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생물이 죽으면 시체가 남는다는 건 상식이었다. 하지만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 상식과 달랐다.
고블린이 푸른 빛을 내며 점점 흐려져 가는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을 확인했다.
“없다?”
몬스터의 상징인 푸른 피가 검에 묻어있지 않았다. 베기 전과 같이 깔끔했다. 아무래도 신기한 고블린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시체를 남기지 않는 고블린이라니.”
무언가의 마법으로 생성된 고블린이 틀림없다. 하지만….
“생명을 마법으로만 만들 수 있는 건가?”
마법으로 만들 수 있는 생명체는 있었다. 하지만 그 생명체들의 육체는 따로 필요했다. 지금의 것과 다르게 오직 마법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란 소리였다.
유적의 제작자가 정말로 궁금해졌다.
“혹시 전설 속에 나오는 대마법사가 만든 게 아닐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마법사라면 왜 마나호흡법을 남겼을까. 마나호흡법을 남긴 이상 이 유적의 주인은 분명히 검을 사용하던 사람일 것이다.
머리가 아파오니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기로 했다. 무엇이 됐건 내 목표는 하나였다.
“마나호흡법을 얻는 거지!”
그렇게 나는 마나호흡법을 찾기 위한 탐색을 이어갔다. 도중에 고블린도 많이 마주쳤지만 신기한 것과는 다르게 보통의 고블린보다 단순하고 약했기에 탐색은 수월했다.
그리고 유적에 끝에 다다랐다.
커다란 문. 딱 보아도 이곳에 마나호흡법이 적힌 책이 있을 것이다. 나는 커다란 문 앞에 섰다.
“근데 이걸 어떻게 열지?”
나는 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문이 서서히 열렸다.
“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바닥은 처음 보는 문자가 한가득 새겨져 있고 주위에는 푸른 횃불이 방을 밝혔다. 그리고 중앙에는 왕이 앉을 법한 의자가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진동이 느껴졌다. 바닥에 새겨진 문자에 푸른 빛을 뿜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들어온 문이 닫혔다.
“미친….”
퇴로가 막히니 왠지 모를 두려움이 몰려왔다. 바닥에 새겨진 문자에는 여전히 푸른 빛을 뿜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바닥의 문자에 빛이 약해졌다. 그리고 이전과 달라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목소리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렸다.
“누, 누구세요…?”
분명히 의자만 있었지만 이제는 흐릿한 무언가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email protected]^%&.”
괴상한 언어가 흐릿한 무언가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리고 흐릿한 무언가가 점점 선명해지더니 나는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고블린에 관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본 것이었다.
“홉고블린!”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고블린이었다. 중요 부위만 가린 채 커다란 검을 쥐고 있는 홉고블린을 보니 마치 야만전사와 같아보였다. 확실히 다른 점은 피부가 초록빛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홉고블린은 나를 유심히 보더니 의자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홉고블린은 포효하더니 나를 향해 대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내게 달려드는 홉고블린을 옆으로 굴러서 피했다. 홉고블린은 자신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혔다.
“보통의 홉고블린보다는 약할 거야.”
이곳에 있는 신기한 고블린들은 보통의 고블린들보다 약했다. 저 홉고블린 또한 전설과는 다르게 약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 홉고블린이 뿜는 기세로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저 녀석은 나보다 훨씬 강하다.’
홉고블린이 대검을 든 채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옆으로 굴러 피하려고 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기에 그저 옆으로 살짝 피했다.
나를 지나칠 줄 알았던 홉고블린은 내 앞에 멈춰 대검을 높게 들었다.
‘이건 기회다.’
만약 옆으로 굴렀다면 홉고블린의 후속타를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건 오히려 기회였다.
홉고블린이 대검을 내려치기 전에 나는 홉고블린의 옆구리를 베며 지나쳤다.
홉고블린의 대검은 내가 있었던 자리를 내려찍었다. 분명 홉고블린의 옆구리를 베었지만 홉고블린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분명 저 대검에 한 대라도 맞으면 나는 끝이었다. 반면 홉고블린에겐 상처를 남겨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불만을 삭히고 다시 검을 치켜세웠다. 여기서 확실한 건 내가 홉고블린 못 죽이면 죽는 건 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홉고블린이 공격은 피하면서 내가 공격하는 구도가 계속 이어졌다.
다리는 떨리고, 팔에 힘이 없었다. 홉고블린의 공격은 한 대도 맞지 않았음에도 온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생겼다.
“너 언제 죽는 거냐….”
홉고블린 또한 자잘한 검상이 있었지만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네.”
홉고블린의 움직임은 처음과 다르게 많이 둔해졌다. 이제는 한 끝 차이로 공격을 피할 만큼 눈에 익기도 했다.
홉고블린이 다시 내게 다가왔다. 대검을 높이 치켜세우더니 나를 향해 내려찍었다.
“이젠 질린다!”
몸을 틀어 피하고 그대로 손에 쥔 검을 홉고블린의 목을 향해 찔러넣었다.
목에 검이 박힌 홉고블린이 내려찍은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윽….”
강한 충격이 내게 찾아왔다. 다행히도 검면이었기에 충격만 컸지 두 동강이 나진 않았다. 옆으로 튕겨져 나가며 검을 놓쳤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며 외쳤다.
“내 검!”
검이 없다면 저 홉고블린을 이길 수 없었다.
다행히도 목에 박힌 검이 치명상이 되었는지 홉고블린의 형체가 점점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해치웠나?”
더 이상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상처는 남지만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을 보아 이곳의 고블린과 같다고 짐작했던 게 사실이었던 걸로 판명 났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홉고블린이 사라지며 홀로 남겨진 내 검을 주웠다.
“아카데미에서 배운 게 도움이 되긴 하네.”
어떤 상황에서도 검을 놓지 않는 것과 검성의 감 키우기 훈련이 도움이 되긴 했다. 나는 이제 영광의 보상을 얻으러 걸음을 옮겼다.
의자의 뒤편에 두 개의 문이 생겼다. 하나는 이곳에 올 때와 같이 내려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방이었다.
“뭐지?”
들은 바와 달랐다. 유적에 더 내려가는 문이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없었다. 일단 그것보다 급한 건 보상이었다.
나는 방을 들어갔다. 역시 보상은 이곳에 있었다. 책상 위에 두 가지가 올려져 있었다. 한 권의 책과 작은 상자였다.
“이 책은 마나호흡법일테고….”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새까만 구슬이 있었다. 향를 맡아도 보았지만 아무런 향이 나질 않았다.
수상해보였지만 그래도 책과 함께 품속에 챙겼다.
“나중에 알아보면 되는 거지.”
그리고 방을 떠났다. 그리고 옆에 있는 계단에 시선이 절로 갔다.
“잠깐 구경 좀 하고 와야지.”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익숙한 몬스터가 있었다.
‘오크.’
고블린보다 강한 몬스터였다. 나는 왔던 길을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보상은 더 있을 게 분명해. 그리고 이곳을 지키는 게 오크인 이상 이곳보다 보상은 더 좋겠지.’
마나호흡법을 익히고 다시 찾아와 보상을 얻어가기로 정했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이 안 알려진 걸까.’
회귀했기에 그 이유는 영원히 알 수 없을 터였다.
***
아카데미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에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드디어 마나호흡법을 익힌다.”
나는 유적에서 얻은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마나호흡법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흔히 말하는 가부좌의 자세였다.
‘이 마나호흡법이 좋은 이유가 하나 있지.’
굳이 마나를 쌓으려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나가 쌓인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르게 집중하지 않아도 마나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남들보다 두 배는 쌓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애당초 회귀 전에도 마나는 느껴보았기에 마나에 대한 감각을 찾는 것은 쉬웠다. 책에 적힌 대로 마나를 몸에 돌리자 확실히 전과 다른 게 느껴졌다.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뛰었다. 가볍게 뛰었음에도 상당한 높이였다.
‘신체능력이 확실히 좋아졌어.’
게다가 이 마나호흡법가 좋은 데는 두 번째 이유도 컸다. 마나를 돌리자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자잘한 상처들이 아물어갔다.
‘됐어.’
이 마나호흡법만 있다면 충분히 높은 등급의 용병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유적에는 보상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 보상을 다 얻는다면…?’
분명 나는 검성과 같은 존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에 있어 제일 큰 목표는 검성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아닌 휴식이었다.
‘그보다 주말인데 프리드는 뭐하고 있을까?’
프리드가 궁금했기에 내 방을 나와 옆방의 문을 두드렸다.
“프리드, 있어?”
방에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른 아침인데 프리드가 없을 리가 없을텐데도 말이다.
“어, 수하르?”
프리드의 목소리는 방이 아닌 뒤에서 들렸다. 뒤를 보니 프리드가 서 있었다.
“프리드,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아, 동아리에서 새벽 훈련이 있었거든.”
생각해보니 아카데미에서는 동아리 활동이 존재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배움을 나누는 행동이었다.
다만 나와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주말에는 미래를 위한 일을 해야하니 말이었다.
“프리드, 네가 가입한 동아리는 어떤 거야?”
“대기사의 모임이라는 동아리야.”
기사를 목표로 하는 프리드와 어울리는 동아리였다. 이름만 들어도 기사를 노리는 학생은 모임이었다.
프리드가 말했다.
“왜 너도 동아리에 관심이 생겼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주말에는 좀 바빠.”
“웬만한 동아리가 출석이 신경을 별로 안 써. 강의도 아니니까 성적에 해가 되진 않아.”
“그래…?”
그렇다면 조금 궁금한 게 있었다.
“고대마법과 관련된 동아리가 있을까?”
“음? 나도 잘 모르는데. 한 번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동아리를 들어간다면 고대마법 동아리를 가입하고 싶었다. 고대마법에 관한 책으로 회귀에 대한 단서는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더 먼 고대로 넘어가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프리드가 알려준 동아리관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이곳에 가면 어떤 동아리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프리드에게 들었다.
나는 이곳을 관리하고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어떤 동아리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저기 가면 있어요.”
동아리원 모집 게시판이었다. 나는 간단하게 감사를 표하고 게시판 앞으로 갔다.
고대마법과 관련되어 있어 보이는 것을 훑던 중에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냈다.
“고대마법보다 한 단계 윗줄의 마법, 신화마법 동아리라….”
고대마법은 실존한다고 증명된 반면에 신화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마법으로 아직까지는 증명되지 않은 마법을 신화마법이라 불렀다.
“괜찮아 보이네.”
나는 적힌 대로 신화마법 동아리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아리관의 3층 맨 끝에 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