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3일이란 시간은 빠르게 지나 호위임무의 당일이 되었다.
자유도시의 중앙에 있는 광장에서 호위대상을 기다렸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가 내 앞에 섰다.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콧수염이 길게 자란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자네가 한스 라이크인가?”
“네, 맞습니다. 드라이크 남작님이실까요?”
드라이크 남작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했다.
“마차 안으로 타게.”
내가 잘못들은 것일까.
호위임무라고 하면 마차의 안이 아닌 마차의 밖. 바로 마부의 옆에 앉아서 호위하는 게 보통이었다.
“마차의 안으로 타라고요?”
“나는 두 번 이상 말하는 걸 아주 싫어하지. 마차 안으로 타게.”
단호한 드라이크 남작의 말투.
나는 마차 안으로 올라탔다. 그 안에는 드라이크 남작밖에 없었다.
“귀족이 혼자 타고 있어서 놀란 모양이군.”
드라이크 남작의 말대로다. 보통의 귀족은 집사와 하녀 같은 시종을 데리고 다닌다.
하지만 마차 안에는 드라이크 남작만 있었다.
“조르던 자유도시로 업무를 가는데 굳이 시종을 데려갈 필요는 없지.”
“그런군요. 그런데 왜 호위를 마차 안으로···?”
드라이크 남작이 웃었다.
“시종을 안 데리고 다녀서 그런지 여행길이 심심하더군. 그래서 말벗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호위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런 내 의문은 드라이크 남작의 다음 말로 해결되었다.
“뭐,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건 좋지 않군. 내가 고용한 마부는 꽤나 유능해서 호위가 마차에서 내릴 때까지의 시간은 벌 수 있다네.”
드라이크 남작에 대한 첫인상은 좋았다. 그보다 일단 출발하기 전에 양해를 구해야할 것이 하나 있다.
품 안에서 머리를 꺼내는 하르.
“끼잉.”
“제가 기르고 있는 애완동물인데 마차에 같이 타도 되겠습니까?”
갑작스레 눈을 반짝이는 드라이크 남작. 하르를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가 않다.
“혹시 그거 은빛늑대인가?”
“네, 맞습니다. 아직은 새끼라 별로 흉포하지도 않습니다.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은빛늑대라··· 그걸 내게 팔 생각이 없나?”
하르를 팔아달라고 말하는 드라이크 남작.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라는 듯 드레이크 남작이 돈주머니까지 꺼내고 있다.
“죄송하지만, 이 녀석은 이제 가족 같은 녀석이라.”
정확히는 가족이 될 예정이다.
차근차근 정을 주고 있고, 그에 따라 하르도 나를 따르고 있다.
“하긴 애완동물이라는 게 한번 기르면 남한테 양도하기 힘든 법이지. 그나저나 나는 괜찮네. 내가 워낙 동물을 좋아해서.”
“다행입니다.”
하르가 내 품에서 내려 마차의 바닥에 누웠다.
“그나저나 역시 은빛늑대의 새끼는 귀엽군. 나도 원해서 용병길드에 따로 의뢰도 넣었건만.”
“어떤 의뢰를 넣으셨나요?”
혹시 내가 맡았던 던전임무가 드라이크 남작이 넣었던 임무였나.
“정확히는 은빛늑대가 나온다는 던전임무에 추가로 임무를 넣었을 뿐이지만. 결국 새끼는 오지 않았고, 의뢰는 해결되어버렸다네.”
그렇구나. 드라이크 남작에겐 미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새끼를 넘기는 것도 자유였으니 내가 기르고 싶어진 걸 어찌하겠나.
“그런데 사람이 좀 적습니다. 미케네르 제국까지 가려면 시간이 꽤 걸릴텐데.”
아무리 그래도 마부와 귀족과 호위. 이렇게 세 명만으로는 좀 적었다.
“때에 맞게 음식점이나 여관이 나오는 것도 아닐텐데요.”
적어도 요리를 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그건 걱정 말게. 저 마부는 꽤나 유능하거든. 이봐, 이제 출발하게!”
“예.”
마차가 출발했다. 잠깐의 덜컹거림이 느껴졌지만 서서히 잦아들었다.
“어때, 다른 마차와 다르게 흔들림이 적지 않나?”
확실히.
“마차라고 믿기지가 않네요.”
처음에 느껴졌던 흔들림을 제외하고는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내가 새로 만든 마차라네. 이 녀석을 팔려고 여기까지 온 거지.”
드라이크 남작은 상인이었다. 귀족이 직접 상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그런 내 의문은 드라이크 남작의 이어진 말로 풀렸다.
“뭐, 귀족이 직접 상행을 나서는 경우는 평범하지 않지. 하지만 내가 귀족 작위를 수여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아직까진 평민과 다를 바가 없어서 그렇다네.”
“귀족 작위를 수여받은 지 얼마 안 되셨다고요?”
“그렇다네.”
뭔가 귀족이란 느낌이 와닿지 않았는데 그래서였나.
그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든지 물어보시게.”
이번에도 과연.
“몬스터가 많은 지역을 가실 예정입니까?”
간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곳에 볼일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갈 생각이라네.”
좋았어.
“그런데 왜 몬스터가 많은 지역으로 돌아가시는 건가요? 호위가 있더라도 많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훗, 그게 궁금했나보군.”
드라이크 남작이 자신이 수염을 매만졌다. 마치 알려줘볼까나, 하는 거만한 모습.
나는 그런 드라이크 남작에게 져주기로 했다.
“너무 궁금합니다!”
“이 마차의 성능을 실험해보기 위해서였다네.”
마치에 성능이라면 이미 들었다.
“흔들리지 않아서 승차감이 이 마차의 장점이 아닌가요?”
“그야, 그것도 포함하고, 제일 중요한 게 있지.”
과연 마차에게서 중요한 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승차감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모르겠다.
“바로 안전.”
안전?
“마차의 안전은 뭐라고 생각하나?”
“마차의 외부가 단단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드라이크 남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틀렸어. 마차는 이동수단이네. 이동수단한테 무슨 요새와도 같은 견고함을 바라는 겐가.”
견고함이 아니면 무엇이 중요할까.
“바로 속도라네!”
속도가 안전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소리일까.
“눈앞에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적들이 나타났을 때는 그 적들보다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게 가장 안전하지.”
오호. 묘하게 설득된다.
“하지만 기존의 마차는 일정한 속력내면 바퀴 쪽에 문제가 생겨버리지.”
길이 평탄하지 않으니 속도를 내면 충격을 바퀴가 버티지 못한다.
“여기서 이 마차는 다르지. 내가 만들어낸 마차의 흔들림을 억제해주는 장치는 바퀴에 가해지는 충격을 분산시켜준다네.”
드라이크 남작의 말대로라면 정말 훌륭한 발명품이다.
“정말 괜찮군요.”
“어떤가? 자네도 한 번 구매해보는 건?”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돈주머니를 열었다.
“단돈 10만 골드라네.”
빠르게 돈주머니를 닫았다.
10만 골드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마차의 가격치고는 너무 비쌌다.
“저는 안 사렵니다.”
“에휴··· 역시 그렇군.”
안 살 줄 알았다는 듯한 드라이크 남작의 말.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좀 싸게 해주시면 고민 좀 해보죠.”
“······.”
드라이크 남작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못 내려주네. 이게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이라네.”
10만 골드가 마지노선이라니. 사람을 좋게 봤지만, 이거 참 욕심 많은 상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마차를 살 사람은 그다지 없겠는데요?”
그 정도 돈을 마차에 쓰는 사람은 틀림없이 돈 많은 귀족이다.
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마차는 좋다. 하지만 돈 많은 귀족이 호위를 고용하지 않고 빠른 마차를 탈 리가 없다. 솔직히 그 편이 더 안전할 것이고.
그렇다면 소비자의 측면에서 이 마차의 장점은 흔들림이 적다는 것뿐이었다. 그 장점만으로 10만 골드를 쓰긴 아까울 것이다.
아무리 부자여도 말이다.
“한스, 자네의 말이 맞네. 하지만 이 가격에서 더 내린다면 수익은 기대하지 못하네.”
수익을 기대하지 못한다고?
“말도 안 됩니다.”
“아니, 말이 되네. 흔들림을 억제해주는 장치를 양산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네. 그래서 가격이 미친 듯이 비싼 것이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내겐 있었다.
“그 몬스터 많은 지역으로 가실 거면 꼭 들렀으면 하는 데가 있는데요.”
미케네르 제국으로 가는 길.
초입 부근에 한 마을이 있다. 그 마을의 이름은 토스터 마을.
그 마을 인근에 있는 동굴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회귀 전, 칼데르트 영지까지 그것이 발견되었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음··· 토스터 마을인가. 마침 그 방향이긴 한데. 혹시 그곳이 고향인가?”
“아닙니다. 하지만 볼일이 있어서요.”
에이션트 스네이크.
이 녀석이 그 마을 동굴에 있다. 고기는 질긴데다 맛도 없다.
하지만 이 녀석이 진가를 발휘하는 분야가 있었다. 바로 술. 이 녀석으로 담근 뱀술은 남다르다.
장점이 너무 많아서 말 못하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자에게 정말로 좋다.
“몸보신을 제대로 할 예정이거든요.”
에이션트 스네이크를 생각하니 군침이 절로 돈다.
“내가 알기론 토스터 마을엔 몸보신을 할만 게 없을 터인데. 뭐 자네 마음대로 하게.”
물론 내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내가 한 가출에 검성은 화가 잔뜩 났을 거다.
훗날, 검성을 찾아가 검성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데 쓰일 비장의 수다.
‘검성님이 내 선물 받고 기뻐 쓰러지시는 거 아니야?’
***
검성의 집무실. 검성이 자신에게 온 편지를 확인했다. 편지를 찬찬히 읽던 검성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오호라··· 가출을 했다라··· 내게 달랑 편지 하나를 보내놓으면 내가 수긍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검성의 손에 힘이 들어간 탓에 편지지가 반으로 찢어졌다.
“아카데미는 자퇴하겠다라···. 게다가 어디로 갔는지 남겨놓지도 않았다 이거지?”
로토 왕국의 검성, 케론 사르키드.
그는 수하르가 보낸 편지를 보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안식기간 때, 수하르 네놈을 내가 친히 찾으러 가주마.”
검성은 화를 억누르며 미소를 지었다.
“제발 그때까지 소드마스터 정도는 되길 바란다. 수하르.”
분노에 불타오르는 검성의 눈.
“안 그러면 내 분노를 감당할 수 없을테니.”
***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뭐지?”
“갑자기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나저나 곧 토스터 마을이다.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마차의 성능은 충분히 경험했다.
‘만약 가격이 적당했다면 무조건 샀다.’
토스터 마을과 거리가 멀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트롤이 나타났다. 주변을 둘러보던 트롤이 우리가 탄 마차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마부가 말했다.
“전방에 트롤을 발견했습니다.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이 말만 내뱉고는 말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차의 속도가 올라가자 마차 안도 흔들렸다. 하르도 중심을 못 잡고 계속해서 쓰러졌다.
속도를 보고는 마차의 바퀴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드라이크 남작의 눈빛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드디어, 이 마차의 진가를 보여줄 때군. 보게 아무리 길이 험하고, 빠르게 달려도 바퀴는 멀쩡하네.”
확실히 그랬다.
솔직히 트롤 정도야 쉽게 잡을 수 있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속도가 느릴 때는 승차감이 좋고, 빠를 때는 안전을 챙기군요. 확실히 좋긴 좋네요.”
“어떻게 양산만 할 수 있다면 좋을 터인데.”
뭐, 이렇게 말한다고 내가 양산해줄 능력은 없다.
토스터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마부가 여관을 잡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나는 에이션트 스네이크를 잡으러 가야한다. 그래서 드라이크 남작에게 양해를 구하고, 에이션트 스네이크가 있을 만한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