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만약 내가 에아와 검을 겨룬다면….
‘백 퍼센트 진다.’
골렘이 상처 입은 팔을 떼버렸다.
아무래도 필요 없는 무게를 줄이는 듯 보였다.
그 증거로 골렘이 약간은 빨라졌다.
골렘이 남은 팔을 에아에게 휘둘렀다.
골렘의 공격을 피한 에아가 외쳤다.
“잠깐!”
“네, 왜요?”
“왠지 나만 골렘을 상대하는 거 같은데.”
생각해보니 내가 잡몹을 처리하기로 했었지.
골렘에게 달려 든 나는 검성에게 배운 대로 감에 의존하며 골렘의 심장부근을 찔렀다.
그러자 에아가 당황하며 말했다.
“정수를 노린다고?”
“저는 꽤 감이 뛰어나거든요!”
이제 곧 골렘이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골렘은 멀쩡했다. 아무래도 정수를 찌른 게 아니었다. 감이 틀린 건가?
에아가 한숨을 내쉬며 골렘을 마무리했다.
“감으로 정수의 위치를 알아낸다니 그게 말이 되겠니. 그리고 뻔하게 심장 부근에 정수를 심어놓겠어?”
“죄송해요, 될 줄 알았어요.”
“앞으로는 내가 상대한 것처럼 상대해. 안 그러면 위험하니까.”
맞는 말이었다. 골렘을 잘못 찌르면 검이 박혀서 골렘의 공격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감에 의존하는 건 실패했으니, 더는 하면 안 되겠다.
나는 다시금 고개 숙여 사과를 했고, 에아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나저나 이게 끝이 아닐텐데.”
“그러게요.”
유적의 안으로 계속 걸어갔지만 더 이상 골렘이 나타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한 곳에 골렘이 집중되어 있나본데요?”
“그러게 말이다.”
들어올 때와 비슷한 크기의 문을 찾아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다란 골렘 두 마리가 있었다.
“내가 저 하얀 녀석 맡을게.”
“그럼 저는 검은 녀석을 맡을게요.”
하얀 골렘이 검은 골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에아의 배려로 더 약해보이는 상대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검은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받아라!”
검은 골렘의 발목 관절을 향해 검을 찔렀다.
검은 골렘은 화가 난 것인지 양팔을 나에게 내려쳤다.
그것을 나는 피하고 다른 쪽 발목의 관절도 파괴했다.
“이젠 가볍지.”
움직이지 않는 골렘은 팔만 조심하면 된다.
나는 검은 골렘의 팔을 주시하며 검을 휘둘렀다.
서서히 검은 골렘의 관절을 공략했다.
“이제 마무리다.”
검은 골렘의 팔관절을 모두 처리했다.
이제 남은 건 머리와 몸통을 잇는 관절뿐이었다.
나는 가볍게 점프해서 검은 골렘의 목 관절에 검을 찔러넣었다.
“해치웠다!”
모든 관절이 공격당한 검은 골렘은 서서히 안광이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에아를 보았다.
“왜 이렇게 늦었니.”
“…….”
아무래도 에아는 진작에 처리한 모양이었다.
하얀 골렘의 잔재 위에서 에아는 앉아 쉬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보스였으면, 이제 보상의 방 같은 게 나올 거예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일단 믿어보세요.”
나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적 유경험자였다.
하지만 내 말이 무색하게 보상의 방은 없었다.
“음, 두 녀석이 보스가 아니었나 보네요. 보스가 남아있을 거예요. 찾아보죠.”
에아와 내가 벽의 끝으로 이동하던 중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 확인한 결과 소리의 근원지는 검은 골렘과 하얀 골렘이었다.
“아무래도 저게 진짜 유적을 지키는 보스인 거 같은데요?”
“확실히!”
검은 골렘과 하얀 골렘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두 골렘이 하나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크기가 생각보단 작은데요.”
두 골렘이 합쳐진 모습은 풀메이트를 입은 기사와 같았다.
하얀 부분은 몸으로, 검은 부분은 갑옷과 무기가 되었다.
크기는 건장한 체격의 인간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보였다.
“시간 없으니까, 그냥 내가 빨리 끝낼게. 네가 잠깐만 시간 끌어줘.”
에아의 말에 따라 나는 골렘에게 다가갔다. 골렘이 손에 든 검을 나를 향해 휘둘렀다.
나는 골렘의 검을 계속해서 피했다. 그러던 중에 뒤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에아였다.
“이제 됐으니까, 거기서 비켜!”
내가 골렘에서 떨어지자, 에아가 곧바로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골렘과 검을 맞부딪히던 에아의 검이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만큼 빨라졌다.
점차 빨라지던 에아의 속도는 골렘의 웃돌기 시작했다.
기사형 골렘도 반항하듯 검을 휘둘러보지만, 한 번 휘두를 때 열 번을 찔리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결판은 순식간에 났다.
웅장한 합체 장면이 무색하게도, 너무 쉽게 쓰러졌다.
그리고 골렘이 쓰러지는 순간에 보상의 방도 열렸다.
나와 에아는 보상이 있는 방에 들어갔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유적의 디자인은 왜 이렇게 다 비슷한 거야.’
물론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보상에 방에서 발견한 것은 두 권의 저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책이었다.
이 책을 발견한 에아는 무척이나 기뻐보였다.
폭포를 빠져나온 뒤 각각의 여관을 가려했다.
“네? 여관을 아직 못 정하셨다고요?”
“응.”
그렇다면.
내 방에서 재우는 건 어떨가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만뒀다.
‘아무리 그래도 남녀끼리 한 방에 쓰는 건 좀···.’
그렇다고 파우스트 공작가의 패를 다시 쓸 순 없다.
이미 계산할 때에 여관에서 회수해갔으니 말이다.
“나도 네가 쓰는 데에 묵을게.”
“그런데 쉴라 여관은 좀 비싼데요.”
“비싸 봤자 얼마나 한다고.”
나는 에아에게 귓속말로 쉴라 여관의 숙박비를 알려주었다.
“음… 못 낼 정도는 아니네.”
“네?”
용병일로 돈은 벌었지만 모레드트가 준 패가 없었다면 평민들이 이용하는 여관에서 지낼 생각을 했던 나였다.
에아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육과의 여제에서 아무래도 칠과의 여제로 바뀌어야할 것 같다.
돈마저 많으니 말이다.
미케네르 제국의 키르턴 가문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꽤나 높은 귀족 가문인 듯싶었다.
“키르턴 영지는 생각보다 크나 보네요?”
“뭐… 그렇지.”
탐탁지 않아 보이는 에아의 모습에,
나는 키르턴 영지에 대해 묻는 것을 멈췄다.
“그나저나 여관은 정하셨으니 어디로 가실래요?”
“미안하지만 나는 페브리스 마을에 관광하러 온 게 아니라 아는 게 없어.”
내가 관광가이드를 할 필요가 있었다.
원래 내 계획으로는 페브리스 폭포를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적 방문한 덕분에 충분히 구경했다.
다음 목적지로는 페브리스 숲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페브리스 숲거리 어때요?”
“숲거리?”
“숲이랑 거리가 합쳐져서 자연을 걷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해준데요.”
“그래, 좋아.”
에아는 쉴라 여관으로 들어가 방을 잡고 다시 나왔다.
그런데 여관을 나오는 에아의 표정이 좋아보였다.
나와 같은 이유일 거라 짐작했다.
“여기 여관 되게 고급지고, 사치스럽죠!”
“어…? 그렇긴 하더라.”
반응을 보니 이게 아니었나 보다.
“나오실 때 기분이 좋아 보이시던데 여관 시설 때문이 아니었나요?”
“아, 사실…….”
쉴라 여관은 에아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것을 기억해두었다.
그리고 에아가 자신의 여관에 숙박하러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
무려 파격적이게도 절반의 가격으로 해주었다는 것이다.
“운이 좋았네요.”
“역시 좋은 일은 하고 볼 일이야.”
에아와 함께 페브리스 숲거리를 향했다.
도착한 숲거리는 시원했다.
바닥이 돌로 평탄화가 되어있다. 그리고 나무와 넝쿨에서 나온 잎들이 햇빛을 가려주었다.
에아와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났다.
“향수 뿌리셨어요?”
“응, 왜 많이 독하려나?”
“아니요, 그냥 냄새가 좋아서요.”
그리고 다시 걸었다.
에아는 내 말에 약간 부끄러웠는지 목 뒤가 빨개져 있었다.
***
페브리스 마을에서의 시간은 안식기간 때보다 더 빨리 지나간 듯했다.
숲거리를 걸었고, 음식을 먹었고, 또 관광했다.
페브리스 마을 관광후기를 적자면 이랬다.
[음식은 맛있고, 경관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카데미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고,
나와 에아는 함께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시간을 맞춰서 간 탓인지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마치···.
‘니가 뭔데 에아 키르턴과 함께 온 거냐.’
라는 시선 같았다.
나는 주변 시선을 버티지 못하고 볼일이 있다며 그 자리를 떠났다.
물론 진짜 볼일이 있긴 했다.
“검성님, 선물입니다.”
내 스승이라 할 수 있는 검성에게 주는 선물이다.
내가 신중에 신중을 거쳐 고른 선물이었다.
선물을 확인한 검성이 미소를 지었다.
“센스가 있구나.”
역시 정답이었다.
이런 여행을 다녀올 때 어른들에게 사가야하는 선물은 정해져있었다.
바로 술이었다.
페브리스 마을의 폭포수로 담갔다는 술이다.
“고민한 보람이 있습니다!”
“크큭, 잘 마시겠다. 마침 안식기간도 끝나니 기념으로 마시면 좋겠구나.”
검성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제는 검성의 시선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나랑 같이 마시자는 시선이다.
“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여행으로 지친 몸을 기숙사에서 풀어야겠습니다.”
검성은 무슨 소리하냐는 듯 나를 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술을 마시려면 안주가 있어야지 않느냐!”
아, 착각이었다. 술에 곁들일 안주를 사오라는 시선이었는데.
곧바로 자리에 일어났다.
“곧바로 사오겠습니다.”
“그래, 되도록 맵고 짭짤한 육류로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늦는 것은 검성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안주를 사러가는 중에도 계속 고민했다.
‘맵고 짭짤한 육류인데 안주가 되려면….’
역시 꼬치밖에 없다.
나는 꼬치집이 눈에 보이자마자 종류별로 꼬치를 사서 검성에게 바쳤다.
다행히도 꼬치를 한 입 물은 검성은 만족한 듯했다.
“잘했다. 너도 이제 쉬거라.”
“네, 이만 기숙사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기숙사로 돌아가자마자 잠을 자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프리드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야, 수하르 방금 뭐야?”
프리드가 노크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왔다.
“프리드… 노크는 해줘. 깜짝 놀랬잖아.”
“아, 그건 미안. 그런데 방금 뭐냐고.”
“방금?”
나는 분명 방금 검성에게 꼬치를 사다주고 기숙사에 들어왔다.
“검성님한테 꼬치 사다준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야?”
“아니, 그렇게 방금 말고. 너 에아 키르턴이랑 같이 왔잖아.”
“아….”
그새 소문이 났나보다.
“그냥, 관광지에서 만나서 같이 돌아간 거야.”
“그니까, 무슨 관광지에서 만났다고 너랑 돌아가냐고.”
“그야, 같은 동아리니까?”
“뭐…?”
생각해보니 내가 에아와 같은 동아리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
“생각해보니 말을 한 적이 없었네. 나랑 에아 선배는 같은 동아리인데?”
“미친.”
거친 말을 내뱉은 프리드지만,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무언가를 수긍했다.
“그렇지. 같은 동아리면 같이 올 수도 있지.”
“그니까. 그게 이상할 게 아니잖아.”
“그냥 같이 오기만 한 거야?”
“아니, 관광지에서 만난 김에 같이 둘러보았지.”
프리드가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잠은 같이 잔 거야?”
“미친 소리 하지 마. 나 피곤하니까 잘 거야.”
나는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프리드를 최대한 무시하며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