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나는 멋쩍게 웃었다.
“검성님··· 오랜만이십니다!”
“그렇지 네놈이 편지 한 통만 보내놓고 간 지 벌써 꽤 되었구나.”
아무래도 내 불길한 예감은 검성을 말하는 듯했다.
확실하게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검성.
“아, 제가 또 검성님께 드릴 선물이···.”
“선물이···?”
아직 에이션트 스네이크로 만든 뱀술이 완성되려면 한참 남았다.
“아··· 그··· 저··· 아직 선물이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호오, 내 화를 선물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보군?”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카데미의 안식기간이···.”
분명히 아니다. 아직 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조기에 모든 강의를 끝내고 너를 찾으러 왔다. 보아하니 이름도 바꾼 거 같더구나.”
“네, 한스 라이크라고 잠깐 바꿨습니다.”
“그런데 머리카락의 색도 바꾸지 않고 그렇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참으로 대담하구나. 사실은 찾아주길 바라기도 한 거냐?”
이 정도 거리를 찾아올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아닙니다. 아니, 사실은 검성님이 찾아와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말은 잘하구나. 그나저나 꽤나 실력이 좋아졌구나. 내 공격도 막고 말이야.”
제대로 막지 못해 튕겨져 나갔는데···.
“이제 안 봐줘도 되겠구나.”
아, 이게 목적이었구나. 실력이 좋아졌다는 핑계로 제대로 손봐줄 생각인가보다.
“잠시만요!”
“오호, 유언이라도 남길 셈이더냐?”
이게 무슨 말인가, 나를 죽일 생각으로 온 것인가. 농담 같지만 농담 같지가 않은 말이다.
어떻게든 회유해야한다.
“혹시 에이션트 스네이크로 만든 뱀술을 아십니까?”
검성의 눈썹이 올라갔다. 반응은 분명했다.
“······.”
“제가 최근에 운이 좋게 에이션트 스네이크를 잡아냈습니다.”
“호오···.”
점차 밝아지는 검성의 표정.
“그래서 술을 담그고 있는데 아직 완성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본래 검성님의 선물로 완성되는 즉시 가져다 드릴 예정이었습니다.”
“나쁘진 않군.”
별관심이 없는 듯한 말투와는 다르게 확 밝아진 검성의 표정이었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위기는 넘긴 듯했다.
“그나저나 실력이 꽤나 좋아졌는데 나와 대련은 한번 해보아야겠지. 내가 친히 가르침을 주마.”
아무래도 값비싼 선물이라도 맞지 않고 끝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검성의 말에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안 아프게 끝내주세요.’
말했다시피 소드마스터와 소드익스퍼트의 격차는 엄청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안 아프게 끝나는 법 밖에 없을 듯했다.
그래도 선물까지 주는데 그렇게까지 아프게 때리지는 않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내가 믿어 의심치 않을 때마다 내 믿음을 배신을 하고는 했지.’
괜히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떨쳐버리고 검성에게 말했다.
“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자꾸나.”
“아, 잠시 제가 시청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할 일이라니 무엇을?”
내 품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하르. 방금까지 긴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믿지 못할 정도로 하르는 평온해보였다.
“이 녀석 때문입니다.”
나는 하르의 뒷목을 잡아 검성에게 보여주었다.
검성은 하르를 보더니 곰곰이 생각하고 말했다.
“그래, 어디서 봤나 했더니 은빛늑대 새끼로구나.”
“예, 맞습니다. 그래서 시청에 꾸준히 근황을 알려야합니다.”
“흥, 애완동물마저 기르다니 아주 살맛났구나.”
일단 나는 검성과 함께 시청을 간 뒤 하르에 대한 근황을 알렸다.
다행히도 하르는 바르게 자라고 있다고 하였다.
이제 검성과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잠깐.”
잠시 멈춘 검성. 왜 그런지는 내가 알 도리가 없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혹시 집에 해독초가 있느냐?”
“어···.”
딱히 구비하진 않았지만 소량은 있을 거다.
“조금 있습니다.”
“흠··· 그걸로는 부족하군. 해독초를 많이 사거라.”
갑자기 해독초라니.
설마 검성은 나를 독살이라도 할 생각인가.
아니지 독살을 하려했다면 분명 해독초 따윈 사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해독초를 사라는 것일까.
“두고 보면 안다.”
내 의문을 눈치챈 검성은 딱히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는 검성의 말에 따라 해독초까지 산 뒤에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검성은 문을 열자마자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검성님···?”
“기다려보거라!”
검성이 눈을 감고 도착한 곳은 술 저장고였다.
나는 검성의 후각에 감탄을 자아냈다.
“어떻게 냄새만으로 알아차리신 겁니까. 게다가 여긴 지하에다 술은 제가 밀봉해두었을텐데.”
“너도 애주가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일단 맛 좀 봐볼까···.”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검성님, 지금 뭐라고 하셨죠.”
“맛 좀 본다고 했다. 왜 싫으냐?”
“싫은 게 아니라···.”
아직 독이 안 빠져서 마시면 죽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해독초를 산 이유가 설마···.
“내 경지가 얼만데, 독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독초 하나 먹으면 충분하다.”
“······.”
역시 소드마스터는 인간을 뛰어넘었다는 건가.
에이션트 스네이크의 독도 해독초 하나로 해독할 수 있다니.
어이가 없다.
“어디 보자···.”
검성이 술통의 뚜껑을 열어 손으로 퍼먹었다.
그 모습은 마치 동화에나 나오는 술을 좋아하는 드워프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해독초를 안주삼아 씹으며 검성이 말했다.
“캬하, 아주 잘 담궜구나! 수하르 너한테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이야.”
“아하하하··· 저 이름을 바꿨으니 한스라고 불러주세요.”
“에잉, 쯧쯧. 어찌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스스로 버리느냐. 나는 수하르라고 부르련다.”
솔직히 별상관은 없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다, 잠시 외출을 나간 페트릭 또한 내가 가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검성님··· 혹시···!”
재밌는 생각이 났다.
일단 검성이 화낼 것도 생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제가 제자를 받아들였습니다.”
“오호, 하긴 수하르 네 녀석 실력이 꽤나 좋아졌으니 제자를 들일만도 하지.”
“그런데 제가 지금 제자에게 가르치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검성식 훈련법.
그 훈련을 시행 중이라 말하니 검성이 사악하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옳다구나. 보아하니 네 제자 녀석한테 내가 한 수를 가르쳐주면 어떤가 하는구나.”
“맞습니다!”
솔직히 내가 하는 것보다 소드마스터인 검성이 해주는 게 페트릭에게도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검성의 훈련 강도는 나보다는 더 높겠지만.
“뭐, 상관없다. 너를 찾고 다니느라 많이 심심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그런데 검성님은 어떻게 저를 바로 찾으셨습니까?”
거리가 멀어 굳이 겉모습을 딱히 바꾸진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도 너무 빨리 나를 찾아냈다.
“내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까먹었느냐?”
안 까먹었다.
“사르키드 공작가가 아닙니까.”
“그래, 사르키드 공작가지. 여기서 중요한건 공작가다. 공작가는 돈도 많고, 영지도 넓고, 권력도 있다. 이 권력을 이용하면 정보단체를 좀 고생시킬 수 있지.”
나를 찾으려고 자신의 권력까지 충분히 이용했다는 소리였다.
앞으로 검성한테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보이면···.
‘상상도 하기 싫네.’
“그런데 검성님···.”
“뭣 때문에 또 나를 부르는 게냐.”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검성은 술을 몽땅 먹어치울 생각인지 계속해서 마시고 있었다.
“이제 그만 마시는 게···.”
“에잉, 그렇게도 내게 주는 술이 아까운 게냐.”
“아닙니다. 그래도 마실 거면 잘 담근 술을 드셔야지요.”
“음··· 그래, 알았다.”
다행이다. 술을 다 먹진 않을 모양이다.
게다가···.
“검성님께서는 제 제자에게 한 수 보여주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취하신 상태로는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검성이 힘 조절에 실수를 하면 페트릭이 죽어버린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괜찮다. 마나를 좀 돌리며 술을 깰 수 있으니.”
그걸 알고 있는데 어째서 마나를 돌리지 않는 걸까.
뭐 대충 알 거 같다. 딱 봐도 취한 상태로 있고 싶은 게 분명하다.
“진짜 술은 깨셔야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나와 대련을 해봐야지 않겠나!”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검성은 잊지 않았다.
“그··· 검성님께서 취한 상태이시고, 술도 지금 빨리 깨버리면 아깝지 않겠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핑계였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취한 정도면 충분한 핸디캡이 아니더냐.”
힘 조절이 안 돼서 내가 죽으면 어떡하려고 하는 막말인가.
“솔직히 취하신 검성님께서 본 실력을 내시면 제가 죽을까봐 그럽니다.”
“이제 내가 굳이 힘 조절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지 않느냐.”
틀린 소리다. 무슨 소드익스퍼트 최상급이 소드마스터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검성은 취한 게 확실했다. 헛소리를 해대니 말이다.
“검성님, 제발 자비를···.”
“에이, 시끄럽다. 내가 취기를 몰아내기 위해 마나를 돌려야겠느냐!”
“그러시는 게 저한테는···.”
“내가 마나를 돌려야하는 상황이 벌어진 다음을 생각하거라!”
좋은 술을 마시고 취한 기분을 몰아낸 이상 각오해야할 상황이 찾아올 것이다.
아무래도 취한 검성과 대련을 해야할 듯했다.
괜히 안 취했지만 화가 난 검성보다는 나을 듯하니 말이다.
“나오시죠!”
각오를 다지기로 했다. 술저장고를 나가려고 하는데 검성은 여전히 아쉬운지 술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완벽해진 술을 마실 걸 생각해주십쇼!”
“그래, 그렇지. 만약 그때가 돼서 내 몫의 술이 없다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게다.”
“당연하죠! 걱정 마세요.”
집 근처에서는 왠지 검성이 밭이나 집을 부술 거 같았기에 조금 먼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추가적으로 대련 중에 페트릭이 와버리면 깜짝 이벤트가 실패할 수 있었다.
“자 검성님, 저 전력을 다할 겁니다.”
“그래, 와보거라!”
검성에게 돌진했다. 염동력을 내 몸에 둘러 최대한의 속도로 접근했다. 그리고 곧장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성은 내 공격을 너무나도 가볍게 피해버렸다. 곧바로 이어지는 검성의 반격에 나는 튕겨져 나갔다.
쿵!
나무에 등을 부딪혔다.
“억! 아니, 이게 무슨 핸디캡이야.”
“쯧, 조용히 하고 얼른 다시 와 보거라!”
잠시 고민했다. 비기를 쓴다고 해서 검성의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검성이 모르는 내 힘이 있지 않는가. 염동력.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솔직히 검성님한테 숨길 필요도 없고.’
생각을 정리하고 비기를 쓰기로 했다. 마나를 모아 검성에게 날렸다.
검성은 내 비기를 가볍게 피하고 내게 접근해 검을 머리 위로 올렸다.
“경지만 올랐지, 발전한 게 하나도 없구나.”
검성이 검을 내려치려는 순간 나는 염동력을 사용했다.
내려치려는 검성의 검을 단단히 묶었다. 검성이 내려치려는 힘 때문에 눈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지금이 기회였다. 빈틈투성이의 검성을 향해 나는 검을 휘둘렀다.