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오우거라···.
“아니야, 괜찮아.”
오우거는 익스퍼트 최상급에 비견되는 존재다.
그래도 이곳에선 익스퍼트 상급 정도임이 분명하다.
일대일이라면 안 진다.
“오우거는 솔로활동을 많이 하니까.”
보통 오우거는 혼자서 다닌다.
다만 가끔 암수가 같이 발견되곤 하는데.
그것은 발정기 때문이었다.
“설마 여기에 사는 몬스터한테 발정기가 있겠어…?”
죽으면 빛이 되어 사라지는 이곳 유적몬스터도 발정기가 있겠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니 일대일이라고 생각해두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트롤보다 쉽다.
검을 들어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커다란 덩치랑 다르게 생각보다 빨랐다.
“오우거의 약점은…”
오우거의 다리 사이를 뛰어다니며 오우거를 농락했다.
오우거는 발길질도 하고 주먹으로 내려쳐보기도 했지만,
나는 오우거의 모든 공격을 피했다.
많이 약 올랐는지 오우거가 나를 약해 박치기를 할 때였다.
“오우거의 약점은 바로 귀!”
정확히는 귀안으로 검을 쑤셔 넣으면 된다.
물론 단검은 안 된다. 귀를 통해 머리를 공격하는 것이니까.
“솔직히 약점이라기보단 쉽게 상대하는 법이지만.”
웬만한 생물의 약점은 머리나 심장이다.
하지만 피부가 질긴 오우거에 심장을 노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귀를 통해 머리를 노리는 것이었다.
푸슉.
귀를 통해 들어간 검이 오우거의 머리를 관통했다.
머리를 관통당한 오우거는 그대로 쓰러지며 빛이 되어 사라졌다.
“오, 이번 빵은 좀 더 좋아졌네.”
트롤보다 오우거가 더 강하기 때문인가.
보상으로 나오는 빵이 더욱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곧장 먹어보았다.
“퍽퍽하지 않고 달다!”
너무 맛있다. 잠시 휴식이라도 취해볼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렸다.
“빨리 나가봐야하는데.”
제발 이곳이 마지막이길 빌어야했다.
솔직히 마지막 층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몬스터들 중에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오우거가 나왔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이 위의 단계는 나오지 않을게 분명했다.
만약 나온다고 하더라도 마계와 관련된 무엇이 있겠지.
“밀리아가 벌써 문을 연 건 아니겠지?”
아니길 빌어야한다. 나는 최대한 서두르며 보상의 방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온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었지만, 기어코 도착해낼 수 있었다.
다만 걱정이 하나 생겼다.
“다르게 생겼어.”
기존에 봐왔던 문의 크기는 비슷했다. 하지만 디자인이 매우 달랐다.
그저 웅장한 석문으로 보이던 기존의 문들과는 다르게 이번엔 화려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얼핏 보면 마법진과도 같아 보였다.
“들어갑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내부 디자인은 별다를 게 없었다.
바닥의 문양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보스가 나올 징조였다.
“선빵필승이다.”
곧바로 비기를 위한 사전동작을 시작했다. 나오자마자 비기를 쏟는 것이 내가 생각한 최단시간으로 이기는 방법이었다.
안개가 몰려들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그림자가 비춰졌다.
나는 그곳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강한 기운이 가득 담긴 비기는 그림자를 꿰뚫고 지나갔다.
“해치웠나?”
내 비기가 무색하게도 전혀 멀쩡해 보이는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검을 높게 들었다.
“공격하는 건가…?”
그런데 거리가 멀었다.
그저 그림자가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었다.
왠지 저 그림자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경계를 풀고 그림자에 접근했다.
“어디서 본 실루엣인데?”
어디서 본 것일까.
잠시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나저나 그림자는 계속 한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잠깐만?”
내가 쥔 칠흑의 검, 퇴마검이라 밝혀진 검의 주인의 실루엣과 비슷하다. 아니, 비슷한 게 아니라 주인이 틀림없다.
“뭐하자는 거지?”
계속 한 동작만 반복하고 있다.
내가 그림자를 베어도 허공을 가르는 느낌만 날 뿐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림자가 휘두르는 검에 내가 맞지도 않는다.
“따라하라는 건가?”
혹시 퇴마검의 주인이 남기고 싶어 하던 힘이란 게 검술이었나.
하지만 내 검술도 나쁘진 않다.
굳이 배울 필요가 없겠지만….
“안 따라하면 영원히 나가지 못할 거 같으니까.”
그림자의 동작을 따라했다.
그러자 그림자의 동작에 변화가 생겼다.
동작이 추가된 것이었다.
“아, 이렇게 계속 동작을 따라 익히면 되는 건가.”
아무래도 비기를 알려주는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그림자의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비기를 위한 동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림자의 행동을 다 따라하니 비기가 아닌 검무였다.
“신기해.”
검무를 펼쳤을 뿐인데 내가 익히고 있는 마나호흡법과 동하며 마나호흡량이 확 늘었다.
몸에 부담도 가지 않았다.
“좋은 걸 배웠다.”
그림자가 옅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하나의 문이 열렸다.
“다행이다. 마지막 층이 맞았나보네.”
보상이 있는 문만 있다. 더 이상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곳이 없었다.
큰 기대 없이 보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마도 이 검무가 보상이었겠지. 보상의 방에 들어가도 별건 없을 거야.”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던 방에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유리파편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홀린 것처럼 나도 모르게 유리파편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 유리파편은 내 손에 흡수되듯 사라졌다.
“뭐였지?”
정신을 차린 나는 지금 내게 펼쳐진 일을 생각해보았다.
“유리파편이 나한테 흡수된 거 같은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행히도 이 의문을 풀어줄만한 단서가 있었다.
“이 책에 적혀 있겠지.”
책을 펼쳤다. 여전히 고대문자로 적힌 책이었다.
[귀족은 평민이랑 다르게 가진 힘부터 다르다.]
이게 무슨 말일까. 혈통의 차이라 말하고 싶은 걸까.
[귀족이 귀족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귀족만이 특별한 힘을 가졌으니까.]
특별한 힘이라니. 설마 예전 귀족들은 마법을 독점했다는 이야기인가.
[마법과 검과 다르게 태생부터 주어지는 힘.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정신력을 사용하는 힘.]
“뭐라고…?”
그런 힘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 힘을 가졌기에 우린 귀족이라 불렸다. 그리고 내가 가진 그 힘을 이 유리파편에 담아놓았다.]
“그럼, 그 힘이 나한테 깃들게 되었다는 소리란 말이야?”
[내 힘은… 바로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힘이다.]
음. 염동력이란 마법이 생각났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검을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손을 뻗으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검의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다.
“에이, 안 되잖…?”
약간의 어지러움을 동반하며 검이 서서히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손에 검이 안착하였다.
충격적인 일에 나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보상의 방을 나온 뒤에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사라진 게 아니었어?”
사라진 줄만 알았던 그림자가 있었다.
이제는 그림자라고 칭하기도 애매했다. 검었던 부분에 색이 더해졌다.
“역시 그 사내가 맞았구나.”
정체불명의 사내. 마족과 맞서싸운 사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면 고집스러운 눈매. 퇴마검과 같은 칠흑색의 장발. 얼굴 곳곳에 나있는 상처.
“고생하셨습니다.”
얼굴에 난 상처만으로도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잭과 비슷한, 비겁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 잭과는 다르게 세계를 위해 싸웠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마족을 대항하는 임무는 제가 못할 거 같습니다.”
그런 고난을 위해서 회귀한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세계엔 강자가 넘쳐난다. 굳이 내가 마족을 막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내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사내가 검을 들었다. 그리고 동작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같은 검무였다.
그리고 사내의 손에는 퇴마검이 들려있다.
갑자기 나타나는 마족들.
나는 당황하며 검을 들었지만, 이내 경계를 풀었다.
“실체가 없다?”
사내가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퇴마검에서 실들이 나온다.
의지를 가진 듯 마족을 해치워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알겠군.
“퇴마검에서 나오는 실들은 비장의 수 따위가 아니었어. 비겁한 수도 당연 아니고.”
특별한 힘, 염동력.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정신력을 사용하는 의문의 힘.
“염동력으로 실을 조종해서 싸우는 거였다니.”
사내의 집중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실이 엉키지도 않고, 마족을 잘라나간다.
검무가 끝나고, 상처투성이의 사내만 남았다.
“검무가 아니었구나….”
사실은 검무가 아니었다. 내게 마족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다만 그게 검무같이 보였을 뿐.
강한 사내였다. 마족과 홀로 싸우고, 범인이라면 익힐 수 없는 재주를 가진.
“존경하겠습니다.”
사내가 서서히 흩어지며 사라져갔다. 그리고 내 귓가에 의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탁한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제게 부탁하셔도 별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약속했다.
“만약, 이 힘이 어울리는 자가 생긴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이 힘을 넘겨주겠습니다.”
이 사내가 내게 힘을 넘겨주었으니 나도 힘을 타인에게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이 힘에 어울릴만한 정의감 넘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이 힘을 넘겨줄 것을 약속했다.
사내가 사라진 곳에 포탈이 생겨났다.
“역시 마지막 층에 있을 줄 알았어.”
역시 깊은 유적이면 한 방에 입구로 돌아갈만한 방법을 준비해준다.
포탈은 예전에 보았던 것과 같았다. 두 공간을 이은 공간이동의 마법. 돈 많은 제국에서 많이 보았다.
나는 포탈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적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포탈의 출구는 산의 입구였다.
“돌아왔군.”
오랜 시간 유적에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가문으로 돌아가서 밀리아 누님이 가진 목걸이를 뺏어야한다.
“아카데미에는….”
따로 말을 남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출석을 하지 않았다. 알아서 퇴학처리가 되었을 거다.
“검성님에게 별다른 말없이 떠나는 게 죄송스럽네.”
검성과의 대련도 아쉬웠다.
내게 많은 걸 가르쳐주신 스승과도 같은 존재가 검성이었다.
편지라도 남겨야겠지.
일단은 도시로 돌아가서 말과 식량을 챙겨야한다.
“준비 끝내면 바로 떠나자.”
정확한 요일은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날은 중천이다.
에아, 프리드, 모레드트, 검성. 이들 모두가 강의를 듣거나 하는 중일 거다.
작별의 인사를 고하지도 않고,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내게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잠깐, 멈추시길 바랍니다.”
도시의 입구에서 경비가 나를 불러 세웠다.
“왜 그러시죠?”
“이 가문패가 본인의 것이 맞습니까?”
칼데르트가의 문양 아래에 내 이름이 적혀있는 가문패.
“네, 수하르 칼데르트 본인입니다.”
“잠시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경비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낭패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경비가 찾아왔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당신을 찾던 분이 오실 겁니다.”
설마… 누군가가 내가 들어올 경우 자신에게 알리라고 말했었나.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