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17화 (17/150)

#17화.

새로운 학기가 찾아왔다.

“프리드, 이번엔 강의 같이 듣자.”

“그럼, 검성님 강의 같이 들을래?”

“어… 음….”

검성의 강의는 성적우수자만 들을 수 있다.

물론 나는 검술과의 상위 5명에 속하는 성적 우수자다.

하지만….

“매일 검성님한테 배우는데 강의까지 들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런가… 그럼 검성님 강의는 나 혼자 들어야지.”

무언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내 감이 말하고 있다.

‘너 검성 강의 안 들으면 큰일나.’

“아니다, 나도 역시 검성님 강의를 들을래.”

“그치! 당연히 들어야지.”

검성의 강의를 제외하고는 대충 강의를 골랐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배울 게 없다.

“기사가 될 생각도, 학문을 추구할 생각도, 귀족도 될 생각이 없으니까. 그나마 배울만한 게 아자르 교수님 건데.”

용병 선배로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다.

그나마 검술에는 흥미가 동하긴 하지만,

무려 검성에게 따로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배울 필요가 없었다.

“그나저나 에아 선배가 얻은 두 권의 책은 뭘까?”

한 번만 보여달라고 해볼까.

소유권은 에아에게 양보했지만 한 번쯤은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닌가.

“사실 관광 중에서도 계속 궁금하긴 했어.”

혹시라도 회귀와 관련된 게 적혀 있지 않을까.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중얼거려.”

프리드가 나를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강의를 정하던 중이다.

“잠깐 생각할 게 있어 가지고.”

“하여튼 검성님 강의는 듣는다고 치고, 나머지는 어떡할래?”

“난 아무거나 괜찮은데.”

잠깐.

한 사람을 잊고 있었다.

프리드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똑똑.

모레드트의 방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

문은 빠르게도 열렸다.

모레드트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여행 갔다가 단 한 번도 나를 안 찾아오냐.”

정정해야겠다. 모레드트는 화가 나 있었다.

“미안하다. 정신이 없어가지고. 그래도 너랑 강의 맞추자고 왔잖아.”

“그건 좋은 생각이야.”

모레드트는 자신이 선택한 강의를 보여주었다.

그중에는 검성의 강의도 있었다.

“너도 검성님 강의 들어?”

“성적우수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봐야지. 무려 검성님인데.”

“그런가?”

모레드트가 들을 강의를 받아 적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내 친구 강의 좀 받아왔어.”

“뭐?”

프리드는 화들짝 놀랬다.

내게 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놀랄 일인가.

“왜, 내가 친구 있는 게 이상해?”

“당연하지. 넌 사교활동을 전혀 안 하잖아.”

“그건…….”

그렇지.

주말은 용병일이 있고, 평일에는 강의에 집중하면서 검성의 훈련을 받아왔으니, 사교활동을 할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 사교활동을 못했을 뿐이야.”

“시간이 없다면서 잘도 사람을 만나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어떻게든 연이 될 사람들을 만나는 거겠지.”

“그래서, 그 친구가 누군데?”

“모레드트. 파우스트 가문의 모레드트야.”

파우스트란 말에 프리드는 상당히 놀랜 듯했다.

“내가 아는 그 파우스트 공작 가문 말하는 거야?”

“아마도? 우리 왕국에 파우스트란 이름의 가문은 공작 가문밖에 없겠지.”

“너 인맥 미친다.”

나 정도면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인물을 떠올렸다.

잠시 생각해보니 평범하지 않았다.

“어, 그러고 보니 나 인맥 미치네.”

“검성님에, 파우스트 가문의 자식, 육과의 여제까지….”

남의 입에서 들으니 새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맥이 미쳤다.

“넌 분명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을 거야.”

“그럴까…?”

아니다.

전생은 아니지만 회귀 전엔 일만 하다 죽었다.

“하여튼 강의나 빨리 정하자고.”

“그래그래, 사설이 너무 길었네.”

난 강의를 모레드트와 프리드에게 최대한 맞추었다.

이로써 혼자 강의 듣는 슬픈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프리드 너 성적우수자였어?”

“너는 나를 어떻게 보이는 거니. 나 생각보다 우수해.”

의외였다. 연차가 다르기에 프리드에 대해서 별로 들은 게 없었다.

강의는 모두 정하니 매정하게 떠나버린 프리드였다.

“검성님한테 가봐야지.”

보고라고 해야할지,

일단은 검성의 강의를 듣기로 했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있다.

검성이 있을 만한 장소인 정원으로 갔다.

“검성님!”

다행히도 검성은 정원에 있었다.

이제는 솔직히 검성이 지내는 집이 있는지 의아했다. 매번 정원만 가면 있으니 말이다.

“왜 벌써 왔냐. 아직 훈련까지는 시간이 남았는데.”

오늘도 훈련을 한다고.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아무래도 검성은 개학일마저 훈련을 할 생각이었나 보다.

“검성님 강의 듣는다고 말씀드리려고 왔죠.”

“잘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검성이라면 분명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맨날 보는데 뭐하러 강의까지 듣는 게냐!

“만약 제가 검성님 강의를 안 들었다면 어떠실 거 같나요?”

“뭐라고, 안 들었다고?”

“안 들었다는 게 아니라 만약입니다.”

검성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음, 아무래도 별상관은 안 했겠지.”

하고 씨익 웃는 검성이었다.

다만 그 미소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웠다.

정말로 강의 듣기를 잘했다.

“이제 강의 있는 날에는 하루 종일 보겠네요.”

“하루 종일 고생하게 해주마.”

“에이, 그래도 강의 정원이 사십 명인데. 저만 신경 쓰시기엔 힘드시지 않을까요?”

검성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가 학생들 눈치를 보겠느냐?”

검성이 손에 힘을 주었다.

어깨가 쥐어 짜이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왜 뜬금없이 어깨를 쥐어짜는 거야!’

검성이 손에 힘을 빼자,

어깨에서 오던 고통이 사라졌다.

“강의 때 보자.”

뜬금없는 고통의 정체를 알아냈다.

나를 등지고 어디론가 가는 검성에게서는 은은한 술 냄새가 났다.

‘설마 숙취 때문에 나한테 화풀이한 거야?’

내 짐작은 거의 정답일거다.

검성이라면 충분히 그럴 사람이다.

“아빠 친우시니 해서 조금은 봐줄까 했는데.”

검성에 대한 원한이 차근차근 쌓이고 있다.

언젠가 혼쭐을 제대로 내줄 생각이다.

다만 그 언젠가는 내가 소드마스터가 될 때지만.

“두고 봅시다.”

검성이 갑자기 뒤를 돌았다.

나는 놀랐지만 그것을 숨겼다.

휘파람을 불며 정원을 나갔다.

“하여튼 눈치도 드럽게 빨라요.”

강의도 짰고, 검성에게 보고도 했다.

이제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내 궁금증을 푸는 일.

“동아리실에 있겠지?”

에아가 가진 두 권의 책을 확인하기 위해 에아를 찾기로 했다.

그저 보는 것뿐이라면 에아도 충분히 내게 보여줄 것이다.

에아와 나는 무려 같은 동아리원이 아닌가.

“달라고만 안 하면 되겠지.”

동아리실을 향하는 내 발걸음은 검성을 만나러 갈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한없이 가벼웠다.

에아는 동아리실에 있었다.

“뭐하고 계세요?”

“유적에서 얻은 책을 읽고 있는데 고대문자가 조금 힘드네.”

고대문자로 적힌 책이라니. 신빙성은 높겠다.

한 번 읽어보고 싶었지만 나는 고대문자를 읽을 줄 모른다.

“어떤 내용이에요?”

“고대 마법도 적힌 거 같고, 고대 저주도 적혀있는 거 같네.”

“저주라면 원하시던 책이겠네요.”

“일단은 다 읽어봐야 알 거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시간을 되돌리는 고대마법 같은 것도 적혀 있을까요?”

“시간을 되돌리다니 어떤 거?”

“그… 예를 들어 회귀 같은 거요.”

너무 직설적인가.

“수하르, 뭐 후회하는 일이라도 있는 거야?”

지금은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만.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아직까지 들어본 적도 없고, 책에도 아직까지는 안 나왔어.”

“아직이라면?”

“나도 전부를 읽은 게 아니라서 혹시라도 나오면 알려줄게.”

“감사합니다!”

동아리실을 나오니 따스한 햇살이 나를 반겼다.

이 햇살과 헤어지는 순간 나는 검성에게 가야한다.

“오랜만에 훈련할 생각에 치가 떨리는구나.”

다시 멍드는 매일이 시작될 거다.

적어도 이전과는 다른 게 있다면 강의 때도 맞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에이, 그래도 남들 앞에서 안 때리겠지.”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이런 근거 없는 말을 할 때마다 예상을 깨주는 사람이 검성이지만.

“아… 아카데미 다니기 싫다.”

얻을 건 충분히 얻었다.

난 최강의 자리를 노리지 않는다. 검성에 대한 배움도 그렇게 애달프지가 않다.

그저 골드나 다이아 용병 정도의 실력만 갖춰도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제이콥은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내가 봐 온 제이콥이라면 고된 기사단의 훈련도 버텨낼 거다.

지금은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진짜 잠적이나 할까.”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생각인 거 같다.

아카데미 졸업 전에 잠적을 해버리는 거다.

“너무 좋은 생각 같은데?”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용병일이나 하며 돈이나 버는 거다.

그리고 훗날 가정을 꾸려 돌아갈 핑계도 만들고, 칼데르트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완벽해!”

다만 가출을 행하는 시기는 졸업 전까지 검성에게 한 방을 먹이고 나서다.

지금까지 맞은 복수는 어느 정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

평소보다 빨리 깨어났다.

강의까지의 시간은 아직 넉넉하지만 다시 잠들지 않았다.

“그야, 검성님 첫 강의니까.”

다른 사람은 늦어도 된다. 나는 늦으면 안 된다.

내가 늦었다가는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벌이 기다릴 것이다.

경건한 마음을 갖자는 생각으로 복장을 정리했다.

“평소보다 깔끔하게.”

검성의 첫 강의를 듣기엔 완벽한 복장이다.

“복장단정에 용모단정까지!”

얼굴마저 단정하게 정리했다.

이제는 강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초조함에 다리가 절로 떨렸다.

“아이 씨, 시간이 왜케 안 가. 그냥 먼저 가서 기다릴까.”

하지만 먼저 가서 기다리기에는 왠지 모르게 시간이 아까웠다.

꽤 시간이 지난 거 같은데 여전히 강의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남았다.

똑똑똑.

방 밖에서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야, 수하르! 들어간다!”

프리드는 땀에 절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그러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있는 나를 보았다.

“어, 프리드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일찍은 무슨. 도대체 복장은 다 갖추고선 강의를 안 나오고 뭐하는 거야.”

“무슨 소리야?”

프리드의 시선이 내가 보고 있었던 시계로 향했다.

“너 시계 고장 났네.”

“뭐라고…?”

“너 시계 고장 났다고. 지금 검성님이 너 데리러 오라고 해서 온 거야.”

소름이 돋아났다. 정신이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난 죽었다….’

나를 데리러 온 프리드를 제치고 온 힘을 다해 검성의 강의실로 뛰었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검성이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마지막 학생이 왔네.”

다만 그 미소가 서리가 낄 듯 차가웠다.

“죄송합니다! 시계가 고장 나서.”

“네가 처음이다.”

“제가 처음이라는 게 어떤…?”

“내 강의에서 지각을 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영광스러운 처음을 네가 가지게 되었구나.”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심각한 얼굴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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