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검성이 개운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이 녀석, 조금은 반응할 줄 알았구만.”
“그걸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훈련 중의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면 기절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감에 의존하라고 그렇게 말했지 않았나!”
이젠 검성의 훈련이 감을 키우는데 진짜로 도움이 되는지 의심이 간다.
“그런데 저 골렘을 상대한 적이 있는데 감이 전혀 도움 안 되던데요.”
유적에서 골렘의 정수가 있을 만한 곳을 감에 의거해 찔러보았지만 허탕이었다.
“그게 뭔 소리냐?”
“감에 따라 골렘의 정수가 있을 법한 곳을 찔렀는데 아니더라고요.”
검성이 머리를 집곤 한숨을 내쉬었다.
“넌 도대체 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감이 그렇게 만능처럼 보이느냐.”
“아닌가요?”
검성이 새롭게 감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감은 인간이 쉽게 느낄 수 없는 것을 말한다. 혹시 마나를 느꼈을 때를 기억하느냐?”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것 같은,
그런 상반된 기운을 느꼈었다.
“네.”
“감은 그런 것이다.”
감은 마나를 느끼는 행동이라는 건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해가 안 되는데요?”
“마나를 너는 본 적이 있나?”
“네.”
본 적이 있다. 숙련된 검사의 검에 은은하게 빛나는 것. 그게 바로 마나가 아닌가.
“검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기운이잖아요.”
“그건 사람 통해서 만들어진 마나, 즉 마나호흡을 통해 가공된 마나다. 다시 한번 묻지. 허공에 떠다니는 마나를 본 적이 있나.”
내 인생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단언한다.
“없습니다.”
“감은 그런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살기 같은 걸 말이다.”
조금 이해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감이란 소리다.
그렇다면 난 왜 골렘의 정수를 찾질 못했던 걸까.
그런 의문은 검성의 이어지는 말에 해답이 있었다.
“뭐, 감이 마나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마나가 넘쳐나지. 그렇기에 마나를 느낄 수 없는 거다.”
“아, 골렘의 정수 또한 마나로 만들어졌으니 못 찾은 걸까요?”
“감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의지다.”
마나는 사람의 감정 혹은 의지와 동조한다고 검성이 말해주었다.
결국 상대방의 불순한 의도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게 감이었다. 그러니 감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공격이라면 지금까지 검성님한테 맞은 것들은….”
모두 불순한 의도가 담겨있었단 소리가 아닌가.
검성이 멋쩍다는 듯 웃었다.
“크흡, 진심이 아니니 서운해하지 말거라.”
“진심이 아니면 감으로는 느낄 순 없는 게 아닌가요.”
“검을 휘두를 때만 가짜 진심을 담는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내가 검성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소드마스터는 다 그런 거 할 줄 안다!”
“확실한 건 오늘만큼은 감이 제대로 작동한 거 같습니다.”
검성의 진심이 담긴 불순한 의도를 정원 밖에서부터 알아차렸으니 말이다.
평소보다 살벌한 정원의 분위기로 말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네 실력에 맞춰주겠다.”
불행 중 다행이다. 혹여나 화가 덜 풀린 검성이 계속 최고 난이도로 상대를 해준다면….
‘복수고 뭐고 바로 자퇴해 도망쳐야지.’
***
세 번째 검성의 강의가 찾아왔다. 이번 상대는 프리드였다. 정확히는 프리드와 세튼이었다.
프리드와 눈빛을 주고받은 뒤 대련의 준비를 했다.
‘프리드를 상대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지.’
일단은 프리드가 직접 내게 자신의 검술에 대해 말해주었으니 써먹긴 해야겠지 않겠나.
발도술을 상대하기 위해 많은 훈련을 했다. 무려 검성에게 따로 부탁해가며 말이다.
“프리드,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를.”
“오호. 이전에 보여준 게 없는데 뭘 보여주겠다는 거야.”
아, 맞네. 프리드와는 첫 대련이다.
“정정하지, 내 실력을 보여줄게.”
“내가 할 말이야.”
프리드가 발도의 자세를 취했다.
나는 프리드의 발도술을 상대하기 위해, 몇 번이고 검성에게 발도를 보여달라 했다.
시선을 프리드의 검에 집중했다. 찰나의 순간을 조심해야한다.
서서히 거리는 좁혀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긴장한 탓에 땀이 났다.
“지금!”
프리드가 검을 내질렀다. 검성의 발도를 보아온 내게는 한없이 느리게만 보이는 검이다.
그러나 결코 프리드의 발도는 느리지는 않았다. 검성보단 느릴 뿐이지.
내 명치를 노린 검을 몸을 틀어 피했다. 그리고 몸을 틀며 받은 회전으로 검을 휘둘렀다.
쿵.
검에서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프리드가 어느새 검을 회수하고 다시 발도를 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프리드와 거리를 벌렸다.
“와, 빠르긴 하네.”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걸 담는 발도술과 프리드의 발도술은 조금 달랐다.
“내 발도술은 한 번의 공격이 끝이 아니라 수십 번의 연속된 발도라고.”
검을 회수하는 속도나 내지르는 속도나 굉장히 빨랐다. 이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프리드의 공격을 내가 충분히 피하고 막을 수 있다. 이기진 못해도 지진 않을 거다.
‘예상 외의 공격이 필요하겠네.’
나는 검을 하늘 위로 던졌다. 그리고 다른 검을 꺼내 프리드에게 달려들었다.
기다렸다는 듯 검을 내지르는 프리드였다. 검 끝에 집중하며 계속 피했다.
내가 계속 피하는 것이 짜증났는지 프리드의 공격은 점점 빨라졌다.
프리드가 외쳤다.
“마무리다!”
프리드가 전력을 다한 검이 나를 노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노린 한 수였다. 검 끝에 맞춰 나도 휘둘렀다.
검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에 나는 검을 손에 놓았다. 그로 인해 프리드가 휘청거렸다.
휘청거리며 미소를 짓는 프리드.
“이겼다.”
프리드가 승리를 확신했다.
나는 두 팔을 위로 뻗었다. 전에 내가 던진 검이 때에 맞게 떨어졌다.
곧바로 검을 잡고 내려찍었다.
균형이 무너진 프리드가 내 공격을 막기엔 늦었다.
“미친!”
나는 온힘을 다해 내려찍었고, 프리드는 불안정한 자세로 막아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내 검이 프리드의 정수리를 찍었고, 프리드는 흰자위를 들어내며 정신 잃었다.
검성의 훈련 중 내가 가장 많이 맞았고, 가장 아팠던 곳이 정수리다.
손끝에서부터 짜릿한 감각이 올라왔다.
“이 맛이었구나!”
항상 내 정수리를 때린 검성이 이해가 되었다. 이 타격감은 신세계, 그 자체였다.
프리드의 다음 차례인 세튼과의 대련에서 문제가 생겨버렸다.
“세튼의 운이 안 좋았다라고 해야하나.”
나와 같은 밸런스 타입인 세튼은 나의 하위호환이었다. 나보다 실력이 떨어지고, 체격마저 차이가 났다.
그랬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자 세튼에게 검을 던졌다.
“검 받아라!”
세튼은 자신에게 날아든 검을 바닥으로 쳐냈다.
그리고 순간 나는 세튼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내 검을 피하려고 뒷걸음질 친 세튼은 자신이 쳐낸 검을 밟고 뒤로 넘어져버렸다.
빡.
뒤통수를 바닥에 부딪힌 세튼에게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괜찮아요?”
세튼을 흔들어보았지만, 반응이 없다.
심각한 상황이란 걸 짐작했다.
“환자발생, 환자발생!”
이내 세튼은 들것에 실려 의무실로 가버렸다.
‘휴, 빠른 대처 아주 좋았어.’
자화자찬을 하던 중 시선이 느껴졌다. 주위 학생들이 나를 보고 있던 것이다. 좋은 의미가 담긴 눈빛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들이 속닥이는 소리를 집중해서 들었다.
“진짜 어떻게 대련에서 뒤통수를 깨버릴 수가 있냐.”
“이전 대련에서는 상대의 정수리를 찍어버렸다던데?”
“와, 진짜 너무하네. 쟤랑 대련하기 싫어진다.”
무언가 오해가 생긴 듯하다.
내게 겁을 먹은 이들도 있고, 호전적인 시선을 보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대련으로 학우들의 경계대상 혹은 주의대상이 돼버린 모양이다. 해명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저기….”
해명을 해보려고 하는데 검성이 내게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나한테 훈련받을 때 받은 스트레스를 여기다 풀었구나. 장하다, 수하르!”
“어, 검성님, 잠시만요···.”
어라. 이게 아닌데.
결국 오해를 풀 수가 없었다. 나는 학우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모레드트가 내게 다가와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좀 심하게 하긴 했어.”
“아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에아도 내게 다가왔다.
“적어도 나는 네 편이 되어줄게.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에 안 좋잖아. 난 이해해.”
에아가 나를 위로해준 순간, 학우들의 시선이 더 강렬해졌다. 에아의 말로 내 행동이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확정지어져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공공의 적인 된 거 이번 강의의 빌런이나 맡아야겠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외쳤다.
“앞으로 저를 상대하시려면 머리를 조심해야 할 겁니다!”
그렇게 나는 빌런을 자초했다.
빌런이 된 후, 많은 것이 변했다. 실력에 자신 있는 학우들은 나를 죽일 기세로 덤벼들었다.
반대로 실력에 자신이 없는 이들은 머리에 무언가를 싸매고 대련에 임했다.
어느새 별명도 생겨버렸다.
‘정수리마족.’
솔직히 내 생각으론 정수리로 마무리를 하는 게 가장 깔끔했다. 한 방이면 가지 않는가.
그래서 정수리를 노려준 것인데.
다들 온몸을 골고루 맞아봐야 내 배려를 알아차릴 것이다.
모레드트가 몇몇 학생들은 이끌고 내게 왔다.
“이제 곧 정수리마족을 상대해야할 때가 오는군.”
“잘 부탁한다.”
모레드트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받아주질 않았다.
“마족과의 악수 따위를 할쏘냐.”
그러자 몇몇 학생들이 모레드트를 둘러싸며 환호했다. 그 모습은 마치 사이비의 추종자와 교주였다.
모레드트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파우스트 가문의 삼남인 내가 정수리마족을 물리치겠다고 이곳에서 선언하겠다!”
“아니, 좀….”
모레드트는 과몰입을 한 것인지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진짜로 마족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후후, 대련이 기다려지는군.”
음흉하게 웃으며 모레드트가 추종자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이가 없네.”
“그러게 누가 그런 말을 하래.”
에아의 목소리가 내 뒤편에서 들렸다.
뒤를 도니 에아가 있었다.
“그래도 뭐 다들 진심은 아닌 거 같으니까 괜찮아요.”
“세튼이 사실대로 말하더라. 네가 그런 게 아니라 검을 밟고 미끄러졌다고. 많이 쪽팔려하면서 말하더라.”
“굳이 말 안 해도 되는데.”
그렇게까지 현상황이 안 좋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세튼이 이상한 짓만 안 했어도 이런 취급은 안 당했을 거다.
‘세튼이 솔직하게 잘 말한 거네.’
그런데 과연 지금의 취급이 세튼의 잘못이 클까.
원흉은 검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검성의 말이 결정적이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에 하는 대련에서 검성님에게 복수해야지.’
마흔 명이나 되는 학생이면 그 사이에 섞여 검성에게 한 방쯤은 먹일 수 있겠지.
아카데미 재학 중에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검성님, 두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