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31화 (31/150)

#31화.

다행히도 울타리는 처음부터 만들 필요가 없었다. 어제의 가구점에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울타리도 파는구나.”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면 울타리를 설치하는 것까진 괜찮다.

하지만 몬스터가 ‘어, 울타리네?’라며 피해 갈 일이 없다.

울타리에 한 가지 조치를 하면 좋을 거 같았다.

“저기, 울타리를 설치해도 몬스터가 부수는 경우가 많죠?”

어제의 종업원이 말했다.

“그렇죠. 그래서 보통은 쓰는 게 있어요.”

“뭐를 쓰죠?”

“오우거의 똥이나 트롤의 똥을 많이 쓰죠.”

똥이라···.

“그게 도움이 된다고요?”

“원래 몬스터들 대부분이 냄새를 잘 맡아요. 그래서 오우거 똥같은 거 울타리에 발라놓으면 대다수의 몬스터가 접근을 안해요.”

생각보다 좋은 정보였다. 찝찝하긴 하지만, 그렇게 도움이 될 거라면 똥을 사서 바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단점이 하나 있어요.”

하긴 그렇게 성능이 좋은데 단점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어떤 단점이 있죠?”

“만약 오우거 똥을 발랐는데 접근하는 몬스터가 오우거라면···.”

아, 영역 싸움이 시작되겠지.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죠.”

“이거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네요.”

“헤헤, 그래도 보통은 오우거가 근처에 없기도 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뭐 듣기로는 오우거가 계곡 근처에 터를 잡았다고는 하는데.”

우리 집 근처를 말하는 걸까.

“뭐 그런 곳에서 오우거 똥을 바르는 게 아니면 상관없죠. 아, 맞다!”

안쓰럽다는 듯이 나를 보는 종업원.

결국 그런 곳에 지내는 나는 상관이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것을 겁낼 필요가 있을까.

오우거가 찾아오면 잡으면 될 일이 아닌가.

“그럼, 오우거 똥도 같이 주세요.”

“괜찮겠어요? 그나저나 오우거 똥은 저희가 취급하진 않죠. 가구점이니까요.”

“오우거 똥은 어디서 사야하죠?”

“약국이나 연금술사한테 사셔야죠.”

그렇군.

“제가 괜찮은 곳을 알아요. 그곳으로 가시면 될 거예요. 주인이 조금 수상하긴 하지만요.”

“어디죠?”

“하늘길 상점으로 가시면 됩니다.”

하늘길 상점이라. 하늘길 여관과 같은 이름이다.

“혹시 그 주인이 어떻게 생겼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맨날 로브만 쓰고 있어서.”

그곳의 주인도 내가 아는 인물이 확실하다.

울타리는 집으로 돌아갈 때 가져가기로 했기에 가구점에 맡겨놓았다.

하늘길 상점은 하늘길 여관과 멀지 않은 장소에 있었다. 바로 옆.

하늘길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 있네···.”

로브의 사람이 있다. 여전히 온몸을 가리고 있다.

“뒷장사 말고, 앞장사도 하시네요.”

“하하, 사람이 부지런해야죠. 어떻게 한 가지로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오우거 똥이 있습니까?”

“있긴 한데···.”

말을 흐리는 로브의 사람. 로브의 사람도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다.

오우거 똥을 주기 좀 그렇다는 늬앙스.

“차라리 오우거가 때려 부수는 게 나으니까. 그냥 주세요.”

“뭐, 손님이 사시겠다면 상인은 팔아야겠죠.”

상점의 뒤편으로 간 로브의 사람이 주머니를 들고 다시 왔다.

품 안에 있던 하르가 갑자기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살짝 쓰다듬어 주며 안정시켜주었다.

아무래도 저 오우거 똥은 진품이다.

“여기 오우거 똥을 말린 겁니다. 말려서 냄새는 나지 않을 거예요.”

“냄새가 안 나는데 효과가 있을까요?”

하르는 늑대이니 코가 좋아서 맡은 걸 수도 있다.

“아, 몬스터의 후각은 저희랑 좀 달라서 금방 알아차립니다.”

나는 돈을 건네주고, 오우거의 똥을 받았다. 냄새는 나지 않지만 기분이 찝찝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시 가구점으로 돌아갈까 하다 우선 용병길드를 찾아가기로 했다.

용병길드의 안에서 나는 페트릭과 재회했다. 페트릭이 굼뜬 동작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야기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걸까.

잠시 생각해보니 페트릭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포트이에 관한 이야기 말이죠?”

“네, 맞습니다. 포트이의 처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안 들을 생각은 없다.

“궁금하긴 하네요.”

“바로 용병 자격 정지가 됐다고 합니다. 팔도 잘렸으니 일도 못하겠죠.”

좀 심했나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모든 게 포트이의 잘못이다.

내가 포트이보다 약했다면 포트이는 내 팔을 잘랐을 것이다.

“잘됐네요.”

“게다가 포트이에게 당한 용병들이 벼르고 있다고 합니다.”

포트이는 나에게만 행패를 부린 것이 아니다.

그만큼 포트이에게 원한이 있던 인물이 많았을 것이다.

“차라리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게 좋겠네요.”

조르던 자유도시에 포트이가 있을 공간은 없다.

“그나저나 단칼에 포트이를 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소문이 나버렸나. 아무래도 토트가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닌 모양이다.

“하하, 요행이었죠.”

“포트이가 저보다는 약하지만, 저는 단칼에 이길 수 없습니다. 혹시 실력을 숨긴 겁니까.”

아무래도 페트릭이 내가 봐준 게 아닐까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보아하니 봐줬다고 말하면 다시 한 번 싸워보자고 할 기세였다.

“운이었습니다. 포트이에게 달려들었는데, 포트이가 방심이라도 한 건지 주춤하더라고요.”

“그런가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페트릭이었다.

하지만 내겐 솔직하게 말할 생각 따윈 없다.

말을 돌릴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토트는 어디에 있나요?”

“토트는 포트이의 처리 때문에 일하러 갔죠.”

길드의 안에는 토트는 없었다.

나는 페트릭과 함께 임무게시판으로 갔다.

“음, 최근에 돈을 많이 써서 돈벌이가 되는 임무를 좀 맡고 싶은데···.”

페트릭이 좋은 임무라며 한 임무서를 가져다주었다.

트롤의 피가 필요하다는 임무였다.

“보수가 괜찮기는 한데.”

골드 용병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임무는 아니었다.

단체임무다. 아무래도 남들과 같이 임무를 수행한다는 건 좀 곤란하다.

“이 임무는 좀 그렇네요.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추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요.”

페트릭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래서 웬만하면 혼자서 활동하죠.”

그러고 보니 페트릭은 주로 혼자서 몬스터 사냥과 관련된 임무만 한다고 들었다. 그 이유가 있는 걸까.

“저기, 실례가 아니면 왜 몬스터 사냥과 관련된 임무만 하시나요.”

내 질문에 표정이 구겨진 페트릭. 무언가 사연이 있는 듯했다.

페트릭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말을 꺼내었다.

“사실은···.”

페트릭의 사연은 기구했다.

마을에 몬스터 무리가 침입했다고 한다. 바로 오우거.

“제가 어렸을 적의 일이라 저는 아무 힘도 없는 어린아이였죠.”

어린 페트릭은 오우거가 쳐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숨었다고 했다. 작은 마을에 유일한 아이였던 페트릭.

페트릭을 구하기 위해서 마을사람들 전부가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검을 배운 이들도 아닌 마을사람들이 오우거에게 달려들어 봤자 결말은 뻔하죠.”

마을사람들은 몰살.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홀로 남게 된 페트릭.

“그러다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곡검을 쓰는 사내. 다급히 달려온 용병이 오우거와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사내는 오우거를 이겼죠. 그다음에 제게 다가왔습니다.”

사내는 페트릭을 데리고 이곳, 조르던 자유도시로 왔다고 했다. 그 사내는 골드 용병이었다고 했다.

“저기, 골드 용병이면 소드익스퍼트 중급 정도일텐데 어떻게 오우거를···.”

“그게 그 사내가 대단했다는 증거죠.”

지켜야할 사람이 있었기에 강했다고. 뒤에서 울고 있던 페트릭을 보고, 어떻게든 이겨냈다고.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사내에게서 곡검 쓰는 법을 배웠으니 제 스승이기도 하죠.”

“정말 멋진 사내군요.”

어떻게 보면 회귀 전의 제이콥의 상황과 같았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참상이 있던 당시에 페트릭은 그 자리에 있었고, 제이콥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뿐.

“그래서 저는 사내처럼 되기로 했습니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몬스터를 잡는 거죠.”

“좋은 사람이군요.”

“그 사내요? 그렇죠. 저를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으니까.”

“아니요, 페트릭 당신이요.”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게 쉽지는 않다.

타인에게 도움받았으니 본인도 타인을 도우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좀 부끄럽네요.”

“저도 약간 낯간지럽네요.”

이렇게 임무게시판의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페트릭은 대단했다. 그런 대단한 생각을 가지고, 그 만큼의 실력을 길렀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사내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건 잘 모르겠군요.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어딘가로 떠났으니.”

아쉬운 이야기다. 그런 사내가 있다면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생명의 은인이자, 스승. 어떻게 보면 부모의 역까지 해줬을 것이다.

내가 한 번 보고 싶다는 감정보다는 페트릭의 그리움이 더욱 클 것이다.

“뭐, 안 보고 싶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평생의 이별도 아닐테고,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겠죠.”

“그렇겠네요. 혹시 그 사내의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혹시 나중에 본다면 페트릭의 소식을 전해주고 싶어졌다.

“오드입니다.”

“오드···.”

잊지 말고 기억해둬야겠지.

이런 사적인 이야기가 쑥스러운지 페트릭이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어떤 임무를 하실 생각인가요?”

“음···.”

게시판을 훑어보았다. 적당히 괜찮은 임무가 없다.

개인적으로 단체임무가 좋았다. 골드 등급이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정도의.

단체임무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골드 등급이면 받을 수 있는 임무들이 있는 칸.

“오?”

미케네르 제국까지의 호위임무. 골드 등급.

“이거 좋아 보이네요.”

호위임무를 가리켰다. 미케네르 제국에 한 번쯤은 다시 가보고 싶었다. 아직도 회귀 전에 갔을 때의 기억이 뚜렷했다.

그만큼 미케네르 제국의 거대하고, 웅장했다. 제국의 위용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었다.

“아··· 그거요.”

“이거 안 좋은 건가요?”

“임무 자체는 좋은데. 보수도 높은 편이고요. 그런데 호위대상이.”

미케네르 제국의 귀족이다. 혹시 문제라도 있는 걸까.

“나쁜 사람은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까탈스러워요.”

“까탈스럽다니, 어떤 점이···?”

대다수의 귀족이 본래부터 까탈스럽지 않는가.

“구두쇠라고 해야할까요.”

“네···?”

구두쇠라면 이렇게 높은 보수를 책정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보수만큼의 무언가를 뽑아내고 싶은 건지 굳이 몬스터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에요.”

“아···.”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이 돈을 쓰고 싶어하는 부류의 사람.

“까탈스럽다기보다는 귀찮은 사람이군요.”

“네, 그 말이 딱이네요. 귀찮은 사람.”

“음···.”

높은 보수에 귀찮은 의뢰주. 고민이 되긴 한다.

조르던 자유도시에서 미케네르 제국으로 가는 길을 생각했다. 몬스터가 많은 길로 간다고 한다면···.

잠깐만.

“그냥 전 이 임무 받을래요.”

“네? 괜찮겠어요?”

“잠깐 볼일이 생각나서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페트릭.

그 근처에서 아주 좋은 게 발견되었다고 들었었다.

나는 그 좋은 걸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뭐, 솔직히 호위하면서 미케네르 제국까지 가는데 아무 일도 없으면 심심하니까. 저야 좋죠.”

내 다음 임무가 정해졌다. 출발 날짜는 3일 뒤.

나는 임무서를 접수처에 제출했다.

3일 뒤가 기다려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