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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35화 (35/150)

#35화.

조르던 자유도시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한 일은 뱀술을 위한 재료를 구하는 것이었다.

오크술통과 담금주를 위한 높은 도수의 술. 마지막으로 허브잎이었다.

“담글 때 허브잎을 사용하면 술맛이 훨씬 부드러워진다고 들었지.”

집 앞에 도착에서 하르를 품속에서 풀어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품속에만 있었던 하르는 찾아온 자유에 신나서 방방곡곡을 뛰어다녔다.

나는 오크술통을 열어 사온 술을 전부 부웠다.

그리고 주머니에 넣어둔 독니를 오크술통에 넣었다.

“이제 오크술통의 뚜껑을 닫고, 시원한 데에 보관을 해야하는데···.”

집에 지하실이 있던 걸로 기억한다.

집 안으로 들어가 지하실을 들어갔다.

“여긴 청소를 안 해줬네.”

지하실은 먼지가 한가득이었지만, 서늘했다.

“여기다가 보관하면 되겠지.”

그리고 반년 뒤에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둔 꼬리마저 술에 넣고, 다시 반년만 기다린다면.

“에이션트 스네이크로 만든 뱀술이 완성되는 거지.”

지금의 꼬리 상태로는 오크술통에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잘게 자른 다음 푹 고아서 넣으면 완성!”

뱀술의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는 들푸라기초를 심을 차례다.

솔직히 들푸라기초에 대한 준비는 필요가 없었다.

“그냥 대충 뿌려두면 자라는 게 들푸라기초니까.”

집 뒤편으로 가서 들푸라기초의 씨앗을 뿌렸다.

적어도 이틀 뒤엔 싹이 자랄 예정이다.

“일단 농사도 해야하는데.”

농사까지 할 생각을 하니 막막할 따름이었다.

“에이, 젊어서 고생하는 게 낫겠지.”

나이를 먹으면 몸을 움직이기 싫으니 말이다.

“일단 이 근처를 다 둘러봤는데도···.”

밭으로 쓸만한 공간이 없었다. 역시 산 중턱에서 농사를 짓는 건 무리인가.

“아니야, 한곳이 있긴 하지.”

몬스터도 별로 없고, 땅이 평지에 계곡의 물을 끌어다가 쓸 수 있는 곳이.

바로 오우거 가족이 있다는 곳이다.

“흠, 그런데 오늘은 많이 일했으니까. 오우거 가족은 내일 상대해볼까나.”

재료를 사오고, 술을 만들고, 씨앗도 뿌렸다.

아직 여독도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지치니까, 들어가서 쉬어야지. 하르야, 들어가자!”

계곡가에 물장구를 치던 하르가 내 부름에 나에게 달려왔다. 내 품으로 들어온 하르를 안고,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 비웠던 집이지만, 생각보다 깔끔했다.

나는 대충 방을 청소한 뒤에 침실에 들어갔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아··· 좋다.”

여행도 좋지만, 집도 좋다. 푹신한 침대에 감촉이 나를 감싸안았다.

그렇게 나는 스르륵 잠에 들었다.

***

-우어어어어워!

괴상망측한 비명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무언가 익숙한 소리.

-우어어워!

다시 한번 들려온 소리.

나는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오우거 가족이 있을 거라고 예측되는 곳이었다.

“아니, 저 녀석들이!”

오우거 가족들이 질러대는 소리에 나는 이마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화가 났다.

“저 자식들은 잠도 없나.”

-끼이잉.

침대 밑에서 들려오는 하르의 앓는 소리.

오우거가 지르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껏 잘 지내다가 왜 저러는 거야.”

이 집에 산지 며칠 되진 않았지만, 그동안 밤에 오우거가 저렇게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찾아가서 분풀이라도 해야겠다.

“하르야, 집 잘 지켜라! 쟤네들 내가 혼내주고 올게.”

여전히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는 하르. 나는 집을 나서 오우거의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의외의 인물이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페트릭?”

페트릭은 오우거 두 마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많은 상처를 입은 듯한 흙투성이의 페트릭.

정확히는 오우거 두 마리와 페트릭에게 상처를 입은 듯한 새끼 오우거가 있었다.

-우어어워!

오우거가 소리를 내지르면 페트릭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페트릭은 구르면서 오우거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젠장··· 이제 끝인가.”

페트릭이 단념한 듯 두 팔을 내려놓았다.

죽음을 각오한 페트릭의 눈빛.

그리고 그런 페트릭을 향해 휘둘러지는 오우거의 주먹.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둘 사이로 들어갔다.

“한스···?”

나를 본 페트릭이 당황해했다.

나는 오우거의 주먹을 검으로 올려쳤다.

가볍게 휘둘렀기도 했지만, 단단한 오우거의 피부 탓인지 베이진 않고 뒤로 밀려나는 오우거였다.

“페트릭, 괜찮아요?”

“네··· 그런데, 한스가 왜 여길?”

나는 내가 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에 제 집이 있는데 오우거들이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페트릭은 왜 여기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설마···.

페트릭의 마을은 오우거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그것 때문일까.

이런 내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것인지 페트릭이 답했다.

“오우거에게 원한이 있어서 이렇게 혼자 온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한 채 나는 페트릭을 안고 뒤로 빠졌다.

오우거가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가하게 대화할 시간은 아니었네요. 금방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페트릭. 아마 페트릭은 내가 보인 실력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에 저렇게 반응이 적은 것이 분명하다.

“야, 니들은 잠도 없냐.”

나는 오우거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우거 두 마리의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자 두 마리의 오우거가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한 후에 높게 뛰었다.

“간드앗!”

퇴마검을 오우거의 눈으로 찔렀다. 그리고 퇴마검의 실로 뒤쪽의 오우거의 눈을 노렸다.

눈을 통해 오우거의 머리를 헤집어놓자, 오우거가 힘없이 쓰러졌다.

뒤쪽의 오우거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뿐히 바닥에 착지했다. 별로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

페트릭이 경악한 표정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머쓱함에 뒤통수를 긁으며 페트릭에게 다가갔다.

“실력을 숨겼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 일은 비밀로 해주실 수 있을까요?”

고개를 끄덕이는 페트릭.

나는 이어서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오신 건가요?”

“오우거를 잡고 싶었습니다.”

분명 방금 원한 같은 게 아니라고 말했던 것과 다른 말이었다.

오우거를 잡고 싶었다니, 마을에 대한 원한이 아닌가.

“원한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 않았나요.”

“원한이 아닙니다. 저 오우거들이 저희 마을을 부순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오드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페트릭을 오우거에게서 구해준 오드.

“오드처럼 되고 싶었다고 한들 오우거를 쓰러뜨린다고 오드가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페트릭은 좋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객기 때문에 방금 죽을 뻔했다.

“압니다. 저도 알고 있죠. 오우거를 잡는다고 오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란 걸요. 하지만···.”

페트릭은 강해지고 싶다고 내게 이야기를 했다.

그렇기 위해서 오드처럼 오우거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페트릭이 상대한 것은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오우거였다.

어린 오우거한테도 밀리고 있다가, 두 마리의 성체 오우거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를 강하게 만들어주세요. 당신이라면···.”

“음··· 곤란하네요.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이 넘쳐날텐데.”

“아니, 당신은 저보다 어려요.”

지금 있는 골드 용병 중에 나보다 어린 사람은 없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많이 쪽 팔릴텐데요.”

“상관없습니다. 당신같이 빠르게 강해진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고민에 빠져들었다.

한마디로 페트릭은 내게 스승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딱히 제자를 들일 생각은 하지 않았던 나였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물론 보수는 드리겠습니다.”

지금 돈을 준다고 말한 건가.

“저는 많은 의뢰를 해냈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돈을 많이 모았죠.”

그렇다는 건.

“제가 말하기도 애매하지만 저는 꽤나 부자입니다.”

“음··· 돈 때문에 가르치는 느낌이 나서 조금은 그렇네요.”

“이 정도는 어떻습니까!”

내게 손가락을 펼치는 페트릭.

자꾸 그러니 돈 때문에 내가 거절하는 거 같지 않는가.

“후우, 알겠습니다. 그저 돈 때문이 아니라 페트릭의 얼굴을 봐서입니다.”

거부하기엔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우선적으로 페트릭에게 해줄 말이 있었다.

“저는 곡검을 써본 적이 없기에 검술 차원에서 조언은 못 드립니다.”

“실전에 비견될 정도의 대련만 해주셔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나는 검성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통용될 만한 가르침이었다.

“아니, 보수를 받고 가르치는 것이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이제 평일, 해가 진 다음에 저를 찾아오세요.”

음흉한 미소가 지어지려고 한다. 어떻게든 참아냈다.

검성의 가르침. 이제는 내가 검성의 역을 할 차례이다.

“저는 지금하려는 훈련법으로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훈련인가요?”

“말씀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검성과 나는 다르게 친절하다. 경고 정도는 해줄 생각이다.

“최대한 감에 의존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제 평일 저녁마다 스트레스를 풀 생각을 하니 기분이 들뜬다.

앞으로의 훈련을 모르는 페트릭은 그저 내 훈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잠시만요.”

대충 놔두려고 했지만, 슬금슬금 도망치는 게 느껴졌다.

페트릭이 상대하던 성체가 아닌 오우거였다.

나는 순식간에 오우거의 목을 베어냈다.

“아직 성체가 아니라 그런지 그렇게까지 피부가 단단하지는 않네.”

“대단하십니다, 스승님!”

페트릭이 나를 스승님이라 불렀다.

스승님이라는 호칭은 처음 들어보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스승님이라··· 그 호칭 괜찮군요. 앞으로 그렇게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한스 스승님!”

일단 페트릭이 상처를 입어 걷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페트릭을 업고, 집으로 향했다.

“스승님께는 끝까지 민폐를 끼치는군요.”

“아닙니다. 일단 저희 집에서 치료를 하시고 날이 밝은 다음 신전을 찾아가시죠.”

웬만한 상처는 신전에서 치료해준다.

하지만 지금은 날이 어둡다. 신전의 문이 닫혀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응급처치만 하고는 내 집에서 쉬게 할 생각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하르인가?”

문을 여니, 하르가 내 발치로 달려들었다.

많이 무서웠나보다.

일단 페트릭을 의자에 앉혔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약초를 챙겨와 페트릭의 상처에 발라주었다.

하지만 페트릭은 몸 내부에 상처가 더 컸기에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여기, 도수 높은 술입니다. 그리고 마비초입니다.”

마비초를 먹으면 어느 정도 통증을 막아줄 수 있을 거다. 술을 권한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였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제게 많은 걸 해주시네요.”

“어찌 됐건 이제부터 제 제자가 아닙니까.”

나는 멋쩍게 웃었다. 돈으로 회유를 당했긴 했지만, 맡은 이상 진짜 제자를 대하는 마음으로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제게 말을 놓아주십쇼.”

“네? 그래도 페트릭 씨가 연상인데.”

페트릭이 고개를 저었다.

“어찌 스승이 제자에게 말을 높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를 제자로 여기실거면 말을 놓아주세요.”

솔직히 내겐 오히려 더 편한 일이다. 본래 나이가 꽤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페트릭, 이제부터 말을 놓겠네.”

“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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