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하이오크는 나를 향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얌마, 좀만 천천히!”
몰아치는 하이오크의 공격을 막아내기 급급했다.
“에이 씨!”
나는 검에 최대한 마나를 담아 휘둘렀다.
드디어 하이오크는 내게서 떨어졌다.
“와, 너 뭐야?”
하이오크의 검술은 대단했다. 내가 바라는 검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려찍기는 무겁고, 찌르기는 빠르고, 내 공격을 다 흘려버리고.”
도무지 어떻게 이겨 내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이오크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선공을 다시 양보하겠다는 제스처였다.
“@$%@!”
“나도 꽤나 얕잡혔나본데?”
이래서는 안 됐다. 경지도 비슷하니 검술만 이겨내면 된다.
“아직 만들고 있는 비기지만….”
검술은 대체적으로 한 번에 몰아치는 필살기 같은 건 없다.
다만 비기라는 필살기가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봐라.”
비기는 보통 소드익스퍼트 상급이 돼서야 만든다. 그리고 회귀 전의 내 최고 경지가 바로 소드익스퍼트 상급이었다.
우선 비기를 쓰는 법은 복잡했다. 보통의 비기는 마나를 담은 채 검을 휘두르다보면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 알맞은 의지를 담는 것으로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비기가 나온다.
“후우….”
심호흡을 하고 검에 마나를 담아 허공에 휘둘렀다. 비기를 만드는 데는 경험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내 검술의 비기를 만들고 있었다.
잠자코 기다리던 하이오크는 점점 내게 마나가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늦었어, 인마.”
무조건 꿰뚫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담으며 나를 막으러 달려오는 하이오크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리고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으윽….”
검을 쥐었던 손바닥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손바닥의 피부가 떨어져있었다. 쥐고 있던 검은 온데간데없었다.
“와….”
내 손을 떠난 검이 벽에 박혀있었다. 그것도 하이오크의 심장 부근에 큰 구멍을 내고 말이다.
나는 검이 박힌 벽으로 걸어갔다. 하이오크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
오크가 나를 보며 무언가 말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하지만 뉘앙스로 보아, ‘괜찮은 승부였다.’라는 것 같았다.
“악!”
무의식적으로 상처가 있는 손으로 검을 만졌다가 반대 손으로 검을 뽑았다.
“이제 보상시간이구나.”
두 개의 입구가 보였다. 내려가는 입구와 보상이 있는 공간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회귀 전만 해도 고블린만 있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무려 두 개나 더 있다. 고블린을 제외하고 오크, 그리고 새로운 층.
“일단은 보상부터.”
보상이 있는 곳에 들어가자 검 하나가 있었다. 칠흑에 가까운 검이었다.
“멋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일단 나는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검신 역시 칠흑이었다.
“한 번 휘둘러볼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을 휘두를 만한 손 상태가 아니었다.
“유적에서 나온 검이니 마법검이겠지?”
쓸모없는 마법이 걸린 검이라도 좋았다. 검의 손잡이 끝 부분에 수상해 보이는 버튼이 달려있었다.
한 번 눌러보고 싶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포기했다.
“그나저나….”
보상의 방에서 나와 내려가는 입구를 보았다. 무언가 불길했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저긴 안 가는 게 좋겠어.”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무엇이 있나 확인해보려고 내려갈 생각도 하지 말라고.
“그럼!”
이제 기숙사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손에 대충 붕대를 감고 유적을 떠났다. 그리고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명상을 시작했다.
“몬스터의 것이라 찜찜하긴 하지만.”
하이오크는 훌륭한 검술을 다루었다. 하이오크와의 결투를 생각하며 명상에 빠졌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
지금 이것이 꿈이라는 것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내게 육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한 사내의 영상이었다.
‘어, 저건?’
사내가 들고 있는 검은 보상에서 받았던 칠흑의 검이었다.
‘그렇다면 저 사내가 유적을 만든 장본인인가?’
사내는 싸우고 있었다. 그저 어둠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들과. 사내는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이상한 점을 하나 깨달았다.
‘저 사내의 검술….’
분명 내가 상대했던 하이오크가 쓰던 검술과 닮았다.
사내는 무언가와 싸우다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위험해!’
사내의 등에 무언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등에 맞은 사내는 빛이 나는 구멍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그냥 꿈이겠지?”
생생한 꿈이었다. 마치 현실과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내 망상일 거야.”
유적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내가 만든 망상이길 바랐다.
“그런데….”
무언가 슬펐다. 그 사내는 홀로 싸우고 있었다. 어둠 그 자체로 추정되는 무엇과 홀로 싸우고 있었다.
어째서 그의 검이 유적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빛의 구멍에 빠졌지만 살아남았다는 소리인가.
머리가 복잡했다. 검이라도 휘둘러야겠다는 생각으로 검을 쥐었다.
“어?”
무의식적으로 다친 손으로 검을 쥐었다.
하지만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손에 난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하룻밤 만에 나을 상처가 아니었는데?”
아무리 내가 가진 마나호흡법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상처를 하룻밤 만에 낫게 할 수는 없었다.
“안 되겠어.”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더 아파왔다. 빨리 검을 휘두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급하게 검을 챙기고 연무장을 향했다.
다만 챙긴 검이 칠흑의 검이라는 건 이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연무장에 도착하고야 검을 잘못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목검보다 진검이 좋은데.”
목검보다 무겁기에 휘두르는 데는 진검이 좋았다.
“무슨 일은 안 나겠지.”
칠흑의 검을 뽑았다.
스릉-
칼집에서 나오는 소리마저 선명한 게 관리가 엄청 잘되어 있었다.
유적 안에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볼 때마다 멋있네.”
검신마저 칠흑인 검은 난생 처음 보았다. 희귀금속인 게 틀림없었다.
“어디 한번.”
휘둘러봐야겠지.
나는 검을 머리 위로 치켜세웠다. 그리고 내려찍었다.
“어라?”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더니 문제가 생겼다. 검에 무수한 구멍이 뚫려버렸다.
“이게 뭐야.”
뚫린 구멍을 만져 보니 작은 실이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 실을 따라가니 검고 뾰족한 게 바닥에 박혀있었다.
“음….”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실이 달린 바늘 같은 게 나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집어넣지?”
일단 땅에 박힌 바늘은 나온 실에 따라 집어 넣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집어넣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칠흑 검에는 버튼이 달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혹시 이거 누르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버튼을 눌러보았다.
위이이잉-
괴상한 소리와 함께 검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검에 났던 구멍들이 원상 복귀했다.
신기하긴 했지만 실망이 컸다.
“이거 어떻게 다루라는 거야.”
휘두르면 검에서 실 달린 바늘이 나온다. 게다가 원상태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비장의 한 수인 건가.”
그 누구도 검을 휘두르면 바늘이 나간다는 것을 예상하지는 못할 게 분명했다. 이 무기는 상대의 방심을 유도할 수 있을 거다.
“이 검을 다루는 법이 유적에 있지는 않을까?”
다시 한번 가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무리다.
“그렇게 흉흉해 보이는 곳을 어떻게 다시 가.”
더 이상 유적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소드마스터라도 되지 않는 이상 그곳을 가긴 싫었다.
그만큼 그곳에서 풍긴 기운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혹여나 잘못돼서 내가 죽는다면.
“또 회귀하지는 않겠지.”
불확실한 것에 도박을 걸 필요가 없었다. 무엇이 됐건 다시 찾아온 삶의 목표는 힐링이 가득한 삶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꿈에 나온 사내를 생각했다.
“이 검을 썼었지.”
어떻게 싸우는지는 흐릿하게 보였다. 사내가 이 검을 어떻게 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안에 사내에 대해 한 가지 정의를 내렸다.
“이 사내는 야비한 인물이었구나.”
홀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젠 아니었다.
칠흑의 검같이 야비한 무기를 쓰니 홀로 싸우는 거였다.
“그러게 사람이 정직하게 싸워야지.”
내 안의 사내에 대한 평가는 잭보다는 약간 위의 야비한 존재가 되었다.
***
안식기간이 끝나간다. 어느새인가 일주일밖에 남질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검성에게 부탁했다.
“검성님, 남은 안식기간에는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여행이라 좋지. 그럼 개학하고 나서 훈련을 다시 재개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아카데미 입학부터 시작해 안식기간 동안 단기간에 내가 너무 고생했다. 이래서는 회귀 전과의 삶과 같았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가 또다시 죽으면?”
억울해서 절대 안 된다.
이젠 휴식이 필요하다. 여행을 할 장소는 이미 정했다.
“진짜 수소문 끝에 찾아냈지.”
로토 왕국에서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힌 곳이었다. 다행히도 수도와는 이틀거리였다. 왕복으로 나흘이면 무려 사흘은 쉴 수가 있다.
“음식은 맛있고, 자연경관 또한 훌륭한 곳.”
나는 기대감이 부푼 채로 짐을 쌌다.
똑똑.
“누구세요?”
“나, 모레드트야.”
“들어와도 돼!”
모레드트가 왜 짐을 싸고 있냐고 묻자, 여행을 간다고 답해주었다.
“여행을 간다니, 어디로 가는데?”
“너도 알텐데? 페브리스 마을.”
“아, 거기….”
당연히 모레드트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무려 파우스트 공작령에 속한 곳이니 말이다.
“거기 좋긴 한데.”
“좋긴 한데?”
“좀 바가지요금이 심해.”
내게 돈 걱정은 필요 없다.
“모레드트,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 모르지?”
실제로 부자와 비교한다면 새 발의 피다.
하지만 이전의 나와 비교하자면 나는 확실히 부자였다.
“내가 용병 일로 돈을 엄청 벌어뒀지.”
실버급 용병으로 승급 후 당연하게도 수입을 늘었다. 남는 시간엔 용병 일을 하는 것으로 차근차근 돈을 모았다.
일단 정확한 계획 없이 미래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모았다.
그러다 보니 꽤나 많은 돈이 모여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잭의 현상금이 가장 컸긴 했다.
모레드트는 여전히 내키지 않은 눈치였다.
“숙박하는데 골드가 들어.”
“그게 왜?”
골드 정도면 충분히 쓸만하다. 내가 평민들의 경제관념이 없었기도 했지만 용병 일을 하며 돈을 버니 어느 정도 시세는 알고 있다.
귀족이 지낼 만한 고급 여관 정도면 골드가 드는 게 당연했다.
“평민들이 숙박하는 곳이 1골드야.”
1골드. 용병증을 만들 때와 같은 돈이다.
물론 용병증에 든 골드는 보증금 개념이라 용병패를 길드에게 되돌려줄 때 받을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1골드는 평민들에겐 꽤나 큰돈이었다.
“반면 고위 귀족들이 숙박할 만한 고급 여관은 100골드야.”
“뭐 그리 비싸!”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비쌌다.
아무래도 여행지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잠깐만! 귀족이 고급 여관에서만 잘 필요는 없잖아. 평민들이 숙박할 만한 곳에서 지내면 되지.”
잠시 생각해보니 간단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