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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20화 (20/150)

#20화.

이를 갈고 있는 나를 본 에아는 한숨만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왜 정수리만 때리는 거야?”

“정수리가 한 방이니, 깔끔하고 좋잖아요.”

여전히 에아의 의문은 풀리지 않은 듯 보였다.

“그냥 완벽하게 제압한 다음에 항복을 받아내도 되잖아. 굳이 안 때리고. 목에 검만 들이밀어도 인정할걸.”

맞는 말이다. 내가 머리 조심하라고 경고했더라도 머리를 안 때리면,

정확히는 정수리만 안 때렸으면 마족 대우를 받진 않았을 거다.

세튼이 변호도 해주지 않았는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진짜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서 그런가?’

벌써 열여섯 번의 대련이 끝났다. 대련을 하는, 검성의 강의가 있는 날엔 고된 훈련을 받고도 평소보다 잠이 잘 왔다.

아무래도 잠재된 무의식이 나 몰래 스트레스를 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게요…?”

“너 검성님의 말대로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보구나.”

“에이, 설마요.”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에아가 슬쩍 내 머리를 보다니 경악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야, 너….”

에아가 입을 가린 채 나를 가리키고만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긁고 있던 부분을 가리켰다.

“네? 저 뭐요?”

뭐라도 묻은 걸까. 혹시 벌레라도 있나.

“에이, 벌레가 뭐라고.”

긁던 부분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손을 펼치자….

“어… 라?”

수십 가닥의 머리카락이 뽑혀있었다. 그저 살짝 머리칼은 움켜쥐었을 뿐이었는데.

문득 데일이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도련님,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탈모가 온다고 합니다. 기사단에 홀스틴 보십쇼.

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나 보다. 안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머리카락이 빠질 리가 없지 않는가.

도대체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무엇이 있다고… 있었네.

‘검성님, 진짜 두고 봅시다.’

살짝 엉덩이만 때려줄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검성의 정수리를 노려봐야겠다.

만약의 이야기지만 내가 검성의 정수리를 가격한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짜릿했다.

너무나도 짜릿해서 스트레스 받아 빠진 머리카락들이 다시 돋아날 것 같다.

‘검성님, 제 모발을 위해서 한 몸 희생하셔야겠습니다.’

한동안 쉬고 있던 용병일을 재개했다. 이번에 괜찮은 개인의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호위를 맡는 임무로 별로 위험하진 않지만 임무성공률이 높다고 나에게 의뢰를 했다고 한다.

의뢰자는 평범한 귀족 여인이었다.

근처까지 호위라 하루면 끝나는데, 선수금으로 100골드. 완료 후 1,000골드나 준다고 해서 짐을 챙기고 산으로 향했다.

간단한 호위치곤 금액이 커서 수상했지만, 돈을 벌어야했기에 물품을 챙기고 의뢰자를 만나러 갔다.

유적이 있는 산이었다.

“저기요?”

산의 입구에서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도 있지 않고, 오지도 않았다.

산을 들어가야하나 고민하던 중에 산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높고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비명소리.

몸이 먼저 움직였다.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최대한 뛰어갔다. 이 의뢰와 관련된 인물일지도 모른다.

비명소리가 난 곳에 도착하니 여성이 무릎을 꿇은 채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성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이렇게 된 이유가 뭐지?’

비명을 지를 만한 이유가 없다. 혹시 미친 여자가 아닐까.

일단은 여자를 흔들었다.

“저기요, 무슨 일입니까?”

여성이 떨리는 손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나는 그곳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찐득한 살기가 여자 쪽에서 느껴졌다.

앞으로 구르며 여자와 거리를 두었다. 여자의 손엔 단검이 들려있고, 그 단검에는 피가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옆구리 쪽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

“아깝게도 얇게 박혔네. 간을 노렸는데.”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워 보이는 무표정의 여자였다.

성처를 압박하며 검을 뽑아 여자에게 겨눴다. 그러면서 주위를 살폈다. 이제야 느껴진다.

‘여자 혼자가 아니야.’

도대체 뭣 때문에 나를 노리는 걸까.

“누구길래, 나를 노리는 거지?”

“알 필요 없다.”

여자의 분위기와 일치하는 차가운 여자의 목소리. 감정이 메마른 것 사람 같아 보였다.

얕은 상처를 입었지만, 왠지 머리가 더 잘 돌아간다.

나에게 원한이 있을 인물은 단 한 명이다.

“밀리아.”

잠깐이지만 여자의 눈썹이 흔들렸다. 밀리아가 맞나보다.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알아차렸다고 해서 넌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다.”

여자의 말이 끝나자 주위에 숨어있던 이들이 나타났다.

여자까지 포함해서 총 일곱.

“후….”

상처 입은 상태로 일곱 명을 상대할 수 있으려나.

솔직히 무리에 가깝겠지.

“혹시 용병의뢰도 니들이 보낸 거냐?”

무표정의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긍정의 미소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놀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여자가 말했다.

“솔직히 의외더군.”

“뭐가 말이지.”

“가진 실력이나 돈에 집착하는 모습이.”

실력이 있으면 돈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법 따윈 없다.

다다익선이란 말이 있지 않는가.

“나는 돈을 모아야할 이유가 있거든.”

미래의 힐링라이프를 위해.

다만 그 미래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내 실력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소드익스퍼트 중급을 이길 방법을 생각해뒀겠지.

“공격해.”

여자가 고개를 까닥하니 여자의 부하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보험용으로 가져온 마나섬광탄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당황하는 적들 사이로 몇 명을 베고, 퇴로를 확보했다.

‘다만 그 퇴로가 유적이라는 게 문제지만.’

여자 쪽이 산의 출구다.

하지만 쉽게 여자는 뚫을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유적에 숨기로 했다.

금방 돌아가지 않으면 길드에서나 아는 이가 확인하러 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숨이 차도록 뛰었다. 뒤에는 그 누구도 따라붙지 않았다.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오늘따라 발소리가 울리는 느낌이다.

저벅, 저벅.

분명히 발소리가 겹쳐 들렸다.

뒤를 확인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있는 거 다 알아! 어서 나와라!”

제발 내가 혼자 뻘짓 하고 있는 것이길 빌었다.

하지만 빌었던 게 무색하게도 여자와 세 명의 부하가 나왔다.

이들이 나를 조사했다는 만큼 유적이 들켰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이런 곳을 알고 있다니. 조사가 부족했는걸.”

여기까진 조사를 안 했던 걸로 보아 비교적 최신에 나를 조사하기 시작했나보다. 유적으로 도망치는 선택까진 나쁘지 않았다.

“어떻게 안 거지?”

“암살을 하려는데 너처럼 도망가는 경우가 없을까봐? 추종술이란 걸 모르나보군.”

저자들이 추종술을 익혔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도망치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차라리 유적이 아닌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게 맞았었다.

“순순히 목을 내주길 바래.”

내내 무표정을 짓던 여자가 해맑게 웃었다.

나는 경계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여자와 부하들도 나를 따라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왔다.

“절대로 순순히는 안 죽을 거다.”

아직 비장의 수가 남았다. 뒤쪽에 유적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이다.

“뒤져라!”

나는 비장의 수로 챙겨둔 마나폭탄을 여자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뒤를 돌아 최대한 뛰었다.

‘너무 수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두길 잘했네.’

대놓고 수상한 의뢰였기에 큰 돈 들여 주고 샀던 두 가지의 보험. 마나폭탄과 마나섬광탄을 챙기길 잘했다.

온힘을 다해 뛰었다. 그만큼 마나폭탄의 범위가 넓으니 말이다.

아마도 터지는 순간 여자와 부하들은 물론이거니 동굴마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으로 뛰었다. 뒤를 보니 녀석들 또한 마나폭탄이란 걸 눈치채고 도망치고 있었다.

콰아아앙!

뒤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린 다음, 도망치지 못한 여자와 부하들의 비명소리가 뒤섞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동굴이 무너졌다.

“이제 어떡하지.”

입구가 돌무더기에 막혀버렸다. 이것을 손으로 파내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샛길이 있을 수 있어.”

유적의 끝에 다다르면 다른 입구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이 유적에 위치는 산의 중턱.

아래로 내려가는 유적이니 가장 끝은 산의 입구와 가까울 가능성이 있긴 했다.

“작은 희망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일단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몬스터를 확인한 순간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한 마리가 소드익스퍼트 중급에 비교된다는 트롤 무리가 안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앞에 있는 트롤들을 한마디로 평가 내린다면 이랬다.

‘정말 못생겼다.’

오크나 고블린 또한 못생겼다. 하지만 트롤은 그것들을 한참 뛰어넘었다.

매부리코에 오돌토돌 나있는 종기들. 푸른빛을 띠는 피부에 덥수룩한 털들.

손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나무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한 마리만 다녀도 보기 싫은데 무리를 지어서 더 보기 싫네.”

평균적으로 두세 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

“소드익스퍼트 초급 정도겠지.”

이 유적은 신기하게도 몬스터들이 알려진 것보다 한 단계 약했다.

익스퍼트 초급의 트롤 무리가 상대라면 중급인 내가 두세 마리는 가볍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지금까지 다수와 싸운 적이 없었으니.”

다수와의 전투 경험이 너무나도 적었다.

있다고 해봤자 체키 마을에서 고블린과 방금 전에 있었던 암살자들과의 전투뿐이었다.

“일단 더 늦기 전에 탈출해야겠지.”

유적에서 탈출하려면 일단 저 트롤 무리들을 뚫고 보스를 찾아가야한다.

이곳에서 지체될 경우 식량도 물도 없으니 위험하다.

조용히 트롤무리에게 다가갔다. 두 마리가 짝을 이루고 있었다.

“죽어라!”

한 마리의 팔을 베고, 다른 녀석의 심장을 찔렀다.

하지만 결과는 내 생각과 달랐다.

심장이 찔린 녀석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팔을 베인 녀석은 잘린 팔을 결합부에 가져다 대더니 이내 결합되었다.

“이게 무슨…?”

곰곰이 생각해보던 중에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트롤의 강점은 회복력과 맷집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회복력이 좋아도 그렇지 잘린 팔이 다시 붙냐. 그리고 심장이 뚫는데도 안 죽는다고? 책으로만 배웠지, 진짜였네….”

트롤이 비정상적인 존재인 것은 틀림없었다.

일단 급한 건 분노한 트롤의 일격을 피하는 거였다.

분노한 트롤이 마구잡이로 나무방망이를 내게 휘둘렀다. 그것도 두 마리 동시에.

궤도가 단순해서인지 피하는 것에 별로 문제는 없었다.

다만….

‘어떻게 목을 베어야할까.’

이대로 가면 내가 먼저 지쳐 쓰러질 게 분명했다.

그러던 중 두 마리가 동시에 나를 공격했다. 기회였다.

나는 제자리에서 뛰어 검을 한 바퀴 돌렸다. 한 번의 휘두름으로 두 마리 트롤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트롤은 빛을 흩뿌리며 사라졌다.

이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뭐야, 빵이랑 물?”

트롤이 쓰러진 곳에 빵과 물이 생겨났다. 몬스터가 사라진 곳에 음식이 생긴 경우는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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