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간단한 채비를 하고, 방을 나섰다.
“일단은….”
검술을 발전시키러 갈 필요가 있기에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도착한 연무장에서 모레드트를 발견했다.
주말 이른 아침부터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모레드트를 보니 반가웠다.
“모레드트, 웬일로 아침수련이야?”
“원래 나는 주말엔 아침수련을 하는데?”
“아, 그랬구나.”
생각해보니 나는 주말에는 용병활동으로 바빴거나 쉬느라 바빴다.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주말에 연무장을 온 적이 없던 것이었다. 모레드트가 아침수련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나저나….”
모레드트의 가문인 파우스트가는 무가가 아니었다. 무보다는 문, 정치에 중심을 둔 가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레드트가 휘두르고 있는 검은….
“좋은데.”
검이 명검이라는 게 아니라 검술이 좋았다. 제법 좋은 검술인 게 티가 났다.
“파우스트 공작가의 검술은 보통의 다른 가문보다 훌륭하지.”
“그렇게 보이긴 하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 모레드트.”
“왜?”
“나랑 대련 해볼래?”
잠시 고민하던 모레드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련을 승낙했다. 나는 연무장 한켠에 배치된 목검 중 하나를 골라서 모레드트 앞에 섰다.
“마나는 없이.”
모레드트의 경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모레드트의 검술을 보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마나는 없이 싸우는 게 좋을 게 분명했다.
“좋아!”
“그럼, 간다.”
모레드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모레드트는 비스듬히 검을 막는 것으로 내 공격을 흘려냈다.
그리고 모레드트의 공격이 이어졌다. 나는 뒤로 점프하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음….”
단 한 번의 부딪힘으로도 모레드트의 검술이 기술에 집중됐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시금 확인해보자는 마음으로 모레드트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모레드트가 다시 내 검을 가볍게 흘려냈다. 그리고 나는 이어지는 모레드트의 공격에 다시 거리를 벌렸다.
“제법인데?”
“너도 대단하네.”
확실히 모레드트는 대단했다. 좋은 검술과는 별개로 그것을 다룰 줄 알아야했기 때문이다. 일단은 정석대로 모레드트를 상대하기로 했다.
“기술에 치중된 검술은 속도에 약하지.”
힘은 속도를 이기고, 속도는 기술을 이긴다. 그리고 기술은 힘을 이기는 꼬리에 꼬리가 무는 관계였다.
나는 최대한 검술을 빠르게 휘두르는 데에 집중했다. 점점 빠르게 몰아치는 나의 검에 모레드트의 정신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순간 모레드트의 빈틈이 보여왔다. 나는 그곳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빈틈 발견!”
하지만 내 검은 속수무책으로 막히고 말았다.
“기술이 속도에 약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어. 그렇기에 검술이 있는 거지!”
아무래도 일부러 보인 빈틈이었나 보다. 어느새 목에 겨눠진 검을 손으로 밀어내며 나는 패배를 인정했다.
“모레드트, 너 강했구나.”
“수하르, 너도 꽤 하던데.”
모레드트의 대련은 패배했지만 생각보다 검술에 대해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만 더 하자.”
좀 더 패배하더라도 내 검술을 더 다듬고 싶었다.
모레드트가 흔쾌히 승낙해준 덕에 나는 내 검술을 충분히 다듬을 수가 있었다.
***
[수상한 동굴을 탐사해주세요.]
수도 근처의 마을에서 들어온 의뢰였다.
“딱히 수상해보이지는 않는데?”
동굴 안은 조용했다. 동굴 안을 들어가니 옅은 빛이 눈에 비춰졌다. 야광초였다.
“아싸!”
내 예측이 맞았다. 이제 고블린만 나타나준다면 금상첨화인 상황이었다.
스무 개의 야광초를 캐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나저나 고블린은….”
동굴 안은 조용한 게 생명체가 따로 살고 있는 것 같진 않아보였다.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돌릴려는 순간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전투태세를 취하며 인기척이 난 방향에 말했다.
“거기 누구예요?”
내 물음에 한 사내가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나타났다. 사내는 며칠간 씻질 않은 것인지 꼬라지가 말이 아니었다.
사내는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곳엔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수상해 보이는 동굴이 있다고 해서 길드에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내 말에 안심한 듯 사내가 경계를 풀었다.
“죄송합니다. 여행을 하던 중에 마침 좋은 동굴이 있었기에 쉬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여유롭게 말하고 있었지만 왠지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사내는 나를 지나치며 동굴 밖으로 떠나려고 했다.
“잠깐만요!”
“네?”
“혹시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사내의 이름은 물은 것은 핑계였다. 좀 더 기억해낼 필요가 있었다. 저 사내를 놓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한스입니다. 그런데 이름은 왜….”
한스. 흔하디 흔한 이름이다. 급하게 가명을 대라고 하면 나올 법한 이름이다.
내가 묵묵히 사내를 쳐다보자 사내가 기분이 나빠진 것인지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도대체 뭡니까?”
은근슬쩍 사내가 자신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무래도 검을 쥐려는 듯 보였다.
사내에 대해선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나는 무작정 사내에게 검을 뽑으며 달려들었다.
내 감을 믿기로 했다.
“젠장!”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다급히 검을 뽑아 내 검을 막았다. 사내는 이미 검에 손을 옮기고 있었기에 가볍게 내 검을 막을 수 있었다.
“역시 나를 알고 있었나?”
모른다. 하지만 한번 떠보기로 했다.
“당연하지!”
“칫, 그런데 혼자야?”
“어, 싱글이야.”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재밌구나! 이 몸을 잡으러 혼자 오다니.”
“니가 뭐 별거라고.”
“화제의 연쇄살인마, 잭을 별거라고 칭하다니, 역시 너는 재밌는 녀석이구나!”
역시 내 예상대로 자기소개를 할 줄 알았다. 수상한 녀석일수록 자신의 이름을 먼저 꺼내는 법이었다. 그리고 잭의 이름을 들으니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잭은 자신의 취미로 무고한 시민을 고문한 전직 기사였다. 잭은 자신의 취미가 동료 기사에게 걸려서 동료 기사를 살해하고 도망쳤다.
그리고 도망친 잭은 숨어 다니면서 남몰래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녀석이었다.
“이 몸은 무려 소드익스퍼트 초급의 고수다! 별 볼 일 없는 용병은 내 상대가 안 되지.”
비릿한 웃음을 짓는 잭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나는 소드익스퍼트 중급이었다.
잭이 내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나는 열다섯이다. 나이에 맞게 나는 아직 앳되게 생겼다.
둘째, 나는 용병이라 밝혔다. 보통 용병은 기사가 되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가 모였다는 인식이 있었다.
“겁먹었구나.”
잠시 생각하느라 멈춘 것 때문에 잭이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니.”
“거짓말을 하다니 귀엽군.”
진짜로 아닌데. 겁은 안 먹었더라도 잭이 소드익스퍼트 초급이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어디 잘못 찔리면 죽을 수 있으니까.’
잭의 자세를 살펴보았다. 마치 우뚝 선 기사상이 취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한 손은 뒷짐 쥔 채로 검을 세우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참으로 허세가 가득 찬 자세였다.
“이 몸께서 한 수 가르쳐주마.”
말이 끝나자마자 잭이 내 심장 부근을 검으로 찔러왔다.
나는 몸을 틀어 가볍게 피하고선 잭의 검을 온 힘을 다해 내려쳤다. 그러자 잭의 검이 두 동강 났다.
잭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했다.
“뭣이!”
“어라?”
나는 검을 쳐 잭이 검을 놓게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단번에 두 동강이 날 줄은 예상도 못했다.
잭이 두 동강난 검을 잠시 바라보더니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잭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훗, 제법이군.”
그렇게 말한 잭이 이상한 행동을 취했다. 그는 발만을 움직이며 나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잭이 몸을 돌려 달아나려고 한 순간에 발 부근에 있던 돌을 잭을 향해 찼다.
“어딜 도망가려고!”
돌멩이는 정확히 잭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돌멩이에 맞은 잭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잭, 널 길드에 연행하겠다!”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대사였다. 잭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계속 누워있었다.
“설마…?”
잘못 맞아 골로 간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자마자 곧바로 잭에게 다가갔다. 잭의 이름을 부르며 흔들어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나는 잭을 돌려 눕혔다. 그리고 그 순간 잭은 단검으로 내 목을 노렸다.
“뒤져라!”
나는 잭과 거리를 벌렸다. 간신히 잭의 단검은 피했지만 목 부근의 피부가 베인 것인지 피가 나왔다.
“비장의 수가 통하지 않다니, 항복하겠소.”
잭이 단검을 버리고 두 팔을 들었다. 깊은 곳에 분노가 끌어 올랐다. 그 단검을 못 피했으면 나는 죽었다.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음… 말 다했니?”
주먹을 풀며 잭에게 다가갔다. 잭이 당황하고 있었다.
“내, 내가 죄인이라 해도 인간으로의 대우를 원하오!”
잭이 다급하게 버린 단검을 주우려고 했지만 내가 달려드는 바람에 뒤로 넘어졌다.
“닥쳐!”
자연스럽게 나는 잭의 위로 착지했다.
마운트를 잡은 나는 정확히 잭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때렸다. 그러곤 잭을 길드로 연행했다.
하지만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은 잭 때문에 신원파악에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잭의 신원이 확실해지고야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여기 포상금입니다.”
생각보다 액수가 많았다. 나는 포상금을 챙기고 임무확인을 받으러 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맞다, 고블린!”
고블린 다섯 마리를 잡아야 했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래도 일단은 동굴탐사와 야광초 채집을 끝냈기에 접수처에게 가서 말했다.
“축하드려요, 실버급으로 승격하셨네요.”
“네…?”
“동굴탐사와 야광초 채집, 그리고 브론즈급 현상수배자 포획, 이렇게 세 가지를 완수하셨잖아요.”
“브론즈급 현상수배자요?”
잭이 브론즈급 현상수배자였나 보다.
“방금 포획하신 잭은 골드급 현상수배자였습니다. 골드급 현상수배자를 잡으셨는데 브론즈급을 잡은 것보다 더 대단한 일이죠.”
“마침, 딱 잘됐네요.”
운이 좋았다. 다시 고블린을 잡으러 갈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곧장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잭과 전투를 회상했다.
“방심했어.”
방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방심했다. 운이 안 좋게 지저분한 인물을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진짜로 죽을 뻔했어.”
또다시 잭처럼 지저분한 인물을 만날 가능성은 있다. 이것은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상황에도 절대 방심하지 않겠어.”
***
다시 평일이 찾아오고 여전히 검성에게 훈련을 빌미로 맞는 하루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훈련이 없는 시간에 아카데미를 돌던 중에 한 사람을 발견했다.
“아자르 교수님!”
검을 휘두르기 위한 육체단련법 강의 교수인 아자르 교수였다.
“어, 수하르구나.”
“안식기간이신데 고향은 안 내려가셨나봐요?”
“그렇지.”
“용병단엔 안 가보시는 건가요?”
전직 용병인 아자르 교수는 용병 시절의 경험담을 학생들에게 자주 들려줬다. 그 경험담은 실감나고 재밌었기에 모든 학생들이 집중해서 들었다.
“용병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