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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영주는 쉬고 싶다-39화 (39/150)

#39화.

전투를 끝낸 페트릭은 지쳐 쓰러지듯 바닥에 누웠다. 페트릭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무언가 해냈다는 감정.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이네.”

“제 기억 속에 오드를 뛰어넘은 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렇겠지, 너의 기억 속에 오드는 중급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드는 한참 전에 상급은 뛰어넘었겠죠.”

“뭐, 너도 할 수 있을 거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아카데미의 천재들이랑 페트릭은 다를 게 없었다. 그만큼 페트릭에게도 재능이 있었다.

“지금까지 넌 별다른 가르침 없이 중급까지 도달했지. 이젠 내가 가르친 이상 언젠가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을 거다.”

마음 같아서는 소드마스터라도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여기서부터는 천재가 아닌 괴물의 영역이다.

아무리 천재라고 한들 소드마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크나큰 벽을 넘어야한다.

나 역시도 내가 소드마스터가 될 거란 확신은 갖지 못하고 있다. 뭐, 안 되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스승님···.”

“뭐, 오늘의 성과는 그 정도면 충분한 거 같고 이제 의뢰를 끝내야겠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트롤의 피를 채취해라.”

“네!”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 나는 트롤이 보이는 족족 목을 베어 사냥했다. 트롤을 베면서 다른 생각도 겸사했다.

‘모레드트랑 프리드는 뭐하고 있으려나?’

아카데미가 떠오르니 그곳에 남아있는 내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떠올랐다.

***

수하르가 사리진 직후부터 프리드와 모레드트는 한동안 어색한 사이를 유지했다.

“그··· 안녕?”

“어··· 안녕!”

친구의 친구. 프리드와 모레드트는 수하르가 있던 시절엔 별로 말을 섞지 않았다. 수하르가 사라지고 나서야 둘은 말을 섞기 시작했다.

모레드트가 말했다.

“혹시 수하르 이 녀석 어디 갔는지는 모르지?”

“그러게, 갑자기 어디로 간 거야. 검성님이 많이 화나셨던데.”

“설마, 나랑 대련하는 게 무서워서 도망친 건가?”

프리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하르가 나를 이겼는데 모레드트 너와 대결한다고 설마 도망치겠어?”

“뭐? 그 소리는 마치 내가 너보다 못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뭐 그런 건 대봐야 아는 일이지.”

“이거 안 되겠네.”

프리드와 모레드트는 매일같이 대련을 시작했다.

둘의 전적은 간소한 차이로 모레드트가 우세했다.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건 인정할게···.”

11전 5승 6패의 프리드가 내기한 대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모레드트는 입가가 찢어지도록 웃었다.

“그래도 별차이는 없으니까. 그저 내가 너보다 약간 더 강할 뿐이지.”

“···그래, 너 잘났다.”

여러 번의 대련과 이야기 끝에 둘은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수하르의 소식을 듣고, 수하르가 가출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둘이었다.

“아니, 갑자기 가출?”

“나도 그게 의아하단 말이지.”

“생각해보니 너 칼데르트가와 가까운데 왜 가출했는지 못 들었어?”

잠시 말을 멈춘 프리드, 이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헛소문이라고는 생각하는데 칼데르트가에 마족이 나타났대.”

“마족···?”

“그 마족을 수하르가 처치했대.”

모레드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뜬금없는 소리였다.

“정수리 마족이 마족을 처치해? 그건 그렇다고 쳐도 왜 가출을한 거야? 좋은 일을 한 거잖아.”

“너도 수하르가 어떤 애인지 알잖아. 만약 후계자경합 중에 마족을 처치한 영웅 같은 존재가 나타나면 어떨까.”

모레드트는 프리드가 말하고자 한 바를 눈치챘다. 수하르가 마족을 처치했다면 가신들의 관심은 그쪽으로 쏠릴 것이다.

아무리 수하르가 후계자가 되기 싫어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가출인가···.”

“솔직히 마족이 언급된 시점에서 나는 헛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하긴 마족은 전설 속에 나올 법한 과거의 잔재지.”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모레드트, 만약 이 이야기가 진짜라면···.”

“우리 둘은 수하르의 상대가 될 수는 없겠네. 적어도 에아 키르턴이라면 다르겠지만.”

“일단 적어도 내 목표는 너를 완벽하게 이기는 거야.”

“기대할게, 프리드.”

둘은 다시 서로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

트롤 던전을 끝내고 보수마저 챙겼다.

“역시 다이아 용병의 보수는 남다르네요, 스승님.”

“이 정도면···.”

한참은 놀고먹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조르던 자유도시에 돌아온 순간부터 묘하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곧 재앙이 들이닥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설마···?”

나는 급하게 집으로 뛰어갔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집은 여전했다.

밭을 가꾸던 넘버완이 나를 보고 다가왔다. 넘버완의 뒤에는 예전에 보았던 건달들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뭐해 빨리 인사드려.”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나란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이들보고 나는 어떻게든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페트릭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크하하하, 스승님 이들은 도대체 뭡니까?”

페트릭의 이런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이들의 머리는 예전 내가 새겨준 숫자가 그대로 적혀있었다.

“그냥 너희들 머리를 밀지, 왜 그렇게 놔둔 거야.”

나의 물음에 답해준 것은 넘버완이었다.

“사실 저희 인상이 좀 험악하지 않습니까. 이 머리를 하고 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진 않더라고요.”

그런 게 이유라고?

“한스 형님께서 말하신 대로 저희 그 이후로 가이드 사업을 좀 했습니다. 망했지만 말이죠. 그래도 이 머리를 하고 있는 걸 본 손님들은 되게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데?”

“그거에 관해서는 저희가 또 고용된 몸이 아니겠습니까. 알기 쉽게 머리에 적힌 숫자로 말해주시죠.”

그건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다만 조금 미안해질 거 같다.

“그래도 되려나?”

“당연하죠, 솔직히 서로 번호로 부르다보니 이젠 이름보다 번호가 더 익숙합니다.”

그런 건가. 뭐 상대방이 괜찮다면야.

“넘버완, 아무래도 너도 똑같이 번호로 부르는 게 좋겠네. 차별을 두면 안되니까.”

흠칫하는 넘버완. 자기는 번호로 불리기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세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해주었다.

“넘버완. 아니, 1번아, 밭은 어때?”

“솔직히 밭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이런 밭 어디서 못 봅니다. 다만 산 속이다 보니 야생동물이나 몬스터들이 좀 걱정됩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다. 내게는 충실한 경비견이 될 예정인 하르가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하르가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하르는 어디간 거야?”

“그 강아지 녀석은 저기서 물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넘버완이 가리킨 곳엔 하르가 있었다. 하르는 갯가에서 정신없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한스 형님, 저거 강아지 맞습니까? 만지려고 몇 번 했는데 영 사나워서.”

“강아지 맞아.”

혹시라도 이 녀석들이 겁을 먹을까봐 하르를 강아지라고 이야기해두었다.

“그나저나 하르 저 녀석 갯가에서 물장구를 치는 건 처음 봤는데.”

“그냥 물장구만 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하르의 옆을 가리키는 넘버완. 나는 그곳에 쌓인 생선뼈를 확인했다.

하르는 물장구가 아니라 사냥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무슨 강아지가 물고기도 잘 잡고, 신기합니다.”

“나도 저 녀석이 물고기도 잡을 줄 알았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 하르야!”

내가 하르를 외치자 하르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며 내게 안겨왔다.

“어우, 신기하네. 어떻게 제 주인한테는 이렇게 꼭 안긴데요.”

“다 이게 정을 줘서 그런 거지. 이제 곧 날도 저물텐데 데려다줄까?”

어느 정도 개척된 산이라고는 하나 몬스터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었다.

혹시 모를 위험 또한 있을 수가 있었다.

“아, 괜찮습니다. 저희는 어렸을 때부터 이 산을 타서 몬스터가 있어도 잘 피해 갑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그럼, 얼른 내려가봐. 날 저물면 위험하니까.”

이들은 충분히 오늘치의 일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내려가지 않고 내게 어물쩍거리며 다가왔다.

“그··· 혹시 가불이 될까요?”

맞다. 생각해보니 넘버완은 돈이 없어서 삥을 뜯고 있던 걸 발견하고 데려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선금을 줘야할 듯싶었다.

“그렇다면 한 달 치를 먼저 줄게.”

“네···?”

통큰 내 선언에 녀석들이 놀랐다.

“자, 여기 받아라.”

트롤의 보수에서 돈을 꺼내 나눠주었다.

“그런데 돈 먼저 줬다고 도망치면 안 된다. 어떻게든 찾아낼 거니까.”

나는 이들에게 싱긋 웃어주었다. 약소한 협박의 의미였다.

다행히도 협박이 잘 통한 건지 이들은 경직되었다.

“뭐해, 날 저물겠다. 얼른 내려가.”

내 말에 이 녀석들이 급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불길한 감각은 무엇일까. 분명 내게 위기가 찾아온다고 감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트롤 던전 임무는 진작에 끝냈다.

“도대체 뭐지.”

“스승님, 어떤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왠지 불길하다. 위기가 곧 닥칠 것이다.

라고 페트릭에게 말하기엔 좀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일단은 아무 일도 없으니 나는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하여튼 너무 배고프다.”

“제가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놓겠습니다. 좀 쉬고 계십쇼!”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쉬고 있을게.”

페트릭이 집으로 먼저 들어갔다. 페트릭의 요리솜씨가 좋으니 식사가 절로 기대가 된다.

페트릭이 요리를 완성하기 전까지 하르와 놀아주어야겠다.

품에 안은 하르를 바닥에 내려놓자 곧바로 갯가로 향했다.

“이 녀석이, 또 사냥놀이냐.”

하르가 물장구치듯 생선을 잡는 것을 구경했다.

하르 이 녀석의 솜씨가 제법이었다. 물고기가 보이는 족족 잡아내고 있었다.

나는 하르의 배를 힐끗 쳐다보았다. 뭘 그리 많이 먹은 건지 배가 빵빵하다.

“너 오늘은 그만 먹어도 되겠는데?”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하르가 나를 사납게 쳐다보았다.

자신은 여전히 배고프다고 말하는 듯 짖기 시작했다.

“알았어, 먹어. 누가 먹지 말래.”

그제 서야 만족하고 다시 물장구를 치기 시작한 하르였다.

하르의 식탐은 도저히 못 말릴 정도였다.

이내 식사가 준비된 것인지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가자, 하르야···.”

내가 가자고 말하기도 전에 집으로 뛰어가는 하르. 하르를 보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그나저나 나도 배가 고프니 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

다음 날, 아침.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제 느낀 불길한 기분이 여전했다.

도시로 내려가면 큰일 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조건 도시로 내려가야만 했다.

“하르, 이 녀석 때문에···.”

또다시 시청을 찾아가서 하르에 대한 보고를 올려야했다.

몬스터를 펫으로 기르는 자의 숙명이었다.

도시에 도착하는 데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다.

“역시 내 착각이었나?”

안심하려던 찰나에 무언가 내 관자놀이에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담긴 힘이 상당한 게 분명했다.

“미친!”

힘을 숨길 때가 아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막아냈다.

하지만 막아내고도 튕겨져버렸다.

“누구냐!”

하고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손에 든 검을 놓치고 말았다.

나를 공격한 사람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수하르.”

내 실력에 감탄이라도 한 것인지 놀란 표정을 짓는 검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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