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제이콥과 차카 촌장에게 다가갔다.
나를 발견한 차카 촌장이 고개 숙여 내게 인사했다. 그러곤 제이콥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제이콥, 인사드리거라. 칼데르트 백작가의 도련님이시다.”
내 정체를 들은 제이콥이 화들짝 놀라며 내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이콥이라고 합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제이콥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 수하르 칼데르트라고 해. 이쪽은….”
“칼데르트 백작가의 기사 데일이라고 한다.”
데일이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데일의 이러한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기사란 선망에 존재니까.’
이를 증명하듯 제이콥은 나에겐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지만 데일에겐 선망의 눈빛을 보냈다.
“우와! 기사님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뵙는 건 처음 있는 일이예요.”
제이콥의 말에 데일이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약간 질투가 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귀족의 자제는 평민에게 한없이 어려운 존재지만 기사는 선망의 존재이니 말이다.
“그래서 제이콥, 어디를 갔다온 건가?”
내 물음에 답해준 것은 제이콥이 아닌 차카 촌장이었다.
“최근에 제이콥이 좋은 가죽을 얻어서 도시에 팔고 왔습니다. 그러면서 축제도 즐기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제이콥이 해주었던 이야기대로였다. 나는 본래의 목적을 생각하며 제이콥을 바라보았다. 앳되고 순박해 보였다.
‘과연….’
제이콥을 데려가는 게 맞는 선택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제이콥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래대로라면 제이콥은 부모를 잃고 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백작가에 오게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 운명을 내가 바꾸어주었다. 제이콥은 부모를 잃지 않아도 되었다.
제이콥이 내게 말 한 후회를 떠올렸다.
-마지막은 가족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만약 내가 제이콥에게 함께 가자면 제이콥은 무조건 승낙할 것이다. 과연 어떤 평민소년이 귀족의 간택을 거절하겠는가.
하지만….
“제이콥, 하나 물어보고 싶구나.”
“네, 어떤 것이든 물어보세요.”
“너는 부모님을 좋아하느냐?”
제이콥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네! 아주 많이 좋아해요.”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제이콥의 해맑은 미소였다. 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의 제이콥을 굳이 데려갈 필요가 없다. 좀 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게 한 뒤에 데려와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난 제이콥의 어깨를 살포시 두드려주었다.
“제이콥, 부모님께 효도 잘해라.”
“네!”
***
괜한 미련이 생길 것을 걱정한 나는 데일과 함께 최대한 빨리 마을을 떠났다.
“데일, 내가 내린 부탁은 잘 처리했지?”
“물론입니다.”
마을을 떠나기 전에 나는 데일에게 마을의 청년을 모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데일이 그 청년들을 데리고 마을 인근의 몬스터를 소탕해달라고 부탁했다.
데일은 그 부탁을 충실히 수행해주었다.
“다행이야.”
“그런데 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건가요?”
“크흠, 명령이 아니라 부탁….”
“아, 맞다. 왜 그런 부탁을 하신 건가요?”
과거에는 이미 사건이 벌어진 후에 대대적인 몬스터 소탕작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벌어져야할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대적인 소탕작전은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남아있는 몬스터가 또다시 침입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냥, 조금 걱정이 되니까.”
“…….”
데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데일과 수하르가 마을을 떠나기 며칠 전, 데일은 수하르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마을사람들을 모았다. 마을사람들의 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창이 쥐어져 있었다.
“음….”
창을 든 마을사람들의 모습은 많이 엉성해보였다. 도저히 이 상태로는 소탕작전에 데려갈 수 없는 정도였다.
데일이 청년들에게 외쳤다.
“기본적인 것만 빠르게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집중하세요!”
데일은 맨 앞에 있는 청년의 창을 빼앗듯이 가져왔다. 데일은 잡는 법부터 시작해 찌르는 법까지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그 덕에 마을사람들의 자세가 한결 나아졌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데일은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도중 몬스터를 만났다. 데일은 최대한 마을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마을사람들이 직접 몬스터를 잡게 만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마을사람들은 꽤나 훌륭해져있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밤중에 고블린들이 쳐들어오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최근에 말이죠.”
마을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평소와 같았으면 자신들은 고블린에게 죽었을 목숨이었을지도 모른다. 귀족자제가 왔다는 이유로, 수하르의 언급으로 경비를 열심히 선 덕에 살았다.
아니, 만약 데일과 수하르가 없었다면 고블린을 발견했더라도 대항하지 못하고 도망치느라 바빴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우리 도련님께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싸움을 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데일의 지레짐작이었다. 수하르는 단지 달라질 미래를 걱정하며 인근의 몬스터 소탕을 부탁했다. 그저 수하르는 데일이 인근 몬스터만 잘 잡아준다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가르쳤고, 여러분은 이제 충분히 마을을 지킬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데일의 말에 마을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하나의 팁을 주자면 적어도 달에 한 번씩은 인근 산을 정찰하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데일이 뒤돌아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데일은 생각했다.
‘떠나기 전에도 마을의 안전을 생각하시다니 도련님은 정말 참된 귀족의 표본 같은 인물이구나.’
***
칼데르트가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 여행이었다. 살면서 이 정도의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칼데르트가를 들어갔다.
나는 두 팔 벌려 환호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안전하게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저는 칼데르트 백작님께 가보겠습니다.”
데일은 곧장 아버지를 찾아뵈러 간 반면 나는 확인할 게 있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경고는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쯤에 벌어진 후계자 경합 때문에 백작가 내부는 시끄러웠다.
칼데르트가의 후계자 경합은 단순명료했다. 임무에 난이도가 정해져있고, 그 임무를 최대한 많이 함으로 자신의 능력 뽐내는 것이었다.
“데이브 형!”
어수선한 가운데 데이브 형이 있었다. 데이브 형이 나를 발견하고 내게 다가왔다.
“소식 들었다. 아카데미에 간다고?”
“응. 그런데 형은 어디 가는 거야?”
데이브 형이 어디를 가는지 알고 있지만 예의상 한 번 물어봤다.
“백작가 인근 산에 몬스터 부락이 생겼다고 해서 토벌을 나가려고.”
회귀 전에 데이브 형은 이 토벌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밀리아 누님의 함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밀리아 누님에게는 경고해두었으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데이브 형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내 시선이 데이브 형의 목 부근에서 멈추었다. 데이브 형에 목에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내 시선에 데이브 형 또한 자신의 목걸이로 향했다.
“아, 이거? 밀리아가 주던데. 행운을 부르는 목걸이라고.”
최대한 침착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 나는 빼앗듯이 형의 목에서 목걸이를 가져왔다. 당황한 데이브 형은 내게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데이브 형도 내가 많이 화가 난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형, 지금 밀리아 누님 어딨어?”
“밀리아라면….”
데이브 형의 설명에 따라 나는 밀리아 누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데이브 형의 말대로 밀리아 누님은 정원에 있었다. 밀리아 누님은 정원테이블에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내가 밀리아 누님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이 미친년아!”
내 말에 밀리아 누님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시종들조차 놀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외침에 정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행동이 멈췄다. 특히 밀리아 누님의 표정은 황당함을 넘어 얼이 빠진 듯한 모양새였다.
밀리아 누님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자신의 가슴 부근을 가리켰다.
“수하르, 미친년이라니 설마 나한테 말한 거니?”
찔리는 게 없는 듯한 밀리아 누님의 얼굴이 보니 주먹이 먼저 나갈 거 같았다.
하지만 나는 분노를 꾹 참고 냉정을 유지하려 힘썼다. 나는 데이브 형에게 뺏은 목걸이를 밀리아 누님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몰라?”
잠깐 멈칫한 밀리아 누님이었으나 이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게 왜? 데이브 오빠한테 준 건데 왜 너한테 있는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회귀 전에 밀리아 누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후회한다고 말했을 당시의 밀리아 누님의 표정은 거짓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의 밀리아 누님에게 후회하지 않게 기회를 줬음에도 똑같은 일을 하려했다.
“내가 분명 편지에다가 써놨지. 허튼 짓 하지 말라고.”
편지라는 말에 밀리아 누님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너였구나, 그 협박편지.”
“후….”
밀리아 누님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준 기회를 왜 차버린 것인지 의아스럽기만 했다.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런 경우는 다시 쓰는 게 아닌 것인가.”
밀리아 누님의 마지막은 거짓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은 죄를 지어야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뒤를 따라 온 데이브 형도 도착했다. 나와 밀리아 누님 사이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데이브 형은 조용히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수하르, 도대체 어떤 일인지 말해주거라.”
“형, 이 목걸이 행운 같은 건 안 불러. 오히려 몬스터나 부르지.”
내 말에 데이브 형은 놀란 기색이 들어났다. 밀리아 누님도 약간은 놀란 듯 보였다. 밀리아 누님은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내게 말했다.
“무, 무슨 근거로 그게 몬스터를 불러일으킨다는 거야.”
“누님… 진짜 멍청하구나. 내가 왜 누님한테 허튼 짓하지 말라고 한지 모르겠어? 이 목걸이가 뭔지 아니까 그랬지.”
밀리아 누님이 내 말에 무엇인가 반박해보려고 했지만 이를 데이브 형이 막았다.
“수하르, 계속 말해봐.”
“이 목걸이에 쓰인 보석은 얼핏 보면 그저 빨간 보석처럼만 보이지.”
나는 목걸이에 있는 보석을 데이브 형의 얼굴에 가져다댔다.
“하지만 여길 보면 검은색 점이 많이 찍혀있는 게 보이지.”
“응, 내 눈에도 확실하게 보여.”
빨간 보석에 작은 검은색 점들이 찍혀있는 보석은 이렇게 불렀다.
“이건 메드락이라는 보석이야.”
“메드락? 처음 듣는 보석인데.”
내가 말을 이어갈 때마다 밀리아 누님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갔다. 내가 어떻게 자세히 알고 있는지 궁금하겠지.
“우리 왕국에서 취급하지 않은 보석이야. 위험하니까.”
“위험하다니 뭐가?”
“이 보석에 대해서 밝혀진 게 별로 없지만, 밝혀진 것 중 하나가 몬스터의 광란을 일으켜. 몬스터가 더욱 흉포해지는 거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데이브 형이 밀리아 누님의 뺨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