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내 말에 발끈한 건달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제각각 손에는 단검과, 쇠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이게 어디서 입을 털어. 그냥 뒤져라!”
몇 번의 부딪힘과 함께 내가 건달들 사이를 지나쳤다.
그 후 건달들은 자신들에게 생긴 변화를 눈치챘다.
“어··· 내 머리가···?”
나는 건달들의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었다. 거기에 번호까지 새겨주는 서비스까지.
“음, 그래서 이제라도 뒷거래하는 사람을 알려줄 사람?”
1번 건달이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제가,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저를 살려주십쇼.”
뭔가 1번 건달이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애당초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알려주면 전부 놓아줄 생각이었다.
1번의 말에 괜히 내가 2~4번에게 손을 써야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어··· 그래. 사실 알려주면 그냥 놓아줄 생각이었는데 너 때문에 남은 애들 손 좀 봐야겠네.”
남은 건달들이 1번 건달을 죽일 듯이 쳐다보았다. 내가 천천히 건달들을 향해 걸어가자, 건달들이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희 집엔 노모가 있습니다.”
“야, 너 고아잖아.”
“안 닥쳐!”
건달들이 제각각 신파극을 찍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딱 정수리 한 대씩만 때릴게.”
나는 퇴마검을 도로 검집에 넣었다. 그러곤 검집째로 휘둘렀다. 한 사람당 한 대씩. 총 네 대를 때렸다.
잠깐, 네 대?
“아씨, 1번도 같이 때려버렸네. 왜 거기 있어 가지고.”
바닥에는 네 명의 건달이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나는 1번 건달을 흔들어 깨웠다.
“아씨, 왜 자꾸 깨우는 거··· 야?”
“야?”
1번 건달이 곧바로 내게 엎드려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정수리에 적힌 1이라는 숫자가 유독 눈에 띄는 자세였기에 웃음이 나왔다.
웃은 마당에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뒷거래하는 사람이 어딨는데. 그 사람 신분증도 만들어주냐?”
“그 사람이 못하는 건 없습니다. 당연 신분증도 만들어주고요. 그런데···.”
겁먹은 눈초리로 나를 보는 1번 건달.
“혹시 수배범이십니까?”
이번엔 힘 조절해서 1번 건달의 정수리를 때렸다. 그 덕에 1번 건달은 아파하는 것으로 끝이 날 수 있었다.
“무슨 수배범이야. 이래 보여도 수배범을 잡은 사람인데.”
“넵. 실례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딨는데.”
“아, 하늘길 여관으로 가시면 됩니다.”
나는 걸음을 옮기다 문득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1번 건달이 안 움직이고 있다.
“야, 넌 왜 안 오냐?”
“네?”
“내가 하늘길 여관이 어딨는지 알고 찾아가. 네가 앞장서야지. 거짓말했는지도 모르고.”
“아, 넵.”
1번 건달이 굽신거리며 앞장섰다. 나는 1번 건달을 뒤따라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허름해 보이는 여관이었다. 폐가로 착각할 법한 외관의.
나는 1번 건달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여기 맞아?”
“예, 저기 적혀 있지 않습니까. 하늘길 여관이라고.”
확실히 적혀 있다. 게다가 간판만 새로 페인트한 건지 유독 간판이 눈에 띄게 밝았다.
“그냥 들어가면 돼?”
“에이, 그러면 쉽게 발각되죠.”
“그래? 그런데 왜 너는 알고 있는 거야?”
“다 방법이 있죠. 일단 들어가셔서 아무 데나 앉으시면 됩니다.”
“그냥 앉기만 하면 되나?”
1번 건달이 내게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정수리를 때렸다. 나를 비웃는 듯했기 때문이다.
“으윽.”
“기분 나쁘게 왜 비웃어. 하여튼 앉은 다음엔?”
“어디가 됐건 다섯 번 두드립니다. 그러면 종업원이 돌을 가져올 겁니다.”
돌이라니 뜬금없다. 너무 뜬금이 없어서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리고 그 돌을 보며 박수를 세 번치면서 ‘아주 멋진 수집품이군. 이 돌의 주인을 만나게 해다오.’라고 하시면 됩니다.”
다시 손을 들어 정수리를 때릴 준비를 했다. 딱 봐도 거짓말인 듯했다.
“이딴 거짓말에 내가 속을 거 같아?”
1번 건달이 다급하게 정수리를 가리며 울상을 지었다.
“정말입니다. 한번 들어가서 해보십쇼. 아, 그냥 저랑 같이 들어가서 해봅시다.”
“그래, 그 대신 네가 다 말해.”
“네, 좋습니다.”
하늘길 여관의 내부로 들어갔다.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깔끔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우리를 제외한 손님이 없을뿐더러 종업원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여기가 맞나?’
1번 건달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1번 건달은 자리에 앉은 다음, 바로 테이블을 다섯 번 두드렸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종업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1번 건달의 말대로 종업원은 손에는 돌이 들려있었다.
종업원이 테이블 위에 돌을 놓았다. 그리고 1번 건달이 박수를 세 번 치며 말했다.
“아주 멋진 수집품이군. 이 돌의 주인을 만나게 해다오.”
그러자 종업원이 우릴 향해 손을 까닥였다. 따라오라는 듯했다.
“진짜였네, 고마웠다. 넌 이제 가봐도 돼.”
“넵!”
종업원을 따라간 곳은 주방이었다. 종업원이 주방 구석으로 가더니 벽을 세 번 두드렸다.
“손님입니다.”
“······.”
벽이 갈라지더니 통로가 생겨났다.
종업원이 통로에 서서 나를 향해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쪽으로 쭉 가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나는 종업원이 말한 대로 통로에 들어갔다. 어두울 줄 알았지만, 옆에 달린 횃불 덕에 밝았다.
통로의 끝에는 나무로 된 문이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허락이 떨어진 다음 문을 열었다.
문 안쪽에는 로브로 온몸을 가린 한 사람이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신분증을 새롭게 만들고 싶어서요.”
“그거야, 쉬운 일이죠. 10골드만 주시면 됩니다.”
나는 돈주머니에서 10골드를 꺼내 넘겨주었다.
로브로 온몸을 가린 사람이 종이를 꺼내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요?”
“열다섯요.”
상대가 움찔거린걸 보아 내가 열다섯이라는 사실에 놀란 듯 보였다.
그야, 몇 달 사이에 많이 성장해서 열다섯의 몸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름은 뭐로 하실래요?”
이름이라.
수하르의 원형이 남아있는 이름을 쓸 경우엔 나라는 것을 들킬 수도 있다.
아예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냈다.
“한스요.”
흔하디 흔한 이름.
평민들 중에서는 열 명 중에 한 명이 한스라는 이름이라 들었다.
그만큼 평민들 사이에선 흔한 이름.
“그런 이름으로 괜찮겠어요?”
“네, 한스로 해주세요.”
내겐 오히려 좋은 이름이다.
“따로 가문명 같은 건 필요 없으신가요?”
“가문명요···?”
“몰락한 귀족가문을 쓰는 겁니다. 뭐, 빌린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혹시 본인 가문이 있으시면, 본인 것을 쓰셔도 됩니다.”
가문명을 빌린다라. 생각보다 좋을 거 같다. 물론 칼데르트가의 이름을 빌릴 생각은 전혀 없다.
평민이 된다는 것은 귀족들에게 횡포에 당할 우려가 컸다.
하지만 몰락한 귀족이라면 괜찮다. 몰락하더라도 귀족 핏줄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 말이다.
“혹시 괜찮은 가문이 있나요?”
“이 책에서 원하시는 가문을 고르시면 됩니다. 따로 가문이 몰락하게 된 사연도 알려드립니다.”
책에 훑어보던 중에 익숙한 가문명이 눈에 들어왔다.
[키르턴 가문]
“어···? 키르턴?”
“아, 그건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에아 키르턴. 분명 미케네르 제국의 변방에 있는 가문이 아니었나.
“어째서 이건 사용할 수 없는 거죠?”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제가 알기론 최근에 멸문한 제국의 귀족가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국에서 이 가문명을 함부로 못 쓰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혹시 에아가 몰락한 키르턴 가문의 생존자인가.
“혹시, 이 키르턴 가문에 생존자가 있습니까?”
“아니요, 제가 알기론 생존자가 하나도 남지 않고, 전부 죽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에아가 가문명을 속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내가 알 방법은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전 이게 좋아 보이네요.”
한스 라이크. 라이크 가문이 눈에 들어왔다.
“아, 라이크 가문 말이군요.”
라이크의 가문은 백 년 전에 제국에 존재했던 가문이라고 했다.
“라이크 가문은 시간이 흐르며 쇠퇴하면서 몰락한 케이스입니다. 그래도 옛날엔 검으로 이름을 날리던 가문이었습니다.”
좋다. 마침 검을 쓰던 가문이었다.
나는 라이크 가문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로브로 온몸을 가린 사람이 나를 남겨두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신분증이 만들어졌습니다.”
생각보다 엄청 빨랐다. 완성된 신분증을 확인해보았다.
[한스 라이크. 열다섯.]
제대로 각인이 되어 있었다. 추가로 신분증의 옆에 증명서가 있다.
“신분증만으로 통하지 않을 때 증명서를 보여주면 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로브로 온몸을 가린 사람이 살며시 말을 꺼냈다.
“암시장에 관심이 없습니까?”
“암시장···.”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을 파는 곳입니다. 경매 형식이라 돈만 많으면 되고요.”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없다.
굳이 암시장을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물론 구경은 해보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급한 게 있었다.
“암시장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원하시는 정보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것만 알아주십쇼.”
“네. 그럼 조르던 자유도시에 싸고 좋은 여관이 어딘가요. 음식도 맛있는 곳이면 좋겠네요.”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질문에 당황한 것인지 말 수가 사라진 로브의 사람.
“어디가 좋나요?”
“파이언트 여관이 좋습니다. 이 정도는 따로 정보료를 주실 필요가 없겠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용무가 있으면 찾아올게요.”
로브의 사람에 안내에 따라 출구로 나왔다. 출구는 하늘길 여관의 뒷문이었다.
“아, 맞다. 파이언트 여관이 어딘지 묻는 걸 깜빡했네.”
다시 들어가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이 정도는 거리의 사람에게 물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이제 용병길드를 찾아가 새롭게 용병증을 만들면 될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돈벌이가 안 되니까. 아껴 써야겠지.”
모은 돈을 최대한 아낄 필요가 있다. 적어도 실버급 용병은 돼야 돈벌이가 되니 말이다.
나는 우선 길을 물으려 거리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야, 1번!”
머리에 떡하니 1번이라 써져있으니 알아차리기는 쉬웠다.
1번 건달은 표정을 구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부른 게 나라고 알아차린 건달은 굽신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헤헤, 용무는 다 보셨습니까?”
“그렇지. 아, 너 근데 이름이 뭐냐.”
“넘버완이라고 합니다.”
“그래, 넘버완아. 나 파이언트 여관으로 안내 좀 해줘라.”
갑자기 표정이 좋지 않아진 넘버완이었다.
내가 부려먹으려고 하나.
나는 넘버완에게 1골드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한결 표정이 밝아진 넘버완.
“제가 또 이곳 토박이니, 모르시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자! 따라오십쇼.”
“앞으로 방문객 등쳐먹지 말고, 이렇게 안내나 하면서 팁받는 건 어떠냐?”
“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건달짓을 하는 것보단 이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냥, 친구들 모아서 조르던 자유도시 가이드를 해주는 거지.”
“그거, 진지하게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나저나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한스 라이크.”
한스 라이크. 이제부터 조르던 자유도시에서는 내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