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등장만으로 이렇게 소란피울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한 단 한 명이었다.
“검성님….”
문을 열리고, 검성이 들어왔다. 검성의 표정은 화가 난 듯 보였다.
“저기, 검성님… 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후….”
검성은 화를 삭히는 것처럼 보였다. 검성의 입이 열리며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괜찮느냐?”
“네… 그게 무슨?”
그제 서야 나는 내 복장을 알아차렸다.
상처는 다 나았지만, 옷이 많이 상해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누군가에게 습격받은 차림새였다.
“살아남았으니, 괜찮죠.”
“그래서, 누구였느냐.”
아, 검성은 내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나를 노린 그 누군가에 대한 분노였다.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나를 습격한 단체는 모르지만, 의뢰자가 누군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알려줄 수 없다. 알려줘서도 안 되고.
자신의 이복누이에게 암살의뢰를 당했다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겠는가.
“알려드릴 수가 없다라….”
검성의 기세가 점차 커졌다.
“내가 그리 선한 사람으로 보이더냐. 알려드릴 수 없다면 조용히 납득하는 그런 선한 사람으로 보이더냔 말이다. 내 제자가 공격을 당했단 말이다!”
“이건 검성님이라고 하셔도, 절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를 협박하셔도 말입니다.”
“협박…?”
조금 세게 말한 기분이 들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로 말하지 않으면 검성은 계속 나를 추궁할 것이다.
“…….”
검성이 입을 닫았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거겠지.
일단 검성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기로 했다.
“모든 게 끝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검성이 기세가 사라졌다.
“그래. 그리고 아카데미는….”
“퇴학처리되었겠죠.”
“내가 알아서 처리해주마. 당장 오거라.”
“그것도 못합니다.”
이번에도 검성이 기세가 풍겨왔다. 검성이 다시 화를 낸다.
확실한 건 이번 분노는 온전히 나에게 향하는 것이었다.
“이제 강해졌으니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건가?”
검성은 분명 내가 소드익스퍼트 상급, 아니 마지막에 이르러서 최상급에 살짝 발을 걸쳤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검성의 가르침을 받기 싫어서 안 가겠다는 게 아니다.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을 뿐이었다.
“급히 가문으로 돌아가봐야 합니다.”
“…….”
갑작스러운 실종과 습격받은 듯한 모양새, 알려줄 수 없는 이유. 마지막으로는 가문에 급히 돌아가야하는 상황.
검성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시가 급합니다.”
“퇴학처리는 내가 막아두고 있을테니, 얼른 돌아오거라.”
드디어 검성도 내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알려주지 않겠다고 해놓고 다 말한 상황이지만 말이다.
아카데미에 있던 내 말은 가문으로 돌려보내졌다고 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뒤 가장 좋은 말을 빌리고, 가문으로 향했다.
휴식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돌아갔다. 그 덕에 원래 걸리는 시간보다 한참은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말을 가문에 도착하기 직전에 지쳐 쓰러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어…?”
영지의 입구에서 경비가 나를 알아보았다.
“수하르 도련님이 맞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서두르며 누군가를 불렀다.
아무래도 아버지께 내 소식을 전하려는 거겠지.
“따로 볼일이 없으면 가보도록 하지.”
“예! 일단은 바로 가문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나도 그럴 생각이다. 밀리아가 따로 준비할 시간을 줘서는 안 되겠지.
바로 가문으로 향했다. 가문의 안은 조용했다.
나는 바로 밀리아의 방으로 가서 거칠게 문을 열었다.
“없다…?”
설마 도망이라도 친 건가. 아니면 경합 때문에 어디론가 가버린 걸까.
“어, 수하르 도련님? 살아계셨군요.”
고개를 돌려보니 밀리아의 전속시녀인 레아였다.
“레아, 밀리아 누님은 어디에 있지?”
“지금 모든 형제들은 대전에 있어요. 후계자 경합의 중간발표가 있어서요.”
“그런가….”
나는 대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전의 문이 열렸다. 레아의 말대로 모두 형제가 대전에 있었다. 아버지도, 가신들도.
물론 밀리아도 있었다.
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었다.
“수하르, 경비에게서 소식 들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이었느냐?”
하지만 그 말을 무시하고, 밀리아 누님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다가갔다.
‘역시, 목걸이는 밀리아 누님이 착용하고 있어.’
다행히도 밀리아 누님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내가 다가가면 갈수록 밀리아 누님이 점점 이상해져갔다. 밀리아 누님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간다.
밀리아 누님의 지근거리에 도착한 순간, 밀리아 누님이 외쳤다.
“네가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
밀리아 누님의 외침과 동시에 목 부근에서부터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래서 안 돼… 죽었어야하는데… 도대체 이게 뭐야….”
“진정해!”
문이 열리려고 함이 틀림없다. 진정시켜야한다. 대전으로 바로 온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밀리아 누님을 자극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불길한 기운이 밀리아 누님을 삼켰다.
“살아있으면… 다시 죽이면 되겠구나….”
밀리아 누님의 눈이 검게 물들었다. 불길한 기운이 등 뒤에서 날개 만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가신 중 하나가 홀린 듯이 말했다.
“마족….”
가족들 전부 놀랐다.
이 일은 분명 논란이 될 것이다.
칼데르트가의 여식이 마족과 계약했다는 형식으로 말이다.
“죽어!”
잠시 시선을 다른 곳에 판 사이에 밀리아 누님이 나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밀리아 누님의 손톱은 길며 검게 변해 있었다.
나는 퇴마검을 뽑아, 그 손톱을 막았다.
깡.
절대 손톱과 검이 부딪혀서 나올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 소란에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아버지였다.
“지금 당장 밀리아를 포박하거라!”
누가보더라도 밀리아 누님은 정상이 아니었다.
밀리아 누님을 중심으로 포위망이 펼쳐졌다.
이래서는 안 된다.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는 일이다. 사상자가 나오는 순간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문이 열렸으면 문을 닫으면 된다. 메드락을 부수는 것으로 문을 다시 닫을 수 있다.
‘처음 써보는 힘이지만….’
퇴마검에 있는 실을 사용하기로 정했다.
밀리아 누님을 실로 묶은 뒤에….
‘메드락을 부순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죽어! 죽어!”
밀리아 누님이 계속해서 달려드는 탓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집중했다. 그 사내 또한 검을 휘두르면서 능력을 썼으니 나도 가능할 것이다.
여러 차례 실로 밀리아 누님을 묶으려는 시도를 해보았지만, 실패했다.
“어떡해야 하는 거지.”
점점 밀리아 누님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문이 완전히 열리는 순간, 마족에게 정신을 빼앗긴다.
그렇다면 칼데르트가가 마족에 의해 사라질지도 모른다.
“잔재주를 부릴 때가 아닌 거 같네.”
능력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제대로 검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밀리아 누님을 벽까지 몰 수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밀리아 누님을 실로 묶는 것이 아닌, 벽에다 밀리아 누님 매달아놓는 방법이다.
실을 조종해 벽과 밀리아 누님을 하나로 만들었다. 벽에 묶인 밀리아 누님이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실은 전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 마가 관련되었다면, 이 실을 절대 풀 수 없다.
“다들 비키세요!”
메드락이 부서졌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내가 주변의 사람들에게 떨어지라 경고한 것이다.
“누님, 이걸로 개운해질 겁니다.”
비기를 위한 동작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남은 실들을 퇴마검에 둘렀다.
목걸이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퇴마검과 부딪힌 메드락 목걸이가 스파크를 일으킨다.
“으그그극···.”
강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메드락 목걸이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밀리아 누님 곁에 머물던 불길한 기운이 목걸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괴로운 듯 소리치는 밀리아 누님.
조금만 참으라고. 마음속으로 말하며 검에 힘을 더욱 준다.
쩌저적- 파스슥.
완전히 갈라진 메드락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메드락이 부서지는 걸 확인한 나는 퇴마검의 버튼을 눌렀다.
위이이잉-
실이 퇴마검으로 돌아가면서 밀리아 누님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
아무 말 없이 밀리아 누님을 보았다. 이제는 원래대로 돌아왔을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정했다.
“밀리아 누님은 마족에게 빙의당할 뻔했습니다.”
“마족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구나.”
“저, 목걸이가 밀리아 누님을 조종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밀리아 누님의 옆에, 보석이 있어야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는 목걸이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표정이 점점 굳어간다.
“그렇다면 밀리아는 저 목걸이는 어떻게 얻은 것이냐.”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저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던 중에 그 목걸이에 달린 보석의 진실을 알아차린 것뿐입니다.”
착용자의 정신을 갉아먹다가 마족을 빙의시키는 묘한 보석. 그게 메드락의 정체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밀리아 누님이 완전히 먹히기 전에 도착해서.”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메드락은 통로입니다. 다 넘어왔다면 메드락을 부숴도 소용없었을 겁니다.”
진짜 다행인 일이다.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면, 더 다행이었을테지만.
그 건에 있어서는 내가 너무 경솔했다.
“잠시, 피곤한 관계로 먼저 방을 가보겠습니다. 밀리아 누님이 다쳤을지도 모르니 잘 부탁합니다.”
염동력을 사용해서였을까. 아니면 안심해서 그런가. 그간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나는 뒤을 대전을 나가려했다. 대전 안에의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보는 가신들의 시선이 묘하다.
마치 가문에 영웅이라도 탄생한 듯한 시선.
불완전하나, 마족을 쓰러뜨렸다. 영웅의 대접을 받아도 될 법한 일이었다.
설마, 나를 다시 후계자 경합에 집어넣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아씨, 어떡하지.’
일단 모두의 시선을 무시한 채 방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뭔가 생각할 겨를이 나지 않는다.
방은 내가 아카데미로 떠나기 전과 그대로였다. 청소도 꾸준히 해주었는지 먼지도 없었다.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때엔 아버지가 내 옆에 있었다.
“아버지···.”
“일어났느냐.”
“···예.”
대전에 있을 때엔 눈치채지 못했지만, 많이 수척해진 아버지의 얼굴.
“얼굴이 많이 수척해지셨습니다.”
“···.”
“누님의 일은 제가 자세히 설명이 가능하니 가문에 대한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많이··· 걱정했었다.”
걱정이라니. 무엇을 말하고 계신 걸까.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이더냐.”
“아···.”
한동안엔 유적에 있었다는 것을 깜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