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검성님… 무슨 이야기하고 계셨나요?”
“처음으로 나타난 지각생에게 어떤 벌을 줄 건지 이야기했다.”
아, 내 이야기였구나.
그런데 왜 다들 표정이 심각한 거지.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중엔 에아도 있었다.
에아는 입모양으로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너 큰일 났어.
큰일 났다니.
도대체 검성이 어떤 이야기를 했던 것일까.
“오호, 한눈을 팔다니 여유롭구나.”
목이 절로 뻣뻣해졌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의외로 검성은 내게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그저 빈자리를 찾아 앉으라고 했다.
에아의 옆자리가 비어있길래, 그곳에 앉았다.
“선배, 검성님이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했길래 큰일 났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에아는 나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평상시에 네가 받는 훈련을 이야기하셨어.”
그거라면 보이지 않는 공격을 피하며 검성을 노리는 훈련이 아닌가.
“그거 의외로 검성님이 죽진 않게 때리시는데….”
어라….
검성이 뭐라 했는지 알거 같다.
“오늘 할 훈련은 특별히 최고 난이도로 해줄 거라고 하시더라.”
망했다.
지금도 많이 힘든데 최고 난이도라니.
문득 내가 검성에게 최고 난이도에 대해 물었던 게 생각났다.
-검성님, 최고 난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그때 검성은 이렇게 말했다.
-음, 네가 나와 비슷한 실력을 지니면 할 생각이다.
한마디 전력을 다한 소드마스터를 상대해야하는 훈련이란 소리다.
그러니 에아의 말을 토대로 오늘 저녁에 벌어질 일은 간단했다.
나는 오늘 검성의 전력을 감당해야했다.
“…….”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손을 들었다. 검성이 나를 째려보았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그런데 오늘 훈련은 쉬어도 될까요…?”
“쓸데없는 말을 하는구나.”
검성이 검지와 중지를 폈다.
무슨 뜻일까.
검성이 화내기까지 두 번 남았다는 소리인가.
“두 시간.”
두 시간이라는 뭘 말하는….
“오늘 훈련은 두 시간을 추가한다.”
“네? 아니, 저 진짜로 몸이 좀….”
검성의 엄지마저 펼쳐지려 했다.
“아닙니다. 오늘 컨디션 좋습니다. 두 시간 추가 훈련 너무 좋습니다!”
다행히도 검성의 엄지마저 펼쳐지진 않았다.
‘오늘따라 아침이 상쾌하다더니.’
저녁이 불행할 예정이니 그랬나 보다.
옆을 보니 에아는 여전히 나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검성의 강의는 대련이 위주로 진행된다 했다.
학기가 끝나기 전까지 한 명당 마흔 번의 대련을 하는 게 강의의 목표였다.
“근데 나를 빼면 서른아홉 명인데 남은 한 명은 자신과의 싸움이려나?”
내 오른편에 앉은 에아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보았다. 왼편에 앉은 프리드도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에아가 말했다.
“수하르… 너 강의 계획서 같은 건 안 보는 거야?”
“그거 그냥 교수님들이 대충 적어놓는 거 아니었어요?”
“강의 계획서에 써져있잖아. 마지막 대련은 강의를 듣는 마흔 명과 검성님과의 대련이라고.”
성적우수자들이면 소드익스퍼트 중급이 대다수일텐데.
“에이, 검성님이라도 힘들지 않을까요?”
“진짜 높게 쳐서 우리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전부 소드익스퍼트 상급이라도 못 이겨.”
에아의 말을 들으니 소드마스터가 전술마법급과 비교된다는 게 과장이 아니라는 게 이해됐다.
40명의 소드익스퍼트 상급마저 이겨버린다니. 괴물이 아닌가.
지금까지 내가 봐온 검성을 생각해보니, 검성은 확실히 괴물이 맞다.
성격 또한 괴물이고.
“검성님이 대단하시긴 하나 보네요.”
“그렇지, 검성이라는 칭호는 나라에서 단 한 명만 받을 수 있는 거니까.”
“에이, 그런 건 저도 알고 있죠.”
그런 대단한 검성에게 나는 오늘 죽임당할지도 모른다.
훈련을 생각하니 도무지 강의에 집중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강의에서 하는 대련 자체는 내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과 많이 겨루면 내 검술 또한 많이 발전할 수 있겠지.’
검성이 앞에서 조를 호명했다.
“……이상 스무 명씩 두 조다.”
두 개조로 우선 조 안에서 대련을 한다. 그리고 로테이션이 다 돌면 다른 조와 대련을 하는 식이었다.
“어디 보자….”
내가 속한 조엔 모레드트와 프리드가 있었다.
다행히도 에아는 나와는 다른 조다.
‘원래 가장 강한 사람은 마지막에 상대하는 게 좋지.’
에아가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본 감상으로는 좀 더 성장하고 대련하는 게 맞을 것이다.
모레드트와는 항상 대련을 했었으나 프리드는 처음이었다.
“앞으로 네 번이면.”
네 번의 대련 후에 프리드와의 대련이다. 강의 한 번에 두 번의 대련을 하니 이틀 후엔 프리드와의 대련이다.
나는 프리드에게 다가갔다.
“프리드, 이틀 후에 보자고.”
“수하르, 너는 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이번 기회에 내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줄게.”
프리드의 실력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모레드트는 가능했다.
모레드트와 안식기간 때의 대련은 내가 많이 졌다. 수준 차이는 극명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모레드트와의 대련까지는 많이 남았다. 그 사이 동안에 내 검술을 보완한다면 될 것이다.
“비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은데.”
보통 비기를 소드익스퍼트 상급부터 가볍게 쓰고, 소드익스퍼트 중급에겐 필살기의 개념이었다.
그렇기에 중급이 대다수인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비기는 금지됐다.
그리고 또한 안정상의 이유로 대련은 목검으로 진행되었다.
“하여튼 어디 한 번 내 상대나 봐보자.”
첫 강의인 오늘도 대련은 한다. 내 상대 두 명이었다.
아서와 처크. 둘은 아카데미 4년차와 3년차의 학생이다.
우선 아서에게 다가갔다.
“이제 대련할까요?”
“아, 좋죠.”
아서는 보통 검보다 얇은 검이었다. 이것만으로도 힘을 중시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기술 아니면 속도, 그것도 아니면 둘 다.
아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제가 연차가 높으니 선공은 양보해드리죠.”
대련에 암묵적인 룰이라는 게 아카데미에 존재했다. 연차가 높을수록 선공을 양보하는 그런 룰이다.
물론 나는 감사히 선공을 양보받았다.
“가겠습니다.”
최소한의 예의로 공격하기 전에 신호를 주었다.
아서에게 달려들며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당황한 아서가 최대한 내 검을 흘리려고 해보았지만 어림없다.
내 검에 맞은 아서는 뒤로 밀려나며 무릎을 꿇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방심해버렸네요. 제대로 된 대련을 못하게 된 게 아쉽습니다.”
아서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다음은 처크다.
처크는 다른 이와 대련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처크의 덩치에 맞게 처크의 검은 대검이었다.
처크가 괴상한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으랴아아!”
“악”
처크의 대련상대는 처크의 검에 맞아 멀리 날아가버렸다.
“저건 확실하게 알겠다.”
처크의 검술은 힘을 중시한 검술임이 틀림없다.
힘을 중시하는 검술은 처음 상대해본다.
“방금 대련이 끝나신 거 같은데 바로 가능하실까요?”
“별로 힘도 안 들었습니다. 바로 합시다.”
처크를 상대하는 법은 간단했다. 검술의 상성에 따라 기술에 중시하면 될 것이다.
대련이 시작하자마자 처크가 달려들었다.
‘암묵적인 룰을 지킬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크는 나보다 높은 연차임에도 용서가 없었다. 내게 대검을 휘둘렀다. 나는 최대한 숙여 처크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보이는 빈틈을 공략해보려 했지만 그보다 처크가 빨랐다.
처크는 내가 검을 피하자 곧바로 대검 바닥으로 찍었다. 그리고 대검 뒤로 숨어버렸다.
“으, 위험했네.”
“판단력이 좋으시네요.”
“뭐, 다들 그렇다고 말하고 합니다. 덩치가 크다고 무식하단 거 편견입니다.”
이번엔 내가 처크에게 달려들었다. 처크에게 검을 내려찍었다.
처크는 내 공격을 막으려고 대검을 위로 향했다. 그 순간 나는 검에 손을 놓았다.
“헛?”
처크에게서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나는 검을 두 자루 들고 다닌다. 실전을 생각한 난 목검을 두 자루 챙겼다. 여분의 목검으로 빈틈투성이의 처크를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처크가 뒤로 넘어지면 승패가 갈렸다.
난 처크의 목에 목검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제가 이겼습니다.”
“검을 두 자루를 들고 있었다는 것을 깜빡했네···.”
“뭐, 그럴 수도 있죠.”
처크 또한 아서와 같이 수긍이 빨랐다. 평소에도 검 두 자루를 들고 다닌다는 내 말에 자신의 패배를 순순히 인정했다.
“후, 다행이다.”
두 번의 대련 모두 이겼다.
조금은 치사해 보일 수도 있는 수까지 써가며 대련을 이기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 대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검성 때문이었다.
마치 지면 두고 보자는 눈빛이었다.
“에효, 힘들다. 프리드가 대련하는 거나 봐야지.”
프리드의 대련을 구경하러 갔지만 프리드는 이미 대련이 끝난 상태였다.
나를 발견한 프리드가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오, 설마 나를 분석하려고 찾아온 거야?”
어떻게 알았지.
프리드가 검을 쓰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대처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아닌데.”
프리드는 나를 찾질 않은 게 자존심이 상하니 거짓말을 했다.
“아니긴 뭘.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아다니더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어.”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나를 찾아다닌 건 인정하나 보네.”
“…….”
유도심문을 하다니 꽤나 프리드의 화술이 좋았다. 아니, 내가 단순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궁금해하니 내가 알려줄게.”
“진짜로?”
“다 알려줄 수는 없고. 오늘 대련은 전부 일 합에 끝이 났어.”
다 알려준 거 아닌가.
“발도술 잘한다는 소리 아니야?”
처크처럼 커다란 대검을 쓰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정답!”
“그런데 이런 걸 막 알려줘도 되는 거야?”
“그만큼 자신 있다는 소리지.”
들었던 기억을 삭제하고 싶어졌다.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다.
이에 질세라 내가 말했다.
“그래, 나는 밸런스형이라고 기억해둬라!”
프리드가 귀를 막았다.
“어, 안 들려.”
“아니, 들으라고.”
“응, 안 들어.”
그리고 프리드는 떠나버렸다. 홀로 남은 나는 속으로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대련이 모두 끝나고, 저녁이 찾아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강제로 옮기며 정원을 향했다.
정원의 입구에 도착하니 평소와 다른 분위가 느껴졌다.
‘살기가 가득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살벌하다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유서라도 쓰고 올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정원을 들어가 보았다.
딱!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으응….”
나도 모르게 기절을 했는지 정원 입구에서 쓰러져있었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머리를 긁적이다 정수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혹이 나 있다.
“아, 들어오자마자 맞은 거…….”
또다시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평소의 훈련과는 다르게 두 시간이 추가된 네 시간의 훈련이 드디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