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새끼 은빛 늑대의 부모를 내가 죽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늑대라고 해도 몬스터. 언젠가는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은빛 늑대라면 다르다.
“어려서부터 사람과 지내면 몬스터의 본능이 사라지는 케이스지.”
이 새끼 은빛늑대를 내가 잘만 기른다면 충실한 애완견처럼 될 것이다.
물론 이 녀석을 파는 것으로 돈을 벌 수도 있지만···.
“애완동물이 집도 지킬 수 있다면 더 좋겠지.”
높은 지능과 무리의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심. 새끼 때부터 기를 수만 있다면 최고의 경비견이다.
나는 새끼 은빛늑대를 품에 안았다.
“넌 이제부터 하르다.”
내 이름인 수하르에서 앞에 한 글자만 떼어버린 이름.
하르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품안에서 계속 발버둥 쳤다.
“이 녀석이···.”
가방을 풀어 고블린의 토벌부위인 귀를 물려주었다.
그러자 고블린의 귀를 씹으며, 얌전해진 하르.
나는 던전 밖으로 나갔다.
“이제 보수를 받고, 하늘길 여관에 가봐야겠어.”
***
용병길드로 들어가 내가 받았던 세 개의 임무서를 접수처의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기 전부 해결했습니다.”
“네? 벌써요?”
내가 임무를 받았던 시간은 점심 쯤. 당일 저녁시간 전에 돌아왔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여기 토벌부위들입니다.”
코볼트의 송곳니와 고블린의 귀, 그리고 은빛늑대의 가죽.
토벌부위를 건네던 중에 품안에 있던 하르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 새끼 은빛늑대네요. 분명···.”
임무서를 확인하는 접수처의 여자.
“횡재하셨네요. 보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으시겠어요.”
“아니요. 이 녀석은 제가 길러보려고 합니다.”
접수처의 여자가 하르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새끼 은빛늑대가 귀여워서 한번 길러보고는 싶죠. 그러시다면 시청에 가서 허가증을 받으셔야해요.”
허가증? 애완동물을 기르는 데에 허가증이 필요하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다.
“이 녀석을 기르는 데에 허가증이 필요하다고요?”
“네. 새끼지만 몬스터의 새끼죠. 어느 정도 위험하다 보니 도시에서의 허가가 필요해요.”
맞는 말이다.
은빛늑대는 마나를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일단 시청에서 허가증을 받으면서 어떻게 키워야할지 많은 조언을 해주실 거예요. 따로 달마다 도시에서 사람을 보내 양육 상태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안전에 신중한 곳이었다.
그러니까, 자유도시들 중에서도 유명하겠지.
딱히 허가증을 받아야한다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기에 하늘길 여관을 가기 전에 받기로 정했다.
용병길드의 문이 열리며 시끄러운 사내가 들어왔다. 사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통에 이곳에 있기 불편해졌다.
“이제 보수를 받고 가봐야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보수를 챙기고 용병길드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 내가 고블린 부락을 다 처리해왔다. 여기 토벌부위.”
나와 같은 임무를 받은 것일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니었다. 접수처의 여자가 나를 힐끗 바라보며 곤란하다는 듯이 사내에게 말했다.
“이 임무는 이미 해결된 임무입니다. 그리고 토벌부위라고 가져오신 귀도 전부 왼쪽 귀잖아요!”
“이봐,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뭐? 이미 해결된 임무? 그렇다면 내가 하이에나 짓이라도 하고 있다는 거야!”
하이에나 짓. 남이 해결한 임무의 보수를 가로채는 행위를 말한다.
지금 저 사내가 하는 짓처럼 말이다.
보다 못한 내가 접수처의 여자에게 다가갔다.
“혹시 제가 해결한 임무에 문제가 있나요.”
“그게···.”
사내가 내 어깨를 밀쳐왔다. 그리고 힐끗 내 검을 보고는 웃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당신이 내 임무의 보수를 훔쳐 갔구만. 하이에나 짓이나 하면서.”
“웃기는 소리.”
접수처의 여자가 내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해주었다.
“저 사람은 골드 용병으로 포트이라고 해요. 자신보다 아래 등급의 사람들에게 하이에나 짓을 하고 힘으로 눌러서 악명이 자자해요.”
“네? 그런 자가 왜 아직도 용병을 하고 있는 거죠?”
“저 사람의 악행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포트이가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귓속말을 하다니. 예의를 밥 말아먹었나 보군.”
“그보다 토벌부위도 잘못 가져와놓고는 왜 잘 가져온 사람에게 하이에나 짓이라고 우기지?”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지만, 포트이가 답해줄 리가 없었다.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만 이렇게 시비를 건다는 사람이 왜 같은 골드 용병인 내게까지 시비를 거는 걸까.
“이봐, 단기간에 실버 용병이 됐다고 기세등등하나본데. 나는 골드 등급이다.”
아, 아무래도 내가 골드로 승급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잘못알고 있는 거 같군. 나도 골드다.”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아직 골드 용병증으로 바뀌지 않아서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아, 입증해줄 사람이 두 명 있지 않는가.
길드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니 페트릭은 없어서 접수처의 여자에게 말했다.
“저기, 토트 씨 좀 불러와주세요.”
“네!”
접수처의 여자가 떠났다. 포트이와 단둘이 남은 상황이 되었다.
“네가 골드가 되었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일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포트이는 나를 보며, 정확히 내 검을 보고 웃었던 것을 떠올렸다.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고블린을 토벌했을 때를 떠올렸다. 염동력을 이용해 실만으로 고블린을 잡았다.
그 모습을 포트이가 보진 못했을 거다.
하지만 남은 참상은 보았겠지. 그래서 오른쪽 귀가 잘린 고블린들의 왼쪽 귀마저 자른 것이고.
“하하, 왜 그렇게 당당하나 했네.”
갑작스레 웃는 나를 보고 포트이가 어이없어 했다.
“흥, 네가 토벌부위를 가져왔다고 진실이 밝혀지는 게 아니다.”
“과연 그럴까?”
“운 좋게 전염병에 걸려 죽은 고블린을 처리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외적인 상처가 보이지 않으니 포트이는 고블린이 전염병에 걸려 이미 죽어있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엄청난 실력자라 고블린을 상처도 없이 잡았다고는 생각 못하고?”
“소드마스터도 기세만으로 고블린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소드마스터는 본 적이 있고?”
검성을 떠올렸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기세만으로 고블린을 죽일 수 있을게 분명했다.
그보다 검성을 생각하니 편지 한 통만 달랑 보내놓은 게 걱정이 됐다.
‘설마 나 찾으러 다니는 건 아니겠지?’
일단 검성에 대한 생각을 접어두었다. 그보다 급한 건 이 파렴치한 포트이란 녀석이었다.
“그렇다면 네놈이 소드마스터라도 된단 말이냐!”
소드마스터는 아니지만,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은 된다.
물론 솔직하게 말할 생각도 없다. 게다가 내가 고블린을 죽인 방식은 염동력이기에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상처 없이 고블린을 처리했지? 네 녀석이 그랬다면 증명할 수 있을텐데.”
확, 염동력을 써버릴까도 고민해봤지만, 그러기엔 손해가 컸다.
“설령 내가 전염병으로 죽은 고블린을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먼저 토벌부위를 챙겼으니 내가 보수를 맞는 게 맞다.”
“아니지. 나는 토벌부위를 착. 각. 했을 뿐이다. 내가 먼저 발견했다.”
오호, 이런 식이었구나. 한창 포트이와 입씨름을 하던 중에 토트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자 자, 그만들 하시게.”
토트가 중재를 해보았지만, 포트이는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포트이가 토트에게 말했다.
“토트,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나.”
“결투를 말하는 겐가?”
“그렇지.”
은연중에 날 힐끔 바라본 토트가 웃는 것 같았다.
토트가 곤란하다는 듯이 포트이에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실버 용병과 골드 용병의 결투라니 용납할 수 없네.”
실버 용병이라니. 설마 나를 말하는 것일까.
토트는 분명 내가 골드로 승급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였다.
토트가 내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아직 골드 용병증이 발급된 게 아니니 자네는 실버 용병이 맞네.”
“······.”
“저자와 결투해서 좀 혼쭐 좀 내주게. 부탁함세.”
토트가 웃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저 안하무인의 포트이를 내가 혼내줬으면 하는 거였다.
토트가 내게 윙크를 날리며 물었다.
“한스, 혹시 결투를 받아들이겠나?”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결투 승낙하겠습니다.”
토트가 내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고맙네. 나중에 한턱 거하게 쏘겠네.’
그나저나 토트는 내가 이길 거라고 단언하는 걸로 보아 포트이의 실력이 좋지는 않나보다.
토트는 나와 포트이를 3연무장으로 안내했다.
하루에 3연무장을 두 번이나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일단 결투의 조건은 어떻게 하겠나.”
포트이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검, 승자의 조건은 임무 보상을 받는 것.”
조금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말을 덧붙였다.
“토트, 추가로 용병자격 정지가 좋겠네요. 포트이, 승낙하겠나?”
포트이에게 비웃음을 흘리며 내려다보았다.
그것에 화가 난 포트이가 핏줄까지 세웠다.
“좋다! 결투의 내기라면 그 정도는 돼야지.”
포트이 녀석이 불쌍해졌다. 고작 몇 골드 안 되는 보수로 자신의 용병인생의 막을 내리게 생겼다.
토트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포트이를 바라보았다.
“이봐, 포트이 괜찮겠나? 용병 정지라는 게 간단하게 볼일이 아니야.”
“흥, 저 꼬맹이 녀석이나 걱정하쇼. 앞으로 아무 일도 못하게 내가 이놈의 팔을 잘라버릴 거니까.”
이건 좀 심하다. 선을 넘었다고 말하는 게 좋겠다.
그저 용병자격 정지만을 원했던 나였지만 똑같이 만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더 이상 시간 끌 필요가 없는 거 같은데 바로 시작하죠.”
“한스, 자네···.”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토트였다.
토트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다급하게 내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제발 자네가 좀 참아주게. 포트이는 나쁜 녀석이지만 죽이면 곤란해져.”
“괜찮습니다. 죽일 생각은 없고, 포트이가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려고 합니다.”
그러자 토트가 안심하듯 탄식을 내뱉었다.
“뭐, 포트이의 말은 정도가 넘었기에 그 정도는 괜찮네. 하지만 죽이지는 말아주게. 포트이가 걱정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길드에 사망자가 나오면 귀찮아져.”
“저 역시 귀찮아지겠죠. 다 알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자네만 믿겠네.”
아, 품속에 하르를 깜빡할 뻔했다.
품속이 따듯한지 하르는 노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품속에서 하르를 꺼내었다. 하르는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지 않았다.
하르를 토트에게 건네주었다.
“이 녀석 좀 맡아주세요.”
“오, 은빛늑대의 새끼가 아닌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아주 귀엽구만.”
토트가 나와 포트이의 사이에 섰다. 페트릭과의 대련이 생각났지만 이것은 실전이다.
나는 검을 뽑고 준비 자세를 취했다. 포트이도 마찬가지였다.
토트가 손을 밑으로 내리며 결투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