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몬스터를 잡았는데 빵과 물이 나오다니, 도대체 뭐지 이게.
“일단 먹어볼까?”
급하게 나오느라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다.
몬스터가 떨군 음식이라 약간은 찝찝했지만, 그것보다 허기가 더 컸다.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생각보다 괜찮네?”
퍽퍽한 빵과 미지근한 물이었다.
그냥 평범, 평범 그 자체의 맛이었다.
다행이네.
“조금은 오래 걸려도 굶어죽진 않겠다.”
무언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이렇게 때마침 음식을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번 층은 한 번 들어가면 동굴이 무너지는 시스템이 있었다거나.”
내가 마나폭탄을 던진 것으로 무너진 게 아니라 내가 이곳에 온 것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다른 층과 다르게 몬스터를 잡으면 음식을 준다.
내가 생각한 가설이지만 너무 허무맹랑해서 웃어버렸다.
“그럴 리가 없지.”
어이없는 억측이었다.
빵을 다 먹은 후에 주변에 달라진 점이 생긴 것을 깨달았다.
“조금 어두워졌다?”
트롤들의 움직임도 수상했다. 점점 느려지고, 자세가 낮아진다.
이내 트롤들이 전부 엎드렸다. 마치 잠이라도 자려는 것처럼.
“설마 어두워졌다고 잠자는 거야?”
애당초 이곳을 두 번이나 왔지만 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었다. 처음 안 일이었다.
놀라움에 연속이었다.
‘잠깐… 그렇다는 건?’
검성이 했던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둠 속에 숨어 저항 없는 트롤들의 목을 따는 것을 말이다.
“흐흐흐, 좋았어.”
최대한 조용히 트롤에게 다가갔다.
엎드려 자고 있는 트롤을 잡으려 한 순간.
트롤이 깨어났다.
“아이 씨.”
깨어난 트롤이 나를 발견하기 전에 발 빠르게 도망쳤다.
어떻게 트롤이 알아차린 거지.
“기척도 최대한으로 없앴는데.”
설마 그냥 공격이 감지되면 깨어나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닥에 있는 돌멩이 집어 자고 있는 트롤에게 던졌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렇다면….”
돌멩이에 마나를 담아서 최대한의 힘으로 트롤의 미간에 던졌다.
제대로 맞는다면 트롤은 큰 대미지를 받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돌멩이가 트롤에게 닿기 전에 트롤이 일어났다.
돌멩이가 일어난 트롤에 부딪히면서 부서졌다.
“와, 진짜였네.”
아무래도 공격이라고 인식이 되면 바로 일어나버리는 게 틀림없었다.
“그럼, 트롤들 잘 때 나도 자는 게 맞겠지?”
생각해보니 좋은 일이 아닌가.
트롤을 잡으면 밥도 나오고 따로 쉴 수면시간도 보장해준다.
이 유적….
“되게 친절한 유적이네.”
이젠 내가 해야할 일이 정해졌다.
트롤을 잡아서 식량을 확보하고, 좀 더 성장한 다음에야 보스를 도전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다.
일단 잠이나 먼저 자야겠다.
***
벌써 이 유적에 갇힌 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트롤은 이제 다섯 마리까지는 한 번에 상대가 가능하다.
식량 또한 많이 모았다.
보스가 있는 방마저 찾아냈다. 저번과 같이 커다란 문.
하지만….
“도저히 도전을 못하겠어.”
지금까지 유적에서 쉽게 도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적이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롤은 도무지 예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트롤의 상위종은 기존 트롤보다 머리가 하나 더 달린 트윈헤드트롤밖에 없다.
그런데 그 트윈헤드트롤이 트롤의 상위종이라고 보기엔 조금 애매했다.
전설 속에나 등장할만한 트롤의 친척이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번 방은 혹시 따로 지키는 몬스터가 없는 게 아닐까?”
행복회로를 굴려 봐도 답은 정해져있었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차라리 기존의 경지였던 상급을 찍고 도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게 맞는 선택일 것이다.
“회귀 전에 상급이었으니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상급에 도달하면 도전하자.
이 날 이후로 나는 모아둔 식량을 먹으며 상급을 찍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다만 그 노력이 한 달이 필요할 줄은 이때의 나는 몰랐었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났다. 이렇게까지 긴 시간 동안 있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상급이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
분명 한 번 도달했던 경지임에도 다시 오르는 데는 힘들었다.
게다가 조금 헤이해진 탓도 있겠지.
“트롤의 씨가 마르지 않으니까…”
다른 말로는 먹을거 걱정이 없었다.
또 다르게 말하면 굶어죽을 일이 없었다.
긴박함이 부족했다.
“그래도 상급이 되어서 다행이지.”
이제 무리없이 비기를 발동할 수 있다.
“우선…”
검을 정해야지.
칠흑의 검과 아버지가 사준 검.
역시 아버지가 사주신 검이 메인이다.
“몬스터한테 그 비장의 한 수가 통할지 모르겠으니.”
그런 공격은 인간한테나 통할 것이다.
도전을 위한 모든 준비를 끝냈다.
나는 커대한 문을 열었다.
크그그극-
문이 땅에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다 열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한 치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밝네.”
바닥에 새겨진 문양에서 빛이 발한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대로면 이제 나타날 거다.
“뭐…?”
작은 검은 덩어리들이 날아서 뭉치더니 커다란 덩어리로 변했다.
그리고 점차 세밀해지는 덩어리.
이윽고 그 덩어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흡혈귀….”
몬스터라기보단 마족.
작위에 따라 다르지만 상급인 나로서는 상대하기 힘든 존재였다.
처음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맞다!”
생각해보니 여긴 문이 저절로 닫혀버린다.
꼼짝없이 흡혈귀를 상대해야하게 생겼다.
“아니야, 아직 진 거 아니야.”
저 흡혈귀가 설마 소드마스터 정도로 강하진 않겠지.
나는 검을 흡혈귀에게 겨눴다.
흡혈귀는 그런 나를 보고 우습다는 듯 비웃는다. 상당히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 웃었다 이거지.”
선빵필승.
초반부터 비기로 상대해야겠다.
기운을 모아 비기를 준비하고 흡혈귀를 향해 찔러넣었다.
“……?”
흡혈귀가 가볍게 피해버렸다. 그리고 곧장 내게 다가와서 긴 손톱을 휘둘렀다.
깡!
검과 손톱이 부딪혔지만 소리는 검끼리 부딪혔을 때나 날 법한 소리가 났다.
몇 번의 공방을 주고받은 뒤에 나는 거리를 벌렸다.
자잘한 상처를 입었지만 나 또한 자잘한 상처를 입혔다.
“잠깐만 그건 아니지!”
흡혈귀의 상처가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마치….
“니가 트롤이냐!”
어. 잠깐.
회복력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
푸른 피부. 흡혈귀 또한 창백하다 느낄 정도의 푸른 피부.
“진짜로?”
그 못생긴 트롤의 상위종이 흡혈귀라고.
현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야 흡혈귀의 외모는 매우 뛰어났다. 트롤과는 다르게 말이다.
대답해줄 리가 없지만 일단 물어보았다.
“야, 너 트롤 친척이었냐?”
흡혈귀의 표정이 구겨졌다. 기분이 나빠 보인다.
“맞나보네?”
“%@[email protected]%!”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흡혈귀가 달려들었다.
나는 비장의 한 수인 칠흑의 검을 휘둘렀다.
흡혈귀가 잠깐 멈칫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내게 달려들었다.
칠흑의 검에서부터 실과 바늘이 흡혈귀를 노리고 들어갔다.
“뭐야, 안 피해?”
흡혈귀는 칠흑의 검에서 무언가가 나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하지만 자신의 회복력을 믿는 것인지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칠흑의 검에 달린 실과 바늘이 흡혈귀에게 부딪히는 순간.
“@$!%[email protected]$!”
“뭐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흡혈귀가 실에 잘려진 채 불타기 시작한 것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도 아닌데 저렇게 잘려진다고?”
게다가 불까지 타고 있다. 이 검 무언가 대단한 검이었나 보다.
불타던 흡혈귀는 이내 재로 변해 사라졌다.
보상의 방에 들어갔다.
“이게 보상?”
목걸이와 한 권의 책이었다. 일단 목걸이부터 착용해보았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책을 보았다.
“음…?”
고대문자로 적혀진 일기였다. 분명 고대문자로 적혀있는데 내용이 이해가 됐다.
목걸이를 보았다.
“이거 때문인가?”
목걸이나 책에 따로 번역마법이라도 걸린 게 아닐까.
그런데 내가 알기론 번역마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들었는데.
일단은 일기를 읽어보기로 했다. 분명 이 유적의 제작자가 쓴 일기일 것이다.
[귀족으로 태어나 귀족으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마계로 넘어갔다.]
오호, 아무래도 일기의 주인은 참귀족인 모양이다.
[하지만 함정에 빠져 덧없이 져버렸다. 사냥꾼을 자처하던 우리가 사냥감이 되어버렸지.]
혹시, 내가 꿈에서 봤던 장면이 사냥감으로 변해 도망치는 거였나.
[그래도 다시 힘을 모아 원하던 것을 지킬 수가 있었다. 다만 많은 손해를 입게 되었지.]
그 꿈의 이후가 걱정되었는데 다행히도 이겨낸 모양이었다.
[언젠가 다시 마족은 넘어올 것이다. 그렇기에 다음 층에 내 힘을 남긴다. 내 시련을 이겨내고 제발 세계를 지켜주기를.]
뭐라고.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는 싫다. 마족이 넘어오는데 왜 나보고 지키라는 것인가.
거절할 거다.
일단 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다시 뒷장을 넘겨보았다. 뒷장에는 간단한 정보를 요약해져 있었다.
“아, 칠흑의 검이 아니라 퇴마검이었네.”
실부분이 성스러운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마족한테는 독약이라고 한다.
그래서 흡혈귀가 간단히 잘려버린 것이었다.
“어? 이 구슬?”
유적의 일층에서 얻었던 구슬에 대한 정보가 적혀있었다.
먹는 것으로 신체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해주고 기감을 넓혀준다는 영약이었다.
“이렇게 좋은 걸 내가 안 먹고 있었다고.”
의심하지 않고 입으로 가져다 댈 걸.
그리고 한참 적힌 것을 보던 중에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메드락?”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메드락이 마계에서 넘어온 거라고?”
그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오랫동안 지닌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다고? 그 모습은 마치 광인과 비견된다고?”
완전한 광증에 도달하기 전에 메드락과 멀어지면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메드락을 어떻게 처리했지?”
데이브 형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게 암살자를 보낸 사람은 밀리아다. 그렇다는 것은 밀리아의 광증은 여전하다는 것.
밀리아가 메드락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광증에 도달하면 문이 열린다고…?”
문이 열린다니 무슨 소리인가. 밑에 줄을 더 읽어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렇게 늦장 부릴 시간이 없다. 가문이 위험했다.
“마족을 불러온다니,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하루빨리 가문으로 돌아가 메드락을 처리해야한다.
미뤄두었던 보상을 받고, 다시 유적을 진행해야하기로 했다.
시간이 없기에 지금부터는 부상 따윈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이거부터.”
상자에 담긴 구슬. 처음에는 먹는 건지도 몰랐다.
적힌 일지를 보고 이게 뭔지 알게 되었다.
노폐물 없애주고, 기감을 올려주는 영약.
“오오오…”
상쾌함이 입안 가득 맴돌다 목으로 넘어갔다.
정신이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 받았다.
노폐물은….
“안 나오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매의 냄새를 맡았다.
“우욱!”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래도 몸속의 노폐물은 땀으로 배출되는 모양이었다.
영약도 챙겨먹었으니 아래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나를 반긴 것은···.
초록빛의 피부에 3m 정도는 되어 보이는 오우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