠에 뒷짐을 진 채 서있었다.
“오르트 단장에게 듣자하니 네 검술이 꽤나 훌륭하다고 그러더군.”
오르트 단장의 당황한 듯한 모습은 내가 펼친 검술에 놀란 것이었나. 하지만 이상했다.
“오르트 단장의 착각일 겁니다. 제가 펼친 건 기본적인 동작뿐이었고, 아버지도 알다시피 제게는 검에 대한 재능이 없습니다.”
회귀 전에 나는 한 번도 검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내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수하르, 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음….”
한 번도 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바로 기본동작이다.”
“기본동작이요?”
“기본동작은 모든 검술의 기본이 되는 자세지. 그 어떤 훌륭한 검술도 시초는 기본동작으로부터 탄생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버지가 한 말은 전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제가 기본검술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르트 단장이 말하더군. 기본동작만큼은 자신보다 완벽하다고.”
오르트 단장이라면 분명 빈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르트 단장 정도의 인물에게 검으로 칭찬받는 것은 내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오르트 단장이 진짜로 그렇게 말했나요?”
“그렇다. 너도 알고 있듯 오르트 단장은 듣기 좋은 소리나 내뱉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칭찬만 하고자 아버지가 나를 불렀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말이다.”
이 뒤에 나올 말이 아버지가 나를 부른 이유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 짐작은 정답이었다.
“아카데미를 다녀볼 생각이 있느냐?”
“아카데미요?”
나는 후계자 경합으로 아카데미를 다니지 못했다. 한 번쯤은 다녀보고 싶긴 했었다. 하지만 그곳은 가능성 있는 자들만 가는 곳이었다.
과연 내가 가는 것이 맞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제게 고민할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상관없다. 언제든 너의 결정을 말해보거라.”
나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집무실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한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생각해보니 아카데미는 왕국의 수도에 있었지?’
아카데미를 다니는 중에는 아버지의 눈 밖에 벗어나 과보호를 피할 수도 있었고, 수도 근처에는 나의 독립에 필요한 돈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존재했다.
나는 그대로 뒤돌아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카데미에 가겠습니다.”
***
아버지는 곧바로 아카데미에 입학수속을 신청하겠다고 하였지만 그런 아버지를 내가 말렸다. 아직 해야할 일들이 남아있었다.
“아직은 갈 수 없지.”
그 일들을 처리하고 출발해도 늦지는 않을 터였다.
방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펜을 들어 후계자 경합의 그 녀석에게 편지를 썼다.
***
칼데르트가의 넷째이자 차녀인 밀리아 칼데르트는 자신의 방에 도착한 편지를 발견했다. 어느 때처럼 시종을 통한 다른 귀족 자제의 연애편지라 생각하고 곧장 뜯었다.
편지를 읽던 밀리아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어갔다.
“레아!”
밀리아가 자신의 전속시녀를 불렀다. 밀리아의 외침에 한 시녀가 밀리아에게 달려왔다.
“레아, 도대체 누가 내 방에 이 편지를 둔 거야?”
화난 듯한 밀리아의 모습에 레아는 약간 떨며 대답했다.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가씨.”
“뭐라고? 내 전속시녀라는 게 내 방에 편지를 누가 보냈는지도 파악 못하고 있었단 말이야!”
밀리아가 레아를 향해 손을 높이 들었다. 레아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히익, 죄송합니다.”
밀리아는 레아에게 휘두르려 들었던 손을 도로 내렸다. 잠시 숨을 고른 밀리아는 레아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방 안에 홀로 남은 밀리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누구기에 내 계획을 눈치챈 거지?”
***
내가 쓴 편지를 발견한 밀리아 누님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려했다. 밀리아 누님은 조금 까칠했을 뿐.
“처음부터 미친 건 아니었지.”
밀리아는 후계자 경합 때 형제를 죽였다. 정확히는 계략을 짜서 형제를 함정에 빠뜨렸고, 그 함정으로 데이브 형이 죽었다.
“죽이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었지.”
그렇게 장남인 데이브 형을 죽인 밀리아 누님은 점점 미쳐갔다. 미쳐버린 밀리아 누님의 손에 첫째인 세레아 누님도 죽고, 셋째인 알트 형마저 죽었다.
이를 알아차린 아버지가 밀리아 누님을 처형했다. 후계자 경합이라도 혈육 간의 살인은 용납하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밀리아 누님의 마지막이 떠오르는군.”
밀리아 누님의 처형이 있던 날, 밀리아 누님은 울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밀리아 누님에게 물었다.
“누님은 후회하고 계신 건가요?”
내 물음에 밀리아 누님은 모든 사실을 내게 털어놓았다.
“일부러가 아니었다는 점과 도중에 멈출 수 없어진 점.”
인간이 벼랑 끝에 몰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일화였다. 밀리아 누님은 데이브 형이 죽었을 적에 이미 미쳐버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그 정도 경고면 함정 같은 건 안 만들 거야. 자고로 후계자 경합은 정정당당해야지.”
칼데르트가 내부에서 해야할 일이 끝났다. 이번엔 미래의 심복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
“음… 내 기억상으로….”
심복의 마을은 칼데르트가의 영지에 속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작은 마을이었기에 고블린 무리의 습격을 받아 마을이 망했다고 들었다.
그 고블린 무리 습격시기가 심복 녀석이 열넷이었을 때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심복 녀석은 나보다 한 살 어렸다.
“어라?”
현재의 나는 열다섯이었다. 올해 벌어질 사건이라는 소리였다.
“설마 이미 습격을 받았으면 어쩌지.”
옛 기억에 온 생각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의 들었던 중요한 단서가 떠올랐다.
“아, 칼데르트 영지의 축제!”
칼데르트 영지에서 매년 하는 축제를 보러간 덕에 살았다고 심복 녀석이 말했었다. 축제까지는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그 마을까지 가는데 말을 타고 일주일.”
남은 시간 동안에 아버지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마을에 고블린 무리가 습격할 거라고 말해봤자 믿어주시지 않을 거야.”
머리가 아파왔다. 이럴 때는 검을 휘두르는 게 최고다. 나는 검을 챙겨 연무장을 향했다.
축제까지 일주일이 남은 시점에서야 나는 아버지에게 마을에 가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다만 호위 한 명을 데려가는 조건으로.
그렇게 여행길에는 중무장을 한 기사가 내 옆에 자리했다. 데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사였다.
“데일 경.”
“부르셨습니까, 수하르 도련님.”
“데일 경의 경지가 궁금합니다.”
타인의 경지를 묻는 것은 자칫하면 실례인 행동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나는 백작가의 도련님이고 데일은 그 백작가에 속한 기사니 말이다.
데일은 잠시 고민하고 대답해주었다.
“소드익스퍼트 중급 정도입니다.”
내 생각보다 높았다. 덕분에 고블린 무리들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소드익스퍼트 중급이라면 고블린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웬만하면 단칼에 썰려나갈 게 분명했다.
여차할 땐 나까지 합세하면 된다.
나와 나란히 말을 타고 가던 데일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수하르 도련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걸요?”
“말은 언제 배우셨습니까?”
내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나는 말을 탈줄 안다. 다만 후계자로 확정되며 배운 것이었다. 칼데르트가는 열여섯에 기마술을 가르친다. 나는 현재 열다섯이었다.
“사실 밤마다 마구간에 찾아가서 몰래 연습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변명이었다. 데일은 찜찜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런데 체키 마을은 왜 가시려고 하는 건가요?”
“그건 제가 아버지에게도 말씀드렸는데 못 들으셨나요?”
“제가 들은 것은 체키 마을로 가는 도련님을 호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데일에게 고블린으로부터 체키 마을을 구하러 가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버지에게 전했던 말을 그대로 데일에게 말하기로 했다.
“체키 마을 인근에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그곳의 경치가 좋다고 하길래, 칼데르트가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보고 떠나려고 합니다.”
“예?”
내가 말한 것 중에는 이상한 게 없을텐데 데일의 반응이 이상했다.
“백작가를 떠나시는 겁니까?”
아, 맞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카데미로 간다는 것은 아버지와 오르트 단장만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아 사실 제가….”
이왕 이렇게 된 거 데일에게 아카데미를 간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러자 데일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그럼, 도련님도 검성님에게 사사받을 수도 있겠네요?”
“검성…?”
“설마 검성님을 모르시는 겁니까?”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검성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검성은 왕국에서 기사단을 이끌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아카데미를 그만둔 거려나?’
아무래도 전쟁이 일어나면서 아카데미에서 있는 것보다는 전쟁에 참여하는 게 검성에게는 유의미했을 테니 말이다.
“아, 알고 있죠. 다만 아카데미에 검성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도련님이 워낙 바깥세상에 관심이 없으셔서 그런 겁니다.”
나와 데일은 이야기를 하며 체키 마을로 향했다.
***
데일과의 여정은 빠르게 지냈다. 이 시간 동안 데일과 나는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데일이었지만 나에게 꼬박꼬박 경어를 사용했다. 그것으로도 데일의 인품이 훌륭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진짜 도련님은 속이 깊으신 거 같습니다.”
“하하, 데일도 마찬가지야.”
데일은 내게 말을 놓아달라 간청했고 그의 끈질김에 나는 데일에게 말을 놓았다.
“도련님, 곧 도착할 거 같습니다.”
데일의 말에 정면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체키 마을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라도 데일과 함께 보내니 금방 지나네.”
“하하,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체키 마을에 도착하자 체키 마을의 촌장이 우선적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체키 마을의 촌장, 차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차카 촌장님.”
한스는 우리를 여관으로 안내했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여관은 작고 허름했다.
차카 촌장이 내게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칼데르트가의 도련님을 이렇게 허름한 곳에 지내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비만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게는 훌륭한 숙소지요. 데일, 안 그래요?”
“도련님 말이 맞습니다.”
나와 데일은 나란히 붙어 있는 방을 골라 들어갔다. 언제라도 고블린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나는 창가자리를 어슬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