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밥을 먹은 뒤에 날이 저물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페트릭을 밖으로 불렀다.
검성식 훈련을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저기, 스승님 그 복장은···?”
잠행에 나설 때나 입을 법한 전부 검은색의 옷. 게다가 내가 든 목검마저 검은색이다.
사실 이 복장을 구매할 때 검성의 생각이 많이 났다. 검성도 지금의 나처럼은 두근거렸을까.
제자를 고생시킨다는 생각하니 기분이 짜릿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훈련에 대해 말해주마. 이 훈련은 감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타인의 감정을 느껴라.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가 되어라.”
이제는 어떤 훈련인지 보여줘야할 때였다.
“준비는 됐나?”
“예!”
나는 바닥에 모래를 주웠다. 그리고 곧장 페트릭에게 뿌렸다.
페트릭이 당황하며 눈을 가린 순간 나는 어둠 속에 몸을 숨켰다.
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페트릭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분명 검성님이 말했었지.’
검에 진심을 담아야지 훈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페트릭을 향해 살기를 뿜었다. 페트릭은 내 살기의 근원지를 찾지 못하고 계속 주위만 두리번거렸다.
조용히 접근해서 페트릭의 관자놀이에 검을 휘둘렀다.
“악!”
관자놀이를 맞고 주저앉은 페트릭.
그 모습을 보니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조금은 살살해줄까? 아니지···.’
지금의 난 검성이 되어야한다. 연민이란 감정 따위는 버려야한다.
저 모습을 보고 기뻐해야지 바로 검성이다.
“페트릭, 방심하지 마라!”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최대한 소리를 울리게 만들었다. 내 위치를 특정할 수 없게끔 말이다.
우렁찬 대답과 함께 다시 준비 자세를 취한 페트릭.
“네!”
그리고 다시 나는 페트릭의 빈틈을 찾아 관자놀이를 노렸다.
***
“정신이 드냐?”
“···예.”
훈련이 끝이 나고 기절한 페트릭을 깨웠다. 페트릭이 나를 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마치 원수를 앞에 둔 눈빛. 나도 그랬었지.
“근데 이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겁니까?”
“이 훈련은 확실히 도움이 된다.”
솔직히 감도 오르지만, 위기에 강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게다가 용기도 주는 훈련이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계속해서 상대하는 거 자체가 많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내일은 트롤 던전을 갈 생각이다.”
“트롤 던전··· 말입니까? 하지만 제 경지는···.”
“중급이지. 하지만 꼭 상급이라고 트롤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중급이라고 해서 트롤를 못 잡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 자신의 경지에 맞는 몬스터를 잡아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몬스터를 잡아야한다.
“너의 은인인 오드는 경지가 어떻게 되었나.”
“중급···입니다.”
중급인 자가 오우거를 쓰러뜨렸다. 상식적으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중급이 오우거를 이겼다. 이것만으로 내 말은 설득력이 생긴다.
“하지만 그건 오드라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드랑 너랑 차이점이 뭐지?”
내가 생각한 바로 현재 오드와 페트릭은 차이점이 없었다. 그 당시 오드와 같은 골드 용병. 중급의 경지. 그리고 곡검.
모든 게 같았다.
그런데 오우거보다 밑단계인 트롤을 못 이길 리가 없다.
“전혀 믿기지가 않는군.”
“······.”
“무슨 정신으로 오우거를 상대하려고 했던 거지?”
“오드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 새끼 오우거한테 마저 졌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라면 하는 게 내가 배운 훈련방침이었지만, 페트릭에게는 자신감을 높여주고 싶었다.
“그때의 오드는 지키기 위해 싸웠고, 페트릭 너는 그저 오드처럼 되겠다고 싸운 것뿐이었다.”
“그런 게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겁니까.”
“마나는 감정에 동한다. 이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지. 그렇기에 마나가 살기에 반응하는 것이고.”
“······.”
“그리고 지키고자 하는 필사적인 마음도 마나가 동할 거라 나는 생각한다.”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이겨냈다. 그렇기에 마나는 살기나 부정적인 것뿐만이 아닌 필사적인 감정에도 크게 움직일 것이라고.
“그렇기에 그때의 오드보다 약했을 것이다. 뭐, 솔직히 이 이야기는 지금 상황에서는 큰 상관이 없지.”
“상관이 없다니요?”
더 이상의 위로는 끝났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차례다.
“스승인 내가 트롤 던전을 가자는데 제자인 네가 거절할 수 있을 거 같아?”
“아, 그렇군요. 제자인 제가 어찌 스승에 말을 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 내일 바로 가는 거다.”
“예!”
한결 밝아진 페트릭의 표정. 앞서 말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도움이 된 모양이다.
“난 네가 오드보다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달리 불행에 처할 남을 지키고 싶어하니 말이다.
만약 영웅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페트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겠지.
***
트롤 던전에 들어왔다. 페트릭은 긴장을 한 듯 계속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르, 이 녀석 얌전하게 있겠지?”
넘버완이 데리고 온 애들은 전부 3명이었다. 그 3명도 나를 삥 뜯을려고 했을 때의 녀석들이었다.
숫자가 적힌 머리가 증명해주니 말이다. 그 녀석들에게 하르를 맡기고 나왔다.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해서 괴롭히면 어떡하지.”
인간을 습격하지는 않게 교육을 마쳤다.
뭐 알아서 되겠지.
“페트릭, 너무 긴장한다. 트롤은 처음 잡아봐?”
“아닙니다. 트롤은 몇 번 협업해서 잡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긴장해. 긴장하면 몸이 잘 안 움직여질 거야.”
여전히 페트릭은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래도 보통 던전의 몬스터가 바깥은 몬스터보단 강하니 말입니다.”
내 생각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나는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세 마리.”
“네?”
“세 마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네. 내가 두 마리 맡을테니까. 한 마리는 페트릭, 네가 처리해.”
“네!”
나는 먼저 달려 나가 단번에 두 마리의 목을 베어냈다.
페트릭의 앞에서는 굳이 실력을 감출 필요가 없으니 전력을 다했다.
“대단하십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당황하며 도망치려고 했다.
나는 그런 트롤의 도주로를 막았다.
그렇다면 트롤이 향할 곳은 단 한 곳밖에 없었다.
나보다 약해보이는 페트릭에게로 갈 것이다.
“자, 트롤 녀석이 간다!”
“······.”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트롤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페트릭.
눈빛이 바뀌었다.
트롤이 페트릭에게 손에 든 몽둥이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 모든 공격을 피하는 간결한 동작으로 피하는 페트릭.
“계속 피하기만 할 거야?”
내 말에 페트릭이 곡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잘한 상처가 생기는 즉시 회복해버리는 트롤.
“그런 공격으로 트롤을 잡을 수 있을 거 같아?”
사실 한번 보고 싶은 게 있었다. 페트릭의 비기. 중급 정도면 무리하면 비기를 쓸 수 있다.
“비기를 쓰라고 비기를!”
내 말에 페트릭이 곡검에 마나를 모으며 비기를 위한 준비동작을 시작했다.
처음 보는 페트릭의 비기다.
“제 비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페트릭의 비기는 확실히 고난이도였다. 하지만 쓰기 어려운 만큼 좋았다.
트롤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흘려버리는 것도 모자라 트롤 본인에게 돌려주었다.
자신이 휘두른 몽둥이에 머리를 가격당한 트롤은 얼굴이 뭉개졌다.
그리고 곧장 트롤의 목을 베어버리는 페트릭.
“뭐야, 겁내고 긴장한 거치고는 잘 잡잖아!”
“후우··· 후우···.”
가쁜 숨을 내쉬는 페트릭. 증상을 보니 곧 탈진할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나도 중급의 경지에서 비기를 써보았다. 힘들긴 해도 저렇게 까진 힘들어하지 않았다.
“원래, 제··· 비기가···.”
“비기가?”
“쓰기 복잡해서 집중을 엄청해야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잘못 흘리면 역으로 당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럼, 다른 비기를 만들면 되잖아.”
비기라는 것은 의지와 검술이 합쳐진 것. 그렇게 까지 만들기 어려운 게 아니었다.
다만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한다.
“전 이 비기가 좋습니다.”
확고한 페트릭이 모습에 나는 왠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혹시 이 비기가 오드의···?”
“예, 오드가 오우거를 쓰러뜨릴 때 썼던 비기입니다.”
확실히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비기라면 충분히 오우거를 잡을 법했다.
물론 겁을 내지 않고 비기를 쓰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아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결론적으로 오드가 용기 있는 자인 건 틀림없었다.
“음··· 그래도 새롭게 비기를 만들어도 상관없지 않나?”
보통 비기를 두 개 이상씩은 가지고 있다. 하나만 고집하는 것은 안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전 한 가지라도 완벽하게 하고 싶습니다. 어중간하게 여러 개의 비기를 익힐 바엔 어렵더라도 한 가지의 비기를 완벽하게 익힐 겁니다.”
이것 또한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직 던전 안에는 트롤의 기운이 넘쳐나니 말이다.
“이번엔 두 마리로군.”
트롤 두 마리의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페트릭을 앞장 세웠다. 한 마리의 트롤을 상대해봤으면 두 마리의 트롤을 상대해야하지 않겠는가.
페트릭은 전보다 더 긴장한 상태였다.
“스승님, 제가 두 마리를 상대할 수 있을까요?”
“뭐, 트롤의 지능이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니까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트롤 두 마리가 지능적인 합공은 안 할테니 말이다.
나는 뒤에 앉아서 페트릭의 활약을 지켜보기로 했다.
트롤 두 마리가 페트릭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스승님, 이거 안 되겠는데요?”
페트릭이 힘겹게 트롤의 공격을 피하며 외쳤다.
“페트릭, 할 수 있다. 좀 더 분발해봐.”
내 말에 한눈을 판 페트릭이 간발의 차이로 트롤의 공격을 피했다.
“죽을 뻔했네.”
“정신 차려라. 한 방에 가면 못 도와주니까.”
진심 어린 충고였다.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이라고 하더라도 치명상을 회복시킬 순 없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은 페트릭에겐 목숨이 오가는 상황이었다.
“잘하고 있네!”
트롤 두 마리 사이에서 열심히 피하고 있는 페트릭.
점점 지쳐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두 마리를 상대로는 비기를 위한 준비동작도 할 시간이 없는 듯 보였다.
“비기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은 없다.”
비기는 그저 전력을 다한 공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에 경지가 올라갈수록 비기라고 생각될만한 공격을 짧은 순간에 할 수가 있게 된다.
소드마스터에 이르러서는 준비동작도 없이 비기가 가능해진다. 그 의미는 간단했다.
비기를 검술로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비기는 뭐지!”
결국 페트릭이 자신의 비기의 중심을 알아야한다.
페트릭이 지친 몸을 이끌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제 비기는 상대의 공격을 이용하는 것, 부드럽게 흘려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대의 공격을 흘려버리는 것은 비기로밖에 못하는 행동이냐!”
“아닙니다!”
페트릭이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페트릭의 기세가 바뀌었다. 중급의 벽을 허물고 상급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트롤 두 마리의 공격을 흘려서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이거군요···.”
페트릭이 뛰어올라 상처 입은 두 마리의 트롤 목을 베어냈다.
나를 바라보며 감격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페트릭.
나는 미소로 화답했다.
“축하한다. 경지가 올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