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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3화 (3/150)

#3화.

남들이 다 자고 있는 늦은 저녁에도 나는 눈을 뜬 채로 있었다.

“언제쯤 습격하는 거지?”

마을이 습격당한 시간은 밤이 확실했다. 하지만 정확한 시간을 모르니 약간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댕! 댕! 댕!

빠르게 반복되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만약의 보험으로 경비병에게 오늘 경비를 제대로 서라고 말한 보람이 있었다.

전에는 경비병의 근무태만으로 고블린을 침입을 알아차리지 못한 게 컸다고 심복이 말했었다.

“데일!”

내 부름에 데일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데일은 나와 함께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엔 다섯 정도의 경비병과 수 십 마리의 고블린이 대치하고 있었다.

데일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달려 나가 고블린을 베어 넘겼다. 나도 검을 뽑아 데일에게 합세하려 했다.

하지만 데일은 검을 뽑는 나를 보며 말렸다.

“수하르 도련님께서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지요.”

“데일, 나도 도울 수 있어.”

“안 됩니다. 혹시라도 다치시면 큰일 납니다. 어차피 상대는 고블린뿐이니, 저 혼자 충분합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매일 같이 검을 휘둘렀고, 회귀 전에는 마물사냥을 떠나기도 했었다.

고블린 정도는 내 적수가 아닌데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거는 싫었다.

“데일, 나도 칼데르트 가문의 일원이야. 가문의 영지에 속한 마을이 습격받는데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는 것은 못해.”

나는 데일에게 합세해 고블린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에 데일은 약간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전투에 집중했다.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데일 덕분에 전투는 금방 끝이 났다. 아군 측에는 가벼운 상처를 입은 경비병뿐 사망자는 없었다. 그리고 고블린은 전멸했다.

“수하르 도련님.”

데일의 표정은 화가 난 듯 보였다.

“저는 도련님의 호위입니다. 그렇게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았어….”

“하지만, 대단하십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내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물이라고 하여도 첫 살생입니다. 그런데도 당황하지 않고 마물을 베어 넘기셨습니다.”

“사람도 아니고 마물인데 죄책감을 갖는 건 이상하지 않아?”

“아닙니다. 검으로 첫 사냥, 혹은 살생을 할 때 사람들은 죄책감 때문에 당황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내 검을 보았다. 고블린의 푸른 피가 묻어있었다.

“검으로 살을 베고 뼈가 닿는 그런 감촉에 사람은 거부감을 느껴 당황을 하는 겁니다.”

데일의 말이 이해가 된다. 나 또한 처음 마물을 베었을 때 감촉이 불쾌하다고 생각했다.

“당황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최고의 재능이죠. 우르트 단장께서 아카데미를 추천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뭐? 우르트 단장님이 그런 걸 어떻게 알아.”

“하하, 마음의 강함은 검을 휘두르는 모습만 보아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죠.”

아무래도 데일은 내게 콩깍지가 제대로 씐 거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조만간 심복이 도착할 테고, 그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아카데미에 그를 시종으로 데려가서 일찍이 교육을 시켜주면 가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심복을 만날 날이 기대되었다.

심복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여가를 즐겼다. 본래의 목적이 아닌 속이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생각보다 좋았다.

“도련님, 이거 경치가 엄청나네요.”

데일이 계속 엄청나다는 말만 반복해서 말했다. 그런 데일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나 역시 감탄사를 제외한 아무런 말이 나오질 않았다.

호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웅장했다. 전설 속의 드래곤 레어가 있다면 이런 곳이라 짐작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좋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동료들 중에 귀향을 하고 싶다는 동료가 이제야 이해됩니다.”

호수의 물은 맑고 투명했다.

우거진 수풀이 자연스럽게 호수를 감싸 안고 있었고, 하나의 나룻배가 호수 위를 떠다녔다.

“데일, 저 배에 타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

내가 지그시 데일을 쳐다보았다. 호수 한가운데에 사람이 타고 있지도 않은 배였다. 저걸 타기 위해선 누군가가 헤엄을 쳐서 저 배를 가져와야만 했다.

데일이 검을 풀고 갑옷마저 벗었다.

“알겠습니다.”

“힘내, 데일!”

역시 기사는 기사였다. 게다가 소드익스퍼트 중급이 아닌가. 뛰어난 신체능력을 기반으로 빠른 속도로 호수 중앙에 도달하더니 배에 올라탔다.

데일이 배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나도 그에 답하듯 손을 흔들어주었다.

“데일, 거기 노가 있어?”

“예, 다행히도 있습니다. 지금 바로 도련님께 가겠습니다.”

데일이 노를 젓자 순식간에 내 앞으로 도달했다. 나는 가볍게 뛰어 배에 올라탔다. 배는 내가 올라탄 반동에 잠깐 흔들렸지만 이내 균형이 잡혔다.

데일이 노를 젓고 나는 가만히 있었다. 가볍게 흔들리는 배와 볼을 간지럽히듯 부는 바람에 나는 잠에 들 것만 같았다.

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좋다. 정말 좋아.”

회귀 전부터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삶은 이런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백작같이 힘든 게 아니라 말이지.’

***

“도련님!”

데일의 외침에 황급히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다. 나는 입가에 흐른 침을 소매로 닦았다.

“이제 곧 날이 저물겠습니다. 이제 숙소로 가시지요.”

“알았어, 데일.”

나는 데일과 함께 마을을 향했다. 마을의 입구에 다다랐을 쯤에 저 멀리 익숙한 아이가 마을에 들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차카 촌장이 아이에게 말했다.

“제이콥, 어서 오려무나.”

제이콥. 저 이름을 듣자 회귀 전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수하르 칼데르트는 업무에 지쳐 집무실의 책상에 엎드려 잠시 쉬고 있었다.

똑똑.

“누구야!”

밖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수하르가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접니다. 제이콥.”

제이콥은 수하르가 들어오라고 말하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엎드린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하르를 본 제이콥은 표정을 찌푸렸다.

“백작님, 체통이라는 것을 좀 지키시지요.”

“크흠, 애당초 들어오라는 허락이나 맡고 들어오지 그랬나. 체통을 지키게 말이지.”

제이콥은 수하르의 가신들 중에 유일하게 귀족의 핏줄이 아니었다. 그가 평민 출신이라는 점은 수하르가 제이콥을 아끼고 편애하는 요소가 되었다.

절반이긴 하나 수하르 또한 평민의 핏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가 허락을 맡고 들어왔으면 체통을 지키셨을 겁니까?”

“아니.”

히죽이며 대답하는 수하르에 제이콥은 머리가 아파져오는 것을 느꼈다. 제이콥이 수하르에게 다가가 말했다.

“요즘 따라 많이 무기력해보이십니다.”

“…….”

수하르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던 종이를 흔들었다. 이 업무의 양을 보고도 기력이 나겠냐는 의미였다.

제이콥이 수하르의 옆자리에 앉아 수하르의 업무를 돕기 시작했다.

“둘이서 하면 빨리 끝날 일이지요.”

“그건 그렇지. 너도 업무가 많을텐데 고맙다.”

아무 말 없이 제이콥과 수하르가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수하르가 제이콥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이콥, 만약에 과거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나?”

“백작님, 또 밖에서 미치광이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신 겁니까?”

제이콥이 말하는 미치광이들은 자칭 회귀자들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궁금해졌어. 너의 후회는 무엇일지.”

“제 후회 말입니까….”

고민을 하던 제이콥의 표정이 절로 찡그려졌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축제를 가지 않을 겁니다.”

“축제라면 우리 영지에서 하는 축제?”

“예.”

제이콥은 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은 한 사냥꾼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했다. 제이콥은 항상 백작가에서 주도하는 축제를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작은 마을의 사냥꾼 부부에게는 축제에 갈만큼 돈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제게 기적이 일어났었죠.”

열네 살의 제이콥의 앞에 희귀동물을 나타났다. 제이콥은 활을 이용해 희귀동물을 잡았고, 그 가죽을 팔기 위해서는 백작가가 위치한, 곧 축제가 시작될 도시에 갈 필요가 있었다.

“저는 마냥 신이 났죠. 저의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셨습니다.”

제이콥의 부모는 제이콥에게 홀로 다녀오라고 말했다. 희귀동물의 가죽이라 하여도 세 명을 충당할 만큼의 값어치는 나오지 않았다.

“첫 여행이라 조금은… 아니, 많이 들떠있었죠.”

제이콥은 축제를 즐기며 호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충분히 즐긴 제이콥이 자신의 부모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다시 마을로 향했다고 했다.

“그리고 비극이 벌어져있었죠.”

제이콥이 마을에 인근에 도착하니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했다. 마을 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짙은 피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마을에서 피냄새가 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제이콥은 커다란 고기라도 사냥해서 마을 사람들끼리 축제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고 했다.

마을에 도착한 제이콥은 절망했다. 마을의 거리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무언가가 먹다만 시체가 즐비해있었다. 시체들은 전부 제이콥이 보아왔던 마을 사람들이었다.

제이콥은 집으로 달려갔다. 제이콥은 생각했다. 마을이 이렇게 변했지만 사냥꾼인 아버지와 어머니만큼은 잘 숨었을 거라고.

제이콥은 작은 희망을 품고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희망 따윈 없었죠.”

제이콥의 부모가 자던 침실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제이콥의 부모의 가슴엔 녹슬고 허름한 단검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몸 곳곳에 물어뜯긴 자국이 남아있었다.

“사냥꾼의 자식이었기에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었죠. 녹슬고 허름한 단검은 주로 고블린이 쓴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이 고블린에 의한 일이란 걸 깨달은 제이콥은 무작정 달려 나갔다. 가진 여비도 없었기에 무작정 걸었다. 허기를 느끼면 주위에 난 풀을 뜯어 먹었다.

그리고 백작가에 도착했다. 제이콥은 자신의 마을에 일어난 일을 수하르의 아버지인 칼데르트 백작에게 말했고, 칼데르트 백작이 직접 나서서 마을 인근의 고블린들을 전부 소탕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는 전 백작님의 은혜 덕에 교육을 받아 이렇게 귀족들 사이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수하르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어떤 말을 꺼내봐야 제이콥을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제이콥의 모습에는 아무런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수하르는 더욱 안타까웠다.

“그래서 제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축제는 가지 않을 겁니다. 차라리 고블린에게 죽더라도 마지막은 가족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집무실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수하르와 제이콥, 두 사람 다 말없이 업무에 집중했다.

이 적막을 깬 건 다름 아닌 제이콥이었다.

“백작님께서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실 겁니까?”

수하르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망설임 없이 수하르가 대답했다.

“후계자 경합을 포기할 거야.”

“좋은 생각입니다.”

“제이콥, 좋은 생각이라니 마치 내가 백작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

사소한 농담 덕에 조금이나마 밝아진 분위기에서 수하르와 제이콥은 일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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