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평민들이 사용하는 숙소로 바꿀 생각이었던 내게 모레드트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수하르, 내가 누구지?”
“어? 네가 누구긴 누구야, 모레드트지.”
“그래, 난 모레드트야. 모레드트 파우스트.”
“설마…?”
혹시나 싶었다.
“페브리스 마을은 어디에 속해있지?”
“파우스트령!”
“파우스트가의 막내아들이 누구지?”
“모레드트!”
모레드트가 씨익 하고 웃으며 내게 파우스트가의 문양이 새겨진 패를 주었다.
“이 패만 있으면 100골드짜리 여관도 1골드로 변하는 마술이 벌어질 거야.”
나는 모레드트를 끌어안았다.
“고맙다, 친구!”
“좋은 여행하라고, 수하르.”
모레드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모레드트가 준 패를 품속에 고이 넣어두었다.
“짜식.”
모레드트와 다시 친해지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카데미를 떠날 때 배웅나와 준 사람은 모레드트와 검성이었다.
모레드트는 옆에 서 있는 검성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오냐, 올 때 선물도 사오거라.”
모레드트가 말했다.
“나는 선물 같은 건 필요 없어.”
“왜?”
“나는 어렸을 때 자주 갔어. 그만큼 거기 있는 거 다 사고 그랬지.”
“아….”
그렇긴 하겠다.
나는 둘과 작별인사를 마치고 여행길을 떠났다. 체키 마을을 처음으로 두 번째로 하는 관광여행이라 기대되는 마음이 컸다.
“거기 폭포가 죽인다던데.”
기대되는 마음을 품고 나는 페브리스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페브리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여관부터 잡았다. 고급 여관 중에 가장 좋아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100골드를 부르는 여관 주인에게 모레드트가 준 패를 보여주자마자 태도가 바뀌었다.
“어이쿠, 파우스트가와 친분이 있으신 분이시군요. 1골드에 해드리겠습니다.”
모레드트의 말은 진짜였다.
“저기 여관주인님, 혹시 왜 1골드만 받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곳은 파우스트 관광지에서도 최고로 대접받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파우스트가는 사교용으로 패를 나눠주며 초대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초대한 손님에겐 비싼 값을 받지 않는 게 방칙이라고 했다.
“아, 그렇군요.”
여관 주인의 안내를 받아 배정받은 방에 들어갔다.
확실히 100골드의 값은 하고 있었다.
책상 위를 보니 수건이 여러 장 놓여있었다.
“이거 가져가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했을 때, 수건이 놓인 곳에 적힌 팻말을 발견했다.
[쉴라 여관, 수건 훔쳐 가시면 곤란합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이틀간 말을 타고 왔다.
물론 도중에 여관을 들러 쉬기도 했다.
그래도 엉덩이는 여전히 아팠다.
“일단 씻자.”
화장실을 들어갔다.
화장실마저 화려했다.
“우리 가문의 화장실보다 좋아 보이는데?”
워낙 검소하신 아버지였기에 칼데르트가는 수수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백작가였다.
하지만 쉴라 여관의 화장실은 칼데르트 백작가의 화장실보다 좋았다.
“행복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치스러웠다. 아버지와 달리 난 사치스러운 게 좋았나 보다.
이것은 회귀 전에도 깨닫지 못한 사실이었다.
“일하느라 사치부릴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했던 사치라고는 스트레스 해소용 목검을 고급 목재로 썼던 것뿐이었다.
“그럼, 오늘은 자고 내일부터 관광해야지.”
커다란 침대를 보니 하고 싶은 게 떠올랐다.
나는 침대를 향해 달려 뛰어들었다.
침대는 나를 집어삼켰다.
“좋다….”
잠이 솔솔 왔다. 이 맛에 여행을 다니는가 싶었다.
* * *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잠에서 깨어났다.
“사람이 쉬고 있는데 뭐야.”
창밖으로 밖을 확인했다.
보아하니 쉴라 여관의 주인과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귀금속을 주렁주렁 매단 사치스러운 사람이었다.
“나온 배를 보면 상인이 확실하겠네.”
익히 알다시피 상인들은 나온 배가 부를 부른다고 해서 웬만한 상인들은 배가 불러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런 소란이야.”
밖에 나가서 상황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입구에 다다르자 다툼소리가 정확히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아무래도 상인이 싸우는 이유는 돈이었다.
“이봐, 나는 상인이야! 그것도 대상단의 상인이라고.”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 골드에서 단 일 골드도 못 빼주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아, 진상이었다. 하긴 이런 관광지엔 진상 손님 한둘이 있기 마련이다.
“저희는 규정상 패가 없으시면 단 일 골드도 할인 못해드립니다.”
“쯧, 내가 파우스트 공작님과 친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파우스트 공작님과 친분이 있으시다면 패를 보여주시지요.”
“두고 왔다니까.”
한심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저 상인이 대상단이라는 이유로 중재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이 다툼을 끝낼 생각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잠깐!”
어디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에아 키르덴이 있었다.
“이봐요, 상인이라고 말하신 분!”
아무래도 에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 말인가?”
상인이 에아를 훑어보고는 음흉한 시선을 보냈다. 내가 가서 한 대 쥐어박을까 생각했다.
“그래요, 당신! 듣자하니 너무 생떼 부리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뭐, 생떼?”
“네, 생떼요!”
화가 난 상인이 에아에게 손찌검을 하려했다.
“이년이!”
에아는 상인이 휘두른 손을 가볍게 피하고 상인의 명치를 가격했다.
상인이 끅끅대며 쓰러졌다.
“무슨 짓이야!”
옆에 있던 호위들도 에아에게 달려들었지만 단숨에 제압되었다.
괜히 육과의 여제라 불린 게 아니었다.
“모두들 봤죠. 저분들이 먼저 제게 손찌검을 하려고 했어요.”
내가 박수를 치자 다른 사람들 또한 박수를 치며 호응해주었다.
여관 주인이 에아에게 다가갔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대상단의 상인이시라는데.”
“별거 아니에요.”
에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에아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수하르, 왜 네가 여기 있어?”
“에아 선배, 오랜만이네요.”
나를 발견한 에아는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걸으며 에아와 나는 쌓인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주로 검성에 대한 뒷담화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곳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그거야, 제가 묻고 싶은데요. 저는 안식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이곳으로 관광을 온 거거든요.”
“그랬구나….”
아무래도 에아는 관광을 온 게 아닌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에아는 중무장 상태였다.
여관에 검을 두고 온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어디 유적이라도 발견했어요?”
“뭐, 어떻게 안 거야?”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는데….
“어… 진짜로 유적이라도 발견한 거예요?”
“사실 믿을 만한 정보를 통해 이곳에 유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
“그래요…?”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내가 봐온 에아는 유적을 찾아다닐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잠깐.
“혹시 그 유적이 고대랑 관련되어있나요?”
고대저주를 연구하는 에아다. 그 유적이 고대마법이나 저주에 관련되어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귀신같이 알아차리네.”
“역시.”
나는 잠시 고민하고 말했다.
“그럼, 저도 도와드릴게요.”
“유적은 위험할텐데?”
“이번 안식기간 동안 열심히 단련했어요.”
열심히 단련은 했다지만 소드익스퍼트 상급인 에아보다는 못한다.
그래도 도움은 될 게 분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유적 유경험자다.
“잡 몹 처리는 가능해요.”
“음….”
에아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결정타를 날려주기로 했다.
“물론 유적에서 나온 건 전부 에아 선배 거예요.”
갑작스레 에아 선배는 나를 수상쩍게 여기기 시작했다.
“너무 조건이 좋은데, 뭐 노리는 거라도 있어?”
“음….”
그냥 도와주고 싶었던 걸로는 안 되는 걸까.
좋은 대답을 생각해보았다.
“그럼, 유적 갔다가 저랑 같이 관광해요.”
“뭐, 그런 조건이라면.”
다행히도 에아는 받아들였다. 에아의 선택은 확실히 좋았다.
그야 유적을 두 번이나 탐사한 고인물이 나였기 때문이다.
“그럼, 저 검 좀 챙겨올게요.”
에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여관으로 돌아가 검을 두 자루 챙겼다.
검 두 자루를 들고 온 나를 보고 에아가 말했다.
“너, 안식기간 중에 이도류로 바꿨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그 검들은 뭔데?”
칠흑검을 에아에게 보여주었다.
“이 검은 비장의 한 수입니다!”
“으응, 그렇구나.”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에아였다.
“그런데 유적은 어디에 있나요?”
“그게…….”
페브리스 마을의 관광장소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바로 페브리스 폭포가 있는 곳이었다.
“에? 그럼 유적이 있다는 게 마을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았을까요?”
“내가 알기론 파우스트 공작가에서 옛날부터 이 환경을 보존해야한다고 못 건드리게 했대.”
“그럼, 그 정보처는 어떻게 안 거래요?”
“그건… 비밀이지.”
페브리스 폭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폭포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요.”
“조금 기다렸다가 사람이 빠지면 가자.”
살벌하게 내리고 있는 폭포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것도 주위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 말이다.
“만약 다른 사람한테 걸리면 어떻게 될까요?”
“공작령으로 끌려가겠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모레드트의 얼굴을 보기 부끄러워질 것이다.
다행히도 사람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점심을 먹을 시간이라 그런 거 같았다.
“지금이야.”
에아의 말에 맞춰 나와 에아는 폭포 안으로 들어갔다.
“유적이 있는 게 맞아요?”
“그러게.”
폭포 안은 어두운 동굴이었다. 계속 걸어 들어가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확실히 여기가 맞나요?”
“음….”
얼마간 계속 걷어보았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막힌 벽뿐이었다.
“잘못 온 거 같은데요.”
“아니야, 여기가 맞아.”
에아가 주머니에서 빛나는 돌을 꺼냈다. 그러곤 그것을 벽에다 던지고 나를 뒤로 당겼다.
“뭐하시는…….”
콰앙!
앞에서부터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폭발로 인한 먼지가 흩어지고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벽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생각났다.
“이 폭발소리를 듣고 누가 오면 어떻게요!”
“걱정 마. 생각보다 폭포소리가 커서 폭발소리는 묻혔을테니.”
“그럴까요…?”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안심하고 우리는 문을 통해 유적의 안으로 들어갔다.
유적의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커다란 돌덩이였다.
“골렘!”
“수하르, 골렘 처치법은 알고 있지?”
몬스터상대법 강의 때 들었다.
“골렘은 관절부위를 공략하면 된다고 했었죠.”
“또?”
“그리고 골렘의 정수가 담긴 구슬을 파괴하면 된다고 했어요.”
“맞았어.”
에아가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골렘은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에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에아는 가볍게 점프하고 주먹에 올라탔다.
골렘을 팔을 타고 골렘의 손목부터 시작해 팔꿈치, 어깨의 관절에 검을 쑤셔넣었다.
그리고 골렘에게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봤지?”
“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괜히 육과의 여제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에아의 검술이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